● 민주노총 21일부터 다채로운 노동절 기념행사 시작
- 노동절 기념 비정규주간(4.21∼30)
- 노무현정권 노동정책 대토론회(4.21∼29)
- 노동절기념 비정규철폐 마라톤대회(4.27, 여의도)
- 남북노동자 5.1절 공동행사 (4.30∼5.2, 평양)
- 노동절기념 대규모 집회 (5.1, 서울 대학로)
1. 철도파업을 마무리한 민주노총이 힘있고 다채로운 노동절 행사로 나아갑니다. 오늘 4월21일부터 시작되는 민주노총의 올해 노동절 기념행사는 유난히 풍성합니다. 민주노총은 세계노동절 113주년을 맞아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비정규직 주간과 노무현 정부 노동정책 대토론회를 시작으로 27일 기념마라톤대회에 이어 4월30일부터 사흘동안 평양에서 남북노동자공동행사를 갖고, 5월1일에는 서울에서 3만 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기념대회를 열 예정입니다. 아울러 민주노총은 노동절의 이름을 돌려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2. 세계 노동절의 유래는 1886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86년 미국. 놀기만 하는 자본가들이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해 넣고,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울 때,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 장시간의 노동에 일주일에 7-8달러의 임금으로 월 10-15달러하는 허름한 판잣집의 방세내기도 어려운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위해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공장의 기계소리, 망치소리가 멈추고, 공장굴뚝에서 솟아오르던 연기도 보이지 않고 상가도 문을 닫고 운전수도 따라서 쉬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세계가 멈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날이었고 노동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힘에 가슴이 부풀어올랐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파업 농성중인 어린 소녀를 포함한 6명의 노동자를 발포 살해했습니다. 그 다음날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30만의 노동자 시민이 참가한 헤이마켓 광장 평화 집회에서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폭탄이 터지고 경찰들이 미친듯이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그 이후 폭동죄로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체포되었고 억울하게 폭동죄를 뒤집어 쓴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장기형 또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세계 노동운동사에 뚜렷이 자취를 남긴 헤이마키트 사건입니다.
마지막 재판에서 노동운동 지도자 파슨즈는 이렇게 최후진술했습니다.
"그렇다. 나는 지금은 비록 임금을 받아먹고 사는 노예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 노예 같은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 자신이 노예의 주인이 되어 남을 부리는 것은, 나 자신은 물론 내 이웃과 내 동료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중에 하나다. 만약에 인생의 길을 달리 잡았다면 나도 지금쯤 시카코 시내의 어느 거리에 호화로운 저택을 장만하고 가족과 더불어 사치스럽고 편안하게 살수 있었을 것이다. 노예들을 나 대신 일하도록 부려 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걷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여기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이것이 내 죄인 것이다.
파업하는 노동자에게 폭탄을 던지라고 말한 것이 누구인가? 독점 자본가들이 아닌가? ... 그렇다. 그들이 주모자들이다.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 폭탄을 던진 것은 바로 그들이다. 8시간 노동 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뉴욕에서 특파된 음모자들이 폭탄을 던진 것이다. 재판장, 우리는 단지 그 더럽고 악랄무도한 음모의 희생자들이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당시 구속 또는 사형된 노동운동가들이 모두 무죄였던 것이 증명되었다. 그들에 대한 유죄판결은 조작된 허위였던 것입니다.
3. 우리에게 메이데이(MAY DAY)라 불리는 세계노동절은 오랫동안 '빼앗긴 노동자의 날'이었습니다만, 이제 완연히 부활한 모습입니다. 8시간 노동제를 위해 사형을 당하면서까지 싸웠던 1886년 5월1일 미국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을 국제노동계가 1890년부터 기리면서 시작된 세계 노동절이 바로 MAY DAY입니다. 우리나라도 일제치하인 1923년 조선노동총연맹 주도로 첫 노동절 기념행사를 연 이래 5월1일을 노동절로 삼아 기념하고 일제와 싸우며 당면과제를 위해 투쟁해왔고, 해방직후인 1946년엔 동대문운동장에서 20만 노동자가 참여한 가운데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주최로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 전평을 깬 뒤 한국노총 전신인 대한노총을 창립하고는 57년부터는 노동절을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10일로 바꿔버렸습니다. 날짜를 빼앗긴 노동절은 5.16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그 이름까지 '근로자의 날'로 바꿔버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1963년 4월 17일 공포, 법률 제1326호)날짜와 이름을 모두 빼앗긴 노동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독재정권이 이름과 날짜를 빼앗은 이유는 ▲노동자의 단결을 과시하는 날, ▲노동자들의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투쟁하고 결의를 다지는 날, 그리고 ▲노동자 국제연대의 날이라는 노동운동 정신을 빼앗고, '정권의 하수인 어용노총 생일날'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일만하는 근로자'로 살 것을 다짐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4.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일어선 노동자들은 어용노조에 반대하는 민주노조를 건설했고 1989년 100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경찰의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연세대에 모여 전야제를 연 후 강력한 집회 시위를 벌이며 40여 년 만에 진정한 노동절을 부활시켰습니다. 1990년에는 KBS파업·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과 맞물린 총파업 속에서 서울대에서 치러졌습니다. 그 뒤부터 노동절 기념행사는 한국노총과 정부의 3.10 근로자의 날 행사와 민주노조의 5.1 노동절 투쟁으로 나뉘어 열렸습니다. 마침내 1994년 3월9일 국회 법 개정을 거쳐 '문민정부'를 내세운 김영삼 정권은 3월10일에서 5월1일로 근로자의 날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권을 지나고도 노동절이란 이름은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빼앗긴 노동절을 온전히 되찾기 위해 관련 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참여정부'가 성스러운 노동절 이름을 돌려줄 것을 기대합니다. <끝>
○ 세계노동절 113주년 기념 '노무현정부 노동정책 대토론회' 안내
- 노무현 정부의 정책진단과 개혁방안
(※토론회 자료집 175쪽 분량 전문이 민주노총 홈페이지 정보자료광장 참조, 상세한 안내는 뒷자료 참조)
4.21(월) 산재보험의 문제점과 개혁방향
4.22(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과 개혁과제
4.23(수) 국민연금 재편방안의 문제점과 올바른 개혁방향
4.24(목) 비정규직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4.25(금)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자 민중의 대응방향
4.29(화) 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과 개혁과제
○ 세계노동절 113주년 기념 비정규 철폐 마라톤대회
- 2003년 4월 27일(일) 09:00~14:00 / 여의도 한강 둔치(순환) - 약10Km
- 접수부문 :·개인마라톤 : 일반시민 및 민주노총 조합원 ·단체마라톤 : 20인 이상 사회단체 및 노동조합 ·가족마라톤 : 3인 이상 가족
- 접수처 : ·일반인 : 인터넷 접수(www.nodong.org) ·민주노총 조합원 : 소속 연맹
- 참가비 : 1인당 5,000원(접수시 고급티셔츠, 몸벽보, 각종 음료 제공)
- 시상 : 개인 남녀(장애인, 어린이 포함), 단체, 가족 각 1, 2, 3등에 시상
- 마라톤 진행 : 09:00~10:00 참가자 집결, 접수, 기념 티셔츠 배포 10:00~10:20 개회식(개회사-행사안내)
10:20~13:00 마라톤대회(남녀 개인별, 단체별, 가족별) 13:00~14:00 휴식, 시상식, 폐회
- 문화행사(12:00~14:00)
· 문화마당 :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 사진 전시회, 페이스 페인팅, 손도장 대자보 또는 걸개 만들기
- 문의 : 비정규사업실(02-2675-2015/2636-0163)
4. 21(월) 14:00-18:00 산재보험의 문제점과 개혁방향
- 사회 : 이상학 정책국장
- 발제 : 조태상 산업안전부장
- 토론 : 노동부, 경총, 산재노협, 산재보험공대위, 국회의원
- 장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
4. 22(화) 14:00-18:00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과 개혁과제
- 사회 : 신승철 부위원장
- 발제 : 김태연 정책기획실장
- 토론 : 노동부, 경총, 공무원노조, 금속산업연맹, 공공연맹
- 장소 : 국회 도서관 강당
4. 23(수) 14:00-18:00 국민연금 재편방안의 문제점과 올바른 개혁방향
- 사회 : 김형탁 부위원장
- 발제 : 오건호 정책부장
- 토론 : 보건복지부, 경총, 한국노총, 국민연금관리공단, 국회의원
- 장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
4. 24(목) 10:00-12:30 비정규직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1부 :특수고용ㆍ파견제
- 발제 : 권두섭 법규차장, 이상학 정책국장
- 토론 : 노동부, 노동연구원, 비정규센터, 국회의원
- 장소 : 국회 도서관 강당
4. 24(목) 14:00-18:00 2부 : 기간제고용ㆍ차별철폐ㆍ감시감독
- 발제 : 김선수 민변 사무총장, 주진우 비정규사업실장
- 토론 : 노동부, 인권위원회, 민변, 불안정철폐연대, 국회의원
- 장소 : 국회 도서관 강당
4. 25(금)14:00-18:00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자 민중의 대응방향
- 사회 : 이재웅 사무총장
- 발제 : 김태연 정책기획실장
- 토론 : 재경부, 전농, 환경운동연합, 교육개방저지공대위, 보건의료노조, 경기본부, 전경련
- 장소 : 민주노총 9층
4. 29(화) 14:00-18:00 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과 개혁과제
- 사회 : 이상학 정책국장
- 발제 : 김창희 사무금융연맹 정책실장
- 토론 : 재경부, 농림부, 금감위, 국회의원
- 장소 : 교보증권 컨벤션홀
<끝>
* 한국노총 성명서
성 명 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 : 715-6727 팩스 : 715-7790 홈페이지 : www.fktu.or.kr
문의: 이정식 대외협력 본부장(011-787-5187) / 강훈중 홍보국장(019-218-2260)
5.1노동절 정신 훼손하는 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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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노동절 정신 훼손하는 민노총
1. 우리는 민주노총이 21일 단결과 연대의 상징인 '노동절' 명칭을 되돌려 달라는 보도자료를 통
해 역설적으로 한국노총을 자극하고 노노갈등과 분열을 야기하며 노동절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데 대해 개탄과 분노를 금할수가 없다.
양노총은 물론 체제가 다른 북한의 직총이 서로 만나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남북노동자대표자
회의'를 갖고 남북노동자가 함께 평양시내를 달리며 '통일마라톤대회'를 하는 이 마당에 50년도
넘은 케케묵은 냉전의 역사를 둘추어 내면서 남남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민주노총의 저의가 무
엇인지 궁금하다.
2. 민주노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승만 정권은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 전평을 깬 뒤 한국노총
전신인 대한노총을 창립하고는 57년부터는 노동절을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10일로 바꿔버렸습니
다."고 주장했다.
꼭 그렇게 한국노총을 자극하는 표현을 해야 하나.
전평은 해방직후인 1945년11월5일 설립되었다. 전평간부 대부분이 조선공산당 간부를 겸임하고
있을 정도로 전평의 활동은 조공과 좌익의 방침에 직접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사회주의 혁명노선
을 견지하고 있었다. 전평은 좌익의 방침에 따라 초기에는 식량문제 해결등 경제투쟁을 전개하기
도 했으나 46년9월총파업과 47년3월총파업을 거치면서 신탁통치 찬성, 박헌영 석방, '남조선 정
권을 인민위원회로' 등 정치투쟁으로 치달았다. 전평은 좌우대립이 격화되고 미군정의 탄압이 가
해지면서 대중과 유리된 폭동투쟁으로 일관하면서 대중기반의 와해를 재촉하였다. 이승만의 우익
정권 역시 좌익혁명노선을 운동노선으로 하는 전평과 양립할수 없었으며 탄압이 가해졌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노총에게 묻고자 한다. 첫째, 한국노총의 전신이 대한노총이면 민주노총의 전
신은 전평인가? 둘째, 사회주의혁명노선을 지향하며 극단적 폭력투쟁을 전개한 전평의 운동노선
은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가?
3. 한국노총은 89년 이후 자주적 민주노동운동을 표방하며 과거 시대에 맞지 않는 대한노총의 이
념과 운동노선을 청산하고 '민주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또한
1960년11월25일 대한노총은 노조민주화를 요구하는 현장의 투쟁으로 전국노협과 통합하여 한국노
련으로 다시 태어났고, 1961년 5.16직후 일시 해산되는 비운을 겪은후 8월 재건되었다. 엄격히
따지면 지금의 한국노총과 대한노총은 이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대한노총이 한국노총의 전신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랑스
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우리 노동운동의 역사이며, 우리가 싫다고 해서 역사가 없어지는 것
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노총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주성과 민주
성, 대중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우리는 민주노총의 뿌리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민노총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조직이 아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도 대한노총으로 부
터 자유로울수 없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사회주의혁명노선을 지향한 전평의 운동노선을 표
방하는 노동조합들은 6.25이후 남북이 서로 대치하고 남한에 강력한 반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
이상 존립할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좋든 싫든 남한의 노동조합은 그 뿌리를 대한노총에 둘수 밖
에 없다.
더군다나 민주노총 조직은 처음부터 한국노총과 이념·운동노선을 달리하면서 출발한 것은 아니
다. 과거 민주금융, 민주택시처럼 한국노총 산하조직으로 있으면서 연맹선거에서 떨어진 후보가
새로운 연맹을 만들어 민주노총 계열로 가거나 한국통신, 철도 처럼 오랫동안 한국노총에 있던
노조들이 소위 '강성집행부'로 바뀌면서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변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
주노총의 전신이라 할수 있는 전노협 역시 주로 한국노총으로 부터 이탈한 조직들이 건설했다는
것은 노동판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아는 사실이다. 그뿐이 아니다 심지어는 한국노총에
서 활동하던 상근간부들도 자리를 옮겨 민노총 건설에 기여했다.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변경
하든 활동공간을 바꾸던 그들의 뿌리는 분명 한국노총인 것이다. 따라서 대한노총이 한국노총의
전신이라면 민주노총에게는 '할아버지'정도 되지 않을까. 특히 얼마전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변경한 철도노조는 대한노총의 설립멤버가 아닌가. 무늬만 바꾼다고 과거 역사까지 바꿀수는 없
는 일이다.
5. 민주노총은 또한 "1990년에는 KBS파업·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과 맞물린 총파업 속에서 ...
노동절 기념행사는 한국노총과 정부의 3.10 근로자의 날 행사와 민주노조의 5.10 노동절 투쟁으
로 나뉘어 열렸습니다."고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1989년 전국대의원대회에서 '과거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에 강요되었던 노동통
제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 버리고 자주적 민주노동운동을 힘차게 전개하기 위해 노동절을 5월1일
로 환원할 것을 결의하고 1989년 9월 국회에 '근로자의날에 관한 법률'개정을 청원하는 한편
1990년부터 5월1일을 노동절을 기념하여 왔다. 1990년 이후 한국노총이 3.10근로자의날을 기념
해 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며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6. 민주노총은 3월10일 근로자의날을 5월1일로 되돌리는데 기여한 한국노총의 역할을 의도적으
로 숨기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3.10근로자의 날을 5.1일 노동절(한국노총은 1990년부터
5.1노동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기념행사를 거행함)로 전환하는데 한국노총이 법률개정 청원
등의 활동을 하면서 많은 역할을 했다. 물론 한국노총도 '5.1노동절'로 날짜와 명칭을 변경할 것
을 요구했지만 날짜를 변경하는데 그치고 명칭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당시 3
월10일 근로자의날을 5월1일로 변경하는데 대해 정치권은 '사회주의국가에서 기녀하는날'이라며
완강히 반대하여 어려움이 대단히 컸었다. 따라서 민노총이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근로자의날을
3월10일에서 5월1일로 바꾸는데 기여한 한국노총의 역할을 인정하고 나서 양노총이 힘을 모
아 '노동절'이라는 명칭까지 되찾자고 제안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5.1노동절을 환원하는 운동
을 전개한 것은 새삼 민주노총이 처음은 아니며 민주노총의 전유물 또한 아니다. 우리 1천3백만
노동자 모두의 몫이다.
7. 우리는 각종 연대활동을 하면서도 틈만나면 노총에게 비수를 들이되는 민주노총의 이중적 행
태를 보며 과연 진정으로 민노총이 한국노총과 연대사업을 할 의사가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으며, 민노총과 연대활동을 하는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재검토 할수 밖에 없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