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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지나 (http://cafe58.daum.net/godam/) | |
우리의 정체성과 사유의 주체성의 근거를 찾기 위한 시론 | |
사라진 원형종교와 원형문화를 찾아서
또 샤마니즘이라는 어휘도 서양의 학자들이 한국의 토속신앙을 연구하기 이전에 이미 만든 문자이므로 우리의 토속신앙을 샤마니즘의 범주에 넣는 다는 것 자체에 무리가 따른다.
우리의 토속신앙은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을 숭배하는 자연회귀 신앙이다. 특정한 샤만이 주술행위를 하면서 자연과 대결을 벌이는 샤마니즘이 아니다. 우리에게 샤마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토속신앙과 샤마니즘은 구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하게 쓰고 있는 토속신앙이라는 의미 조차도 올바르게 쓰는 것이 아니다. 토속신앙을 태어나게 한 원형 종교가 이미 있는 것이다. 이 원형 종교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동이족이 향유했던 인류 최고 수준의 종교이다.
이 최고 수준의 종교가 사회적으로 멸시를 받고 천대를 받아 온 무당들에게 넘어가 오랜 세월을 타락해 온 끝에 질이 낮은 토속신앙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유한 종교가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질이 낮은 토속신앙이라고 하던가, 정의가 분명치 못한 샤마니즘 정도로 이해해서는 아니 되고, 토속신앙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서 원형 종교를 찾아내어 거기에서 해답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담론의 필요성
우리의 원형 종교는 지금으로부터 14000여 년 전에 마고가 선포한 율려가 처음이고, 다음에 마고의 후예인 황궁이 마고로부터 물려받아 황궁과 유인을 거쳐 한인천제에게로 전수한 천부삼인이 두 번째이고, 한웅천왕이 한인천제로부터 천부삼인을 물려받아 선포한 태백진교太白眞敎가 그 세 번째이며, 단군왕검이 한웅천왕으로부터 천부삼인과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물려받아 선포한 덕교德敎가 그 네 번째이다.
단군왕검 이후에 덕교에서 종교의 특이한 존재양식인 굿이 발생한다. 이 우리의 고유한 종교는 상고시대의 국가체제와 사회조직과 문화에 그대로 나타난다. 마고와 황궁과 유인과 그의 후손들이 율려로 세상을 다스리던 때가 약 4801년 동안이고, 한인천제와 그의 후예들이 천부삼인으로 세상을 다스리던 때가 3301년 동안이며, 한웅천왕과 그의 후예들이 태백진교로 세상을 다스리던 때가 1565년 동안이다. 마지막으로 단군왕검과 그의 후예들이 덕교로 세상을 다스리던 때가 2094년 동안이었다. 이들 기간을 다 합하면 11761년이다. 여기에 서력 2000년을 더하면 13761년이 되므로, 마고의 생존연대를 대략 14000년 전으로 보는 것이다.
14000년이라는 숫자는 인간이 기록한 역사 기록에 나온 숫자가 아니고, 고대 천문학에서 나오는 숫자이다. 천문학자에 따르면, 지구가 북극성을 향하여 세차운동歲差運動을 하는데, 지금의 지축은 지금의 북극성인 천추성을 향하고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14000년 전에는 당시의 북극성인 직녀성을 항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구가 직녀성을 향하여 세차운동을 하다가 극이동極移動을 하여 지금의 북극성인 천추성을 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때 지구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달이 잡아당기는 바닷물은 그대로 있다가 육지를 바닷물로 덮었고, 바닷물이 빠져나간 바다 밑에 있던 땅은 육지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천문학자는 지구가 뒤집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바다가 된 땅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가 덮치는 바람에 거의 모두 다 바다 속 깊이 가라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인간으로서 운이 좋게 살아남은 분이 마고다. 마고는 당시의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지구가 뒤집어질 때, 지구에 엄청난 재앙을 내린 별들이 있었다. 이들 별이 북두칠성과 해와 달이었다.
해혹은 왜 우리가 그러한 우주적인 재앙을 당하야 하는가, 그 원인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고, 복본은 직녀성 시대의 마고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옛날처럼 마고성으로 다시 돌아가서 살아야 한다는 의도가 반영이 된 것이 해혹복본이라는 말이다.
이 위대한 가르침을 준 마고를 숭상하는 신앙이 삼신신앙이다. 마고를 숭상하는 신앙을 삼신신앙이라고 하는 이유는 마고가 곧 삼신이기 때문이다. 마고는 해혹복본을 잊지 말라고 돌에 북두칠성과 해와 달을 새겨 후손들에게 전했다. 이것이 천부삼인이다.
그의 가르침은 여러 종족들에게 집단무의식으로 자리 잡아 북두칠성을 숭상하는 칠성신앙이 생겨났고, 해를 숭배하는 태양신앙이 생겨났고, 달을 숭상하는 달신앙이 생겨났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요한묵시록에서 지구가 뒤집어지는 때, 북두칠성이 내리는 재앙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불교는 중아함경 제7일경에서 지구가 뒤집어지는 때, 태양이 지구를 태우는 재앙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후예들이 그를 직녀의 신명에 올렸다. 그래서 우리가 상고시대 천문을 알아야만 직녀가 14000년 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상고시대 천문을 살피지 않으면 마고가 직녀성임을 알 수 없고, 그가 세상에 나타나는 년대가 14000년 전임도 알 수 없다.
이 시대는 태평양에 있던 뮤 대륙이나 대서양에 있던 아틀란티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전한다. <잃어버린 뮤 대륙>을 쓴 제임스 처치워드는 그의 저서에서, 뮤 대륙에 대한 기록이 인도에서 찾아 낸 가장 오래 된 명판에서 발견이 된다고 말했다.
아틀란티스의 존재는 이미 플라톤에 의하여 밝혀졌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가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섬으로 대서양의 어느 곳에 있었고, 높은 문화를 지닌 유토피아였다고 설명했다. 마고가 살았다는 마고 본성이 지구에 이었다면, 지금은 사라진 뮤 대륙의 어디에 인지 있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구약성경의 창세기는 멜키지덱을 하나님이 인류의 시조로 창조했다는 아담(BC 4004출생, 6004년전)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으로 기록했다. 카발라주의자들이 아틀란티스 시대의 사람이라고 밝힌 신비에 싸인 사람이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서 6000년 동안 아담이 태어나기를 기다렸고, 아담이 태어난 이후에도 1996년 동안 아담의 후손인 노아가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무려 8000년 동안 기다려 노아가 태어났는데, 그 후로도 노아의 12대 손인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를 더 기다려야 하였다. 아브라함이 세상에 나오자, 그를 제사장으로 세워, 유대교의 시조가 되게 한 사람이 멜키지덱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에는 이렇게 황당무계한 요소가 있다. 실증사학의 눈으로 종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문화의 시각으로 종교를 들여다보면, 거기엔 시대를 뛰어넘는 축시법縮時法이 있고, 공간을 초월하는 축공법縮空法도 있다. 그러니 옛날에 신선들이 단숨에 수 천리를 걸어가는 축지법縮地法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원형 종교인 율려로 세상을 다스린 율려시대를 반영한 율려문화가 있을 수 있고, 천부삼인으로 세상을 다스린 삼신시대를 반영한 삼신문화가 있을 수 있고, 태백진교로 세상을 다스린 시대를 반영한 태백진교문화가 나올 수 있고, 덕교로 세상을 다스린 시대를 반영한 덕교문화가 나올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문화에 율려문화시대가 있었고, 삼신문화시대가 있었고, 태백진교문화시대가 있었고, 덕교문화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2000년대니, 새 천년이니, 밀레니엄시대니 하는 격이 낮은 주술에 걸려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 체계에 그러한 얄팍한 주술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1000년이라는 년도의 개념이 없는 것이다. 작년이 기묘년이니까 금년은 경진 년이고, 내년은 신사 년이 된다. 이렇게 몇 천 년 몇 만 년이 가도 그 해의 이름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 이름은 61년째 되는 해에 가서 한 번 바뀐다. 환갑이 되는 해마다 바뀌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수레바퀴가 시작이 없이 끝도 없이 회전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사고체계는 이렇게 원圓과 구체球體의 개념이다.
이와는 반대로 서구는 직선直線의 개념이고, 앞서는 것과 뒤쳐지는 것의 순서가 정해져 있는 달리기개념이다. 그러므로 2000년이라고 하면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2000년이라고 하는 출발선상에 서서 출발신호가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승자와 패자, 일등과 꼴찌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일등은 보나마나 미국이다. 이것은 땅을 짚고 헤엄치기이다.
정치와 경제와 외교는 달리기가 가능할지 모르나 문화는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선수들 앞에서 신명 나게 굿판을 벌려 이들을 흥겹게 해 주고 서로 어우러져 승자와 패자를 없애버리는 것이 문화이다. 이왕 우리가 서양 사람에게 이끌려 2000년이라는 출발선상에 섰으니, 편의상 우리 문화의 역사 연대를 서력으로 끊어 보기로 한다.
우리 역사는 마고년대로 하면 마고기麻姑紀 14000년이고, 한인년대로 하면 한기桓紀 9203년이고, 한웅년대로 하면 배달기倍達紀 5902년이고, 단군년대로 하면 단기檀紀 4337년이고, 한국년대로 하면 대한기大韓紀 56년이다. 우리의 년대 어디를 보아도 2000년대니, 새 천년이니, 밀레니엄이니 하는 것들은 끼어 들 자리가 없다.
물론 이 말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문화가 경제를 주도하려면 그 문화가 독창성이 있는 문화라야 한다는 것이다. 독창성이 있는 문화라야 상품성이 있다는 것인데, 독창성이 있다는 말은 경쟁력이 있다는 말이고, 경쟁력이 있다는 말은 힘이 있다는 말이고, 힘이 있다는 말은 약한 것을 잡아먹을 수 있는 먹이사슬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문화가 다른 힘이 있는 문화에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하여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독창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우리 문화가 사자나 호랑이처럼 위풍당당해진다는 말이다.
우리 문화가 위풍당당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대단히 유리한 입장에 있다. 우선 우리의 역사가 대단히 오래 되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는 말이다. 유리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고,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고, 고유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 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가 우리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하면 기가 죽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문화에 경쟁력이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현실은 결코 낙관적이지 못하다.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사실상 내 것이라고 내 놀만한 것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급한 문화는 지나족문화와 불교문화의 아류를 뛰어넘지 못한다. 우리의 문화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도대체 내 것이라고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소리나 춤 정도가 겨우 명맥을 이어 줄 뿐이다.
종교도 우리의 고유한 종교가 아니다. 남의 종교를 들여와서 내 것처럼 쓰고 있다. 우리의 종교는 불교와 유교와 기독교를 빼면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고 만다. 무교巫敎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의 굿이 명맥을 이어 줄 뿐이다. 그 원인은 우리가 힘 안들이고 남의 것을 손쉽게 베껴먹는데 있다. 표절과 모방의 문화가 판을 치는 것이다. 우리 문화는 남의 것을 베껴먹는 문화이다. 불교를 베끼고, 유교를 베끼고, 기독교를 베낀다.
그러면서 유구한 역사를 말하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말한다. 이러한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고 비양심적인 일일 뿐이다. 이 우수성이라는 것은 원숭이 수준으로서의 우수성이다.
이 원숭이 시대에 원숭이 문화를 가지고 오로지 문학 하나가 우뚝하게 발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연극 하나만 독불장군으로 우뚝해 질 수도 없고, 음악 하나만 고고하게 판을 칠 수도 없다.
다른 문화가 문학과 어깨동무를 하고 고루 발전할 때 문학도 함께 발전한다. 그러므로 단기 4333년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기대해야 할 일, 우리가 기댈 언덕을 찾는 일은, 우리의 잡다한 모든 문화가 함께 치러야 할 홍역과 같은 것이다.
이들 문화산업은 세계화가 가장 손쉬운 업종이다. 세계화란 정체성의 모호함이다. 한국 사람이 서양 사람처럼 보여야 하고, 생각이 그들과 닮아 있어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점이다. 결국 나를 허물지 않는 선에서 저들의 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앞으로 종교의 행태가 변하고 대안종교가 출현해야 종교인들이 살 길이 열린다. 지금은 종교들이 철옹성으로 집단화 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가 되어 버렸다. 종교백화점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신학대학교를 나오고 불교대학교를 나와야만 사제나 스님이 되는 시대는 지나가게 될 것이다.
특출한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 시대가 온다. 노트북을 들고 뛰어다니는 사람들과 함께 뛰어다니는 신부가 나오고, 목사가 나오고, 스님이 나온다. 이때는 기성의 종교가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위하여 베풀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특출한 영적인 능력을 가진 자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우선 도둑질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남의 것을 가지고 교묘하게 변조하여 내 것이라고 내놓은 후안무치한 작태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부도지符都誌와 한단고기桓檀古記라는 글로 쓴 두 가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들 두 가지를 보충할 수 있는 것으로 진주소蘇씨 족보의 서문인 부소보서扶蘇譜序를 첨가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나라에서 국보로 지정하지 않은 최고의 국보가 이들 세 가지이다.
우리는 이들 국보급 기록문서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사유의 주체성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부도지는 영해박朴씨 문중 비서이다. 저자는 신라 내물왕 때 사람인 박제상(朴堤上 363~419?)이다. 그의 저작이 얼마나 위대한가는 제1장의 몇 줄만 읽어 보아도 알 수 있다.
오음은 중력축의 중심에서 나는 소리이다. 극대화 하다가 수축하여 사라진다. 칠조는 이 미세해져 가는 소리가 어느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게 하는 조절기능이다. 궁희와 소희가 이 소임을 맡아 본다. 소리를 극대화 하고 극소화 하며 이를 조절하는 기능을 가진 것은 악기이다. 악기 중에서도 종과 고와 생황이다.
마고시대를 지나 한웅천왕의 시대에 와서 한웅천왕은 나라에 종교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이 종교가 태백진교이다. 이 종교가 목표로 하는 사회는 덕이 실현되는 사회였다. 덕이 실현되는 사회는 유교가 보편화 되는 사회이다. 태백진교에서 이 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우리는 본문을 해석하면서 태백진교의 내용이 천부天符와 지전地轉과 인사人事로 구분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민족 사상의 원천인 일석삼극의 원리에서 나온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세부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는가를 밝힌 것이다. 천지인 사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방법론이 본문에서는 발정發政과 치덕治德으로 설명이 된다. 발정은 정치를 시작하는 것이요, 치덕은 덕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행위책임이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격이 책임을 지는 것이지만, 자기가 행위 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은, 자기가 행위 한 만큼 책임을 지는 행위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현대의 형법사상의 시각으로 볼 때, 원시적인 형법사상이라고 할 것이다.
한웅천왕은 신지 혁덕神志 赫德에게 명하여 천부경을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하게 하였다. 한웅천왕이 하늘에 몸소 제사 지내고 백성들에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강론하니 크게 깨우치는 이가 많았다. 신라말에 최치원 선생이 신지의 전문篆文을 옛 비석에서 보고 이를 한자 81자로 번역하여 오늘에 전하게 하였다. 천부경에는 일석삼극一析三極이라는 우주의 생성과 운행의 원리와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이라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리가 나와 있다.
우리 선조는 3이라는 수를 이토록 숭상하였다. 그 이유는 3이 삼태극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선조는 삼태극, 일석삼극, 마고삼신으로 이어지는 세계에서 살았다. 적어도 공자의 유교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러하였다.
화하족은 절치부심하며 동이족의 족보와 문화로부터 떨어져 나가기 위하여,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고 폄하하고 왜곡하는 작업을 대를 물려가며 해왔다. 이 작업의 선봉에 섰던 사람이 공자와 사마천이었다. 그리하여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에서 독립한 지나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지나족의 우주관은 어떻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지나족은 우주의 형체가 구체라는 점을 보지 못한다. 우주의 형상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고, 중력의 회전축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나족의 우주관은 중력의 회전축에서 나온다. 우리는 우주관을 중력의 회전축과 우주의 원주율과의 관계에서 찾아내지만 지나족은 다만 중력의 회전축에만 한정하는 것이다.
천일은 물의 자리인 흑黑의 자리에, 지일은 불의 자리인 홍紅(赤)의 자리에, 태일은 치화의 자리인 황黃의 자리에 있으니, 치화란 음과 양을 다스려 조절하는 자리를 말한다. 태일이 있는 자리가 신의 자리이다. 이들 셋은 삼신이자 삼태극이다.
상고시대에 한족이 일석삼극인 삼태극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생각해 낸 것이 복희가 완성한 양태극에서 양의를 도출해 내는 일이었다. 한족의 문화는 여기에서 기원한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석삼극의 원리에서 도출한 일석이극의 원리에 지나지 않는다. 일석삼극의 원리는 중력축이 회전하는 원리로 우주의 원주율을 나누어 나온 숫자인 3이이 이를 의미한다. 우리는 우주의 원주율에서 3이라는 숫자를 찾아내고, 지나족은 중력의 회전축에서 2라는 숫자를 찾아낸다는 데에서, 우리와 지나족과의 사고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주역>의 계사전에서는 지나족이 어떻게 중력의 회전축에서 2라는 숫자를 구하는 가를 보여준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우리 태극기에 그려진 양태극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한족의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내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알고 산다.
단군왕검시대에 와서, 단군왕검은 3이라는 숫자를 뛰어 넘어 4라는 숫자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자 주목한 것은 천부경에 나오는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이다. 운삼사성환은 3이라는 수가 우주를 한 바퀴 돌고 나면 4라는 수를 생성하여 고리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이 이치가 태양이 운행하는 길인 황도黃道를 만들고, 달이 운행하는 길인 백도白道를 만든다. 황도와 백도는 중력축의 삼태극인 삼의三儀가 운행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황도와 백도가 완성되면 거기에 4라는 수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춘하추동의 사계절이다. 이렇게 발전해 가는 우주의 이치를 원형이정이라고 한다.
원은 우주의 시작을 의미하고, 형은 우주의 운행을 의미하고, 이는 우주운행의 결실인 사계四季를 의미한다. 정은 우주가 생성하고 운행하는 원리 즉 이理를 말한다. 원형이정을 사덕四德이라고 한다. 덕교의 내용은 이 사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군왕검은 사덕을 가르치기 위하여 덕을 상징하는 떡을 만들어 하늘에 제를 지내는 제사상에 올리고 제를 지낸 후에 나누어 먹게 하였다. 우리가 정월 초하룻날 떡국을 끓여 먹는 이유도 떡을 잘게 썰어서 나누어 먹음으로써 덕을 고루 나누어 알게 하자는 의도였다.
공자의 사상이 담긴 <논어>도 역시 주의 깊게 읽어 보면, 단군왕검이 선포한 덕교를 공자 나름대로 페러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어지럽기는 매한가지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상고시대의 저작물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역>에서 예를 하나 들어 덕교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선鮮 鮮자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하여 문자학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금문金文에 따르면, 조선이라는 문자는 중여곤衆艅鯀에서 나온다. 중여곤은 탁록에서 황제에게 패한 유망의 후손이다. 낙빈기 선생이 밝힌 유망의 가계는 유망의 큰딸인 뉘조와 황제로 이어지고, 뉘조와 황제가 낳은 항아로 이어진다. 항아는 유망의 큰아들 희화와 혼인하여 전욱고양을 낳는다. 전욱고양은 황제의 손녀이고 소호김천의 딸인 칭과 혼인하여 큰아들 성축과 여를 두었는데, 이 두 아들이 일찍 죽는 바람에, 대계(전욱고양의 동생)의 아들 중여곤을 양자로 들인다. 금문에서 밝혀진 것을 보면, 중여곤은 신농조선(필자는 막조선으로 본다)의 첫 제관이었다. 금문에서는 중여곤이라고 쓴다. "곤은 하늘의 삼신(해와 달과 북두칠성)을 살펴 날을 받아 사당에 술과 차를 올려 제를 지낸다."는 뜻이다. 북명에 물고기가 있다. 그 이름은 곤이다. 그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변해서 새가 되었는데, 그 이름은 붕이다. 뒤에 460년이 지나, 신인 왕검이라 하는 이가 있었는데, 크게 백성의 신망을 얻어 비왕裨王이 되었다. 섭정한지 24년에 웅씨의 왕은 전쟁을 하다가 붕어하시니, 왕검은 마침내 그 왕위를 대신하여 구한九桓을 통일하고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삼한관경본기>) 중여곤과 단군왕검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웅녀군은 웅녀의 남편이라는 뜻이다. 웅녀는 곰을 토템으로 한 집안의 후손이다. 본문은 중여곤의 외가를 기록한 것이다. 당시엔 여러 곳에 왕검王儉들이 있었다. 곤은 여러 왕검 중의 한 왕검이었다. 곤보다 후대에 태어난 단군왕검도 왕검이었다는 점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다.
서경 요전(<書經> 堯典)에는 묘한 기록이 나온다. 당시에 임금은 황제계인 제곡고신이 하고 있었다. 다음 차례는 유망계인 곤이 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렇게 황제계와 유망계가 번갈라 가면서 임금을 하는 것이 당시의 임금 자리 세습제도였다.
그런데 제곡고신은 임금 자리를 곤에게 물려주지 않고 그와 간적(본부인) 사이에서 낳은 지에게 물려주었다. 지는 8년 동안 임금을 하고 제곡고신과 종규(작은 부인) 사이에서 낳은 요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다. 유망계와 황제계의 약속이 파기된 것이다. 요가 임금이 된 후에 신하들과의 대화에서 곤이 거론되었다.
지나쪽의 기록은 곤이 치수에 실패하여 그의 사위인 우임금에게 사형을 당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삼한관경본기>에 나온 여(곤)을 보면, 곤이 사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를 왕따시킨 황제계를 피하여 어디로 행방을 감추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곤에 대하여 좀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시월상달에 지내는 고사에서 곤이 그대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고사상에는 떡시루와 북어와 타래실을 올려놓는다. 떡시루의 시루는 나라를 의미한다. 떡은 덕을 의미한다. 북어는 곤을 의미한다. 타래실은 곤의 조상 희熙와 곤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곤은 이렇게 고사를 지낼 때 마다 고사상에 살아난다.
단군왕검이 국호를 배달나라에서 조선으로 고치고자 했을 때, 단군왕검이 곤에게 지낸 제사가 오늘날 고사로 전해 오는 것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고사는 수천 년 동안 내가 누구인가를 밝혀주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 온 의식이다.
<주역>에는 단군왕검과 단군왕검이 천명한 덕이 함께 나오는 괘가 있다. 천지비天지否쾌가 바로 그 괘이다. 본문을 해석해 보기로 한다. 천지가 사귀지 못하는 것은 천天 곧 건乾과, 지地 곧 곤坤의 불일치를 말한다. 건은 우주 전체인 원元이다. 곤坤은 우주의 일부인 천체를 의미한다. 천체의 운행이 형亨이다. 그러므로 천과 지의 불일치는 건과 곤의 불일치이고, 원과 형의 불일치이다. 이를 비否라고 하였다. 비는 곧 우주 질서의 불일치이다.
우주질서가 깨어지는 것이 우주질서의 불일치이다. 이때는 음과 양의 조화가 깨진다. 그래서 가뭄이 든다던가, 홍수가 난다던가, 태풍이 불어 닥친다던가 한다. 이런 자연재해는 태백진교에서 말하는 화禍이다. 본문에서는 화를 난亂이라고 하였다. 화에 대한 책임은 자연이 지지 않는다. 노자가 말했듯이 천지가 인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은 좋든 싫든 임금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단군왕검은 임금이 자연재해에 대하여 책임을 져서는 아니 된다고 말한다. 그대신 난(難, 태백진교의 禍)을 피辟하라고 가르친다. 이 점이 한웅천왕이 태백진교에서 가르친 화에 대처하는 방법과 다르다. 태백진교는 책責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덕교는 피辟로 대처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본문은 난難, 즉 화禍를 피하는 방법으로 검덕儉德을 제시한다.
검덕은 단군왕검이 천부경에서 도출하여 완성한 사덕四德을 의미한다.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몫까지 책임을 져봐야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검덕이 책화처럼 임금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피난辟難하면, 나라에서 녹을 먹는 동안 영예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주역>의 천지비쾌를 해석함으로써 단군왕검이 선포하신 덕교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주역>은 이렇게 덕교의 심오한 의미를 감추고 있다.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주역>을 읽었다고 해도 검덕의 의미는 찾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주역>을 해석해 온 사람들이 검덕을 단군왕검의 사덕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검소한 덕'으로 만 해석을 한 것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주역>은 단군왕검과 단군왕검이 선포한 덕교가 함께 살아 있는 은둔처이다.
굿은 한국桓國시대의 역사, 종교, 철학, 사상, 문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대단히 훌륭한 말이다. 그 어원은 구사천(丘 …事天)과 구사지(丘 …事地)에서 나온다. (康熙字典 참조) 구丘자는 청구조선靑丘朝鮮의 구丘자이다. 나라라는 뜻이기도 하고, 나라에서 굿을 하는 제사 터를 의미하기도 한다. 강화도 마리산과 같은 곳이 상고시대의 굿터였다.
영고迎鼓는 "북을 치며 맞이한다"는 뜻이므로, 여기에서 마지굿을 도출할 수 있다. 부여에서 춘분, 하지, 추분, 동지에 마지굿을 하였음을 영고라는 문자가 말하고 있다. 무천舞天은 "하늘을 향하여 춤을 춘다"는 뜻이므로, 무무舞巫를 말하는 것이라 이 역시 굿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상고시대에 굿을 할 때는 털이 긴 하얀 소를 잡아서 쇠꼬리로 깃발을 만들었다. 이 깃발을 모旄라고 한다. 임금이 무무가 되어 모를 들고 춤을 추었다. 그래서 우리의 속담에 "쇠꼬리를 잡은 놈이 임자"라는 말이 생겨났다.
임자壬者란 임금을 말한다. 일을 맡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상고시대엔 맡길 임壬, 任자를 임금 왕王자와 같은 뜻으로 썼다. 풍물패들을 이끌어가는 상모의 벙거지에는 모旄가 달려 있다. 모를 단 사람을 상모上旄라고 한다.
풍물패의 풍물風物은 풍이風夷에서 나온 것이다. 풍이는 풍주風州에서 한국을 개국한 한인천제의 부족을 말한다. 풍물은 이들 부족의 풍속과 문물, 즉 풍이의 문화이다. 따라서 풍물패가 쓰이는 용도가 굿이었을 것이고, 풍물패는 풍백風伯이 이끄는 굿패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태자가 2대 단군인 부루단군이 되면서 아버지를 기리기 위하여 단군청배굿을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에 단군청배굿이 추구하고자 했던 최고의 덕목은 아버지와 자식 간의 화해동심和解同心이었다. 또한 군신간의 화해동심, 단군왕검과 백성들 간의 화해동심도 추구하였다. 오늘날에도 무당은 어느 굿거리에서나 화해동심을 구연한다. 몇 천 년 세월이 흘렀어도 화해동심을 잊은 적은 없었다. 조선조(李왕가)말에 만든 <무당내력巫黨來歷>(규장각 소장)은 단군청배 굿을 제석거리, 대거리, 감응청배, 별성거리, 성조거리라고 하였다. 단군청배굿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여자였다. 무당내력이 이 점을 밝혀 준다. 우리나라 무당 역사의 기원이 바로 이 부루단지에서 시작한다. 부녀자들이 부루단지 앞에서 기도를 하면서 조상의 신명이 내려 무당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속에 법우화상이 등장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법우화상에서 법法자와 우雨자를 따로 떼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단군조선 초기에는 굿을 관장하는 관직에 우사雨師나 풍백風伯이 있었다. 본문에서 법法자는 사師자나 백伯자를 바꾸어 쓴 것으로 보인다. 법우는 우사를 바꾸어 쓴 것으로 본다.
신라도 잘못 된 기록이므로 단군조선으로 바로잡는다. "법우화상이 무당 8명을 8도로 나누어 보냈다"는 기록도 엉터리이므로, 풍사가 무당 8명을 8도로 나누어 보냈다"는 말로 바꾸어 쓴다. 함양지방을 빼기로 한다. 이렇게 바로잡으면 "단군조선시대에 풍사가 무당 8명을 8도로 내려보냈다"는 진짜 무당내력이 밝혀진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왜곡과 손상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유교가 들어오면서 우리의 정신과 사상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우리는 이제 몸이 걸레가 된 창녀 꼴이 되고 말았다.
필자가 소속한 한배달역사천문학회 회원들이 1999년 6월 5일에 탁록에 갔을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지나가 탁록에 귀근원歸根苑이라는 거대한 사당을 이룩하고, 그 안에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라는 당집을 짓고, 당집 안에 치우, 황제, 신농(유망) 세분을 나란히 모시고, 나라에서 이분들을 지나의 시조로 모시고 제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가 동이족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치우와 신농을 동이족이라고 하여 자기들의 조상으로 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90년대 초에는 그들의 이런 생각을 버렸다. 그리고 다시 염제와 황제의 자손(炎黃之孫)이라고 하기 시작하였다.
말하자면 지나족의 족보를 동이족의 족보로 바꾼 것이다. 지금 중국 땅에는 동이족이 정체성을 상실하고 소멸하여 자기가 동이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에 지나족의 조상이 동이족의 족보를 버리고, 지나족이라는 새로운 족보를 만들었는데, 진짜 족보인 동이족의 족보를 찾았다고 떠들어대는 웃지 못 할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삼조문화(三祖文化)를 국가적인 담론에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주역>에는 첫 괘인 건위천쾌와 두 번째 괘인 곤위지쾌와 세 번째 괘인 수뢰준쾌의 머리에 사덕인 원형이정을 올려놓았다. 누가 이일을 하였을까? 이 일을 한 사람은 단군왕검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역>을 덕교의 경전으로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긴다.
풍문에는 문익환 선생이나 안호상 선생이 조언하여 북한에서 단군능을 복원했다고 하는데, 나는 북한이 그 분들의 충고를 들어서가 아니라, 지나의 변화를 일찍 감지한데 원인이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지나가 신농과 치우를 자기의 조상으로 선언했다고 해서 이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의 뿌리가 거기에 있으니까 누가 시비를 걸 사람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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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글 엄청 깁니다요..^^
이 글을 먼저 올려놓고 수정을 하여 다시 올렸으나 커페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매끄럽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2000년 문학계간지 <문학마을>에 실었던 글입니다. 우리 정체성의 근거와 사유주체성의 근거를 우리 고전에서 찾아 보자고 썼습니다.정당에서 정체성을 말할 때 그 실체가 모호하게 생각되어...
올린 것입니다. 마고지나는 이 땅에서 외래적인 사유체계에 근거를 두고 우리의 정체성에 대하여 의미조작을 통한 추론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의 사유를 통하여 선명하게 밝혀야 하리라고 봅니다.
압빡이 좀 잇음니다 ㅋ 아무튼 죠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