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운율에 의한 모방이다. -Aristotles
시는 언어를 향한 일제사격이다. - 앙리미쇼
시는 넘쳐 흐르는 정감의 힘찬 발로이다. - Wordsworth
시는 체험이다. - R.M. Rilke
시는 언어의 건축물이다. - M. Heidegger
시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구성체다. - Brooks
시는 마음에서 우러난다고 한 것이 믿을만 하다. - 이인로(破閑集)
시는 함축되어 들어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흐미한 글, 숨은 말로서 명백하고 통쾌하지 않는 것은 또한 시의 큰 병통이다. - 서거정( 東人詩話 )
무릇 시에 있어서는 자득이 귀하다. - 이 광 ( 李光 )
시인이 창작한 제2의 자연이 시다, - 조지훈 ( 趙芝熏 )
언어의 세 가지 기능
1. 멜로포에이아 ( Melopoeia ) ; 운율적 요소
2. 패노포에이아 ( Phanopeia ) ; 영상적 요소
3. 로고포에이아 ( Logopoeia ) ; 논리적 요소
현대시는 멜로포에이아 즉 운율적이고 율동적인 음악성에서 서서히 탈피하여, 패노포에이아 즉 영상성, 단순하고 평판적인 시각성에 중점을 두다가, 다시 로고포에이아 즉 논리적이고 기하학적인 조형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하겠다.
그래서 이러한 이미지의 두가지 성격을 감각적 심상과 논리적 심상으로 구별짓게 된다.
비유법과 무비유법의 시
1. 우의적 수법 ; (우유(寓喩) ; allegory)라고도 부르며 이는 자기가 말하 고자 하는 속뜻 은 감추고 그 시의 표현속에서 표현 이상의 것을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케 하고 느끼 게 하는 비유법으로서 우리가 흔히즐기는 속담이나 우화가 바로 이 수법이다.
이렇듯 우유(寓喩)라는 말의 뜻은 에둘러서 즐겁게 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우유의 해학성 때문에 한편 풍유라고도 불린다.
2. 반어법(反語法 ; irony) ; 긍정과 부정을 막론하고 생각의 반대되는 말 을 일부러하여 자기 속뜻의 효과적 전달이나 강조를 하는 표현이 다.
3. 의인법 (擬人法) ; 우리가 흔히 무심코 쓰고 있는 '꽃이 웃는다' '바다 가 부른다' '태풍이 몰려온다' 와 같이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에다 비겨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하고, 또는 무생물인 것을 생물 인것처럼 활동하게하는 수사법이다.
4. 의물법 (擬物法) ; 의인법과 반대되는 용어로서 사람을 마치 무기물 이나 무생물에다 비겨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직유와 은유
'시는 사물과 사물의 비교' 즉 비유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광의의 의미로 보면 모든 시적 표현들이 모두 다 비유로서 상징
이나 심상(이미지)은 물론 우화적(寓話的-알레고리). 반어적(反語的-빗댐, 아이러니). 환상적(일류적) 수법이나 또는 의인법. 의성법. 돈호법(頓呼法)등이 그 모두가 비유적 표현이라 하겠다.
흔히들 비유를 수사법(修辭法), 즉 말이나 글을 다듬어 꾸미는 분장술로 여겨오고 또 지금도 그렇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처럼 언어는 그렇게 분칠을 하려 하지 않아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인식의 깊이와 넓이에 따라 놀랄 정도의 기능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특히 현대에 와서는 무비유의 시가 더 쓰기 어렵다는 것이 정평이다.
어떻든 자기가 경험한 상념이나 감정의 특수한 상태를 그냥 서술적인 말로서 표현했을 경우, 그 경험의 독자성과 표현된 말의 간격을 느낌으로서 그 간격을 최소한 줄이기 위한 입체적 표현 방법이 바로 비유라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비유는 어떤 한가지 사물이나 사실을 말하려들 경우 그것 자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물이나 사실을 말하면서 '암시'로써 그 목적하는 바를 표현하려든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비유라고 말할 때 우리는 직유(直喩-smile)와 은유(隱喩-metaphor) 두 가지로 나눈다.
1. 직유는 무엇을 말할 때 어떤 것을 다른것과 직접적으로 비교해서 말 하는것으로, 비유하는 것과 비유되는 것이 '처럼' '같이' '인양' '인 듯' '모양' '마냥'등이란 낱말로 연결되어 두 가지 다른 사물의 유사성(類似 性-아날로지)을 나타낸다. 이때 주의해야할 사항은 조잡한 비유를 혼 유(混喩)라고 하는데, 이런 비유는 오히려 시의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렇듯 적절한 비유는 아무리 비유하고 비유되는 사물이 동떨어진 것 이라도 서로가 결합하여 독자에게 새로운 경헙의 세계와 존재의 의미 를 제시한다.
그래서 직유는 그것이 단순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두 개의 사물 사 이의 유사성을 포착. 추출하여 독자에게 작자의 상념이나 감동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 비유의 대상을 더 잘 설명할 뿐 아니라 그 대상을 생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2. 은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앞의 직유가 사용하는 비교의 말 '처럼'이나 '같이'등을 사용하지 않고 두 사물이 지니는 유사성을 한 말로 압축시 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은유란 오직 직유에서 비교용어를 생략 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고 그 비유의 발상과정에서부터 다르다고 하겠다.
또한 은유는 그 비유의 세계를 한정시켜서 설명하지 않고 독자의 상 상력에 맡기는 특성을 지닌다.
** 시는 설득의 문학이 아니고 암시의 문학이라는 것은 바로 이 비유, 특히 은유의 기능을 말하는 것으로 이 기능은 도식적 형태에서부터 복잡한 변형과 다양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래서 비유기능의 질적 변화가 시의 진화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그 "시학" 속에서 '은유를 구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 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은 말의 본질과 존재의 본질의 인식이 깊 어질수록 그것이 바로 메타포의 창출로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알 수 없어요
한 용 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 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만해(萬海)는 승려요, 혁명가이다. 따라서 그의 시의 밑바닥을 이루는 기조(基調)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다. 그는 승려였기에 불교사상에서 인도사상으로 접근되었고, 거기서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시와 산문(散文) 형식에까지 접근하였다. 또한 그는 혁명가이기에 독립운동의 애국사상으로 이어져 불변의 광망(光芒)을 내뿜기에 이른다.
그의 시가 명상적. 철학적. 신비적 경향을 띠고, 대자연의 조화(造化)의 묘(妙)와 그 섭리를 고요한 관조(觀照)로써 뛰어난 수준을 갖게 된 것은 전자의 발로(發露)이며, 그의 시를 일관하는 정신적 주제로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애국 애족적인 이념이 구상화(具象化)하여 나타나는데, 이것은 후자의 발로이다.
이 두가지는 구원의 세계를 동경하는 점에서 일치점을 보인다. 즉 불교적 깨달음의 염원은 조국의 구원으로, 조국 광복에의 열망은 종교적 피안 사상으로 결합된다. 다만, 조국의 구원 내지 독립에의 열망은 종교적인 그것에 상징적으로 암유되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제1행 ; 누구의 발자취 입니까? ( 님의 발자취가 아닙니까? )
매 연마다 '누구'가 나오는데, 그것은 '침묵하는 님'의 '님'이다.
따라서 '누구의 발자취이니까?'는 '님의 발자취가 아닙니까?'의 설의법 표현이며, '오동잎'에서 님의 '발자취'를 보는 것이니까, 자연과 님은 일치하여서 일체(一體)가 된다.
제2행 ; 누구의 얼굴입니까? ( 님의 얼굴이 아닙니까? )
여기서 '푸른 하늘'은 여름의 하늘. '물기까지 번즈레히 머금은 그린 빛'. 또 '검은 구름'은 번뇌의 구름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검은 구름'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푸른 하늘 같은 님의 얼굴'은 번뇌가 없이는 깨달을 수가 없었다.
제3행 ; 누구의 입김입니까? ( 님의 입김이 아닙니까? )
'님의 입김'은 꽃의 향기보다 더욱 향기로우니까, 꽃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꽃도 없는 깊은 나무'가 되었다.
제4행 ; 누구의 노래입니까? ( 님의 노래가 아닙니까? )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의 '근원'은 무한한 자연이기도 하고, 무상(無上)의 불도(佛道)의 세계이기도 하다.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한정된 인간 세계로 돌아온 '불도의 시내'로, 6행의 '약한 등불'과 관계를 맺는다.
제5행 ; 누구의 시입니까? ( 님의 시가 아닙니까? )
'연꽃같은 발꿈치'와 '옥 같은 손'은 아름다운 님의 모습이다. 그것이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또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라는 것은, 부처님의 법신(法身)이 허공에 충만한 상태다. 그러나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 놀'로 변하면서 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님의 시만이 남는다. '떨어지는 해'는 1행의 '떨어지는 오동잎'과 관계가 있으며, 비극
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제 6행 ; 약한 등불입니까? ( 님을 지키는 등불입니다. )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에서 '재'는 이미 생명이 없어진 것(空)이고, '기름'은 생명의 상태(有)다. 처음과 끝의 구별이 없는, 생명의 반복을 가리키는 윤회사상이 되기도 하고, 타 죽은 재 속에서 다시 새끼새가 된다는 불사조(不死鳥)의 영생불사(永生不死)가 되기도 한다. 그 다음 '그칠 줄을 --- 등불입니까?'는 조국의 재생(再生)을 기다리는 새벽을 위해서 타는 정절(貞節)의 뜨거운 등불, 경건한 불사(不死)의 등불로 무한한 상징성을 갖는다.
범신론적(汎神論的) 우주관과 동양주의적 정적(靜的) 자태가 전편에 흐르고, 시인이 추구하는 구도정신(求道精神)의 높은 경지에 고개를 숙이게 한다.
주제 ; 절대자에 대한 구도적(求道的) 염원
소재 ; 신비한 자연의 현상
표현기교 ; 의인법, 설의법, 은유법
시의 특징 ;
1. 수법상으로 상징시(象徵詩). 매 연의 끝을 '입니까?'로 한 것은 각운(脚韻)에 해당한다.
2. 용어에 있어서 한자어를 배격하고, 평이하면서도 섬세한 순수 국어를 구슬처럼 엮어 가장 훌륭한 예술품임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3. 존경법 의문형으로 각 연을 맺은 것은 제목 (알 수 없어요)와 관련시켜 볼 때, '누구의 ---- 인지 알 수 없어요'인 서술문으 로 바꿔 보면 편리하다. 그리고 이것은 '혹시 님의 ----이 아 닙니까?'의 뜻이 되고,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믿고 수긍하는 것 이 된다.
4. 그칠 줄 모르고 길게 이어지는 산문시(散文詩)의 리듬은 타고르 의 영향에서 온 것으로, 유원하고 심오한 동경을 표현함에 적절 한 표현 형식이 되고 있다.
5. 한용운의 시는 같은 시대의 시인들 대부분처럼 시의 심미적(審美 的) 가치나, 유행사상에 휘말려 들지 않았고, 재래 동양인의 문학 의식, 즉 문학을 철학이나 종교적 탐구와 병행시킨 점에서 아주 특이하다.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 ; 충남 홍성(洪城) 출생.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호는 만해(萬海). 23세 때 가정을 버리고 불문에 들어 감. 옥중에서 쓴 (조선 독립의 서)는 후세에 남긴 겨레의 대문장임. 저서로는 [불교유신론], [불교대전], [십현담주해]가있고, 시집으로는 [님의 침묵](1926), 소설에[흑풍(黑風)], 번역서에 [삼국지]가 있음.
최근 만해의 새로운 시 17편, 시조 30편과 중편소설 [죽음]이 발견되어, 그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유리창(琉璃窓)
정 지 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琉璃)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 갔구나!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잃고 하염없는 부성(父性)을 불과 10행에 담은 서정시다. 이광수의 [비둘기], 김광균의 [은수저] 등도 어린 아이를 잃고 쓴 시들인데, 그 표현 기법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의 주제는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인데도, '죽은 아이'를 직접 표현한 시어는 하나도 없다. '언 날개', '물 먹은 별', '산새'와 같은 감각적인 사물로써 '죽은 아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을뿐이다. 감정의 절제(節制)를 보이고 있다.
슬픔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슬픈(1행)', '외로운 황홀한 심사'(8행) 정도인데, 이것도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1행)로 객관화 되어 있다.
이 시에서 '유리창'은 '죽은 아이'와 서정적 자아(화자) 사이를 가로 막는 장벽인 동시에,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차단의 기능을 또한 하고 있다.
비인간적(非人間的)인 추상성의 중시는 현대시의 중요한 기법이다. 정지용의 경우, 그 전대(前代)의 낭만주의 등과 비교한다면, 그 시사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지용(鄭芝溶, 1903 - ? ) ; 충북 옥천(옥천) 출생. 휘문고보를 거쳐 교도(京都)의 도오시샤 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 졸업. 귀국후 휘문고교 교원(1929 - 45)으로, 광복후는 이화여전 문과 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등을 역임. 휘문고보 재학때 박팔양(朴八陽)등과 동인지 [요람(搖籃)]을 발간했고, 1926년부터 본격적인 작품발표를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시문학(詩文學)](1930) 동인으로 참가, 참신한 감각적 이미지 시를 발표했으며, 이상(李箱)을 시단에 등단시켰다. 그의 시는 섬세하고 유니크한 언어 구사로 대상의 선명한 그림을 보여 주어,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했다. 재1시집 [정지용 시집](1935), 제2시집 [백록담(白鹿潭)](1941), 외에 [지용시선],(1946), [문학독본(文學讀本)](1949), [산문(散文)](1949)등이 있다.
향현 (香峴)
박 두 진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넘어, 큰 산 그 넘어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탄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래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깔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 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즉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확 치밀어 오를 화염(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묘지송]과 함께 발표된 첫 회분의 추천 작품이다.
이 시는 일제 말기의 심각한 암흑과 고민을 인종으로써 초극하여 종교적인 영원한 동경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산'이 악과 선이 공존하고 있는 인간의 세계로 비유되고 있다.
제1연 ; 산의 아래 쪽에는 다박솔이 깔린 산의 너머로, 큰 산 그 너머로는 딴 산이 보이지 않아, 내 마음은 구름을 타고 올라가 모든 산을 조감(鳥瞰)한다.
- 산의 서경적 묘사이지만 그것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는 시구는 공허한 마음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시야를 막고 있는 앞의 모습을 보기 위하여 '내마음이 둥둥 구름을 타고 올라가 모든 산을 조감한다'는 뜻.
제2연 ; (구름에 올라가서 보니) 우뚝 솟은 산, 묵중하게 엎드린 산, 그 산들에는 골짜기 마다 장송이 가득 들어서 있고, 머루, 다래넝쿨, 떡깔나무, 억새풀 등이 우거진 곳인데, 너구리, 여우, 사슴, -----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이 살고 있는.
- 산이 '하나의 세계'임을 표현한 대목이다. 산 식물과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산은 한 거대한 실체임을 암시한다. 가령 '여우'처럼 간악한 것이 있는가 하면, '사슴'처럼 평화를 상징하는 것도 있다.
이처럼 2연은 '피압박의 악평온'이 유지되고 있는 당시 '조국의 상항'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제3연 ; 산, 산, 산들이여, 몹시 오랜(누거만년) 동안을 내려 온 너희들 오랜 침묵이 흠뻑 지리할 대로 지리할 것도 같으므로.
제4연 ; 너희들 솟아난 산봉우리, 그 엎드린 마루에 장차 확확 치밀어 오를 불꽃을 내 기다려도 좋겠느냐? (나는 기다리련다)
- 3. 4연은 혁명을 염원하는 완곡한 표현. '피압박의 악평온'이 얼마나 지리한 세월이었던가. 그것은 누거만년(누거만년)의 세월과 같았고, 흠뻑 지리한 '산의 침묵'과도 같은 너무나 답답한 세월이며 침묵의 연속이었다. 소용돌이치는 혁명과 대동란(大動亂)이 화산이라도 터지듯 일어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이 4연은 특히 무기력과 감상(感傷)에서 벗어나 의욕적이고 대담한 자세를 보이는 것인데, 그것은 5연에 가서 더욱 고조되고 있다.
제5연 ; 피의 냄새를 잊은 여우. 이리 등이. (선의 상징인) 사슴, 토끼등과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더불어 즐겁게 뛰는 날을 믿고 그것을 영혼이 기다려도 좋겠느냐?(나는 기다리련다).
- 선과 악, 약육강식(弱肉强食), 힘과 힘의 투쟁의 원리를 부정하고 영원한 평화와 이상을 표현한 이 시의 주재연이다.
이러한 이상의 세계는 종교적 동경의 세계이기도 하다. 혁명을 갈망하면서도 강자(여우. 이리) 와 약자(사슴, 토끼)가 공존공생하는 절대적
이상향(理想鄕)을 희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자연을 매개로 하여 실은 인간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싱싱하고 생동력이 넘치는 건강한 시 정신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인생을 위한 자연시로서, 이른바 박두진의 신자연(新自然)인 것이다.
주제 ; 영원한 평화와 이상의 동경
향현(香峴) ; 상고개, 지은이는 그의 자작시 해설에서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에 있는 어떤 고개라고 하고 있다.
박두진(朴斗鎭, 1916 - ) ; 호는 혜산(兮山). 경기도 안성 출생. 연대 교수 1939년 시 (향현). (묘지송). (낙엽송), 1940년 (의), (들국화) 등 5편으로 [문장]지의 추천으로 등단함. 청록파의 한사람이며 시집 [청록집](1946), [해](1949), [오도](1953), [박두진 시선](1956), [거미와 성좌](1962), [인간밀림](1963), [하얀 날개](1967), [사도행전](1973), [수석열전](1973), 등과 수필집 [시인의 고향](1958), [한국현대시론](1970), 에세이집 [언덕에 이는 바람](1973)등이 있다.
생명의 서
유 치 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유치환은 서정주와 더불어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는 생명파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시는 관념적인 문제를 엄숙하고 웅장한 남성적 독백조로 표현한 것이 많은데 이 작품도 그러한 분류에 속한다.
3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떠남 - 고행 - 성취 대결의 발전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각 연의 첫 2행은 모두 진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청마는 이 시에서 삶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번민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한 대결의 공간으로서 사막을 설정하였다.
1연에서는 지식과 감정의 파탄 상태에서 본연의 생명을 찾아 나서고, 2연에서는 극한적 상황에서 고행과 수련의 고통을 겪으며, 3연에서는 본연의 생명을 발견하고 그것과 대결한다. 특히 2연에서 '알라의 신' 은 감당하기 어려운 생명의 본질을 뛰어넘으려고 고민하는 시인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는 본연의 생명을 배우지 못하면 차라리 '회한 없는 백골'이 되겠다고 하며 처절한 대결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쉽게 씌어진 시
윤 동 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우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년 일본 유학중 쓴 윤동주의 최후의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는 그의 독특한 '부끄러움의 의식'을 바탕으로 부활의 정신과 미래 지향의 기다림이 강렬하게 표출되어 있어 비장미를 느끼게 해 준다.
시인은 '인생'과 '시'를 상대적으로 비교해 가면서 부끄러움을 말한다. 인생은 살기 어려운데도 시가 쉽게 씌어진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시인을 일러 '슬픈 천명'이라 한 것은 그가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대민족적, 대역사적 의무감을 인식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표현으로 식민지 치하에서의 자신의 글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암담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밝은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부끄러운 '최후의 나'와 '최초의 악수'를 함으로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린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박 인 환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차례의 살육(殺戮)에 복종한 생명보다도
더한 복수와 고독을 아는
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허물어지는 정적(靜寂)과 초연(硝煙)의 도시(都市)
그 암흑 속으로---
명상과 또 다시 오지 않을 영원한 내일로 ---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유형(流刑)의 애인처럼 손잡기 위하여
이미 소멸된 청춘의 반역(反逆)을 회상하면서
회의와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모멸(侮 )의 오늘을 살아 나간다.
---아 최후로 성자(聖者)의 세계에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속죄(贖罪)의 회화(繪 ) 속의 나녀(裸女)와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亡靈)에게 팔은
철없는 시인(詩人)
나의 눈 감지 못한
단순한 상태의 시체(屍體)일 것이다---.
이 시는 이른바 1950년대의 '검은 준열의 시대'를 사는 생(生)은 결국 '시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T.S. 엘리어트의 (4중주(四重奏, Four Qyartets)의 첫구절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된다/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재(現在)하면/모든 시간은 구속(救贖)될 수 없다'에서 3행을 빌어, 참담한 전후의 페허와 불안의 시간을 초월하려는 암시를 준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은 가정법(假定法), 이 가정법의 전제하에 다음과 같은 4연의 구문(構文)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이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1연 ;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2연 ; 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3연 ; 모멸의 오늘을 살아 나간다.
4연 ; 단순한 상태의 시체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만
1.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1연),
2. 복수와 고독을 깨달은 고뇌와 저항(2연),
3. 회의와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모멸(侮 )의 오늘(3연),뿐인 것이다. 이것이 4연에 가서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에게 팔은/철없는 시인/나의 눈 감지 못한/단순한 상태의 시체'로 극점을 이룬다.
따라서 이 시는 전쟁과 불안의 연대에 영원한 인간의 정신도 가치도 상실당하고, 눈 감지 못한 시체로 전락된 처절한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갈등의 제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불안의 시대와 대결하는 강렬한 시정신(詩精神)을 드러내는 것이다.
박인환의 시세계는 시인의 체험이나 인식을 사유화(私有化) 시키지 않으며, 그것을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 정서의 패턴에 흡수시킴으로써 현실적 공감대를 높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1950년대는 실존주의 사상이 크게 유행한 시기인데, 이 시는 인간의 존재성의 근원과 연결시켜 '인간 상실'을 주지적(主知的)으로 형상화(形象化)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박인환(朴寅煥, 1926 - 1956) ; 강원도 인제 출생. 경성제일고보를 졸업, 평양의전 중퇴. 8.15광복 이듬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함.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을 내었고, 영화평을 쓰기도 했다. 자유신문, 경향신문 기자 생활을 거쳐 1951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 저서는 [박인환 시선집](1955), 사후에 발간된 [목마와 숙녀]가 있다. 심장마비로 사망함.
풀
김 수 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목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은 그의 사후(死後)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는 이 시를 쓴지 15일 만에 밤늦게까지 통음( 飮)하면서 울분을 토로하다가 귀가 도중 자택앞의 거리에서 교통사고로 타계하였다.
이 시는 생경한 관념어를 소화하여 예술성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풀'로 상징,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의 내용은 '풀'이 주제가 되어 있고, '비, 바람, 흐린 날' 등의 대상이 등장한다. 온 돌에 자라는 이름없는 풀이란, 세계의 어느곳에나 흩어져 사는 무명(無名)의 민초(民草)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 '민초'에 불의의 부당한 압력(바람)이 가해질 때, 풀은 쓰러져 눕고 또 울지만, '바람' 보다도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는다는 것이다.
영원히 멸망될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과 약한 듯하면서도 강한 힘을 가진 인간의 본질, 그것을 바람과 풀의 상관성에서 파악한 것이며, 결국 자유가 승리한다는 윤리적 측면을 이 시는 지니고 있다.
이 시의 수법은 반복과 열거의 평이한 수법이다. 어려운 관념어도 없고 순수한 국어로 그 이미지의 전개가 구체적이고 암시있게 표현되었다. 모더니즘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어의 난폭성이나 조악성(粗惡性)이 이 시에 와서는 차분하게 순화되고, 알맞은 리듬의 힘으로 통일된, 주지적 작품이다.
김수영(金洙映) ; 그가 세상을 떠난후 그의 시집 [거대한 뿌리](1974),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가 나왔고 시집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와 산문집 [퓨리턴의 초상]이 간행되었다.
그는 파격적인 모더니즘과 전위적 참여시로서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시(新詩)가 출발된 이후 이상 처럼 많은 논의의 대상이된 시인도 드물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지극히 난해하여 아직도 해독(解讀)되지 않은 위험스런 지뢰로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주지주의(主知主義) 평론가 최재서(崔載瑞)는 [리얼리즘의 확대와심화)(1934년 조선일보에서 '독자의 곤혹이 있음에도 단연히 환영하여야 할 경향'이라 했으며, '현대의 분열과 모순에 이만큼 고민한 개성(個性)'도 없다고 하고, '그는 풍자. 위트. 야유. 기소(譏笑). 과장. 패러독스. 자조(自嘲), 기타 모든 지적(知的) 수단을 가지고, 가족 생활과 금전과 성(性)과 상식과 안일에 대한 모독을 감행하였다'고 이상문학을 옹호 하였다.
해방후 이상 문학에 대한 평가는 아마도 조연현(趙演鉉)의 (근대 정신의 해체)(1949)로 보인다. 그는 이상의 시가 쉽게 해득(解得)될 수 있었다면, 그는 그렇게 특별한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현대의 '지성(知性)의 자존심'과 '그들의 지성을 만족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이상은 완전한 시인도 작가도 못되는 일종의 에세이스트로 단언하고 있다. 이것은 최재서의 '이상의 예술은 미완성'이라는 견해와 일치하고 있다.
아직도 이상 문학은 확실히 문학적 평가가 전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 자체의 해석이나 분석은 아직도 요원한 느낌이다.
이 작품은 5연으로 된 쉬르리얼리즘(Surrealism)의 시다.
(오감도(烏瞰圖)는 시(詩) 제15호까지 나간 일종의 연작시로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7월 24일부터 8월8일까지 연재되었다.
제1연 ; -불길한 까마귀 눈에 비치는 '13인의 아해'란 무엇인가? 이 13이란 숫자는 어디서 온 것인가?
1. 당시의 우리나라의 도가 13도 였다는 것.
2.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사람이 13제자라는 것.
3. 무수(無數)를 표시하여 13으로 했다.
4. 서구에서는 13이란 숫자를 가장 불길한 수자로 보고있기 때문에 사용했다는 것.
이상의 네가지 주장의 견해에서 주검을 먹고 귀신을 불러 오기도 하는 불길한 까마귀와, 13이라는 불길한 숫자의 구도. 즉 이 세상의 공포와 부조리에 놓인 생의 어이없는 파나로마를 외형적 소모로 그린 것이 아닐까 한다.
제2연 ; 무섭다고 하는 아해를 하나하나 어김없이 확인하는 일이다.
제3연 ; 세대가 바뀔지라도 절망적 운명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악인)와 '무서워하는 아해'(공포에 떠는 아해)로 모였다는 것은, 이 세상(집단)의 구성은 여하간 쫒고 쫒기는 '질주' 공포에 떨기는 모두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제4연 ; 이는 어차피 희망이 없다. 다시 돌아 올 길없는 시간의 연속성 위에서 인생은 끝없이 부침(浮沈)하는 어이없는 파노라마다.
제5연 ; 공포에 떨면서 주어진 삶을 달리거나, 또는 달리지 않거나 아무래도 좋소. '뚫린 골목'은 희망적 출구, 그러나 불길의 숙명에서는 본질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상은 폐병 환자로서 절망에 빠진 시인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다.
그는 총각의 몸으로 기생 금홍(錦紅)이와 동거했고 계속되는 사업의 실패로 동생인 운경(雲卿)의 청소부의 봉급으로 생활을 했다.
이 상(李箱, 1910 - 1937) ;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보성고보와 경성공고 건축과 졸업. 구외회(九人會)도인. 이태준의 소개로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1934. 7.24 - 8.8) 연재하다가 문단의 비난을 받고 중단했다. 기생 금홍과 다방.까페등을 운영하다 연속 실패.
소설 (날개)(1936)를 발표, 시에서 시도했던 자의식을 소설로 승화시켰다. 유작에 (이상 전집. 1957)등 전3권이 있다.
자화상
서 정 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 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숫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새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질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이 작품은 서 정주 시인의 초기 작품으로 이 시에서 노래된 '종'은
천민에 속하여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계층의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종교적 입장에서 볼때는 이승에 있어서의 하나의 고행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서정주(徐廷柱, 1915 - ) ; 호는 미당(未堂) 전북 고창 출생.
해방후 동아일보 편집부장. 동국대와 조선대에서 교수.
한국 최대의 시인으로서 일반인들의 존경받고 있다.
사상의 기조 ; 영원주의, 영생주의
사조상의 배경 ; 주정적 낭만주의
예술관 ; 심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동인지 '시인부락' (1936)을 주제
시집 ; 화사집(1938) , 귀촉도(1946), 서정주 시선(1955),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신화(1975),
떠돌이의 시 (1976) 등이 있다.
목계장터
신 경 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기분 파는
가을 별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끊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친지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
신 경림시인은 민중작가로서 힘없고 약한 자들의 대변자적인 역할을 자청하는 작가이다.
그래인지 몰라도 이 시 에서도 작가는 바람가는 대로 세월가는 대로 한세상 조용히 살지않고 무언가 일깨우는 혁신을 바라는 생활을 하려는 의식적인 주지시라 하겠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하고'는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게 하는 선구자를 가르키며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는 민중의 마음을 살로잡고 용기있는 자 되라는 것이며, '3연 과 4연의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
되라하네'는 일반 서민으로 조용히 숨죽여 살라는 것이다. '들꽃'과 '잔돌' 처럼 무난히 인생을 바라지만 곧은 의지와 굽히지 않는 사상에 권력의 억압과 피박이 있을때는 '풀속에 얼굴묻고' '바위뒤에 붙으라네'처럼 조용히 살라는 충고적 언어, 그러나 떠돌이가 되더라도 하고싶은 말 다하면서 민중의 대변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시라 하겠다.
신경림(申庚林, 1935 - ) ; 충북 중원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문학예술](1956)에 (갈대), (묘비)등이 추천되어 시단에 나오게되었슴. 농민 민중시의 독보적인 존재임.
시집 ; [농무], [새재](1979), [달 넘세](1985), [가난한 사랑 노래](1988), [길](1990), [쓰러진자의 꿈](1993), [남한강](1987),
그외 저서로는 [한국현대시의 이해](1981),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3), [민요기행 1, 2](1985, 1989), [우리 시의 이해](1986)등이 있슴.
시에 있어서의 언어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인 드가( H.G.E. Degas, 1834 - 1917)가 친구인 시인 말라르메( S. Mallarme, 1842 - 1898) 에게 나는 간밤에 아주 기막힌 아이디어(생각)이 떠올라 그것을 시로 쓰려고 했더니 안되더군 하고 고백을 하니 말라르메가 웃으며 그건 그럴 수밖에, 시는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쓰는 것이거든 하더란다.
시는 흔히들 언어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물론 언어의 예술이란 시만이 아니라 소설, 희곡, 평론, 수필, 시나리오 등 여러 가지 장르가 있으나, 그런 산문과 시의 상이점은 뒤로 미루고, 우리가 주목할 것은 詩라는 예술의 소재인 말은 음악의 소재인 소리나 회화의 소재인 선이나 색채와 그 기능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즉 음악이나 회화의 소재인 소리나 색채는 그 자체로선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지만 詩의 소재인 말은 그 낱말 하나 하나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음악이나 회화는 의미가 없는 소재를 가지고 예술이라는 의미의 세계를 만들어 내지만 詩는 그것을 형성하는 소재 하나하나, 즉 낱말 하나하나가 소우주를 이루고 있다는데 바로 詩의 비밀이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자기의 의지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하여 거의 무의식적이며 습관적으로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생활의 연모로 쓰이는 말의 의미란 한 사물에 공통적으로 부여한 부호에 지나지 않는것이어서 오히려 이처럼 단순화되어 있는 것이 생활의 도구로는 편리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말 자체에 저와는 달리 비실용적이요, 복합적이요, 신비하다고나 말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기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詩에 있어서의 말인 것이다.
바로 이소식을 폴 발레리는 시인의 작업이란 일상적 실용의 말을 가지고 예외적이고 비실용의 詩라는 특수한 하나의 세계, 사물의 한 질서, 관계의 한 체계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흔히 詩를 쓰는 사람들이 처음 당하는 고충은 일상적 말에 대한 습관적 사용법을가지고 詩라는 특수한 세계를 다루려고 하는데서 그 실패의 원인이 있다. 물론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나 詩에 쓰여진 말이나 그 말자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그 말이 내포하는 기능의 영역에서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과 같은 큰 격차를 가져온다는 것을 詩를 쓰는 사람들은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면 말의 또하나의 기능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한 개의 낱말은 한 사물을 가리키는 부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낱말이 또 다른 낱말들과 연관을 가졌을 때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우리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깨닫는다. 예를 들면 '눈(雪)' 이라는 낱말은 하얀 눈을 의미하나, 이 낱말에 다른 낱말이 보태어 져서 '눈 같은 여인' 했을때는 우리는 흰 얼굴을 한 순결한 여인네를 떠 올릴 것이다. 또한 '나무' 라는 낱말도 가령 '나무에 올려 놓고 흔드는 격' 이라고 말이 이어졌을때는 전혀 나무와는 다른 '좋은 낯으로 남을 꾀어 위험한 곳이나 불행한 처지에 몰아넣는 것과 같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말이란 신비하고 무한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본디 말은 그것이 일상적인 말이건 詩의 말이건 반드시 한 사물을 지시하는 의미적 기능과 그 말이 발하는 음향의 청각적 기능을 함께지닌다. 그리고 그중의 의미적 기능은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속에서도 그 한가지의 지시성을 변화 시키지 않으나 청각적 기능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또는 그것을 말하고 듣는 사람의 정서에 따라서 천만가지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말의 청각적 기능을 영국의 탁월한 문예비평가 I.A. 리처즈 (Ivor Armstrong Richards, 1893 - 1979 )는 말의 정서적 기능이라고 부르고 말이 우리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정서적 기능으로서 거기에 말이 우리들의 역사를 움직이는 불가사의한 작용이 감추어져 있다고 까지 말한다.
그래서 만일 훌륭한 詩人이 되려면 말의 표현적 의미만이 아니라 다시 리처즈의 말을 빌면 의미 속의 의미, 즉 말의 정서적 기능을 체득하는 것이 절대적 조건이라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 할 것은 이 언어의 정서적 기능을 詩에 있어 한갖 리듬적인 음악성만으로 오해하여서 이미지 중심의 현대시의 조형성에는 그것이 결여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것은 큰 착각으로 서 詩 속에 담긴 어떠한 이미지도 단지 박자 본위의 음악성이 아닐 뿐이지 말이 지니는 내질적인 음악성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겠다.
그래서 훌륭한 詩적 이미지는 인간이 지니는 모든 감각적 기능을 구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말의 기능과 함께 우리 인간존재의 가장 기본인 생각, 즉 사고와 말, 즉 언어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직도 일부 시인들은 생각(느낌)과 말, 즉 사고와 표현을 별개의 것으로 알아 그들은 항상 詩가 될 생각은 가득한데 말이 찾아지질 않아 못 쓴다고들 한다. 다시말하면 자기의 생각과 부합되는 말, 특히 아름다운 말을 고르기에 부심하며 시를 마치 꾸며진 말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런 사람들은 그 생각이라는 것이 말로써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예를 들면 '달이 밝다'로 하였다가 '달이 맑다'로 고쳤다면 이것은 표현, 즉 말의 변화만이 아니라 생각과 느낌의 변화인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커 (Martin Heidegger, 1889 - 1976 )는 언어는 존재의 집 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의 저서 "숲 속의 길" 속에 나오는 사고에 대한 유명한 말인데 "우리들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선 존재와 만날수도 없고 언어는 존재를 우리에게 내어주는 유일의 것이다"라고 하면서 설명하기를, 가령 우리가 숲 속을 가다가 샘을 만났다고 하면 그것이 샘이란 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샘이란 말로 그것을 인식한다. 또한 공중의 새를 보았을 때도 그 새의 존재를 포착하는 것은 새라는 언어로써, 물론 그때 새라는 말의 소리를 내지 않았더라도 그 존재를 우리의 인식 속에 가만히 포착시키는 작용을 한 것은 언어다라고 갈파한다. 이렇듯 말이 없다면 생각이 없는것이요. 말을 통한 인식이 없다면 존재는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말은 존재를 존재하게 한다고나 하겠다. 이러한 생각이 근세철학의 시조라고 하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 )의 "나는 생각한,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성립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말은 저렇듯 존재를 만나게 하는가 하면 한 걸음 더 나가서 그 존재의 영역을 한정시키기도 한다. 즉, 그 말이 지니는 한도 내에서, 다시말하면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넓이에 따라 마치 존재는 등불의 강약에 비례하여 사물이 모습을 드러내듯 한다. 그래서 존재에 대한 인식, 즉 생각의 깊이와 넓이는 바로 언어에 대한 넓이와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듯 말의 숨은 기능을 생각할 때 시를 쓸만한 생각은 많은데 말을 찾지못한다는 얘기는 시를 쓸만한 생각을 못해냈다는 얘기요, 일반이 바라는 소위 아름다운 말, 즉 수식어나 수사법은 이미 만들어지고 쓰여지고 낡아진 말들의 시체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죽은 말들을 이리저리 바꾸어서 배열해 보았자 그것이 창작인, 즉 비로소 만들어지는 詩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말해 詩란 평범한 일상적인 말을 가지고 바로 그것으로 일상적 의식을 넘은 세계를 표출해내는 것으로, 여기에 시를 쓰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A. 현대시에 있어서의 언어
* 우리의 언어를 지키자
언어에는 일상적인 언어와 문학적인 언어, 과학적인 언어가 있다.
문학은 인간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진실과 아름다움이다.
문학은 언어로서 정당한 쪽으로 아름다운쪽으로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 참고로 인내하는 문학은 노동이다
성취욕은 인간을 즐거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문학과 심리, 역사의식을 가지고 문학적인 삶을 살자.
B. 현대시는 어떻게 쓸것인가 ?
1. 현대시는 언어 기능의 활용이다.
언어는 주지적이고, 청각적이고, 의미의 기능이 담겨 있어야한다.
2. 현대시는 객관적이고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3. 생각하는 시로 나타내야한다.
( 설명하는시, 웅변조의 시는 안된다. )
4. 비유의 문학이며 암시의 문학이다.
( 은유적인 메타포가 있어야한다. )
5. 영원히 살릴 수 있는 시는 사상이나 철학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영원한 감동을 줄 수 있다.
6. 지성적인 시라야만이 표현의 감동을 줄수 있다.
7. 지금까지 발표된 시는 죽은시다.
새로운 시어를 개조하고 창조해야만 한다.
8. 현대시는 고, 저, 장, 단의 언어이다.
9. 리듬 노래하는 시는 옛날 시다.
리듬을 깨야한다.
사유하는 시, 생각하는 시가 된어야한다.
10. 현대시는 생각하게하는 시요, 이미지의 싸움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가슴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유목민 사상으로 ( 쉼없이 떠도는)
표현해야한다.
11. 모든 예술에는 슬픔이 있지만 특히 현대시로 성공하려면 바닥에
시 창작법과 비평
시 창작에는 두가지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원칙적인 측면이요, 둘째는 실현적인 측면이다.
전자는 생의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시의 영감을 솟구치게하는 정신의 어떤 샘물이며, 후자는 그것에 가시적으로 형상화시킨 구체적인 언어 형식이다.
클리언즈 부룩스의 표현에 의하면 "청자 항아리"에 담아 식탁에 내놓는 과정이다. 여기서 "원천의 솟구쳐어르는 샘물이란" 그것을 영감이라 부르든 혹은 포에지라 부르든 언어화 되기 이전의 어떤 정신적인 상태를 "그릇에 담겨진 샘물"이란 언어화된 작품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제3의 단계가 곧 자연의 상태인 샘물을 떠 그릇에 담고자 하는 충동이다. 따라서 갈증에 대한 인지와 그것을 해갈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우리가 물을 먹는 과정은 첫째 자연상태의 샘솟는 물, 둘째는 갈증의 인식과 그 해갈의 충동, 셋째는 그릇에 담긴물로 너누어 생각할수있다.
시 창작 역시 세단계로 구분한다면 첫째는 시의 원천, ( 이 시 창작의 원천적인 측면에 해당한다) 둘째는 시 의식(의미화의 측면에 해당), 셋째는 시적 형상화(실현적인 측면) 이라고 말하고 싶다.
1. 시의 원천의 경우 우리는 최소한 두가지 측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 아무곳이나 땅을 파서 물을 얻을수 없는 것처럼 시의 원천 역시 아무 사람이나 지니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이는 선천적으로 시의 원천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며, 후자의 경우의 사람은 아마도 훌륭 한 시인이 되기 어려울것이다.
둘째 ; 시의 원천을 지닌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는 별 의미가 없 다는 사실이다. 개발하지 않고는 사용할수없다기 때문이다.
이는 반드시 시인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의 원천은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이는 오직 좋은 서적을 두루 읽고, 인생의 많은 체험을 쌓아야 하며, 깊이 있는 사색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란 그것이 좋은 내용의 책이든 나쁜 내용의 책이든 많 이 하면 할수록 좋다. 좋은 책에서는 좋은 내용을 받아들 이고 나쁜책에서는 비판적인 내용을 받아들이는 습관을 가 질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전제해야할 것은 독서란 인류의 보편적인 진실을 담은 저서를 우선 기초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보편적 진실의 독서를 통해 어느 정도 내적 세계가 확충된 연후에 개별적이고 특수하고 전문적인 내용의 저서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정신의 편견이나 불구성을 모면할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한 일류의 보편적인 진실을 담은 저서란 일일이 열거하기는 곤란하지만 주로 고전(classic), 세계문학(world literature), 등의 범주에 속한 책들이며, 특히 시인이 되기 위하여 꼭 읽어야 할 저서는 위대한 종교의 경전이다. 즉 기독교의 "성서", 불교의 "경전", 이슬람의 "코란" 그리고 경전이라고는 할수 없으나 "사서삼경", "삼국유사" 등을 들수 있다.
시의 원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생체험과 깊이 있는 사색 등은 독서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선 체험은 그것이 기억으로 남아 있든 혹은 무의식의 세계에 참전해 있든 시인의 내면 세계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시인이 한편의 시를 쓰면서 우연히 구사하는 한 개의 단어, 하나의 에피소드는 사실 그의 과거 체험이 무의식속에 용해되어 있다가 그의 독서 체험과 어울려 상상력의 힘으로 토로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시인은 평소에 깊이 있는 사고와 묵상에 자주 드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시인은 사색을 통해 독서 및 체험에서 얻어진 가치들을 정리 체계화하고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정립하며 시 창작의 힘이라 할 상상력을 풍부하게 발양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의 원천에 대한 이같은 정기적이고 근원적인 개발이 없이단기적인 학습이나 글쓰기 훈련으로는 시 창작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2. 시 의식의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날카로운 관찰과 상상력이다.
관찰은 다시 통찰(insight)과 깨우침(realizing)으로 구분할수 있다.
우선 통찰은 넓은 의미의 관찰(observation)과 혼동하기 쉽지만 전 혀 다른 정신행위이다. 관찰이 대상, 즉 개관의 외면 혹은 현상을 주시하는 정신행위라 한다면, 통찰은 이와 달리 대상의 내면 혹은 실재를 들여다보는 행위이고 관찰이 대상을 분석하여 전체를 구성 하는 각 부분의 유기적 관계성을 토대로 사물을 이해하려는 행위인 것과 달리 통찰은 대상을 처음부터 전제로 인식하는 행위인 까닭이 다. 그러한 관점에서 관찰은 객관적이지만 통찰은 주관적이다.
한편 관찰은 이성을 통해, 통찰은 직관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전자 가 우리의 인식 대상에 어떤 이해 즉 철학적으로 "오성 (understanding)이라 부르는 것을 가져온다면 후자는 어떤 깨우침 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우리 즉 주체는 대상 혹은 개관을 만나거나 수용함에 있 어 두가지 정신 경로를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관찰을 통해서 이성으로 대상의 객관적 의미 즉 외면을 이 해하는 행위이며 다른 하나는 통찰을 통해서 직관으로 대상의 주관 적 의미 즉 그 실제를 깨우치는 행위이다. 우리는 전자의 정신활 동을 과학이라 부르고 후자의 정신활동은 문학이라 부른다
과학은 인문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이성에 의하여 사물의 어떤 보 편적이고도 논리적인 법칙을 찾아내지만 문학은 직관에 의하여 어 떤 총체적이고도 모순된 삶의 진실을 깨우친다. 여기서 문학은 사 물 혹은 인생을 단지 이해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 로 그것을 넘어서 어떤 인생론적 진실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정신활동의 구분은 기본적으로 문학이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직관의 산물이며 세계를 객관적으로 대면하기 보다는 주관 적으로 대면하려 하며 대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통해 무엇인가를 깨달으려 하는 행위임을 말해 준다.
이처럼 시는 과학적 판단이나 이해에는 관심이 없고 그 너머에 있 는 어떤 직관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이 세상에는 과학에 기준을 둔 과학적 진리 외에 시에 기준을 둔 비과학적 진리도 있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결국 이 세계에는 이성의 작용으로 이해되는 논리적, 합리적, 객관 적 진리가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직관적으로 깨닫는 모순되고 비합리적이며 주관적인 진리가 있다. 이 후자에는 모순을 본질로하고 있는 까닭에 '관찰'로는 발견하기 어렵고 오직 '통찰'에 의해서만 도달될수 있는 진리이다. 시 창작의 과정에서 통찰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누구나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이 세계 혹은 사물이 지닌 과학적 진실이 아니라 비과학적 진실, 즉 모순되고 불합리 하지만 총체적이면서 인생론적인 진실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 창작이나 시 독서에서 통찰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정신활동은 상상력이다. 시인은 우선 세계 혹은 대상을 통찰로서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이 대상이나 세계를 통찰하여 깨우친 진실은 비록 날카롭고 심오하다고 할지라도 아직은 철학적 단상이나 추상적 사고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리하여 시인은 다음 단계로 그것을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하나의 형태 혹은 감각적인지가 가능한 상태로 만들고자 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발휘한 것이 상상력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이란 통찰에서 얻어진 시적 진실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상력은 또한 유추, 연상, 환상 등과 구분된다.
유추란 한 사물이 다른 사물과 총체적이고도 논리적으로 대응될 때 이 루어지는 사유체계이다.
연상은 유추처럼 한 사물의 전체가 다른 사물의 전체와 논리적으로 대 응되지는 않지만 어떤 부분이나 특정, 특히 기억의 유사성에서 기인하여 건너뛰는 사유체계이다.
환상은 백일몽에 가까운 것으로 무책임한 사유를 의미한다. 환상은 대 상으로부터 그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이다. 달리 말하면 환상이란 인식의 대상이 없는 주관 홀로의 사고 유희이 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연의 느낌만이 산만하게 제시될 뿐이다.
이에 대하여 상상력은 최소한의 대상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상과 유사성을 넘어 직관적으로 대상에 틈입한다는 점에서 연상과 각각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대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논리적으로 전체와 대응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또한 유추와 다르다. 그러나 상상력에 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성적인 논리가 아닌 감성의 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환상에서는 이 감성의 논리 조차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1. 2. 단계를 마친 신인은 이미 그 사고 속에 한편의 시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은 문제는 그것을 실제로 언어화 하여 원고에 기술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시적 형성화의 단계를 말한다.
이 시적 형성화의 단계에서는 두가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 언어의 외면적 측면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운율을 가져야 한다. 현대시는 그 이전과 달리 외형적인 율격이 없는 소위 자유시형으로 쓰여져서 언뜻 운율을 필 요로 하지 않는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 시도 비록 어떤 법률적으로 정해진 소위 정형율은 아니지만 나름대 로 미묘한 내재율을 가지지 않고서는 결코 훌륭한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내재율이란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시인 의 언어적인 감수성과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다만 그와 같은 언어 의 음악적 감수성을 천부적으로 갖고 태어난 시인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그렇지 않은 시인의 경우에는 후천적으로 이를 꾸준 히 연마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이 연 마의 방법으로는 좋은 시를 가능한 많이 읽고, 많이 낭송하며 기회 있을때마다 음악을 감상하는것이다.
둘째 ; 언어의 내면적 측면이다.
이는 너무도 복잡한 문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하기가 어려우나 상식적인 차원에서 그 원리적인 것 만을 지적한다면 시의 언어화에 필수적인것은 이미지, 은유, 상징, 신화등에 의한 표현과 아이러니나 역할의 구조라는 점이다. 분명히 말해서 이상의 언어화 로 표현되지 않은 어떤 진술도 시라고 말할수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산문과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 언어의 내적인 특징이 이처럼 이미지, 은유, 상징, 신화, 아이러니, 역설로 되어야만하는 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과학적 진리와 다른 시적 진리란 일상적인 의미의 논리를 벗어나 그 자체가 모순되거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산문처럼 논리적이거나 직설적인 어법으로는 그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이미지, 은유, 상징, 신화, 아이러니, 역설 등은 비과학적 진실 그러니까 시적 진실을 표현할수 있는 유일한 어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시인은 항상 참신하고 의미있고 창조적인 이미지나 은유 혹은 상징, 신화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3. 시적 형상화는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이 시적 진술이 이미지, 은유, 상징, 신화등으로 표현되고 역설 및 아이러니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애서 설명된다.
시에 있어서의 관찰과 상상력
시창작에 있어서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은 시인이나 작품의 우열을 결정하는 중요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 시에 있어서의 관찰
어떤 사물에 대한 정확하고 면밀한 관찰은 시뿐 아니라 과학에 있어서도 필요로 하지만 시에 있어서의 관찰은 과학의 자와 같은 정확성이나 현미경과 같은 정밀성이라기 보다 어린이와 같은, 또는 최초의 인간과 같은 시력, 즉 눈과 마음의 순수성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것은 시인의 사물에 대한 생소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으로 가까이 하는 평범한 사물이라도 건성으로 통념속에서 습관적으로 보지 않고 예리하고 면밀하게 관찰했을 때 이전에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물에 대한 관찰의 소홀에서만 아니라 그 사물이 지니는 현상(事象)이 때마다 변하기 때문이요. 더구나 그 사물이 지니는 이치의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모든 존재(사물)는 오묘한 신비로 감싸여 있고 진.선.미를 구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시인이 어떤 사물에서 저런 실재의 새로움을 발견했을 때 그 놀라움이 마치 티없는 마음의 어린이이나 세상 사물을 처음대하는 최초의 인간의 것과 같다는 말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생활의 흐려진 눈, 즉 축적된 상식과 그 경험으로는 모든 사물에 실용적인 판별의 휘장이 가려져서 사물의 실상이나 실존을 볼 수가 없고 그런 지각에서는 시심이 발동되지도 않고 시를 쓸 수도 없는 것이다.
이렇듯 시의 창작에 있어서는 사물에 대한 선입관이 없는 순수한 관찰과 더불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왕성한 상상력의 참가를 필요로 한다.
2. 상상력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시는 사람들이 보통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감정이 아니다. 시는 체험이다. 그래서 한줄의 시를 위하여는 여러 도시와 각양각색의 사람이나 사물들을 접해야 한다. 그리고 짐승들의 습성을 알아야 하고, 새들의 나는 모습도 살펴야 하고, 동이 틀 때 꽃의 벙그는 모양도 눈여겨 두어야 하고, 가보지도 못한 고장의 한길 따위도 익혀 두어야 하고, 뜻밖의 만남이나 애뜻한 이별의 장면도 머리에 넣어 두었다가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는 어린 시절의 의문, 극진한 사랑, 그것을 몰라서 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했던 일, 밤마다 달랐던 규방(奎房)의 어둠, 산고를 치르는 여인네의 비명, 해산후 흰 이불을 덮고 잠든 여인의 안식 등 시인은 저런 추억들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죽어가는 사람의 베개 옆에 서 있은 경험이 있어야 하고 한편에서는 경련을 일으켜서 소동이 일고 있는 방에서 시체를 지키고 있어 본 경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저런 추억을 가지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추억이 많이 쌓이면 그것을 잊어 버릴줄도 알아야 한다. 추억이 다시 한번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추억의 순환이기 때문이다. 추억이 우리 안에서 피가 되고 눈길이 되고 그 사물의 명색을 없애고 우리의 자신과 구별되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어쩌다가 한 줄의 싯귀의 한마디가 그 추억의 핵심으로 부터 튀어나온다, 고 했다.
한편 시를 쓰기 위해서는 다향성이 필요함을 역설한 다음 그 경험의 추억에 부착된 여러 가지 불필요한 폐물이 떨어져 나가야, 즉 경험이 경련되고 순화되어 몸안의 피처럼 되었을 때 비로소 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억만이 시의 기능이라고 해도 아마 잘못이 아닐 것이다. 왜냐면 상상이란 그 자체가 기억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상상해내는 것이란 우리가 알지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의 상상력이란 이미 우리가 일단 경험한 것을 떠올려 그것을 어떤 다른 상황에다 맞추는 능력이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란 그 기억이 자신의 강렬한 경험을 뛰어넘어서 자기 중심을 벗어나 멀리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아주 정밀한 관찰을 할 만큼 탁월한 기억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데 기억의 약점은 그 자기중심적인데 있다. 대부분의 시가 나르시즘(자기도취)적 성질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현실적 경험이란 거의가 수동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주체가 되는 사람은 변화무쌍한 일상적 경험도 그렇지만 어떤 일시적 경험일 경우 그 생소하기 짝이없고 뜻밖에 접하는 경험을 의식적으로 파악하여 객관화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시야에 일시적으로 들어오는 사물에는 불문명하고 깜깜한, 즉 이해하지못할 부분이 가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저러한 사물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해 내는 작업이 없이 현실적 경험(감동이나 감흥)이 아무리 강렬했다 해도 그대로는 시가 되지 않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어떤 자연이나 인간이나 세상살이 속에서 큰 감동을 받거나 감흥을 이르키고도 "쓸 수가 없다"는 말은 저 때문인 것이다.
즉 현실적 경험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주관적 경험이 감동이나 감흥의 실체가 하나 하나 분해되고 분석되어서 객관적인 관찰의 조명을 받고 다시 파악되고 확인됨으로서 새로운 재구성에 나아가야 한다.
또한 현실적 경험이 시적 경험으로 창조되는 과정에서 시인의 상상력, 즉 연상력이 수반 발동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컴퓨터가 아무리 정확한 기억력을 갖추었더라도 연상작용은 못한다.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어떤 한 기억을 불러일으켰을 때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공통한 요소를 지닌 무한량한 기억을 연결하는 그 능력에 있으며 그 상상력은 미경험의 세계까지도 창조한다.
이 상상력의 공간에 대한 관계는 기억의 시간에 대한 관계와 같다. 따라서 오관(五官 ;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에 직접적으로 접하지 않는 데이터(자료)들을 정신에다 보내는 능력, 그것이 곧 이매지네이션(상상력)이다. 한편 시인의 이매지네이션은 우리들이 의지라는 말로서 의미하는 모든 것과는 정반대로서, 의지의 행동을 양식으로 삼지만 이매지네이션은 명상을 식량으로 삼는다.
이처럼 시인의 관찰력과 상상력이란 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속에 있는 사물의 사실성이 아니라 그것(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물의 실재성인 것이다. 그래서 시가 사람에게 실제의 사물보다 오히려 더 핍진성(逼眞性 ; 진실에 가까움)을 주고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 2000년대는 문화의 시대
문화 부흥운동을 펼치자
- 밀레니엄문학회의 뉴비전 운동 -
밀레니엄문학회회장 정 찬 우
미래는 문화강국의 시대이다. 미래는 문화라는 부의 광맥에서 보물(부가가치)을 캐내는 사람들과 그런 인적자원을 많이 보유한 나라가 잘살고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관념에서 이미 '코리아 프로젝트 2020' 기획팀은 '인재(人才)가 국부다' 에 이어지는 제2주제로 '미래는 문화다' 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그 첫 번째 실행 방안으로 '문화인프라 구축 10개년 계획'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획팀은 이를 '문화 뉴딜정책' 이라고 까지 명칭하고 있다.
선진 미래의 건설은 총체적 미래 기반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구체적인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계 30대 도시의 문화 인프라 수준'을 비교 분석한 삼성 경제연구소(1998년)를 보면 서울의 인구 1000명당 공연장수는 0.024개로 전체의 21위, 인구 1000명당 도서관수는 0.003개로 25위, 도서관 보유 장서는 인구 1000명당 248권으로 26위 ( 상위 10개국 평균 3823권 이다 )
문화관광부가 펴낸 '2001 문화정책 백서(白書)를 보면 우리는 이미 '문화예산 1% 시대'를 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 예산은 110조원을 넘어서고 있고 문화예산은 1조원을 넘어서고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체감 문화 지수'는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화 뉴딜정책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것인가. 하드웨어적인 문화인프라의 확충은 기본이다. 이를 위해 우선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문화예술화관 등 다양한 문화 공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늘려야한다.
여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전국에 100가구 단위로 '文化房'을 설치하자는 것이다. 경로당이 고령자의 안식처되고 유아원이 어린얘들의 놀이공간이 되듯이 문화방은 주민들의 문화 욕구를 달래는 곳이다. 주민들 스스로가 기획하고 연출하며 주인공이 되는 문화자치의 표현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또한 하드웨어에 걸맞는 소프트웨어적 문화 인프라의 확충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의 오지'로 버려져있는 지방을 문화의 중심지로 끌어 들여야하며, 각지방에 산재해 있는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이들 무형의 문화인프라를 조직하고 전승시키는 노력과 함께 이런 작업을 담당할 '문화 리더'들을 키워가는 노력이야 말로 선진문화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따라서 '코리아 프로젝트 2020'의 기획팀은 '문화강국 코리아'를 건설키위한 5가지 문화인프라를 제안하고 있다.
첫째 ; 지방문화 지원예산을 두 배 확대하라.
현재 지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면에서 서울과 그 격차가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고사해가고 있는 지방 문화를 살리기 위하여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더욱더 많은 문화예산을 책정해야 할 것이며 중앙정부에서 문화를 통한 지 방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 의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라는 점에 서 가장 우선되어야할 과제이다.
둘째 ; 문화시설 가동률을 높이자.
독자적 문화공간이 확충되기 전 까지라도 학교도서관, 강당, 교 회, 사찰등의 공간도 지역사회와 연결시켜 문화공간에 대한 갈 증을 풀어야할 것이다. 현재 부족하다고 하는 문화시설마져도 가동률이 50%를 넘지못하고 있다. 시민들이 자주 찾지않는 것도 문제지만 질 높은 콘테츠가 없는 데 제일 큰 원인이 있 다. 도서관의 장서확보, 박물관의 다양화, 소규모의 문화공간 의 활성화를 통해 문화공간의 이용률을 높이자.
셋째 ; 문화리더를 키우자.
시민을 문화의 문외한에서 매니아로 탈바꿈시키려면 먼저 문화 의 관리자와 리더들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요구와 수준을 정 확히 파악하면서 동시에 고급문화의 정수를 시민들의 눈높이로 전달해 줄 역할은 그들이 해야한다. 흔히 애니메이터(문화촉 진자)로 불리는 축제기획자, 각종 문화강좌의 강사들을 체계적 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넷째 ; 문화지도( CULTURE MAP)를 만들자
지역과 마을의 문화적 향기는 무엇보다 그곳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했던 문화예술인들을 기억하는데서 짙게 퍼져 나온다. 그 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들의 장르를 탐사하 는 것만큼 예술에 쉽게 다가가는 방법은 없다.
다섯째 ; 마음속에도 문화인프라를 깔자.
좋은 음악을 감상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느끼는 것은 저절로 되 는 것이 아니다. 눈과 귀야 말로 감상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감각기관이다. 지금이라도 가까운 문화쎈타나 각종 강좌를 통해 얼마든지 마음의 문화인프라를 깔아 새로운 영역에 눈뜰 수 있다. 풍요로운 삶은 남들이 듣지 못하고 보 지못하는 것을 듣고 느끼는데서 시작된다.
(조선일보참조)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문화인프라의 하드웨어를 담당하고 우리 문학인을 비롯한 각계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은 그 소프트웨어를 담당하여 개발하고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살펴볼 부분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이미 문화예술진흥비로 1조원 이상의 정부 예산을 쓰고 있으나 그 대부분이 영상매체와 시청각 위주의 문화예술쪽으로 편중되어 있음을 볼수 있을 것이다. ( 그러면 과연 문학쪽에 소요되는 예산은 얼마나 될까? 정확치는 않으나 10%가 안된다고들 한다 )
이는 현대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발전과정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문화 예술의 시작과 끝이 문학으로부터 시작하여 문학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사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는 문학을 하는 우리 문인들의 잘못이며, 그 잘못된 부분을 올바로 잡아가는 것 또한 문인들의 몫이다.
그러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문화예술의 주역이 곧 문인들이 될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 존경받는 인성을 가져야한다.
문인은 자기가 발표한 모든 작품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보고 느끼고 감상하며 빠져들기 쉽다. 따라서 각 작품 마다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되며 심혈을 기울여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 수히 많은 경험과 부단한 노력으로 공부를 해야하는것이 선행 조건이며, 많은 인간관계를 통한 참다운 인성을 길러야한다. 그러한 인성이 곧 자기의 작품세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둘째 ; 예언자적 자세를 가져야한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문학이다. 따라서 항상 한발 앞서가는 예언자적인 자세를 가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는 부단한 노력과 학문적인 깊이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항상 사고의 논리가 앞서야하며 세상의 이치에 합당한 사고를 가져야한다.
그래야만이 많은 사람들의 리더가 될 수 있으며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창작문학을 할수 있는 것이다.
셋째 ; 투철한 사상(철학)이 있어야한다.
문학은 인간을 리드하고 인간은 세상을 리드해가는 것이다.
따라서 문인은 올바른 사상(철학)을 갖지않으면 안는 것이다.
올바른 사고의 관념이 없는 문인이 쓴 작품은 결국 사회의 악 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때문이며, 올바른 사상적 철학이 있는 문인의 작품은 세상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성숙도 있기때문이 다.
넷째 ; 올바른 역사관과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문학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지와 표현을 그 대로 나타내는 예술이다.
또한 그 시대의 역사의 기록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올 바른 역사관과 세계관를 갖지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처럼 우리 문인들이 쓴 모든 작품들은 각자의 역사적인 산물이 될것이며 미래의 사가(평론 가)들이 평을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그 생명력이 길 뿐만아니라 시대적 사료(史料)로써의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 모든 문화예술의 장르를 이해하고 수용할줄 알아야하며 포괄 적인 창작예술의 선각자적인 역할을 해야한다.
이러한 투철한 사명감과 사상(철학)을 갖지않으면 모든 문화예술의 좌장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문학인들은 다시 한번 깊은 반성과 함께 새로운 마음 자세를 가져야한다.
그러면 과연 우리 밀레니엄문학회에서는 어떠한 자세로 문화산업의 선봉에 서서 문화예술을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첫째 ; 남들이 추진하고 진행하는 사업은 가능한 철저히 피해가면서 남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안하고 못하는 문화예술부분을 개 발 개척해 가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상부상조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협력하고 협조하자는 것이다.
둘째 ; 우리들만의 색깔과 철학과 사상이 남겨지도록 꾸준하고 철저한 공부를 해야하고, 좋은 작품을 쓰고 남겨야한다.
셋째 ; 시청각중심의 문화의식을 개선해 가기위해서 청소년, 시민들의 문학의식을 고취시키는 일에 앞장서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후감 대회 및 백일장 대회를 그리고 일주일 에 한권의 책읽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나아가야한다.
넷째 ; 문학을 시청각 중심의 문화예술로 승화 시켜나갈 필요성을 느 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처럼 문학작품을 낭송테이프로 제작하여 손쉽게 접근할수 있도록 해야하며, 조각작품처럼 문학작품을 비(碑)로 세워 큰 빌딩이나 공원이나 학교등 많은 시민들이 가 장 가까이서 접근할수 있게하고 한편 한편을 오가면서 읽고 느 끼고 깨달으므로서 마음의 정서순환이 이루어지게하는 운동을 펴야할 것이다.
다세째 ;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걸맞게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예술 특히 문학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작업을 선봉에 서서 해야한 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좋은 작품들을 올바르게 번역 하여 해외에 내보내어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문 학과 문화예술을 접하고 이해 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여섯째 ; 해외 문인들과의 많은 교류로 세계문학과 예술의 흐름속에서 한국문학의 설자리를 찾아야한다.
일곱째 ; 모든 창작활동의 문화예술의 장르가 서로 조화를 이룰수 있 도록 각 장르 끼리 많은 모임과 교감이 있어야한다.
아직도 잘 깨우쳐지지 않는 사회 지도층의 인사들이나 공무원들의 안이하고 고루한 사고방식들이 우리의 문화예술의 발전에 크게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렵다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몰라라하고 구경만하기는 너무도 안타까운 오늘날의 현실이다.
우리의 문화예술을 더구나 우리의 문학을 세계화하고 모든 국민들의 가슴에 문화의 꽃을 피워주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먼저 깨우치는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밀레니엄문학회에서는 얼마전 두가지 사업을 착수하여 보이지 않는 커다란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 하나는 회원들의 작품 뿐만이 아니라 국내 시인들의 좋은 작품들을 번역하여 해외에 알리는 작업을 시작하여 가시적인 성과가 있음을 느끼고 있다. 한편 현재 영국의 켐브리지대학에서 구라파나 미주의 영어권 사람들의 정서에 맞는 표현기법으로 수정하는 탈고작업도 진행중에 있다.
또한 다른 하나는 국내의 청소년이나 일반 서민들의 정서 함양과 문학의 이해와 깊이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고 접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문학비 건립운동이다.
현재 제3호기의 시비(詩碑)를 건립하여 수많은 청소년들과 일반 시민들이 가까이서 읽고 느끼고 감흥을 받아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또한 일부 청소년들과 일반 시민들은 두서너번씩 다녀가면서 사진촬영과 함께 작품들을 메모 해가는가 하면 그 자리에서 외우고 있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감명깊은 일이다. 최고의 작품을 따지기 이전에 참으로 많은 국민들이 좋은 글을 가까이서 자주 대하면서 자주 읽고, 그리고 무언가를 느끼고 마음의 감흥을 받아 정서적인 순화운동이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그리하여 정의와 평화가 널리 펼쳐지고 정감어린 인간들의 삶이 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밀레니엄 가족들은 꾸준히 이 사업들을 펼쳐갈 것이다.
아직은 초라하고 작은 힘이나마 우리의 밀레니엄 가족들이 그 선봉에서 진한 땀을 흘리고자 한다.
순수한 열정으로 문학의 저변 확대을 위하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독지가와 저희들이 하고자하는 사업에 함께 참여하고자하는 뜻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든 동참해 주길바란다.
아울러 우리 밀레니엄 가족들은 투철한 사명감과 강인한 의식속에서 커다란 보람을 가지고 열심히 해주기를 바라며, 우리들의 작은 시작과 정성이 크게 꽃피우는날 긍지와 자부심으로 한국의 문학 역사에 또한 세계의 문학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인 십계명
1. 시인은 가진 것이 없어야 한다.
2. 시인은 말수가 적어야 한다.
3. 시인은 버릴줄 알아야 한다.
4. 시인은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
5. 시인은 돌아볼줄 알아야 한다.
6. 시인은 비켜갈줄 알아야 한다.
7. 시인은 눈물이 많아야 한다.
8. 시인은 귀먹고 눈멀줄 알아야 한다.
9. 시인은 항상 홀로이어야 한다.
10. 시인은 그대같은 아쉬움이어야 한다.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
우리는 최근 월드컵을 지켜보면서 우리 민족의 열정과 신바람이란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민족적 특성과 비슷한 것이 800년전 세계를 지배했던 몽고인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가 바로 그들과 많은 점에서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고 가장 가까운 인종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지만, 우리는 그처럼 우리와 비슷한 뿌리와 특성을 가진 그들이 역사상 가장 광대하고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지내왔다.
이처럼 거대하고 강인한 몽고인이 세계데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서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경영적략을 추론하고자 한다.
(강연 내용)
멍고는 지구의 역사상 최초로 해가 지지않는 대제국을 건설한 주인공이다. 그들의 제국은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 등의 제국보다 훨씬 넓은 것이었으며, 고작 100-200만의 인구로 100-200배의 타 민족을 150년 이상을 지배할 정도로 강력하고 효율적인 통치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고 지배할 수 있었던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사고는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부단히 이동하는 자는 살아 남을 것' 이라는 몽고의 한 일파 돌골제국 부흥의 주역 이었던 톤유크 장군의 비문에 잘 들어나고 있다.
즉 닫힌 사회, 수직사회, 경직된 사회가 아니라 개방되고 열린 사회, 함께 나누는 사회였기에 그들이 대제국을 건설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A. 대제국 건설의 비결
우선 몽고가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은 크게 7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 꿈과 비전의 공유이다.
이들은 자신의 꿈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남의 꿈도 존중 하면서 열린 사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정복에 따른 선착순의 개인적 약탈이 행해졌지 만 징기스칸에 이르러서는 모든 이의 역할을 존중하여 칸 마저도 자신에게 할당된 몫만을 챙기는 공동분배를 행했 다.
이는 구성원으로 하여금 성과가 모두에게 형평에 맞게 분 배된다는 인식을 갖게하고 주어진 역할을 적극적으로 행 하게 만들었다.
일종의 스톡옵션과 인센티브제가 행해졌던 것이다.
둘째 ; 기동성이다.
니들은 속도를 종교처럼 믿었고 기동성을 갖기위해 군더 더기를 제거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집행이 이들이 강한 제국을 만들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셋째 ; 정보전이다.
이들의 인사는 '안녕하십니까'가 아니라 '네가 본 세상은 어떠했느냐' 이다.
항상 이동 하는 이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가 생존 에 필수적이었으며, 지극히 정보 마인드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넷째 ; 기술 헤게모니다.
소수의 기동력을 중시한 몽고인들은 가장 효율적인 도구 를 사용했으며 등자를 갖춘 말로 기동력과 전투에 효율성 을 극대화 했고, 기타 공성무기, 반달형 칼 등을 개발해 효과적인 전투를 치룰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은 콰레즈란 왕국을 멸망시킨 후 그들을 포로로 일종의 실리콘밸리같 은 집단촌을 만들어 기술을 개발하도록 하기도 했다.
다섯째 ; 레고식 사고다.
이는 표준화와 호환성을 의미하는데, 몽고인은 포로도 자기의 군대로 편입시킬 정도의 열린사고로 호환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여섯째 ; 전문가 정신이다.
몽고인은 프로페셔널 킬러였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 지 않고 끈질기게 목적을 달성해 냈다.
콰레즈의 왕을 지구 둘레의 1/4이나 되는 1만 킬로를 추격하여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끈질긴 직업 의식이 그들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일곱째 ;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간 관계를 구축했다는 것이 다.
이런 인간관계는 우리 민족과 비슷한 것으로 그들은 강 한 공동체를 의미하는 피눈물과 신바람의 세계를 살았 는데, 이는 우리의 한과 신명과 비슷한 것이다. 부모형 제, 친구의 죽음에 얼굴을 칼로 베어 피눈물을 흘리면 서 복수를 맹세하고 전투에 임해서는 신들린 듯 싸운 것이 그들이었다.
B. 대제국 지배의 비결
이렇게 대제국을 건설한 그들은 또한 강력하게 제국을 통치하고 지배했는데, 그 비결은 네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 법치국가였다.
그들의 형법 1조는 간통한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은 제국 전체에 걸쳐 남녀평등하게 일관되게 시행되었는데, 사회를 지키는 것은 가정이고 가정은 남녀 간의 맹약이 지켜진다는 데서 유지된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 이었다.
둘째 ; 능력주의의 관철이었다.
그들은 1000가구 편제를 유지했는데, 그 1000가구의 리거 천로장은 세습이 아니라 능력위주로 선출되었다.
셋째 ; 절차의 중요시했다.
일종의 민주주의적인 규범으로 코릴타라는 회의에서 중데 사가 결정되었으며, 유력인사들의 회의와 만장일치를 통 해 국가 중대사가 결정되었다.
이들은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토론을 했다.
넷째 ; 디지털적인 프로토콜방식의 사회운영이었다.
아날로그 식은 막히면 기다려야 하지만 프로토콜 방식은 막히면 돌아간다. 역참제가 이들의 대표적인 프로토콜 방 식의 제도였는데, 이를 통해 사회는 끊임없이 소통되었던 것이다.
이 역참제는 디지털과 더불어 인류사상 가장 대표적인 대 표적인 2가지의 프로토콜 방식이다.
C. 몽고제국의 의미
워싱톤 포스트지는 1995년 12월 31알자에서 지난 1000년 간을 정리하면서 징기스칸제국의 의미를 명료하게 설명했다.
워싱톤 포스트지에 의하면 지난 1000년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인데, 그는 몽고에 머물렀던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고 항해에 나섰으며 신대륙발견 당시 동방에 도착한 것으로 믿었던 그는 몽고의 칸에게 주는 친서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콜롬버스에게 영향을 준 마르코폴로의 여행이 가능했던 것은 몽고제국의 유라시아를 가로막고 있었던 장벽을 제거했을 뿐 아니라 그 길을 가로막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몽고제국은 지구의 칸막이를 허물고 통합했다는 데 그 첫 번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제국내에 지폐를 유통시켜 거대한 물류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에 지폐를 유통시킨 대영제국 보다 4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워싱톤 포스트지는 따라서 몽고제국을 중세의 자유무역지대로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몽고제국은 다민족 다종교의 공동체를 건설했다.
여러 민족이 함께 살면서도 거의 차별없는 사회를 지속시켰다는 것이다.
D. 우리 민족의 가능성
이렇게 여사상 위대한 제국을 건설한 몽고와 우리는 유전자가 제일 비슷하고, 따라서 심장에서 심장으로 그 체험이 전달되고 있다.
우리 민족은 결국 열긴 사회, 꿈을 공유하는 사회, 남위에 군림하지 않는 사회를 구축함으로서 그 위대한 역사를 재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정보화시대의 시문학과 시인의 사명
정 찬 우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이미 본격적인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 있으며 대부분의 일상이 정보 네트워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의 문외한은 정보화 시대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낙후되고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는 정보화시대의 흐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문학 역시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야 된다. 산업화 시대에서 우리는 시문학 특유의 시적 상상력으로서 우리 문학의 지평을 심화, 확대시켜 왔으나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변화되어가는 현실에서도 우리의 시문학은 산업화 시대에 못지않은 시적 대응을 펼쳐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보화 시대의 특성을 정확하게 간파해냄으로서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양태와 그로부터 빚어진 정서를 포착해내어 형상화해야 할 시인의 사명이 요구 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화 시대의 삶의 양태와 정서는 어떤것인가 ? 이것은 정보화 시대의 특성과 직결된바, 무엇보다 현실적 파급력을 들 수 있다. 영상문화의 활황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찰나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중문화의 부정적인 속성은, 이미 우리들 일상의 영역으로 깊숙히 침전되어 있는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미 대중매체의 노예가 되어 있으며, 일방적으로 전달해 오는 정보를 여과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우중(遇衆)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정보를 장악하고 활용하는 게 아니라 정보에 의해 조작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수 밖에 없는 신세로 떨어지는 것이다.
실제 우리들의 생활을 잘 살펴보면 타인보다 좀더 신속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기위해 자신의 주체적 삶을 망각한채 정보에 예속되어 있음을 잘 알게 된다. 바로 여기에 우리 시문학이 펼쳐야 할 시적대응이 기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우리의 시문학이 정보화 시대로 야기되는 이러한 문제점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 대한 예리한 직관으로써 가장 민감한 문학적 대응을 펼칠 수 있는 시는, 시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통찰력과 감수성으로서 급변화하는 정보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시인들은 정보화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내가 읽어본 젊은 시인들의 다음과 같은 시편은 정보화 시대를 형상화 하고 있는 단적인 예이다.
이 테레비 없는 후레자식
네 테레비가 널 그렇게 가르치니
요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성의 시대는 끝났다 잡성의 시대에
테레비가 없다면, 끔찍한 상상 이지만
나는 무엇을 스승으로 삼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간지러움, 강제의 웃음이라도 웃을 수 있겠는가
-함민복(오우기-테레비젼)일부
티브이와 컴퓨터가 전부인양 목매단 도넛 같은 녀석들에게서
무엇을 희망하겠는가
하물며 대중매체에서 상상력을 베끼는
시인의 시에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박용하 (지구에 살기 위하여)일부
이 두편의 시는 모두 정보화 시대의 첨병인 텔레비젼과 컴퓨터에 관련된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지성의 시대"가 사라진 "잡성의 시대"에 유일한 스승이 텔레비젼이라는 시적 인식은 비관적이다. 이제 텔레비젼 없는 세상은 정보화 시대의 대중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테레비젼의 부정적 기능을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이 시에서 형상화되어 있듯이 텔레비젼은 정보화 소통을 매개하는 단순한 매체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대중의 일상 생활에 지침이 되는 , 즉 스승의 역할을 맡기에 이르렀다. 청소년들 뿐만이 아니라 장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제 텔레비젼은 일상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삶의 원리로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들의 정서 역시 텔레비젼을 통한 즐거움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진실된 즐거움과 슬픔이 아닌, 그때그때 조작되고 강제된 정서를 환기할 뿐이다. 이것이 곧 극단적으로 정보화 시대의 대중매체에 의해 생산되는 상업적 정서이다.
때문에 박용하는 "티브이와 컴퓨터가 전부인 양 목매단 도넛 같은" 대중들에게서 "무엇을 희망하겠는가"라고 자조섞인 물음을 던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암담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들에게 가치없는 비판을 가한다. 그는 위에서 인용된 시제(詩題)가 암시하는 것처럼 정보화 시대인 '지구에 살기 위하여', 대중들의 정서를 상업적으로 포장하고, 무엇보다 대중들을 정보의 노예로 전락시켜 대중들로 하여금 무비판적인 상상력을 배양해 내는 정보화 시대의 부정적 속성을 겨냥하고 있다. 더욱이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현실에서 시인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동료 시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다. "하물며 대중 매체에서 상상력을 베끼는/ 시인의 시에서 무엇을 바라겠는가"에 배어 있듯이 오늘날 함량 미달인 시인들에게 대한 개탄이 투영되어있다고 본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공통적인 관심사로 부각되어 있다고 본다. 시인의 양산이 그렇고, 시의 질적 저하가 그렇고, 반성없이 난무하는 문예사조의 혼류가 그렇고, 이렇다 할 숙련된 습작을 거치지 않은 타성의 시등이 난무하여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시단이 어느 장르보다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있는점은 긍적적으로 평가할수 있다고 하겠으나, 엄청난 풍작을 이루고 있는 시에 비해 얼마나 문학적 성과를 내고 있는지, 또는 독자들로부터 얼마만큼 문학적 감동을 주면서 읽히고 있는지는 참으로 회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많은 시집들에서 우리의 문학적 정서를 충족시킬 시편을 쉽게 찾아내기 어렵다는 게 독자들의 소박한 독후감이 아닌가 생각된다. 독자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고 무절제한 시어로 점철된 사이비 시들이 남발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이 절실하다.
특히 정보화시대의 현실속에서 각종 대중매체의 감각적 기능과 문화 경험을 문화산업이란 미명아래 대중의 정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 시문학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시의 산업성에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땅의 대부분의 시인들이 상업성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의 본래의 속성상 소설처럼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힘들다.
허지만 현재 우리의 시문학 현실을 냉철하게 점검해 보면, 정보화시대의 대중의 감수성에 편승하려는 상품논리에서 자유로운것도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대중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대중의 정서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인정하듯이 오늘날 대중의 정서는 대중매체에 의해 조작되거나 만들어 지고 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사명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정보화 시대를 단순히 반영하는데 시적 성취를 둘게 아니라 대중들의 삶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정보화 시대의 부정적 속성을 예리하게 간파해 내어야 한다. 뿐만아니라 정보화 시대가 가져다 준 새로운 가치를 정직하게 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80년대 노동운동의 시인 박노해는 출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삶의 모든 모순이 생활 문화 영역으로 중심 이동한 90년대에는 신세대들이 펼쳐보이는 '새로운(NEW)', '지금(NOW)', '네트워크(NET)' 추구의 특성이야말로 주목해야 할 가치" 라고 말한바 있다. 이제 정보화시대에 대한 대응은 시문학의 새로운 과제로 부각된 샘이다.
대한민국의 태극기
1. 태극기를 만들게된 동기
1876년(고종 13년) 1월에 국기 제정 논의가 있었다. 이것은 '운요호사건'을 계기로 한.일간에 강화도 조약의 체결이 논의되는 동안 일본측은 "운요호에는 엄연히 일본의 국기가 계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을 가하였느냐?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조정의 인사들은 국기가 무슨 의미와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 조차 몰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국기 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히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로 파견된 박영효 등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배를 타고 도일할 때, 그동안 구상되고 논의 되었던 국기의 도안 내용을 다소 수정하여 태극사괘(太極四卦)의 도안이 그려진 기를 국기로 게양할것에 의견을 모아 일본 선박인 메이지마루(明治丸)에서 이것을 만들었다. 이때 메이지마루에는 후일 개화당의 주역이었던 서광범(徐光範), 김옥균(金玉均)등도 함께 타고 있었다. 이들 일행은 8월 14일 고베(神戶)에 도착하여 니시무라야(西村屋)에 숙소를 정하고 이 건물 옥상에 태극사괘가 그려진 기를 게양하였다. 이것이 우리 태국기의 효시(嚆矢)이다.
2. 태극기의 의미
태극은 우주 자연의 궁극적인 생성원리를 상징하여, 적색은 존귀(尊貴)와 양(陽)을 의미하고, 청색은 희망과 음(陰)을 나타낸다. 사괘(四卦)는 천지일월(天地日月), 사시사방(四時四方)을 의미하는 창조적인 우주관을 담고 있다.
사괘가 담고있는 의미의 내용은 건(乾), 천(天), 춘(春), 동(東), 인(仁), 곤(곤), 지(地), 하(夏), 서(西), 의(義), 이(離), 일(日), 추(秋), 남(南), 예(禮), 감(坎), 월(月), 동(冬), 북(北), 지(智), 이며 태극기 전체로는 평화(平和), 단일(單一), 창조(創造), 광명(光明), 무궁(蕪窮)을 상징하고 있다.
태극기의 흰색바탕 ; 우리 백의민족의 순결과 평화애호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음(陰 ; 파랑)과 양(陽 ; 빨강) ; 청, 홍 음양은 창조의 정신을 의 미하고 태극은 우주 본원의 음과 양을 표시 하며 음과양은 생성을 뜻한다. 원형속의 음, 양은 상하가 화합하여 태극이 이루어지고 천지 만물은 음과 양의 신비한 배합에서 창 조되어 음양의 이치에 따라 창조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건(乾) ; 하늘과 봄 동쪽 그리고 인(仁)과 민족의 정의로움을 뜻.
곤(坤) ; 땅과 여름 서쪽 그리고 의(義)와 민족의 풍요로움을 뜻.
감(坎) ; 달과 겨울 북쪽 그리고 지(智)와 생명력과 활력을 뜻.
리(離) ; 해와 가을 남쪽 그리고 예(禮)와 광명을 숭상했음을 뜻.
3. 태극기가 지닌 중요한 내용
가) 창조 ; 우주의 근본인 태극이 음과 양 두가지의 힘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듯이, 우리 민족의 창조성을 나타낸다.
나) 발전 ; 우리 민족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주적인 발전을 한다는 뜻이다.
다) 자유 ; 태극의 이론은 만물이 자연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 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의 국민성을 나타낸다.
라) 평등 ; 태극과 4괘가 전체적으로 음과 양이 균등할뿐만 아니 라, 서로 마주보는 관계에 있는 것은 우리의 평등사 상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 무궁한 발전 ; 태극 도형의 청, 홍의 음양 곡선은 끝없는 계 속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가 무궁하게 발전한다는 뜻이다.
4. 태극기의 5대 정신
가) 왼쪽 위를 건, 오른쪽 아래를 곤 이라 하며, 이는 무궁의 정 신을 뜻한다.
나) 오른쪽 위를 감, 왼쪽 아래를 리(이) 라 하며, 이는 광명의 정신을 뜻한다.
다) 백색의 기면은 평화의 정신을 뜻한다.
라) 태극 무늬의 원형은 단일의 정신을 뜻한다.
마) 청색과 홍색의 음양은 창조의 정신을 뜻한다.
5. 태극기의 도안과 규격의 통일
위와 같이 만들어진 태극기는 그 후 널리 보급되었으나 도형의 통일성이 없어 사괘와 태극 양의(太極兩儀)의 위치를 혼동하여 사용해 오다가 1948년 정부수립을 계기로 국기의 도안과 규격을 통일하게 되었다.
무궁화에 대한 유래
이 무궁화는 예로부터 상당히 광범한 지역에 자생하고 있었으며 우리 겨레의 민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되면서 은연중 나라의 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무궁화가 나라의 꽃으로 인식되는 근거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문헌에는 무궁화가 우리의 꽃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국화로 제정된 정확한 근거에 관해서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무궁화가 우리민족과 연관되어 나타난 것은 고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고시대를 조명하고 있는 (단가고가)에는 무궁화를 '근수'라 하고 있으며, (환단고기)에는 '환화' '천지화'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이조시대의 (규원사화)에 '훈화'로 표현하여 단군시대에 무궁화가 자생하고 있음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고대 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에는 물론 (고금주)등에도 우리 한반도가 무궁화가 많은 나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혜공왕 때와 고려의 예종왕때에는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우리나라를 '근화향'이라 표현할 만큼 무궁화가 많이 피어있었다.
1928년 발행된 (별건곤)에는 '조선산 화초와 동물'편에는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무궁화는 꽃으로 개화기가 무궁하다 안이 할 수 없을 만치 참으로 장구하며 그 꽃의 형상이 엄연하고 미려하고 정조있고 결백함은 실로 민족성을 그려내고 있다.
한국을 막론하고 각 민족을 대표하는 꽃이 있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무궁화같이 형이나 질이나 적합한 것은 볼 수 없다"고 실려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이 많이 심고 가꾸었을 뿐만아니라 우리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가 쓴 (풍류한국)에는 프랑스, 영국, 중국 등 세계의 모든 나라의 꽃이 그들의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이 전체 국민의 꽃으로 만들어 졌으나 우리의 무궁화만은 유일하게도 황실의 이화가 아닌 백성의 꽃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졌고 무궁화는 평민의 꽃이며 민주전통의 부분이라 쓰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무궁화가 우리 국민과 애환을 같이하며 겨레의 얼로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확고히 부각되었고, 고통속의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역사와 더불어 자연스레 겨레의 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