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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처럼 맑은 숲의 연속이었다.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신록은 가슴을 활짝 열어주었다. 이제 막 꽃봉오리 맺힌 철쭉은 수줍은 새색시처럼 상큼했다. 신록의 산은 싱그러운 모습으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5월의 햇살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선군 남면에 위치한 백이산(伯夷山·971m)은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동강의 상류를 이루는 동남천변에 솟구친 이 산은 울창한 숲에 덮여 있으면서도 멋진 조망을 보여주었다. 북으로 가리왕산이 둥근 달처럼 솟아 있고, 두타·청옥산에서 매봉을 거쳐 함백산과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강원 내륙을 감싸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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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록에 물든 숲은 싱그럽다. 힘을 북돋아준다. 백이산~벽암산 능선.
- 산정에 올라 강원 내륙의 산봉을 보는 순간 온몸에서 에너지가 넘쳐났다. 거기에 힘을 얻어 산줄기를 따라 내리달렸다. 숲 짙고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한 발짝 뗄 때마다 향긋한 봄냄새가 풀풀 풍겨나고, 새 생명의 기운이 몸 속 깊이 스며들었다.
강원도 정선에서도 때묻지 않은 오지의 산
정선 산악인 나병기(58·전 정선군청산악회 회장)씨와 최승운(정선군청 북면사무소)씨의 안내로 백이산에 올랐다. 무인역인 선평역을 빠져나가 산으로 접어드는 사이 숲을 가르며 어디론가를 향해 뻗어나간 철길이 눈길을 붙잡았다. 정선선의 끝이 어디고, 그 다음에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철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다. 막연함이나 막막함보다는 기대감, 희망을 주는 게 철길인가 보다.
짤막한 된비알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자 능선 너머 선돌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무명봉에 올라서자 능선 뒤로 기이하면서도 웅장한 형상의 봉우리가 보인다. 나병기씨는 “저기 보이는 봉은 전위봉에 불과하고, 정상은 한참 더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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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고향 가는 길처럼 느껴지는 정선선. 신평역은 백이산 산행기점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백이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면 일원. 백두대간을 비롯해 수많은 산릉이 환상적인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다.
- 5월의 산릉은 싱그럽다. 연둣빛 나뭇잎은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맑고 곱다. 거기에 철쭉나무 가지에는 연분홍빛 꽃봉오리가 맺혀 있고, 산함박은 화사한 빛으로 봄을 만끽하고 있다. 게다가 산길 옆 온갖 식물들은 겨우내 움츠려 있다 활기를 되찾은 땅기운을 끌어올려 봄꽃들을 피워놓고 있다.
“개구쟁이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인데. 이래서 5월 산이 최고라는 거 아니겠어. 젊어지잖아.”
신록은 나이를 잊게 하고, 희망을 주고, 콘크리트처럼 굳어 버리고 무뎌진 감흥도 일깨워주는가 보다. 황원선씨는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쳐도 내내 즐거운 표정으로 산정으로 향했다. 수없이 밟고 또 밟아 죽은 도시 주변의 산과 달리 살아 숨쉬는 흙길은 우리의 발길을 포근히,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그래서 가파른 산릉에 오르면서도 즐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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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아이 피부처럼 맑고 고운 신록을 뚫고 산정으로 오르는 정선 산악인 최승운씨와 취재팀.
- “와, 아깝다. 저거 두릅 아냐. 쇠어 버렸잖아. 우산나물이나 곤드레는 아예 지천이네.”
손 타지 않은 산은 자연 그대로 살아 있다. 백이산이 그랬다. 산릉이 산나물로 온통 먹을거리였다. 구름이 몰려오면서 바람이 숲을 파고 들고 나뭇가지가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산은 한층 맑아졌다. 맑은 빛깔의 숲길에 맑은 햇살. 거기에 바람까지 더해지니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으랴 싶어졌다.
산은 산이었다. 순한 길만 이어지지 않았다. 흥에 겨워 입가에 미소 머금고 걷는 사이 거대한 바위 벼랑이 앞을 가로막았다. 벼랑 우회로도 만만치 않았다. 급경사 바윗길이 나타나고, 가팔라지면서 막판에는 네 발로 걷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능선 갈림목(개미들 2.5km, 감투봉 0.8km, 정상 0.15km)에 닿기 얼마 전부터 허리를 펼 만큼 경사가 죽고 숲이 터져 주변 산봉이 눈에 들어오자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야, 저건 가리왕산 아냐? 저건 고양산이고, 두타산에서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대간도 다 보이잖아!”
무명봉 정상은 숲을 뚫고 솟아오른 전망대였다. 가리왕산(1,560.6m)은 둥근 달처럼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솟아올라 있고, 고양산(1,150.7m)은 오지 산답게 깊디깊은 산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대간은 기세등등했다. 청옥산(1,403,.7m)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산줄기는 바로 옆에 두타산(1,352.7m)을 일으켜 세운 다음 매봉(1,303.1m)까지 평행선을 그으며 뻗어나가다 금대봉(1,418m)을 거쳐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함백산(1,572.9m)과 태백산(1,567m)을 일으켜 세워놓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고운 산이 망가져 가고 있었다. 백이산 맞은편 지억산(1,116.7m) 북서릉 남사면 골짜기 곳곳이 채석장들로 흉측스런 몰골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양효용씨는 “서산 광천젖갈을 토굴에서 숙성시키듯이 산나물과 같은 정선 산먹거리를 숙성시키고 저장하는 바위굴로 쓰면 어떻겠냐?”며 정선군 공무원인 최승운씨에게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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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강원내륙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일품인 백이산 정상. (아래)신록의 숲을 가르며 벽암산으로 향하는 황원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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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은 아직 멀었어요. 저기 보이는 세 번째 봉이 정상이에요.”
무명봉 두 개를 넘어 정상에 올라선 것은 오전 11시50분. 숲속에 불쑥 튀어나온 정상은 지명 유래가 그렇듯 배가 걸릴 만큼 우뚝 솟구친 봉이었다. 백이산 정상은 옛날 큰 홍수가 나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 때 산꼭대기가 감투만큼 물 위에 튀어나와 있었다 하여 ‘감투봉’이라 하고, 그 봉우리에 배가 걸렸다 하여 ‘배이산’이라 불렸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현재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 산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백이숙제(伯夷叔齊)와 얽힌 얘기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