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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 일시: 2012.03.05~03.19 (14박 15일간)
○ 나라명: 네팔 쿰부 히말라야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트레킹코스:카투만두-루클라(2,840m)–팍딩(2,610m)–몬주(2,835m)-조살레(2,740m)-남체바자르(3,440m)–사나사–텡보체(3,860m)–팡보체(3,895m)-소마레(4,040m)-페리체(4,000m)-투쿨라(4,620m)-로부체(4,910m)-고랍셉(5,140m)-칼라파타르(5,550m)-로부체(4,910m)-종라(4,830m)-촐라패스(5,368m)-당락(4,700m)-고쿄(4,790m)-고쿄피크(5,360m)-고쿄(4,790m)-마첼마(4,470m)-돌레(4,200m)-몽라(3,975m)-궁중(3,790m)-남체바자르(3,440m)-팍딩(2,600m)-루크라(2,840m)-카투만두
○트레킹인원 : 9명 (이종환회장님내외분, 조돈복님내외분, 신영근님, 윤덕중님, 주종현, 김형탁, 홍원유
호산산악회에서 작년 가을부터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했는데 인원 사정상 떠나지 못하고 금년 들어 기회가 되어 트레킹을 드디어 가게 되었다. 준비물이 만만찮아서 파카를 비롯한 등산복등 입을 옷과 장비를 간식으로 먹을 과자, 식량, 약 등을 구입하여 카고백에 가지고 갈 물품들을 넣다보니 20KG이 훨씬 넘는다.
배낭도 무겁고 해서 먹을 반찬류의 캔과 핫팩 등을 일부 덜어 놓고 3월5일 새벽 5시에 김포공항 가는 리무진을 타러 나가려는데 주종현씨 한테 전화가 왔다. 김형탁씨가 차를 가지고 가니 같이 가겠느냐 한다. 부랴부랴 짐을 들고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군포 KT호계지사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니 10여분 후에 차가 온다. 06:10분에 갈아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니 도로가 한적하다. 45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대합실에서 유피 여행사 박 사장과 동행할 분들을 기다려 7:30분 출국 수속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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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검사와 중량을 재는데 일행 모두의 카고백 무게로 통과해야 하는데 중량이 초과 되어 맨 나중에 오신 회장님 카고백 무게를 줄이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모양이다. 몇몇 사람이 배낭까지 카고백에 넣어 짐을 부쳤으니 당연히 초과 될 수 밖에 한가지 씩 나눠 가지고 화물을 통과시키는데 내 배낭에 문제가 있는지 부른다. 국내 산행 때 항상 가지고 다니던 과도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과도를 빼고 통과하여 장장 2시간을 기다려 09:45분에 대한항공을 타고 네팔로 떠나간다.
카투만두까지 7시간 15분 소요되고 시차는 3시간15분 차이가 난다하고 안전하게 모시겠다는 기장 안내방송을 들으며 1만 미터 상공을 소리 없이 날아간다. 옆 좌석에 여대생 인 듯 아가씨가 혼자 걱정이 있는 듯 앉아 있어 네팔은 왜 가느냐하니 불교학과 다니는데 이모님 소개로 네팔에 있는 여스님을 만나 부탄으로 1년간 연수차 방문한다고 한다. 우리가 올 때 사정이 생겼다며 같이 귀국은 했지만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카투만두 공항에 내려 나오니 날씨는 맑고 20도라 하는데 서늘하고 바람이 약간 불어 전형적인 봄 날씨이다. 현지 여행사 안내 가이드들이 나와서 국화 꽃다발을 걸어 주고 12인승 차에 태워 카투만두 시내를 지나간다. 완전히 흙먼지와 차량, 오토바이, 인력거, 자전거, 사람들로 꽉 찬 도로에는 도무지 3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의 1번 도로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고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나무를 역어 세워놓은 야전 상가에 옷 등을 걸어 놓고 장사를 하고, 도로변 주택은 도로를 확장하려는지 반 이상 헐리기도 하고, 1층은 반쯤 헐리고 2층에는 사람이 거주 하는지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망치로 집을 부수는 작업을 하는 사람, 거리 양쪽에는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고, 중앙선도 없는 도로에 한쪽으로 3줄, 반대쪽에서는 1줄로 차량이 오가기도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마치 우리의 60~70년대를 보는 것 같다.
한참을 골목 같은 곳으로 차량이 경적을 올리며 지나다가 다시 조금 넓은 도로로 나왔는데 여러 사람이 어깨에 들것을 메고 가는 행렬이 눈에 띈다. 죽은 사람을 황색 천으로 덮고 들것에 메고 가고 유족 인 듯 뒤따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똑 같은 옷을 입고 지나간다. 힌두교 식으로 화장(장작에 태움) 하려고 화장터로 가는 것 이란다. 어지럽고 복잡한 거리와 시장 통을 지나 숙소인 삼사라 호텔로 들어와 여장을 푼다 (16:00)
잠시 쉬다가 카투만두 시내에 있는 한국사랑 음식점에 들어가 불고기백반과 유피사장이 양주 한 병을 내어 준다. 반찬은 김치찌개, 김치, 시금치무침, 상추, 마늘, 청량고추, 땅콩, 가지무침 등이 나오는데 한국식이라 그래도 먹을 만하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모자를 하나 골라 샀는데 800루피 (12,000원 상당)라 적혀 있는 것을 현지 가이드 노버가 500루피에 사 준다. 노버 (26세)는 한국에 2년간 인하대학에서 공부 하고 네팔로 들어와 가이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3/6일 (화) 둘째날
날씨: 맑음
침낭을 하나 임대해서 자니 따듯하다. 방안이 침대만 덩그라니 있고 그야말로 온냉방 시설은 없다. 05시에 일어나 씻고 5:30분에 호텔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으려하니 뷔페식인데 먹을 것이 없다. 토스트 빵 몇 조각과 감자, 그리고 약간의 과일을 먹고는 6시30분 루크라 가는 카투만두 국내선 공항에 간다. 카고백을 싣는 것도 한참을 걸리고, 통과해서 들어가는 데에도 엄청나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바쁜 것이 하나도 없다. 공항 내 대합실을 들어가니 엄청난 인파와 화장실 할 것 없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꼭 우리나라 60~70년대 버스 종합 터미널 같다.
루크라 가는 비행기 표를 보니 시간도 없다. 무작정 기다리니 무척 지루하다. 공항 내 가게를 둘러보니 관광지도 하나에 800루피, 물 모든 것이 엄청나게 비싸다. 식수도 없고, 관광안내도 도 없고 무조건 돈 주고 사야 한다. 주대장이 쿰부 히말라야 지도를 하나 구입했는데 800루피 줬다고 하면서 싸게 샀노라 한다. 12,000원이 싸냐하니 아차 자기는 1,200원 인줄알고 덜컥 샀다 한다.
이날 09:45분에 타라에어 루크라 안내 방송이 나와 탑승은 하였으나 결국 10시경 16인승 경비행기 한번 타고 이륙 대기 선에 있다가 날아 보지도 못하고 바람과 구름의 영향으로 취소되어 10:25분경 되 돌아와 현지 유피 여행사 사장 라케스 집으로 가서 앞뜰 정원에 텐트치고 하룻밤을 지냈다.
3/7(수) 셋째날
날씨: 맑음
아침 07:00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루크라 가는 국내선 대합실에 오니 08:30분 한 시간여 기다리니 타라 에어 루크라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가겠지 하면서 경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어 09:30분경 이륙 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네팔 카투만두 시내 와 산꼭대기 능선까지 계단식 농경지와 능선을 따라 난 비포장 도로 등이 얼키설키 눈에 들어온다. 조금 있으니 좌측으로 앉았던 분들이 탄성이 들린다. 히말라야 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을 찍긴 했는데 구름인지 설산인지 구분이 안 간다. 설벽으로 우뚝 선 산 봉우리 들이 장엄하기까지 하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 하얗게 부서지는 강물, 햇볕에 하얗게 반사되어 끝없이 펼쳐진 고산 고봉 설산 밑으로 흰구름이 둥둥 떠 있고 갈수로 깊어지는 가파른 협곡을 경이로운 눈으로 한참을 보며 가니 비행기가 갑자기 뚝 떨어지기도 하고, 현기증이 다 난다. 고도를 낮추는 것 같다.
이윽고 40분여 걸려 루크라 공항 (2,843M)에 안착을 하고,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롯지에 들어가 식사를 한다. 요리사, 주방요원 5명과 야크로 카고백 운반을 하기로 하고, 12:30분 다음 숙박지 팍딩을 향해 간다. 우리가 제일 먼저 루크라로 들어 왔지만 또 칼라파타르 만 가려는 다른 한 팀(8명)은 아예 못 들어 왔다.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출입체크를 하고, 야크 , 노새, 포터들이 지나가고,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이 서 있는 롯지도 지나가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도 보이고 좌측에는 설산 빙하가 녹은 물이 파랗고, 하얗게 부서지며 흐르는 강을 따라 2시간여 걸으니 팍딩 롯지에 도착 한다.
18:00에 저녁 식사를 한다. 팍딩 현지에 있는 토종닭을 잡아 닭도리탕을 했는데 어찌나 맛이 있던지 요리사 1명은 한국 음식 전문가라고 하고, 4명은 보조 주방용품 설거지 등을 담당하고, 1사람(비멀: 32세)은 산악가이드 겸 실내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유피 사장이 알약을 10여알 씩 주었는데 아침반알 저녁 반알 먹고 따뜻한 물 (네팔어: 따또파니)을 3L 이상 마셔야 고산병이 안온다고 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롯지 식당 난로 주변에서 모여 잡담을 하는데 8시경이면 불이 꺼지는데 더 이상 불을 안 넣어준다. 불을 더 피고 싶으면 1,000루피(15,000원)을 지불해야 한단다. 8시경 불이 꺼지자 자기 숙소로 들어가 전기불도 어둡고 대충 물티슈로 얼굴과 손발을 닦아 내고는 침낭 속으로 들어가 눈을 붙인다.
3/8(목) 넷째날
날씨: 맑음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소변을 두세번 보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05:30)에 벌떡 일어나 티슈로 얼굴과 손, 발을 닦고 바셀린을 발바닥에 바른다. 오늘 일정은 팍딩에서 남체 바자르를 지나 2시간 더 가면 사나사라는 롯지 마을이 있는데 오늘이 고소 적응에 가장 중요 하다고 한다. 2,600M에서 3,500M까지 올라가야 하니깐 아침을 든든히 먹고 천천히 가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06:00부터 아침 식사(청국장, 감자탕, 깻잎장아찌 ,매실 장아찌, 김치, 깍두기) 를 하고 07:25에 길을 나선다.
노버 가이드가 앞에 보이는 설산이 탐세큐(6,608M)라 설명을 해주고 힌두교 탑 과 바위에 라마교 글씨가 새겨진 곳을 거쳐 길게 늘어진 출렁다리도 건너고 하면서 진행하는데 자꾸 내가 염려스러운 모양이다. 몸은 뚱뚱하지 숨은 거칠게 몰아쉬지 게다가 맨 뒤에서 천천히 가고 있으니 과연 이 사람이 종주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눈치다. 2시간여 걸어가니 몬주 티켓 검사소에 당도하여 출입자 명단을 제출하고, 우리는 잠시 바위 담장을 쌓아 놓은 곳에 앉아서 기다린다.
Sagarmotha Nationnal Park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사가르마타는 에베레스트의 네팔명으로 “하늘의 이마”란 뜻이란다.
출입자 명단을 제출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조살레(2,740m) 롯지에서 10시경 도착 하였는데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한다. 복음 밥을 해서 조돈복 선배 (발안중 13회로 5년 선배)님이 가지고 온 고추장을 비벼 먹으니 밥맛이 좋다. 11:20분에 식사를 끝내고 천천히 가자하여 10여 분간 휴식을 취한다음 다시 길을 재촉한다.
협곡이 만나는 지점에 출렁 다리를 건너니 우리 짐을 싣고 가던 야크가 마냥 서 있다. 가파른 언덕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사람도 오르내리기 힘든 곳을 야크가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 계단을 내려가니 야크에 짐을 고쳐 매고 있다. 지금부터는 굉장한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 되는 곳이다.
고도를 높이면서 산을 넘는데 전부 뒤쳐진다. 포터 겸 현지가이드 (비멀)이 앞장서고 그 뒤로 내가 따라 어느 정도 올라가니 뒤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 산 중턱 제법 평평한 곳에 귤을 파는 네팔 아낙들이 있다. 잠시 쉬려는데 비멀이 부른다. 에베레스트 산이 보인단다. 멀리 보이는 에베레스트, 로체, 로체샤르를 설명해준다 사진을 찍어보긴 하지만 별로 맘에 안 들어온다. 조금 있으니 주종현씨가 올라와 귤 6개 (1개 1달라) 3명에 2개씩 사서 일행이 다 온 후에 나눠 먹는다. 제법 시원하다.
벌써 몇몇 분은 힘들어 한다. 계속 오르막길 만 있고 좌측으로 흐르는 협곡 빙하 물이 점점 멀어져 간다. 급경사라서 숨이 가쁘면 심호흡도하고 쉬기도 하면서 오르는데 포터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도 척척 앞질러 간다. 그 중 어린애 같아 나이를 물어 보니 16살 이라고 한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생업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는 포터를 하고 있으니 딱한 생각이 든다. 2시간 반을 오르니 남체 바자르 체크포인트 (3,330m)에서 잠시 일행이 오기를 기다린다.
남체 바자르 전경이 눈에 확 들어온다. 단체 사진을 찍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냇물에 빨래하는 아낙들 재미있는지 깔깔 웃는다. 좌측에는 망치와 정으로 돌을 깨고 있고 위로 올라가니 가계와 롯지가 즐비하다. 남체 바자르는 티벳에서 소금과 차를 말등에 싣고 산을 넘어와 (이름하여 차마고도) 여기서 팔고 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짝퉁을 가져와서 판다고 한다. 세르파의 고향 이라 불리는 남체바자르 해발 3,440m에 있는 에베레스트의 관문도시다. 하늘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척박하고 경사진 땅에서도 모진 생명의 끈을 이어가는 사람들 순박하고 티 없이 맑게 살아가는 듯하다.
마을을 지나 언덕을 넘어 가려는 데 우리회장님의 사모님이 마주 오는 사람을 보고 “한국사람 갑네” 하니까 “맞아요.” 하면서 뒤 돌아 보지도 않고 간다. 싸가지가 없는 놈이구나 하면서 조금 더 오르니 3명의 남자와 여자 1명이 내려오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블랙야크에서 쿰부 히말라야 촬영차 왔다가 간다고 한다. 어디까지 가시느냐 해서 칼라파타르와 촐라패스 넘어 고쿄로 해서 다녀가려고 한다하니 대단하시다 하면서 잘 다녀오라며 길을 재촉한다.
남체 바자르 언덕 끝 능선에서 잠시 쉬고 일행이 다 오기를 기다려 마른 오징어 한 마리 씹으며 쉬다가 다시 길을 재촉한다. 지금부터는 산허리를 휘돌아 평평한 길을 간다. 그래도 해발 3,500여m 고산지대라서 언제 고소가 올지 몰라 천천히 진행을 한다. 에베레스트 산과 로체, 로체샤르가 구름에 가렸다가 다시보이고 언덕에 라마교 사원 탑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주종현 씨를 한 컷 찍어 주었는데 내려서다가 파카 팔뚝이 쇠창살에 걸려 찢어진다. 남체 바자르에서 2시간을 진행하여 3:53분 캠주마 탐세큐 롯지 (Tham Sherku Lodge)에 들어간다. 우측에 탐세큐 산이 있음
사나사 라는 롯지 마을 숙소를 정해 저녁식사를 하는데 오늘은 버팔로(물소) 고기 무침을 해서 내어 놓았다. 한입 먹으니 연하고 맛이 꽤나 좋았다. 주대장이 가지고 온 황석어 젓갈과 함께 먹으니 더 맛이 있다. 배도 부르고, 다들 맛있게 먹고 난로 가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비멀 이란 현지가이드와 이야기를 해 보니 나이는 32세 20살에 결혼해서 9살 난 딸, 7세 아들, 5살 딸 3남매를 두고 산다고 한다. 네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67세정도로 결혼을 일찍하고 자식을 많이 낳아 산다고 한다. 포터 겸 산악 가이드로 와서 1일 25달러 받는다고 한다. 일반 포터들은 1일 20달러, 야크1마리는 30달러 받는다니 60~80kg을 지고 다니면서 너무 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9 (금) 다섯째 날
날씨: 맑음
아침 06:00시에 일찍 일어나 07시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07:30분에 로부체를 향하여 간다. 사나사 롯지를 떠나 30여분 가서"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하니 "안녕하세요" 한다. 한국인 1명과 가이드 1명을 만나 잠시 반갑게 이야기 한다. 서울에서 혼자 왔는데 고쿄에서 촐라패스를 넘어 내려가고 있다 한다. 너무 힘들어서 칼라파타르는 못가보고 가노라 한다. 네팔가이드는 한국말이 유창하다. 자기는 고 박영석 대장과 15년간 같이 등반한 세르파 라고 한다. 너무 애석하게 죽었다며 안타까워 한다. 김형탁씨가 숙소에 지갑을 놓고 왔다하여 비멀이 지갑 찾으러 가고 우리끼리 천천히 진행한다.
외국인이 한국말로 어디 가냐? 하고 물어 본다. 칼라파타르 갔다가 촐라패스 넘어 고쿄로 갔다가 갈 것이라 하니 대단하다며 자기들은 칼라파타르만 다녀간다고 하며 성공하기 바란다 하며 지나간다. 탐세큐 만년설이 바로 우측에 있어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얼음 빙벽이 시퍼렇게 보인다. 비멀이 지갑을 찾아와 앞장을 선다. 정말 대단하다. 이 사람들은 평지에서 걷는 듯 아무렇지가 않다고 한다.
앞산 언덕을 헉헉 거리며 오르니 뎅보체 사원이 나온다. 규모가 꽤 커다란 티벳트 사원이다. 사진을 찍고 있으니 현지인 남자가 쟈페니스? 한다. 노우 코리안 하니 엄홍길 이야기를 한다. 조금 더 가면 엄홍길 휴먼스쿨 도 있다며 간단한 한국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고 한다. 웃으며 대화를 조금 더 하다가 산악 가이드 비멀 에게 가서 사진 한방 부탁하고 일행들이 오기를 기다려 단체 사진을 찍는다.
뎅보체 사원에서 앞에 보이는 산이 좌로부터 로부체, 로체, 뒤쪽으로 에베레스트, 로체샤르 우측에 아마다 블람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장님이 말씀하시기를 오전에는 잘 보이지만 오후에는 구름이 끼어 안 보인다고 그래서 설산을 보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 정상에 올라가서 봐야 제대로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면서 오늘까지 진행을 잘해서 고랍셉 가서는 새벽에 칼라파타르를 올라가 환상적인 설산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신다.
뎅보체 롯지에 11:40분경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한다. 북어국과 고추장 무장아찌 ,김치, 깍두기 그리고 우리들이 가지고 온 김과 고추장을 먹고는 13:05분에 다시 출발하여 4,000m 고산지대를 지나니 일행의 걸음이 점차 느려진다. 말을 타고 내려오는 외국인 2명이 연신 쏘리 쏘리 하면서 내려온다. 고산병이 와서 걸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고산병으로 헬기를 타고 온다면 한국돈 300만원이 든다고 한다.
이윽고 깍아 지르는 비탈길을 각목을 지고 가는 현지 포터가 눈에 띈다. 너무 무겁고 힘들어 자주 쉬면서 가는데 너무 안쓰럽다 못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지고 가지 엄홍길 휴먼 스쿨 표지판도 지나고, 경치 좋은 아마다 블람을 바라보며, 1시간 30여분 더 진행하여 14:40분 팡보체 (PangBoche)(3,979m) 아마다 블람 롯지에 숙소를 정한다.
팡보체 에서 물 값이 5~6달러나 해서 현지인들은 빙하 계곡물을 길어다 먹는데 우리가 마시면 곧바로 배탈 설사가 심하게 나서 즉시 하산해야 한다고 한다. 18:00경 까지 난로 주위에서 쉬고, 꽁치 통조림 김치찌개를 얼큰하게 끊여 맛있게 식사를 하고 20시경에 잠자리에 든다. 카투만두는 1일중 12시간만 전기를 공급하고 9시간은 자가 발전을 돌려서 공급하는데 대부분은 18:00부터 전기불이 켜지고, 쿰부 히말라야는 대부분 자가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는데 밝기가 여간 어두운 것이 아니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해 항시 헤드랜턴을 침낭 속에 넣고 잔다.
3/10 (토) 여섯째 날
날씨 : 맑음
02경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 야외 화장실로 나가니 오슬오슬 춥다. 영하 3도라 하는데 달빛에 설산이 하얗게 조망된다. 화장실 물통에 받아놓은 물이 꽝꽝 얼어붙어 있고 들어와 창문을 보니 성애가 창문에 두껍게 끼어 있다. Lodge 구조가 출입문을 지나면 레스토랑 (식탁, 의자 가운데 난로 포터들이 잔다) 침실은 2~3인실 침대와 침대보만 씌워 있고 침낭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야하고, 판자 지붕과 칸막이 유리 창문, 바닥이 판자로 되어 있어 겨우 바람만 막아주는 효과만 있고 보온이라는 개념은 아예 없다.
07:00에 깨우는데 이미 눈을 뜨고 있은지 오래되고 침낭 속에서 가만히 누워 있자니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다. 아침에 일어나도 난로는 전혀 피울 생각이 없다. 난로 연료는 야크 똥 땔감과 장작이 대부분이다. 두터운 모자와 목 주위를 따듯하게 보온하고 일어서자마자 두꺼운 옷을 걸쳐야 한다. 안 그러면 머리가 깨질듯 아퍼 고산병이 금방 온다고 하니 모자는 벗을 생각이 전혀 없다. 세수도 못하고 안 씻는 것이 상책이란다.
미역국에 계란탕, 양송이버섯 무침을 먹고 07:30분 다음 여정을 계속한다. 바닥은 검은 색 단단한 진흙으로 되어 있고 모래로 된 곳은 돌담을 쌓아 흘러내리지 않도록 했는데 물이 잘 스며 들지가 않는다. 소마르 마을(4,040m)을 지나는데 어린이들이 몰려온다. 학교 안가냐? 물으니 엄홍길 휴먼스쿨에 간다고 한다. 산허리를 빙 돌아 가는데 야크 목장이 보이고 산에서 야크 떼가 풀을 뜯고 있다. 풀이라 봐야 뜯어 먹을 것도 없어 보이는 아주 작은 마른 풀이 전부다. 외국인 트레킹 족 3명이 내려오면서 어디 가냐 한다. 칼라파타르, 촐라패스, 고쿄 간다 한다니 “ 와 우” 한다. 칼라파타르 올랐다 가는 것 만해도 대단 한 것이 라면서
언덕길 25분가고 5분 쉬면서 가라 하지만 50~60 발자국만 걸으면 숨이 차서 가다 쉬다 를 반복 한다. 일행들이 너무 못 따라온다. 로체샤르 우측으로 임자체 설산이 하얗게 보인다. 10시 40분경에 페리체 롯지에 도착 한다. 4,000m이상 고도를 걸으니 배도 더부룩하니 소화도 안 되고, 호흡도 수월치가 않다. 벌써 얼굴이 핏기가 싹 가시고 힘이 없어 보인다.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잠시 쉬는데 따듯한 오렌지 음료를 가져다준다. 아침 기상과 동시 따듯한 밀크, 아침식사 때 커피, 따또파니(뜨거운 물), 저녁엔 녹차를 준다. 네팔 인들은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저 자연에 순응하여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것 같다.
하천 분지길 같은 곳을 서서히 오르다가 급격한 경사길이 나오는데 1시간 40여분을 오르니 외국인 남자 1인과 여자 2명이 칼라파타르 성공 했다며 엄청나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비멀이 먼저 앞서 간다. 숙소를 잡으려고 먼저 빠르게 진행 한다. 우리는 천천히 고산병을 걱정하면서 진행을 한다. 14:20분에 투쿨라 (4,620m)에 도착한다.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가야 한다. 다행히 숙소를 잡아 놓았기 망정이지 없었으면 로부체 까지 가야 할 판 이었다.
저녁 식사 후 양치질 하러 나오니깐 4,000m 넘는 마을 겨울날씨로 차갑지만 밤하늘에는 주먹크기 만한 큼지막한 별빛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밤하늘은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하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함)
3/11 (일) 7일째 날
날씨: 맑음
06:00시에 잠을 깨운다 모처럼 만에 잠을 푹 잤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고 참치찌개, 계란 프라이, 김으로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고는 처음부터 모래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간다. 능선 꼭대기에 오르니 지나온 하천, 푸모리, 링턴, 굼부체, 로체샤르 설산이 장관을 이루고, 산악인들의 무덤인 위령비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주대장 카메라로 여기저기 사진을 촬영하고 단체 사진도 찍어본다.
눈과 얼음으로 눈이 부셔 선 그라스를 쓰고 산행을 계속 한다. 야크 떼에 가스, 기름을 실고 여자와 남자 1명이 짐을 잔뜩 지고 뒤따른다. 이런 고산 지대에 오로지 살기위해 저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고 하니 우린 평지 길도 숨이 차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로부체 거의 다 오니 회장님 부부, 신영근 님을 태울 말이 이제야 떠난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걷기가 힘드신 모양이다. 말이 빨리 오면 오히려 더 고산병 증세가 올 듯한데 25불씩 주고는 말을 타고 오시겠다 한다. 현지 가이드 비멀이 마부와 함께 다시 투쿨라 롯지로 떠난다.
10시10분 로부체에 당도한다. 우측으로 가깝게 로체샤르 봉우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고, 점심 식사로 라면에 계란을 풀어 끓여 내 왔는데 수준급으로 맛있게 끊였다. 밥을 말아서 든든하게 먹고는 11:00경 다시 길을 떠난다. 고랍셉까지 가야 한다. 30여분 가니깐 외국인 젊은 여성이 오기에 칼라파타르 올랐냐? 고 물으니 펄쩍펄쩍 신나게 뛰면서 베리베리 뷰티풀을 외치며 내 생애 최고라며 호들갑을 떤다. 축하 한다하니깐 감격에 차는지 생큐를 연발하며 지나간다.
12:50분경 평평한 길도 어마어마하게 힘이 든다. 전부 지쳤는지 한번 쉬면 갈 생각을 안 한다. 가파른 산 밑에서 휴식을 취한다. 우리 짐을 실은 야크도 쉬고, 식당 요원도 쉬고 잠시 사탕 등 간식을 먹으며, 같이 쉬고 있다. 고랍셉 까지는 2시간 걸린다고 한다. 야크를 몰고 가는 사람이 여자 포함 3명이라서 가족이냐 하니깐 아니라고 한다. 각각 다르다고 한다. 여자는 어려 보이는데 19세라하고 이미 결혼 했다 한다. 나이가 60은 넘어 보이는 사람한테 나이를 물으니 56세라 한다. 내가 58세 라 하니 웃는다.
한참을 쉬다가 힘을 내어 모래 언덕 같은 길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서 조금 오르다가 쉬기를 수 십 번 반복하며 오르니 우측 밑으로는 빙하지역 크레바스가 보이고 우리가 지나는 길에도 빙하 절벽이 곳곳에 입을 벌리고 있다. 점차 온난화로 인하여 산사태가 빈번하고 길이 자주 바뀐다고 한다. 빙하지역을 통과하고 정면에는 에베레스트 산이 약간 보인다. 한참을 모래 ,자갈 섞인 언덕을 넘어가니 한참 밑으로 고랍셉 마을 롯지가 보이고 앞쪽으로 푸모리 설산(7,165m) 아래로 칼라파타르 산이 보인다. 칼라파타르(Kala pattar) 는 검은 산이라는 이름인데 정상부가 검은 색이다.
드디어 14:40분에 고랍셉(5,140m)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내일을 기다린다. 회장님 내외분과, 신영근 님이 한참 후에 말을 타고 오신다. 김치찌개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08:00경 대변을 보러 화장실에 앉았는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온다. 고소가 온줄 알고 얼른 두통약 2알을 먹고는 가만히 잠을 청해 본다.
3/12(월)8일째 날
날씨: 맑음
03:30분에 깨운다. 4시경에 누룽지 밥을 먹고 4:30분에 칼라파타르 산을 오른다. 처음에는 가이드 비멀을 따라 무작정 오르니 숨이 벅차 제대로 숨쉬기도 힘들어 60발자국 걷고 쉬기로 하고 오른다. 그래도 일행과 한참 떨어져 점차 멀어져 가는데 회장님이 못 따라 오신다. 사모님도 걱정되어 내려가고 천천히 칼라파타르 산을 오른다. 일행이 너무 쳐져 할 수없이 비멀과 함께 힘을 내서 오르니 내가 제일 먼저 정상에 선다. (오늘중엔 내가 제일 먼저 오름) 주위의 설산과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가 바로 눈앞에 우뚝 버티고 있다. 현지 가이드 비멀이 화이 파이브 하면서 축하 해 준다.
히말라야는 신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산 전체가 신이라고 한다. 신의 처소라 불리는 지구의 지붕 쿰부 히말라야 네팔 히말라야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가 바로 눈앞에 위엄을 뽐내고 떡하니 버티고 있다. 쿰부 히말라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트레커 들이 찾는 꿈의 장소라는데 내가 와서 폼 잡고 우뚝 서 있다.
세상의 어머니란 이름처럼 에베레스트는 사람과 자연을 아우르고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들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한번쯤 가보기를 소원하는 쿰부 히말라야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한 복판에서 서 있다는 자체만으로 영광인데,
산악인의 로망인 에베레스트를 이렇게 가깝게 내 눈으로 바라다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운 좋은 놈인가?
아름답고 황홀한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경이로운 설산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하산을 한다. 고랍셉으로 다시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하고 다음 여정은 어떻게 될까 하고 있는데 주대장이 들어와 고쿄 가는 것은 취소 될 것 같다 한다. 아무도 안 간다고 하더라며 어떻게 할 거냐 묻는다. 물론 회장님과 신영근씨가 아직도 못 내려오고 몇 발자국 가다가 쉬고를 반복하여 결국 2시간이 지난 다음에 당도 한다.
주대장하고 나만이라도 현지가이드 (비멀)을 붙여 주면 가겠다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니 회장님도 갈수 있는 사람은 가라고 한다. 노버 가이드가 계속 통화하더니 종라하고 당락 롯지를 안 열어서 갈려면 12시간 걸리고 길도 험악해서 힘들다고 계속 말리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주대장 그리고 김형탁씨 셋이서 가기로 하고, 산악가이드 비멀이 침낭을 짊어지고, 각자 간단한 장비와 옷 의약품, 라면 5개를 가지고 로부체에서 14:40분에 길을 떠난다.
종라까지 비교적 평탄한 능선 길이라 빠르게 이동을 한다. 비멀이 너무 빠르게 걷다보니 두 사람이 자꾸 뒤쳐진다. 가다서다 하면서 1시간 50분 만에 16:40 종라 롯지에 당도하니 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한다. 저녁에 스파게티를 먹자하여 셋이 시켜 먹는데 나는 아무리 먹으려 해도 목에 넘어가지를 않아 결국은 몇 젓가락 먹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3/13 (화) 9일째 날
날씨 : 눈
아침에 05:30에 눈을 떠 밖을 내다보니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고 계속 눈이 내리고 있다. 토스트와 따듯한 우유를 마시고 06:30분에 길을 나선다. 5센티 정도의 눈이 내려 현지가이드 비멀한테 괜찮냐 했더니 “노 프라블럼” 한다. 다만 “노 웨더” 날씨가 나쁘다면서 앞장선다.
촐라패스는 칼라파타르와 고쿄리를 연결하는 유일한 루트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길이 안보여 전문가이드나 포터가 동행하지 않으면 통과하기 힘든 코스로 천길 낭떠러지 크레바스도 있고 경사도 커 여간 힘든 구간이 아니라고 한다. 촐라패스 가는 길에 빙하 지역을 건너 너덜지대가 나오는데 설악산 황철봉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데 바위가 커서 양손에 바위 모서리를 잡고 무릎을 꿇고 겨우 올라서기도 하고, 산을 하나 넘으면 또 높은 절벽이 나와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정말 괜히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산소가 희박해서 호흡하기도 곤란하고, 한참을 숨을 고르다가 다시 오르기를 수백 번을 거듭하며 우리 일행이 여기를 통과 한다고 하면 아마도 기적이 일어 난 것이다. 라고 할 정도의 생각이 든다.
이젠 힘이 다했는지 다리가 후들후들 한다. 한참을 또 오르고 급경사 지역에 얼음 덩어리를 툭 잘라낸 것 같은 높은 푸른 빙하 절벽이 나오고 그 바로 옆의 산허리 능선 80도가 넘는 깍아 지르는 경사지를 눈을 헤치고 조심조심 가로 질러 건너는데 가이드의 앞 발자국만 보면서 건너간다. 이윽고 넓은 얼음 빙하 지역에 올랐다. 찬바람에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고는 있지만 사진이나 그림에서나 보았던 정상 빙하 얼음 덩어리 위에 난생처음 서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가다가 신나게 폼을 잡고 사진도 찍고, 소리도 질러 본다. 조금 더 가니 촐라패스 정상이 나타난다.
단체로 기념사진도 찍고 이젠 하산하는데 가파른 내리막길에 길도 안보이고, 몇 번이고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하면서 길을 찾아 내려온다. 조금 떨어진 곳은 크레바스가 입을 떡 벌리고 있고, 고쿄리 에서 이 길을 오르려면 아마도 몇 배 힘들 거란 생각도 든다. 모래와 바위가 혼재 되어 있는 빙하 지역은 언제나 무서운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고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이 세상 구경을 못한다. 모래 언덕 구릉(산)과 빙하를 몇 십 개 넘어 오니 완만한 내리막길이 시작 되는데 야크가 눈 속에서도 풀을 뜯느라 길을 안 비켜 준다. 마을 당락 롯지가 가까워 졌다는 얘기가 된다. 조그만 구릉을 하나 넘으니 밑으로 롯지 가 보인다.
5시간 만에 촐라패스를 넘어와 체력이 고갈되고, 눈이 계속 내려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오늘은 여기서 하루 밤을 지내고 가기로 한다. 유럽인들이 10여명이 와서 자기들끼리 비디오 촬영도하고 인터뷰도하고 법석이다. 아마도 우리도 사진에 담아 갔으리라. 롯지 주인이 야크 똥을 계속 난로에 넣어 준다. 라면 3개를 끊여 먹으니 집에서는 그다지 맛이 없던 것이 왜 이리 맛이 있던지 눈 깜박 할 사이에 한 그릇 뚝딱 먹어 치웠다. 라면도 잘 끓일 줄도 알고 그동안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서 라면 끊이는 노하우가 생긴 모양이다.
비멀이 고생해서 여기까지 무사히 넘어 올 수 있도록 해준데 대해 1,000루피씩 걷어 팁으로 주고는 앉아서 쉬다가 저녁에 오므라이스와 라이스 스프를 시켜 먹으니 스프는 팥이 들어 있어 먹을 만하였다. 밥을 먹고 8시까지 난로에 앉아 이야기하다가 내일 날씨가 좋으면 고쿄피크에 올라가고 나쁘면 그대로 하산하는 것으로 정하고는 취침을 한다.
3/14(수)10일째 날
날씨: 맑음
05:30분에 일어나 토스트 한 조각을 먹고는 바로 출발 한다 선 그라스 없으면 눈빛에 반사되어 눈물이 주룩 흐르고 심하면 실명 한다고 한다. 모자 깊숙이 눌러 쓰고 햇볕을 최대한 가리고 진행하는데 이 지역도 모래와 자갈로 되어 있어 그 옛날 바다의 모래사장 이었던 듯하다. 곳곳에 빙하 크레바스가 널려 있고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통과도 한다. 이 지역 촐라패스를 10여 차례 이상 건넜다는 비멀 현지가이드가 눈이 쌓여 길도 없는데 잘 찾아 간다. 커다란 언덕을 숨을 헐떡이며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몇 개 넘으니 고쿄 호수가 아래에 보인다. 호수에 내려와 얼음 위로 올라서니 비멀이 소리친다. 위험 하니 나오라고 나중에 지나갈 때 보니 호수가 삼킨 사람들 위령비가 줄줄이 서있다.
2시간여 만에 08:10 분에 고쿄 롯지에 도착하여 배낭만 맡겨 놓고 고쿄 피크를 오른다. 5,360m 산을 오르는데 50발자국 가고 쉬고를 반복하면서 빠르게 진행한다. 까마득하게 먼저 올라가던 유럽 트레킹 족을 하나둘씩 따라 잡고 정상에 올라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시끄럽다
. 정상에서 바라보니 설산 모두가 각양각색으로 그 자태를 뽐낸다. 에베레스트는 구름에 가려 안보이고 품안에 있던 카메라 밧데리를 다시 끼우니 사진이 찍힌다. 가까운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조금 있으니 에베레스트를 가렸던 구름이 물러가면서 희미하나마 보인다. 몇 장 찍고 주대장과 김형탁씨가 올라와 단체 사진도 찍고 한참동안 경이롭고 장엄한 설산을 보다가 하산을 한다.
비멀이 팔로 X자를 그리며 이제는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린 그래도 가면서 여러 가지 풍경을 볼 수 있어 천천히 가자한다. 고쿄 롯지에 내려와 보니 이천 중학교 산악회 현수막도 걸려 있고 한국 청년 하나가 단독으로 포터 겸 가이드 1명을 대동하고 와 촐라패스를 넘어 가려고 한다고 한다. 1달간 시간이 있어 왔다고 하는데 젊은 청년이 그 나이에 이렇게 트레킹을 즐기고 있어 부러운 생각이 든다. 컵라면에 감자튀김을 먹고 우리는 토스트를 시켜 먹는다. 육포 한 봉지를 주니 고맙다면서 잘 다녀가시라면서 먼저 떠난다.
13:50분에 고쿄를 출발하여 제1호수, 제2호수를 지나 얼음이 얼지 않은 호수에 원앙새 10마리가 떠 있다. 아마도 이 빙하 호수에도 물새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가 살고 있으리라 곳곳에 호수에 빠져 죽은 (빙하 녹은 물에 심장마비) 이들의 위령비가 있고, 여유롭게 사진 촬영을 하면서 내려오니 16:30분경 마첼마 Yeti Lodge가 나오는데 롯지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들이 북적인다. 일본인들도 있고 유럽인들도 많다. KT 산악회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다.
일본인들이 난로 주위를 독점하고 있다가 라면 냄새가 나더니 저녁식사를 한다. 4명이 왔는데 쿡 요리사를 대동하고 왔다. 라면 냄새 죽여주는데 우리도 먼저 라면 2개를 해달라고 맡겼는데 나중에 우리 라면이 나오니까 일본인들이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냄새라면 우리 것이 더 강하기도 하고 맛도 좋고 매운 맛으로 일본 라면하고는 게임이 안 되지 안남미 한 그릇을 시켜 말아 먹으니 배가 부르다. 여기도 난로에 야크 똥 땔감을 엄청나게 넣어 준다.
3/15 (목) 11일째 날
날씨: 맑음
마첼마 롯지에서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퉁퉁 부은 듯하다. 소변 잘 보게 하는 약을 깜박 안 먹고 자서 그런지 밤새 화장실 한번 안가고 잘 잤다. 07:00시에 길을 나선다. 비멀이 주변 산들을 알려 준다. 전면으로 탐세큐, 강데가 설산을 바라보고, 좌측으로는 촐라체, 로부체 설산이, 뒤쪽에는 초유, 갱주빠, 갱주가 설산이 우뚝 서 있는 아름다운 협곡으로 계속 내려 왔는데, 어째 오르막이 심상치가 않다.
남체 바자르까지 7시간 걸린다고 한다. 이제까지는 협곡 중간 산허리를 걸어 왔는데 계속 오르막에 돌계단이 많다. 지형을 보니 산을 넘는 듯하다. 돌레 라는 마을에서 조금 더 지나서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 시작하여 산꼭대기 몽라(3,975M)까지 1시간 30여분 정도 오르는데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 계속 되어 편하게 내려가리라. 한참을 내려와 궁중 갈림길에서 주대장이 궁중으로 가자한다. 안 가본 곳이라서 좋다하면서 진행하니 할머니 한분이 밭에 묻어 놓은 것을 꺼내는 것을 보니 감자다.
일단 궁중 롯지에 들어가 감자 요리를 먹고 가자하여 찐 감자와 감자 스프를 시킨다. 잠시 후 스프가 나오는데 감자를 갈아서 끊인 것인데 너무나 맛있어서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조금 후에 찐 감자가 나왔는데 네팔 감자가 너무 맛있다. 몇 개 먹으니 배가 부르다. 따듯한 물 한 컵 마시고 길을 나섰는데 궁중이란 마을이 굉장히 큰데, 남체 바자르 보다 약간 작다고 한다. 이곳 쿰부 히말라야에서 두 번째 큰 마을 이란다.
중심가 쪽으로 들어서니 라마교 탑이 두 개 나란히 서있고 초등학교처럼 학생 그림이 있어 가보니 하이 스쿨 이라 한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준이다 힐러리 고등학교 라고 하는데, 에드먼드 힐러리는 뉴질랜드 사람으로 영국의 존 헌트가 이끄는 에베레스트 원정대 일원으로 와서 세르파 노르게이 텐징 과 함께 1953년에 세계최초 에베레스트를 오른 사람인데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기념으로 고등학교를 세워 준 것이라 한다. 궁중을 넘어 오니 남체 바자르 뒷산 공원과 비포장 비행장이 나온다. 이 비행장은 지금은 폐쇄 되었고 헬기로 물자 수송을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중턱에서 바라본 남체 바자르 뒤쪽은 밭이 대부분이고 아래쪽에 주택이 몰려 있다.
남체 바자르에 내려와 일행과 연락이 안 돼 한참을 찾아 돌아다니다 바로 위에서 노버 가이드가 보고는 롯지로 안내를 한다. 3일간 떨어 졌다가 다시 만나니 서로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모처럼 샤워를 한다. 300루피를 내고 약간 따듯한 물로 그동안 못 씻어 가렵고, 냄새나는 몸을 깨끗이 씻어내니 한결 몸이 가볍고 날아갈 것만 같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노버를 대동하고 조돈복 선배님과 주 대장 그리고 나 4명이 조와 쌀로 만든 네팔 막걸리 창을 마시러 갔다. 우리나라 막걸리 와 같은 술인데 시큼하고 물을 많이 탔는지 취하지도 않는다. 200루피의 싼 가격으로 3잔씩 마시고 돌아와 잠을 청한다.
3/16(금) 12일째날
날씨 : 맑음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퉁퉁 부었다. 어제도 소변을 자주 배출하게 하는 약을 또 못 먹었다. 07:30분에 느긋하게 일어나 식사를 하고 08:10분에 길을 떠난다. 이제는 신나고 긴장되는 일이 없다. 고산병 걱정도 없고 그런데 얼굴과 코등이 이상하다. 촐라패스에서 부터 눈길을 걷다보니 무척 많이 타서 주대장은 코등이 발갛게 벗겨지고 나도 엄청나게 탓다. 자외선이 엄청나게 강해 설산이나 눈이 있는 곳에서 선 그라스 안 쓰면 눈이 부셔 실명까지 한다.
남체 바자르에서 내려오는 길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급경사 길을 올라 갔었을까 한다. 말과 야크, 짐꾼들이 줄을 이어 남체 바자르로 올라오고 있다. 장이서나 보다 하니까 가이드 노버가 오늘 저녁부터 내일까지 장이 선다고 한다. 남체바자르는 옛날 차마고도라 하여 티벳과 무역을 하였고, 내려오다가 어깨에 대나무로 짐을 메고가는 티벳인들도 만날수 있었다. 한참을 내려오니 올라갈 때 귤 사먹던 장소에 오늘도 똑같이 귤을 팔고 있다. 1인당 1개씩 사 준다 . 잠시 귤을 까먹으며 쉬고 있다. 주위에 아름 들이 소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엄청난 태풍이 몰아 쳤나보다.
계속된 내리막길을 빠르게 진행하며 계단이 있는 출렁다리까지 내려 왔다. 여기서부터 숨을 헐떡거리며 남체 바자르까지 어떻게 올라갔는지 그동안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몬주에서 점심식사를 한다고 한 모양인데 지나쳐서 물이 새어나와 소나무에 얼음이 하얗게 달려있는 곳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으니 2진 팀가이드가 돌아오라고 소리친다. 우리 팀 3명이 되돌아가 롯지에 들어가니 우리 팀은 이미 멀리 가고 없어 결국 비빔국수를 싸 가고, 롯지에서 맛있게 먹고 팍딩 숙소로 길을 떠난다.
팍딩 숙소에서 14:00경 유피 여행사 박사장이 럼주와 콜라를 섞어 마시라 해서 한잔하니 맛이 좋다. 18:00 저녁 식사 시간에 염소 한 마리 잡아서 염소고기와 럼주를 맛있게 먹고 롯지에서 네팔 가이드 쿡 요리팀이 노래와 춤 공연을 해 주어 재미있게 같이 춤을 추며 놀다가, 주대장과 함께 비멀을 안내자로 하여 네팔 민속주 창을 한잔 더 마시고는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3/17 (토) 13일째날
날씨: 흐리고 비
팍딩에서 2진은 일찍 떠나고 우리는 점심식사 후에 떠나기로 한다. .
오전에 무료해서 주대장과 맞은편 산 중턱에 있는 마을을 올라가 본다. 전형적인 네팔 농촌이다. 보리 싹이 시퍼렇게 자라고, 솔 가래를 잔뜩 쌓아 놓은 것으로 보아 씨앗을 뿌리고 덮어 놓을 때 사용하는 것 같다. 점심 식사 후에 루크라로 천천히 발을 옮긴다.
루크라에 와서 저녁식사 후에 현지가이드 비멀에게 부탁하여 막걸리 (창)을 마시는 주점을 안내해 달라하여 한참을 가 주방이 달려 있고 네팔 청년들이 여섯 명 이 있는 주점으로 들어가 창을 마신다. 걸쭉하고 물을 타지 않은 오리지널 막걸리 (창)를 달라고 하니 물 한 방울 안탔다면서 한잔 씩 따라준다. 안주로 팝콘을 즉석에서 튀겨주고, 조돈복 선배님이 “위하여” 하니 네팔 청년들이 따라 한다.
창을 한 병 더 시켜 네팔 청년들에게 한잔씩 따라 주며 같이 “위하여”를 외치니 재미있어 한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빨리 빨리를 가르쳐 주니 재미있다며 깔깔거리고 함께 즐긴다. 이 청년들 하루 포터 일을 마치고 주막에 들러 이야기 하다가 우리를 만나 함께 즐기고 있는 중이다. 한참을 마시며 놀다가 롯지로 돌아와 잠을 잔다.
3/18(일)14일째날
날씨 : 맑음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보니 화창하다. 어제 구름이 끼고 부슬비가 내리던 때와 사뭇 다르다. 비행기 첫 3대가 왔다 가면 4번째에 우리를 태우러 오는 비행기가 올 것이라 한다. 아침을 먹고 루크라 비행장에 가서 짐을 붙이고 통과하여 대합실에서 기다리니 벌써 5대나 왔다 간다. 우리가 기다리는 타라 에어는 1대도 안 왔다. 아마도 여기 오기로 한 비행기가 딴 데로 간 모양이라 하니 그렇다고 한다. 공항 사람들 말 절대 못 믿는다고 가이드 노버가 말을 한다.
09:30분경에 타라 에어 항공기가 와 겨우 타고는 돌아 올 수가 있었다. 오른쪽에 앉아 히말라야 설산을 보려 했는데 흰 구름이 쫙 깔려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11:00경 삼사라 호텔로 돌아와 11:05분 아내와 통화를 하고 모래 새벽에 보자하고 끊는다. 점심에 한국사랑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 세병을 마시니 역시 한국의 소주가 최고다. 시장에서 쇼핑을 하는데 나는 살 물건이 없어 일찍 삼사라 호텔로 돌아와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루피를 달러로 바꾸고, 저녁을 먹고는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한다.
3/19(월) 15일째 날
날씨: 맑음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 카고 백을 정리하고 침낭을 반납한다. 09시경 차가 오고 우리 일행은 퍼스퍼티나트 사원이 있는 화장터를 관광하기로 한다. 바그머띠 강이라는데 작지만 갠지즈강 지류로 성스러운 강으로 여기고 네팔의 힌두교 인들에게 이곳은 죽은 몸으로라도 가고 싶은 최고의 성지라 한다. 이곳에서 시신을 화장을 하면 윤회를 벋어나 해탈에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고 한다.
강 주변에는 아르여가트라는 화장터가 6개가 있는데 신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화장터가 따로 구분 되어 있다고 한다. 맨 위 상류 오른쪽 은 왕족, 하류로 갈수록 신분이 낮아진다고 한다. 화장하는 냄새와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점을 보고 있는 모습 그리고 시체 태워 버린 물에서 빨래를 하고, 냇가에 들어가서 무엇을 찾는지 열심히 뒤지는 사람 갖가지 별난 사람이 많다. 냄새도 그렇고 해서 잽싸게 빠져 나온다. 주차장에서 조금 기다리니 일행들이 모두 나온다.
다음 갈 곳은 보트나트 사원 이라는데 한참을 꾸불꾸불 동네길 같은 좁은 도로로 한참을 가서 내려 올라가니 거대한 탑이 우뚝 서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스투파인 보트나트에는 사면이 거대한 눈이 그려져 있다. 기단의 높이만 36M, 그 위 탑의 높이가 38M, 기단의 길이가 100M 인 이탑은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에너지 땅, 물, 불, 바람, 하늘을 상징하며 또한 깨달음의 13계단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탑 주위에는 각종 상점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우리도 이곳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럼주 한 병과 이른 점심 식사로 만두를 먹고는 카투만두 공항으로 와 대한항공을 타고 14박 15일간의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귀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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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 사진은 아직 못 보았는데 산행기를 봅니다. 그날그날 기록을 하셨나 봅니다.기록이 생생 합니다. 대단 하시고 즐거운 추억, 부러울 따름 입니다.
하루하루의 산행기가 생생한 현장을 보는 듯합니다. 훌륭한 경험 계속 추억으로 간직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