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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
성경본문 : 요한
설 교 자 : 지 명 숙 목사 <2012년2월8일 수요일 >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사람을 처음 만날 때, 특별히 한국에서는
“당신 고향이 어디입니까?” 하고 물으면 안 됩니다.
이 작은 땅에서 고향을 물으면 좋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고향은 대한민국입니다. 참 고향은 대한민국도 아닙니다.
우리의 참 고향, 우리가 돌아갈 고향은 다 같은 곳으로 하늘나라입니다.
그리고 나이를, 특별히 여인에게는 나이를 물으면 실례입니다.
물어서 좋지 않은 것은 묻지 않아야 됩니다.
그러나 직업은 물을 수 있습니다.
은행원은 은행에서 일합니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가르칩니다.
의사는 환자를 고칩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직업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야 됩니다. 가정주부의 직장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가정주부의 낮잠 자는 자리가 아닙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을 천국처럼 꾸며야 하는 것입니다.
커튼도 새롭게 바꾸고 꽃 한 송이라도 예쁘게 꽂아 놓고,
가정을 가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맞벌이 부부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가정을 꾸며야 하지만, 남편은 직장에 나가고 아내는 집에 있다면
아내의 직장은 가정이라는 것을 아내들은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의 일이 있어야 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대로
도적의 일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에 도적이 오는 일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도적이 오면 망합니다. 강도가 오면 망합니다.
귀신이 오면 안 됩니다. 귀신은 이혼하게 하고 부부 싸움하게 하고
가출하게 하고 자살하게 하고 욕하게 하고 미워하게 합니다.
이것이 다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미워하고 누군가에게 감정이 좋지 않고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에 의한 것입니다. 마귀는 파괴하게 하고 싸움을 붙이고
이혼시키고 가출하게 하고 자살하게 하고 바르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가 여러분에게 접근하는 일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가장 큰 일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천국 백성으로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천국 백성, 천국의 시민권자가 됩니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고 신학 교수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에 처음 나오셨어도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가 압니다.
로마서 8장 16절 말씀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라는 말씀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압니다. 할렐루야!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고 사진으로 찍을 수는 없어도
꽃잎이나 나뭇잎이나 머리카락이 나부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피부가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성령을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어도 우리 영이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아,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구나.’하며
그저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쁨과 감격이 항상
우리 가슴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 주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10년, 20년 거 하시다가 떠나 가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영원히 우리에게 거하십니다.
출애굽기 13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태풍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구름기둥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구름은 바람 따라 흘러가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구름기둥, 불기둥은 폭풍이 불어도 까딱 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그들을 지켜 줍니다.
우리 성령님은 그 이상입니다. 천국에서도 영원히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땅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 갈 때 까지만 인도했지만 우리 성령님께서는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 우리가 받은 하나님
자녀의 특권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대 성령을 꺾고 이것을 파괴할 자가 없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37절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고린도 후서 1장 21절, 22절에도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 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흔들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이 중국 단동에 갔을 때. 압록강 철교가 보이는
유명한 호텔 12층에 묵었습니다. 하루는 그 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상한 느낌이 왔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세상에! 한 남자가
외줄을 타고 목사님 방의 창으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한낮에 웬 강도?’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강도가 아니라 호텔 벽을 보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상 위에 호텔 벽을 보수하니 놀라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읽어야 되는데 읽지 않아서 그렇게 놀랐던 것입니다.
밖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 계시니 제 일이 잘 되지 않아서 커튼을 쳤습니다.
한 5분 정도 작업을 한 후 그분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한 순간 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그분이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외줄을 타고 일을 하시는데, 만일 그분의 원수가 있어서 옥상에 올라가
그 줄을 풀든지 미친 사람이 칼로 그 줄을 자른다면 그분의 생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분의 생명이 그 밧줄, 외줄 하나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외줄을 타는 그 기술자처럼 우리 모두도
외줄을 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 교통사고가 나도 죽고,
강도의 칼에 찔려도 죽고 병이 와도 죽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줄을 잘라도
우리는 뚝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모릅니다. 불안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생명 줄입니다. 하나님의 영생 줄을 끊을 자가
없습니다. 마귀도 끊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완전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그대로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 받은 사람은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인간의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마귀가 그 줄을 자를 때 뚝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영원히 죽으면 좋은데,
천길 만길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은 사람은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성령님은 참으로 고마운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구원하신 다음에도 영원히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의 영생 줄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녀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교회에서 악한 짓도 하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일도 합니다. 그러다 교회를 떠나 중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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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한 분이 저희 집으로 들어와서 염불을 했습니다..
“스님, 우리는 시주하지 않으니 헛수고 마시고 가세요.”
“왜 시주를 안 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나도 10년간 예수를 믿었습니다. 나도 모세도 알고
아담도 압니다.” 하며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뛰어나가서 스님을 붙잡았습니다.
“스님, 이야기 좀 합시다. 정말 교회에 10년간 다녔습니까?”
“그럼요. 열심히 다녔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스님이 되셨습니까?”
스님이 난처한 얼굴로 “밥 먹고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 분명했습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스님은 밥 먹을 걱정하며
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똑똑해 보이고 유능해 보였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바른 대로 말씀하세요. 성령이 계신다는 말씀을 들어 보셨나요?”
“들었지요.”
“성령을 받으셨나요?”
“성령을 받았으면 내가 이러고 다니겠소?”
제가 “스님, 성령은 계십니다. 제 가슴에도 계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기도하여 스님도 성령을 받아 구원받읍시다.”하며 망태를 벗겼더니
스님이 망태를 확 낚아챘습니다. 제가 또 망태를 벗기려 하니 “미안하오,
미안하오.”하며 망태를 꽉 붙잡고 나갔습니다.
제가 “스님, 하나님의 성령은 살아 계십니다. 어서 교회로 돌아오셔서
성령 받으시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소리치니 “알았어요. 미안해요.”라고
하며 도망치듯 갔습니다.
그때 제가 그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한두 달 교회에
다닌 것이 아니고 일이 년 다닌 것이 아니고 십 년간 교회에 다닌 사람이
어떻게 중이 됩니까? 저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제가 목회할 교회에서는 중이 되는 사람이 없게 해 주세요.”
그분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는지, 중으로 그대로
멸망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녀도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언젠가는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영생 줄로 지켜 주시고
영원히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은 사람은 만복을
다 받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공을 잡은 사람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본문에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진리를 자꾸 생각하게 하십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7장 17절에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 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 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읽고 싶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주간지도 보고 싶고 세상의 잡지도 보고
싶고 음란한 비디오도 보고 싶고 세상의 것이 자꾸 보고 싶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신문을 보기 전에
성경을 읽고 싶은 것입니다. 먼저 성경을 읽고 다른 것을 읽지,
성경을 읽기 전에는 다른 것을 읽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진리를 보도록 그렇게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원하는 것처럼,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진리인
말씀을 자꾸 당기게 되는 것입니다. 신비롭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면 아기의 탯줄을 자르고 그 자른 탯줄을
두루루 말아 놓으면 그것이 배꼽이 됩니다.
그런데 탯줄은 잘라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기도 울지 않고 엄마도 울지 않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기와 엄마가
연결된 탯줄을 자를 때 아파서 엄마도 비명을 지르고
아기도 비명을 지른다면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얼마나 부담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탯줄 자른 줄을 아기도 모르고, 엄마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이 되어서 고추 끝을 자르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아파서 며칠 동안 펭귄처럼 뒤뚱거립니다. 그런데 태어난 지
팔일 만에 자르면 아프지 않답니다. 살을 자르는데
아프지 않으니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그런데 탯줄을 자르고 나서 엄마가 아기에게 젖먹이는 법을 가르칩니까?
“아기야,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 이제는 엄마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네게 영양분이 전달되지 않는단다. 그러니 네가 직접 먹어야 해. 그러나
아직 피자는 먹으면 안 돼. 라면도 먹으면 안 되고 젖만 먹어야 된단다.
그런데 젖은 포크로 먹으면 안 되고 입으로 빨아 먹어야 해. 입으로 빨아
먹을 때도 풍선을 불듯이 불면 안 되고 쪽쪽 빨아야 된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으니 엄마가 가르쳐 줄게. 엄마 손가락을
젖꼭지라고 생각하고 한 번 빨아 먹어봐라.”
이렇게 가르쳐서 젖을 먹인 엄마가 있습니까?
아기에게 그런 교육을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태어나면 젖을 찾습니다.
그리고 젖꼭지를 물려주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빨아 먹기 챔피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아기는 젖을 먹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영적으로 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먼저 찾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젖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을 먹고 싶어서 자꾸 말씀을 찾고, 성경을 갖고 다니며 어디에
가서도 펴서 읽습니다. 그저 말씀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무엇을 보고 사느냐가 참 중합니다.
일본의 한 청년이 유치원생 여러 명을 잡아다가 토막 살인했습니다.
나중에 그 청년이 잡혔습니다. 청년의 집을 조사하니 그 집에 음란한
비디오와 폭력 비디오가 2300개나 나왔답니다. 매일 음란 비디오나 보고
폭력 영화나 보니 악해져 천사 같은 아이들을 잡아다가 토막 살인을
한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거룩한 것을 보면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음란한 것을 보면 음란한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폭력 행하는 것을 보면 폭력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폭력 비디오를 본 손자는 할아버지도 치게 되는 것입니다.
보고 배운 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무섭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부인은 아기를 가졌을 때 남편이 멀리 가 있으니 외로워서
못난이 삼형제 인형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기를 낳고 보니
그 아기가 못난이 삼형제를 닮았습니다.
창세기 30장 25절 이하에 보면,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 하는 야곱 때문에 라반의 집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라반이 ‘아, 야곱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복을 주시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야곱에게 월급을 넉넉하게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라반은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합니다. 그러니 야곱이 ‘계속해서 이 집에 있으면
내 길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집을 떠나려 합니다.
그러자 라반이 “너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복을 주셨는데,
네가 떠나다니. 너는 우리 집에 있어야 돼.”라고 합니다.
라반은 참 나쁜 사람입니다. 야곱 때문에 자기 집이 잘 되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 주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 어떤 회사의 이사는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답니다. 그만큼 회사를 일으키는 유능한 사람이니
많은 연봉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유능한 사람은 그렇게 좋은 대접을
해주지 않으면 다른 회사에서 데리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능한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에게 그만한 대가를 주지 않으니 야곱이 떠나 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라반이 야곱에게 말합니다.
“야곱, 네가 떠나면 안 돼. 이제 품삯을 네가 정하는 대로 줄 테니
떠나지 말아라.”
“그러면 이렇게 해 주세요. 앞으로 염소나 양이 아롱지거나
점 있는 새끼를 낳거든 저를 주시고, 점이 없고 아롱지지 않은
좋은 새끼를 낳거든 그것은 외삼촌이 하세요.”
염소나 양이 새끼를 낳으면 열 마리 중에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은 한두
마리 나오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라반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버드나무와 살구나무, 신풍나무를 꺾어다
껍질을 벗겨 무늬를 만든 다음 양과 염소들이 냇가에서 물을 마시며
사랑을 할 때 그 나뭇가지를 그 양과 염소들의 눈에 갖다 댔습니다.
그러니 모든 새끼가 아롱지고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야곱이
실한 양이나 염소가 새끼를 밸 때는 나뭇가지를 보여주고 비실비실한
양이나 염소가 새끼를 밸 때는 나뭇가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실비실한 새끼들은 주인의 것이 되고 건강한 새끼들은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브가 선악과를 바라보다가 그것을 따먹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 있는 것을 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것을 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진리의 말씀을 자꾸 보게 되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말씀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니 말씀을 자꾸 보면 믿음이 강해집니다.
또 말씀을 들으며 사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진리의 말씀을 읽으니 거룩해지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께서 이렇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디모데 전서 3장 15절에 보면,
교회, 예배당은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령 받기 전에는, 교회를 주일에나 한 번 갔다 오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은 주일에 한 번 교회에 오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주일 낮에 교회에 갔다 왔어도 또 가고 싶고, 또 가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새벽에 나와도 또 나오고 싶고…….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의 기둥인 교회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에게는 자기 집보다 교회가 더 중한 것입니다.
내 일터, 내 사무실보다 교회가 더 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도 마음은 교회에
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병원에 있어도 마음은 교회에 와 있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도 마음은 교회에 와 있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 오면 얼마나 좋습니까?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면, 교회는 좋은 식당입니다.
하늘나라 진수 성찬을 먹습니다. 또 교회는 좋은 목욕탕 입니다.
우리의 죄를 씻음 받습니다. 또 교회는 노래방입니다.
교회에서 찬양을 합니다. 또 교회는 술 집입니다. 교회에서 하늘의 술을
마십니다. 또 교회는 좋은 대학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교회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있으면 즐겁습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라는 말은 교회에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채워 주신다 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우리가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에베소서 1장 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축복하시니 성령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자꾸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장래의 일을 알려 주기도 하십니다.
사람은 장래 일을 모릅니다.
예레미야 애가 1장에 보면, 공주 같은 자가 세를 바치는 자가 되고,
높은 자가 천한 자가 되고, 원수가 형통함은 죄 값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죄가 치마에 있는데 그 결국을 알지 못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레미야 애가서 1장9절에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라고 했습니다
삼손이 간음하면 자기 눈이 뽑히는 결국을 알았다면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들릴라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신앙을 벗어 났다가 눈이 뽑히고 나서야
가슴을 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아간이 도둑질하면 부자가 될 줄 알았지, 자기 아내와 자식이 돌에 맞아
죽을 줄 알았겠습니까? 그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면 소금 기둥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뒤를 돌아본다고 설마 소금 기둥이 되겠나?’하며 뒤를 돌아 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결국을 모르고 장래 일을 모릅니다.
9.11 테러 때 그 똑똑한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는데,
그들이 30분 앞의 일, 1시간 앞의 일만 알아도 그 빌딩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합니다.
몇 일전 필립핀에 대지진이 일어 날것을 알았더라면
모두 대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장래 일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지 않은 길로 가면 우리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셔서
그 길로 가지 않게 하십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꿈으로 알려 주실 때가
많습니다. 운전해 갈 때도 성령님께서 미리 알려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번은 공주를 가고 있는데 ‘얘, 너 왜 그리 속력을 내니?
조금 천천히 가라. 앞차와 안전거리를 유지 해야지.’하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여!’ 하며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 순간 제 앞에 가던 트럭이 빗길에 미끄러져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만일 제가 속력을 내어 달렸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성령께서는 장래 일을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늘 예민해 있으면 성령님께서 장래 일을 알려 주십니다.
때로는 꿈으로나 느낌으로도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을
당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승리의 길로 가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본문 14절에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여자는 참 묘합니다. 결혼을 하면 어찌 그리 바뀌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령을 받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영적인 결혼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영적인 결혼 생활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헷가닥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꿈, 자기 인생의 계획이
없어집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돈도 주님을 위해 쓰고, 시간도 주님을 위해 쓰고 무엇을 하든
주님을 위해 하게 됩니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바보가 되지요’하는
유행가 가사처럼 완전히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 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야 어떻게 되든 주님께서 높아지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널뛰기와 같은 것입니다. 널뛰기는 이쪽에서 굴려주면
저쪽에서도 굴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영광 받으세요.’하고
주님을 높여 드리면, 주님께서 ‘너도 귀해져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주님만 영광을 받으세요.‘라고 하면,
주님께서는 ’너도 귀해져라.‘라고 하십니다.
잠언 4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37편 4절에도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정말 놀라운 것은, 성령을 받으면
나는 ‘주님만 위해 살리라’하는데 그렇게 살고 나면
내가 잘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만 높이리라’ 하는데
어느 날 내가 높아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난처한 일이 없습니다. 가슴 칠 일이 없습니다.
안전하고 잘되고 찬송하게 되고 두고두고 좋아할 일,
감사할 일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를 잘 따르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