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는 신돈을 요승으로 평가했다. 당시 항간에 ‘진사(辰巳)에 성인이 나온다.’라는 참설이 돌고 있었는데, 신돈은 자기가 개경에 다시 나타난 1364년이 갑진년이요, 이듬해인 1365년이 을사년이니 ‘참설에서 말하는 성인이란 것이 내가 아니면 또 누구겠느냐?’며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성인인 척하면서 남을 중상모략하고 양가의 부녀자들을 갖은 구실로 유인하여 음행을 하는 인물로 보았다. 주지육림 속에 지내다가도 공민왕을 만나면 갑자기 돌변하여 좋은 말만 하고 채소나 과일만 먹으며 술 대신 차를 마시는 이중인격자로 묘사했다.
신돈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이 계속되자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어 왔던 권문세족들은 신돈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먼저 간관들이 일어나 신돈을 탄핵했고, 엄부흥과 이존오는 신돈을 이상한 인물인 양 소문을 내었다. ‘신돈은 양기를 북돋우기 위해 백마의 신장을 회 쳐 먹는다.’ 혹은 ‘지렁이도 산 채로 먹는다.’라는 소문을 퍼트렸고, 결국에는 ‘늙은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했을 것’이라는 말도 흘렸다. 소문에 힘입어 이존오는 죽을 각오로 공민왕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무렵 신돈은 공민왕과 마치 허물없는 친구처럼 행동하였으며 선왕이나 왕후의 능에 배알할 때 백관이 모두 왕을 따라 무릎을 꿇고 절을 해도 신돈만은 홀로 우뚝 서 있을 정도였다. 원로 중신인 이제현이 나서서 “신돈의 골상은 옛날의 흉인과 유사하니 가까이하지 마십시오.”라고 간청까지 할 정도였다. 이 일로 이제현은 간신히 죽음은 모면했으나, 그의 문도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화를 당했다. 당시 신돈은 이제현의 문도들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과거시험 자체를 아예 폐지해 버렸는데, 이 때문에 제사를 주관하는 관청에서는 소지나 축문 한 장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