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도시란 단순히 최첨단 주택이나 高價(고가) 아파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삶을 결정하는 총체적인 만족도가 높은 곳이 명품도시다. 살고 싶은 풍요로운 도시(豊-Wealth), 더불어 행복한 도시(和-Harmony), 내가 좀 더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도시(格)가 바로 명품도시다. 그렇다면 어떤 곳들이 명품도시란 명성을 얻고 있을까.
[豊의 도시-아시아의 실리콘 밸리, 방갈로르]
인구 550만명의 인도 IT도시 방갈로르. 이곳은 원래 천혜의 쾌적한 환경을 갖췄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방갈로르市(시) 정부는 자연이 제공한 환경을 100% 활용해 이 도시를 力動性(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아시아판 실리콘 밸리로 탈바꿈시켰다. 기업 대학 연구소를 하나의 생태계로 엮어 전 세계인이 몰려드는 기업도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방갈로르는 1970년까지 인구 100만명의 소도시였다. 이곳이 오늘날 인도를 대표하는 첨단산업도시로 변신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부터였다. 1985년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츠社(사)가 인도의 값싼 노동력과 우수한 人的(인적)자원을 높이 평가해 방갈로르 진출을 결정하면서 도시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를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한 당시 인도 총리 바지파이는 ‘정보기술입국’을 선언했다. 그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인도를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육성하겠다”면서 강력한 IT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했다.
인도 정부는 1986년 소프트웨어개발국을 신설하고, 1991년 정보통신부 산하에 전국 16개 지역에 인도소프트웨어기술단지(STPI)를 설치했다. 방갈로르는 최초의 STPI 시범지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IT 분야가 21세기 유망산업으로 떠오르면서 방갈로르는 비약적으로 성장을 하게 된다.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STPI를 ‘경제특구’로 지정해 외국자본의 100% 투자를 허용했다. 수입재료와 부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했고, IT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소득세의 90%를 감면해 줬다. 또 창업 희망자에게는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 자금을 빌려 줬다. 투자관련 사무는 원스톱으로 일괄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정부는 낙후된 정보통신 환경 개선을 약속하고 직접 나서서 입주기업을 유치했다. 정부를 대신해 STPI에서는 소프트웨어 수출업자에게 사업승인, 수입승인, 보세창고 입고, 수출인증 등의 종합관리 업무를 맡아 신속한 업무처리를 도왔다.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정부의 역할과 민간의 역할을 따로 분리하지 않았다.
정부는 방갈로르대학, 인도과학원, 인도정보기술대학, 인도컴퓨터소프트웨어기술원, 인도경영대학원, 압텍, 라만과학연구소, 국립항공학연구실험실 등 대학과 연구소를 설립해 인재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정부는 경제도시가 갖춰야 할 인프라 구축에도 만전을 기했다. 주변도시와 통하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춰 방갈로르가 교통중심지가 되도록 했다. 하이테크 IT기업들과 R&D 기관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첨단 클러스터를 형성하도록 했다. 도시계획을 세워 시가지를 정비했다.
인도 방갈로르시는 세계적 IT기업들을 유치해 ‘豊의 도시’를 만들었다. 사진은 방갈로르에 있는 IT기업 인포시크 본사. |
핵심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
이렇게 기업활동에 좋은 환경이 구축되자 다국적 기업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IBM, 에릭손, 시스코시스템스, HP, 오라클,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지멘스, 모토롤라, 인포시스, 위프로, 사티암 테크놀로지, 타타 컨설턴시 소프트웨어 등 900여 개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일자리가 있고 미래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인도 전역에서 유학생들이 몰려들고 中東(중동)과 아프리카 등에서 온 해외 유학생, 세계 각지에서 찾아든 사업가들로 방갈로르는 ‘국제도시’가 되고 있다.
방갈로르가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자 市(시) 정부는 ‘和(화)의 도시’로 변신을 꾀했다. 방갈로르는 주민의 30%만이 토박이다. 시 정부는 도시를 전 세계인이 함께 거주하는 다문화 도시의 모델로 만들었다. 지역주민과 유럽계 인도인, 미국인 등 외국인, 평균연령 25.7세의 젊은 기술자들이 영어를 公用語(공용어)로 ‘하이테크 혁명’을 先導(선도)하고 있다.
‘豊(풍)의 도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전략이다. 도시의 발전은 衣食住(의식주)의 해결에서 시작하며, 일자리가 있는 도시가 발전하게 된다. 이 같은 ‘풍의 전략’으로 성공한 도시는 핀란드의 지식도시 올루, 스웨덴의 산업메카 스톡홀름, 프랑스의 과학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 일본의 기업도시 도요타시 등이 있다.
[和의 도시-동남아의 성장 모델 싱가포르]
리콴유는 32년간 총리로 재임하면서 싱가포르의 번영을 이끌었다. |
인구 450만명의 도시국가 싱가포르. 이 나라는 1963년 9월 16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말레이시아연방의 한 州(주)로 출발했다. 그러나 채 2년도 못 가 정치인들이 非(비)말레이계의 단결과 지지를 호소했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연방으로부터 축출당해 1965년 8월 9일 도시국가로 독립했다. 당시 세계 언론들은 작은 섬나라의 생존을 비관적으로 봤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리콴유(李光耀) 총리의 리더십에 힘입어 발전을 거듭해 왔다.
싱가포르의 성공에는 글로벌화와 융화를 기반으로 한 ‘화의 전략’이 주효했다. 세계에서 가장 出産率(출산율)이 낮은 싱가포르는 異(이)민족의 힘을 빌려 국가를 지탱하고 있다. 도시 개발도 철저히 외국자본을 활용했다.
싱가포르의 성장에는 리콴유 총리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32년 동안 총리로 재임하면서 싱가포르의 산업화에 앞장섰다.
그는 주롱 지역에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싱가포르에 투자하는 모든 외국기업과 투자자들에게 5~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주는 텍스 홀리데이(tax holiday) 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기업 환경은 싱가포르 고도성장의 바탕이 됐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한국보다 두 배 이상 잘산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즉 ‘풍의 전략’과 글로벌 허브 전략으로 통하는 ‘화의 전략’으로 도시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화의 도시’는 도시 안과 밖의 조화, 글로벌 사회와의 융화를 통해 성장을 이끄는 도시를 말한다. 도시 안에서의 시민 간 조화를 위해서는 복지제도를 통해, 도시 바깥과의 조화는 글로벌 사회와의 호흡을 함께하면서 이루어지는 도시가 ‘화의 도시’다.
고급인력에 이민문호 개방
세계은행이 2007년 발표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싱가포르는 2007년 법인세율을 20%에서 18%로 낮췄다. 이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영어를 필수언어로 채택했다. 영어 公(공)교육을 실시했고, 공기업에서는 영어를 常用化(상용화)했다.
종족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정부는 국가이데올로기로서 ‘國家愛(국가애, national fraternity)를 학교에서 교육시켰다.
정부는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택개발공사가 주도하는 공공주택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싱가포르 국민의 90% 정도가 주택문제를 해결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금융 분야의 문호를 개방해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와 함께 싱가포르 정부는 450만명의 인구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 수 없다고 판단, 현재의 인구를 40~50년 안에 65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는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이민정책을 완화하는 한편, 외국 이민자들에게 소득세 인하 등 稅制(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대신 기술 수준이 낮은 노동자에 대해서는 한정된 기간의 체류만 허용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조화로운 다민족 사회의 모습을 가르치는 등 이민자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화’의 개방전략으로 성공한 도시는 사막을 프리미엄 땅으로 바꾼 미래도시 두바이, 22개 국제기구가 있는 스위스의 국제도시 제네바, 금융 허브도시 홍콩, 컨벤션산업의 중심지인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글로벌 산업축제 도시인 독일의 하노버, 인간중심의 도시 커뮤니티인 덴마크의 코펜하겐 등을 꼽을 수 있다.
[格의 도시-꿈의 도시 브라질 쿠리티바]
브라질의 쿠리티바는 리우 데 자네이루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800km 떨어진,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제3세계의 평범한 도시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꿈의 희망도시’라는 이름을 얻게 됐을까.
美(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쿠리티바를 가리켜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라고 평했다. 또
이 도시는 품격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격의 전략’으로 성공했다. 여기에는 州(주)지사의 리더십, 시 정부의 도시관리 철학과 행정원칙, 창조적 아이디어의 도입이 큰 몫을 했다.
쿠리티바의 역사는 1962년 파괴적 도시개발에 저항했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의 등장과 함께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 그는 임명제 시장 및 民選(민선)시장(3선)으로 재직하면서 25년 만에 도시를 換骨奪胎(환골탈태)시켜 놓았다.
시장만 혁신적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관료제의 관행을 벗어 던지고 시민과 토론에 나선 공무원들과, 능동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함께 변화를 이끌었다. 공무원들은 현장을 방문해 확인하고 주요 현안에 대해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해결하기 힘든 과제는 주민과 밤샘 토론을 통해 해법을 찾아냈다.
쿠리티바는 예산이 문제되면 가장 단순하면서 비용이 적게 드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버스교통 시스템이다. 쿠리티바는 한때 지하철 건설을 검토했는데, 효과 대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시 정부는 비용 부담이 적은 代案(대안)을 모색했다. 버스를 ‘땅 위의 지하철’로 개발하자는 결론이 도출됐다. 비용이 적게 드는 원통형 정류장과 굴절버스가 개발·도입됐다.
그것은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하루 지하철 승객의 4배나 수송할 수 있는 대용량이었으나, 비용은 ㎞당 200분의 1에 불과한 혁신적인 것이었다
시민이 市政의 중심
도시를 개발하는 데는 1964년 쿠리티바 시청과 쿠리티바 계획위원회가 만든 ‘쿠리티바 종합계획’이란 청사진이 지침서 역할을 했다. 이 청사진은 공공기관과 주민, 학생, 전문가의 참여로 완성됐다. 그 과정에서 시는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종합계획’의 5원칙은 이렇다.
우선 도로망, 교통과 토지이용 계획을 통합해 放射形(방사형)의 도시성장 추세를 線形(선형)으로 바꾼다. 둘째, 중심지역의 ‘脫(탈)혼잡’을 추진하면서, 역사 중심지를 보존한다. 셋째, 인구를 통제 관리한다. 넷째, 도시개발에 대한 市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중시한다. 다섯째, 하부구조를 개선한다.
이 종합계획이 실천에 옮겨지면서, 쿠리티바는 ‘꿈의 희망도시’로 바뀌었다.
쿠리티바 神話(신화)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시민 중심’이라는 市政(시정)철학이다. 모든 정책은 그것이 시민들을 위한 것이냐, 시민이 원하는 것이냐라는 관점에서 추진됐다. 시민의 거리, 원통형 정류장, 생태 공원, 지혜의 등대 등 거의 모든 것이 시민을 존중하는 관점에서 나왔다.
사람이 중요하냐, 자동차가 중요하냐를 묻는다면 물론 ‘사람’이 정답이다. 그러나 도시정책의 대부분은 그렇게 이뤄지지 않는다. 도로, 건물, 기업 등 엉뚱한 것들이 존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동차가 중심이라면 도로에 횡단보도 대신에 육교, 공원 대신 주차장을 만들어야 한다. 고속도로는 물론 幹線(간선)도로, 國道(국도)를 넓혀야 한다. 그래도 차량은 계속 늘어나고, 도시는 이를 위해 추가로 주차장 확보에 나서야 한다. 교통혼잡에 대기 오염도 심해진다.
이렇게 되면 존중받아야 할 사람의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차량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불만이 쌓이고, 이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며, 양자 간에 삶의 질도 차이가 나게 된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갈수록 소외된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사회인가.
쿠리티바는 환경친화적인 ‘步行者(보행자) 천국’을 만들어 ‘시민이 존중받는 도시’를 만들어냈다. 특히 이 과정에서 ‘低(저)비용 행정’을 구현했는데, 여기에는 시민들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커다란 원동력이 됐다. 돈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시청과 시민들의 창조적 발상에 의해 해결됐다.
‘격의 도시’란 도시에 디자인, 녹색, 환경, 역사, 문화, 예술 등의 콘텐츠를 입혀 도시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도시를 말한다. 시민들은 가장 먼저 경제적 풍요를 추구하며(豊), 경제적 풍요로움을 충족하면서 더불어 살고 싶어 한다(和). 두 가지가 충족되면 시민들은 품격을 지키려 한다(格). 도시는 이 같은 시민의 욕구변화에 맞춰 도시의 비전을 만들어 가야 한다.
‘격의 전략’으로 성공한 도시는 도시경관·디자인 1위 도시인 미국의 뉴욕, 유럽의 환경수도로 불리는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물의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세계 3대 축제도시 가운데 하나인 일본 삿포로, 예술 도시의 대명사인 오스트리아의 빈, 독일의 변화를 선도한 자유의 도시 라이프치히,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인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역사자원도시인 미국의 필라델피아 등이다.
[명품도시의 DNA는 豊·和·格]
풍, 화, 격.
이는 글로벌 명품도시가 갖춰야 할 3대 키워드다. 동시에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국가를 만든 선진국 사회가 갖고 있는 유전자(DNA)이기도 하다. 글로벌 명품도시들은 이 3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그중 한 가지를 도시 성장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명품도시의 첫 번째 요소는 ‘풍(Weal-th)’이다. 이는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잘사는 도시를 말한다. 따라서 명품도시의 첫 번째 요건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시민들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일자리가 충분하고, 기업하기 좋은 제도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풍의 도시’는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주창한 욕구 5단계설 가운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물학적 욕구(1단계), 안전에 대한 욕구(2단계)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도시를 뜻한다.
도시는 가장 먼저 시민들이 편안하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시민들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생물학적 본능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시는 경제활동의 기반을 조성해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시민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해 주는 도시, 안전한 도시, 범죄 없는 도시가 명품도시의 출발점이다.
두 번째 명품도시의 핵심요건은 ‘화(Harmony)’다. 이는 융화와 조화를 뜻하며 우리말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뜻한다. 조화란 균형(balance)을 유지한다는 뜻이며 도시 안에서의 조화, 나아가 도시 밖과의 융화를 의미한다.
도시 안을 들여다보면 빈부격차, 소득격차, 교육격차, 의료격차 등 여러 가지 사회격차로 인해 많은 소외계층이 시름하고 있다. 명품도시는 ‘복지제도’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 시민들의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도시를 뜻한다.
동시에 명품도시는 세계화시대에 발맞춰 글로벌 사회와의 융화를 도모하고 있다. 돈과 상품, 인재가 도시에 들어오고 세계의 무대에 나가 활동할 수 있도록 글로벌 사회의 스탠더드를 갖춘 도시가 ‘화의 도시’다.
‘화’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설 가운데 관심과 사랑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3단계),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존경에 대한 욕구(4단계)와 일맥 상통한다.
마지막 명품도시의 3번째 핵심요소는 ‘격(Premium)’이다. ‘격’은 ‘풍’과 ‘화’에 이은 최상위 개념이다. 여기서 ‘격’이란 품격을 말한다. 매슬로가 말한 최상위 인간의 욕구인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의 욕구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격’을 갖춘 ‘품격 있는 도시’는 ‘배려문화’가 사회의 파워를 만들어낸다. 떼법과 국민정서법 대신에 원칙과 합리성이 사회를 지배하고 디자인, 문화, 환경, 역사, 예술, 법치가 한데 어우러져 존경받는 사회를 연출해 낸다.
우리가 명품도시를 방문했을 때 느끼게 되는 시민정신, 親(친)환경 문화, 질서의식, 다문화 사회, 준법정신 등이 ‘품격 도시’의 모습들이다.
명품도시는 풍-화-격을 경쟁력으로 해서 인재와 돈, 상품흐름의 승수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른바 원심력과 구심력이다. 돈-인재-상품이 글로벌 무대로 뻗어 나가고(원심력) 동시에 돈-인재-상품이 명품도시로 몰려든다(구심력).
명품도시는 정책으로 승부한다
독일 뮌헨市는 어디서나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는 ‘콜 어 바이크’시스템을 구축했다. |
명품도시에는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톡톡 튀는 정책이 살아 숨쉬고 있다. 브라질 쿠리티바 버스회사의 ㎞별 지불시스템, 독일의 교과서 물려주기 정책, 미국 뉴욕의 도시경관 보호구역, 일본의 이산화탄소(CO₂) 1㎏ 삭감 국민운동, 뮌헨의 콜 어 바이크(Call a Bike),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카 셰어링(Car Sharing) 제도, 프랑스의 半官半民(반관반민)회사 등이 톡톡 튀는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다.
▲ 쿠리티바-버스회사 ㎞별 지불시스템
도심을 운행하는 버스의 서비스를 혁신하고 赤字(적자)노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쿠리티바는 버스요금 수입을 승객 수가 아니라 버스의 주행거리, 즉 운행 ㎞수에 따라 받는 ‘㎞별 지불시스템’으로 해결하고 있다.
쿠리티바에는 민간 소유의 10개 시내버스와 16개 시외버스가 있다. 이들 버스 회사는 쿠리티바도시공사에서 허가를 받아 특정 노선을 배정받아 버스를 운행한다.
특이한 것은 버스회사가 받은 운송 수입금이 매일 쿠리티바도시공사의 은행계좌로 입금된다는 사실이다.
도시공사는 정확히 10일 안에 입금된 돈 가운데 요금관리 수수료 4%를 빼고 96%를 주행거리에 비례해 운송회사에 送金(송금)해 준다. 이를 통해 쿠리티바시는 적자노선을 없애고 서비스의 質(질)과 요금을 통제해 민간기업의 재정위험을 최소화하고 있다.
▲ 독일-교과서 물려주기
1년 동안 사용하면 버려지는 교과서와 참고서, 이것을 재활용하는 곳이 독일의 학교들이다.
환경大國(대국) 독일은 교과서 재활용을 자원절약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독일에서 교과서는 모두 無償(무상) 대여된다. 학기를 마친 학생은 매년 아래 학년에 교과서를 물려준다. 따라서 낙서를 하는 등 책을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가급적 깨끗하게 사용해서 후배가 공부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
책을 잃어버리거나 더럽히면 벌금을 내야 한다. 교과서 재활용은 같은 책을 계속 찍어내서 생기는 낭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 미국 뉴욕-특별지역지구제(Special Zoning)
특별지역지구제란 토지이용을 통제하기 위해 용도별 또는 용적별로 지역을 정해 토지별 건축을 규제하는 뉴욕시의 토지 규제제도다.
뉴욕시는 이 제도를 통해 도시의 구조, 景觀(경관), 교통 등을 통제하고 있다. 예컨대 1974년 만들어진 특별경관지구는 公共(공공)공원이나,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경관을 지켜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67년 극장의 보존과 건설을 위한 극장지구가 지정된 이후 30여 지구가 특별지역지구제도로 지정돼 규제를 받고 있다.
▲ 일본-‘이산화탄소 1㎏ 삭감’국민운동
일본에 이색적이면서 실용적인 환경 캠페인이 있다. 일본의 ‘1인 1일 이산화탄소(CO₂) 1㎏ 삭감’ 운동이다. 이산화탄소는 석탄·석유 같은 화석 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이 캠페인은 아베 전 총리가 2007년 5월 제안한 것이다. 1억2700만명의 일본인 모두가 하루 1㎏씩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은 캠페인 사이트에서 자세히 안내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에어컨 설정 온도를 26℃에서 28℃로 올리면 하루 83g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든다. 목욕탕의 샤워 틀어 놓는 시간을 하루 1분 줄이면 74g, 자동차 공회전을 5분 줄이면 63g, 집안 가전제품 대기 전력을 꺼 놓으면 65g 줄어든다.
▲ 독일 뮌헨-콜 어 바이크(Call a Bike)
자전거 도시 뮌헨에 가면 시내 어디에서든 자전거를 빌려 타고 어디에서나 반납할 수 있는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있다. 이른바 ‘콜 어 바이크(Call a Bike)’ 시스템이다.
이용자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면 자전거가 있는 장소와 인증암호를 알려준다. 이용자는 이 인증암호를 입력해 자전거를 사용한 뒤 반납하고 싶은 장소에 세우고 ‘자전거 반환(Return Bike)’을 선택해 자전거의 열쇠를 채우면 된다. 이용요금은 분 또는 시, 하루, 1주일 단위로 계산된다.
한국도 명품도시를 만들어야
세계 유명도시들의 성공사례를 분석한 필자의 저서 <명품도시의 탄생>. |
1995년 6월 27일 풀뿌리 민주주의로 일컬어지는 민선 자치단체장 시대가 한국에 개막된 지 14년을 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 한국에 풍-화-격의 3요소를 모두 갖춘 명품도시는 없다. 잠재력을 갖춘 도시가 몇 개 있을 뿐이다.
16개 시도를 포함한 전국 250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3곳은 재정자립도가 10%에도 못 미치고 215곳은 50% 미만이다. 명품도시의 출발점인 ‘잘사는 도시’,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도시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도시가 명품도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시별로 발달 정도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 都農(도농) 간 격차가 심한 사회는 ‘화’의 전략이 필요하고, 일자리가 부족한 도시는 ‘풍’의 전략을 펴야 한다. 볼품없는 도시, 삭막한 도시는 도시에 품격의 아름다움을 불어넣어야 한다.
한국의 도시들은 대부분 무계획적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풍-화-격의 3박자를 동시에 갖춰 나가는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이 주인이 되는 행정이다. 21세기는 수요자의 시대다. 한마디로 도시의 수요자인 시민이 원하는 행정을 구현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정치인과 공무원이 주인인 시대에 살고 있다. 때문에 공무원이 시민을 규제하고 통제한다. 대불공단의 ‘전봇대 민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민의 관점에서 시민이 주인인 행정을 실천해야 도시의 미래가 있다.
둘째, 주민의 참여정신이다. 명품도시들은 주민들이 불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도시를 재건시켰다. 이기주의를 넘어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는 주민들의 ‘혁신적인 思考(사고)’, 비전을 고려한 의사결정이 도시를 바꾼 것이다. 반면에 한국의 시민들은 반대만 있고 대안, 즉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셋째, 遠心力(원심력)과 求心力(구심력)의 발휘다. 명품도시는 돈과 상품, 인재의 소통이 원활한 도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에 돈과 상품, 인재가 몰리는 구심력 현상이 생기고 있다. 지방도시도 돈과 상품, 인재가 몰릴 수 있도록 도시의 매력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매력은 학교, 병원, 교통과 같은 도시 인프라는 물론 매력적인 세금제도와 같은 정책에서 비롯된다. 우리 도시가 다른 도시와 차별화할 수 있는 구심력은 무엇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원심력은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도시 안에서가 아니라 전 세계 무대에서 찾는 전략을 말한다. 전 세계의 자본과 인재를 우리 도시로 가져와 도시를 탈바꿈시키는 게 원심력이다. 이를 위해 도시는 글로벌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한국 도시가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넷째, 시 정부 리더의 소신이다. 도시의 지도자가 인기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도시 비전을 염두에 두고 사심없이 일해야 한다. 전 세계 명품도시의 지도자들은 단기적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수백 년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든 비전 창조자들이었다. 한국처럼 선거에 몰입하는 행정을 해서는 명품도시 건설은 요원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