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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과 나의 슈퍼스타?
신명기 6:4-5
양수경전도사
서론 [슈퍼스타]
박지성, 손연재, 빅뱅, 아이유, 싸이,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스타입니다.
그것도 슈퍼스타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누리는 인기와 아마도 몸값이라고 생각됩니다.
인기가 많을수록 브랜드 가치가 높아집니다.
2008년도의 자료를 보면 몸값의 1위는 동방신기였습니다.
무려 317억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또한 슈퍼스타의 몸값은 CF로도 나타나는데, 서태지의 경우는 1년에 1편당 약 20억 정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엄청나지요, 거기에 이들이 받는 선물들도 엄청납니다.
아마도 다 그런 아니겠지만, 팬클럽에서 회원들끼리 십시일반 모아 수천만원짜리 오토바이부터 명품까지.
이들은 거의 숭배의 대상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들여 팬미팅이나 콘서트에 참여합니다.
심지어 스케쥴 모두를 따라다니고 일거수 일투족을 보기 원하는 ‘사생팬’까지 있습니다.
잠도 자지 못하고 자신이 하던 일도 내버려두고 한번만 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쫓아다닙니다.
우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슈퍼스타를 경배하며 찬양하기에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슈퍼스타는 누구일까요?
우리가 이런 연예인들을 찬양하며 경배해야 할까요?
오늘은 정말 경배하고 예배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알아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가 어떤 자세로 예배하고 경배해야 하는지도 알아보기로 합시다.
슈퍼스타!
이런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이제 쉽게 여러분들도 스타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겨났지요.
이제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슈퍼스타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타들은 대중의 인기 때문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인기가 없어진다면,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 준다면 더 이상 스타가 아니겠지요.
오늘 모세가 고별설교를 하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이지요.
내가 먼저 보여준 사랑, 하나님께서 먼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보여준 사랑, 그것이 짝사랑이 되지 않도록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하나님과의 사랑의 현장에 참여합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나 이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주인공인데 더 이상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에서는 주인공이 아닌 카메오 출연진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예배의 출연진에 대해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이 연기할 주연배우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나 스스로가 카메오처럼 전락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삶에 하나님은 슈퍼스타이지 않습니다. 나와는 상관 없는 어쩌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 모릅니다.
더 이상 나의 열정을 불태울 수 없는 존재, 이제는 인기가 식어서 퇴물이 되어 버린 존재 그것이 우리가 지금 예배하고 있는 대상인 하나님입니다. 전혀 경배나 존경의 대상이 아닌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지요.
그래도 아직 하나님은 꿈을 꾸고 계십니다.
혹시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나요?
‘Dreams come true’라는 문구를 말이죠.
2002년 여름 한일 월드컵 때 우리 나라 응원석을 보면 이 문구를 적어 카드섹션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처음 16강을 오르고 기적적으로 8강에, 4강에 오르니 난리가 났지요.
‘Dreams come true’ 한국어로 말하면 뭔가요?
‘꿈은 이루어진다’
우리 한국이 결승전에 올리 우승을 기원하는 뜻에서 이런 카드 섹션을 했답니다.
우리 하나님도 언젠가는 나만이 경배와 사랑의 될 것이라는 꿈을 꾸고 계십니다.
나도 언젠가 너의 마음 한가운데 하나님만이 너의 슈퍼스타입니다라는 고백을 듣기를 원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정말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그렇게 미친 듯이 연예인을 스토킹하듯 따라다니는 팬들처럼, 어쩌면 하나님도 여러분의 관심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의 슈퍼스타!
누가 될까요?
크리스챤 청소년들에게 언제까지 슈퍼스타가, 박지성이나 김연아 같은 운동선수나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또 더 멋있는 스타가 나타나서 다른 아이돌로 옮겨가겠습니까?
영원한 나의 슈퍼스타가 없이 말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슈퍼스타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지금은 당장 여러분에게 가장 높은 위치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알아가기 위해 노력해 보세요.
그의 사랑의 콘서트인 이 예배 가운데 만나기 위해 노력해 보십시오.
많은 친구들이 무의미하게 여기거나 의식 없이 그저 예배에 참석했었다면
이제 여러분이 예배의 주인공이 되어 슈퍼스타 예수님과 합동 공연을 해 보십시오.
그 공연에는 이전과 다른 감사함과 감동과 능력과 회복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 예배회복]
느헤미야 8장을 보면 예배에 감격에 빠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솔로몬이 말년에 하나님 앞에서 잘못하는 바람에 왕국이 두 개로 분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북 왕국은 주전 721년에, 남 유다는 주전 587년에 멸망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 후 페르시아가(바사) 등장해서 소위 고레스 칙령이라는 것을 내리지요? 이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조서를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제1차 포로 귀환이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이루어지고, 2차로 에스라, 그리고 오늘 느헤미야에 의해 3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제1차 포로귀환을 이끈 스룹바벨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데, 솔로몬 성전보다는 조금 규모가 작은 소위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응당 성전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옳은데 왜 이들은 수문 앞 광장에 모였겠습니까? 바로, 이들은 그동안에 드렸던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예배의 개혁을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에 포로로 끌려가서 고생을 하니까, 이제 정신을 차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과감하게 성전 예배가 아닌 말씀으로의 회귀, 형식 중심이 아닌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고자 결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느헤미야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 개혁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실패 이유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실패했기 때문에, 인생에서도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대신 우상에게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더라도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 알맹이는 쏙 빠진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예배에 성공하면 됩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하고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도 실패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초보적인 마귀는 무조건 교회 못 가게 하고 핍박하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좀 더 영리한 마귀는 다릅니다. 좀 더 영리한 마귀는 한 단계 더 발전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게끔 하되, 알맹이를 쏙 빼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나가라. 그러나 마음은 주지 마라. 이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마귀는 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본질 없는 예배를 드리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배의 감격이 식어버리고, 예배를 통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특별히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린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1. 첫째로,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8장 1절을 보니까, 백성들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였는데,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재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말씀을 전할테니까 모이시오!” 가 아니라, “말씀을 제발 좀 전해주시오.” 하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특정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것도 일제히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어주는데, 3절 보니까 “백성들이 새벽부터 정오까지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더라” 이들에게는 말씀이 더 이상 지루하지 않습니다. 모든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자신들을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부터 정오에 이르기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갈급한 심정을 가지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2. 둘째로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있을 때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5절에 보니까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에이, 사람이 하는 말인데 뭐~, 전도사님이 전하는 말인데 뭐~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이기에 그 앞에서 앉아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경외감, 이런 경외감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고대세계에서 성경을 필사하던 사람들은 중간에 ‘하나님’이란 이름을 쓸 때면 반드시 몸을 씻고 옷을 정갈하게 하고난 후에야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만큼 말씀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세로 말씀을 들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하나씩 깨닫게 됩니다. 7-8절 말씀을 보니까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밤낮 읽어도 깨달음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읽었을 때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진다면, 그 때부터는 구구절절이 나에게 은혜로 다가옵니다. 아 내가 잘 못 살았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구나. 이런 탄식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쓴 소리로 다가올 때 나를 바꾸어야 하는데, 나를 안 바꾸고 교회를 바꾸어버립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후에 다 우는지라.” 9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기 시작합니다. 막 데굴데굴 구릅니다. 우리가 그동안 왜 이렇게 살았을까 탄식하면서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해 버립니다.(9:2) 우리 식으로 하면 세상 것이랑 결별해 버린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그들 가운데 떨어지니까 도저히 회개 안 하고는 못 베기는 겁니다. 이것이 복음의 힘입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백성들>
이 복음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말씀을 경외함으로 들을 때 우리 가운데 깨달음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 가운데 진정한 삶의 변화를 경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예배가 회복되면 진정한 기쁨이 넘칩니다.
9절 이하를 보니까, 말씀을 듣고 슬피 자복하며 울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느헤미야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12절을 보니까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밝히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자리에까지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잃어버렸던 예배의 감격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크게 즐거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쁨이 넘치는 이유가 바로 10절에서 밝히는 바, 여호와로 인하여 생기는 기쁨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예배의 본질이 회복되면, 회개의 자리를 지나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주 안에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이요 축복이 바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지 항상 웃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기쁜 사람은 웃을 수 있지만, 웃는다고 해서 다 기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기쁨을 줄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기쁨이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진정한 기쁨입니다. 우리 안에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 주십니다. 이 기쁨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힘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운데 예배의 감격이 식었습니까? 처음 그 열심을 잃어버렸습니까?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그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는 우리가 될 때,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찔림을 가지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예배의 회복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감격을 회복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권면합니다.
첫댓글 피피티 자료는 없나요?
용량이 커서 안올라가서 오늘 수정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학생부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항상 자료를 보고 재구성해서 아이들에게 전하는데 너무나 귀한자료입니다.
피피티를 잘못하는 저로써는 더욱더 감사하구요 좋은자료 공유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
넘좋은자료 퍼갑니다 우리교회중고등부를위해 용이하게쓰겠습니다. 감사감사^^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