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6·25사변이 들어있는 달이다. 가난의 상징 같은 보리밥과 보리고개. 어머니는 참혹했던 한국전쟁 이야기와 “배고픈 것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일제치하의 우리 농민들은 양식을 착취당하여 1년 동안 먹을 양식을 비축할 수 없었다.
가난한 농촌에서는 4~5월경이면 양식은 거의 없고 보리 수확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 시기를 보리고개라 한다.
춘궁기에 마을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 고사리·도라지·칡뿌리 등의 산나물이나 솔잎·송기를 땄다. 들에 나가서는 냉이·쑥·달래 등의 푸성귀를 뜯어다가 약간의 곡물을 섞어 죽을 끓여 겨우 굶주림을 면했다.
절반 굶다시피 하는 농가에서는 보리가 누릇누릇 익을락말락하면 베어다가 덜 여문 곡식을 쪄서 손으로 비벼가며 양식을 마련해야 했다.
그것이 햇보리쌀이다. 눈물겨운 곡식인 햇보리밥의 밥맛은 그래도 구수했다.
박목월의 글에는 ‘햇보리밥을 배불리 먹은 이웃집 가난한 아이들이 “우리 햇보리밥 먹었지!” 통통하게 부어오른 헛배를 쓰다듬어 보이며 자랑하던 정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보리고개를 회상하고 있다.
보리는 쌀에 비해 섬유성분이 5배나 많아 소화율은 낮으나 변비를 없애준다. 단백질은 많으나 단백가가 낮고 색도 거무튀튀하여 맛도 쌀만 못하다.
그러나 쌀에 비해 칼슘·철분·비타민B복합체가 다량 함유되어 당뇨병 환자에게 좋은 식품이다.
한방에서 보리는 오장을 튼튼히 하고 설사를 멎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며, 엿기름을 만들어 소화제로도 쓴다.
남부지방에서는 보리의 생산량이 많아 보리밥을 많이 먹었다. 쌀밥은 이밥이라고도 했는데 제사 때나 먹는 귀한 밥이기도 했다. 그래서 ‘제사 덕에 이밥’ 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도시락의 꽁보리밥이 부끄러워 밥 한 숟가락 뜨고 도시락뚜껑을 덮거나, 도시락을 가리고 밥을 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밥은 먹는 이에 따라 밥, 진지, 메, 수라 등으로 부른다. 진지(進支)는 밥의 높임말이고, 메는 제사 때 젯상에 올리는 밥이지만 궁중에서는 밥을 가리키는 말이다. 임금에 올리는 진지를 가리키는 수라는 고려말에 몽고에서 들어온 말이다.
맛있는 밥을 맛있게 짓는데는 쌀(종류, 분량, 건조도), 물, 솥, 불, 솜씨의 요소가 있어야한다.
밥을 맛있게 하는 요건의 하나는 쌀을 씻는 것이다. 쌀을 덜 씻어 안친다면, 밥맛이 무겁고, 쌀을 너무 깨끗이 씻으면 너무 맑고 뒤가 없다. 물 붓는 솜씨도 있어야 하는데 물은 화력(火力)에 비례한다.
압력솥이나 전기밥솥으로 밥짓기는 간편해졌지만 정성을 다한 가마솥밥과 누룽지, 구수한 숭늉의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달래뿌리 같이 허연 / 무주할머니 치마폭에선 / 늘 된장 냄새가 났다 / 봄이면 비둘기빛 새벽에 산으로 가서 / 노을녘에야 산나물을 이불짐 이듯 이고 와 / 머얼건 나물죽 한 그릇 먹기도 어렵던/ 당신의 보리고개 / 회약 먹은 듯 노랗던 / 배고팟던 날들을 얘기했었다.
확독에 보리쌀 갈아 지은 밥 / 밥바구리에 그득하게 퍼 놓아도 / 밥티도 주어 먹던 할머니… 탱자꽃 울타리 병풍처럼 두르고 / 보리밥도 달디달게 먹던 때가 그리운 날 / 봄탄다 탓하며 밥을 푼다 / 하얀 쌀밥을 푼다.
졸시 ‘밥을 푼다’중에서
먹는 것이 풍족해진 지금 많은 사람들은 향수와 건강을 위해 보리밥을 먹으러 간다.
푹 삶은 보리밥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거나 풋고추에 된장을 푹 찍어 먹는 맛이란 꿀맛이다.
잃어버린 시간의 아쉬움과 어머니를 향한 안쓰러운 그리움이 보리밥을 먹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