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일 (2014. 8. 14. 목요일) - 창밖의 바이칼 호수
열차 속에서의 잠자리인지라 일찍 눈이 뜨인다. 새벽이라 화장실도 한가롭다.
차창 밖 아침 풍경이 우리나라 초가을의 정취이다. 먼동이 떠오르는 광야에는 건초더미 위로 안개가 자욱하다.
모처럼 소떼 농장이 보인다. 이발이라도 한 듯 정갈한 초지에는 건초더미가 한가롭다. 한도 끝도 없는 초지 위에 어쩌다 보이는 농가는 망망대해의 일엽편주이다. 대체로 판잣집이다. 기나긴 겨울에 얼마나 추울지 걱정된다. 멀리서 보기에는 빈집이 많은 듯하다. 아마도 도시로 떠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던 날에는 철로 변에 빽빽한 자작나무 숲의 천지였는데, 하루 이틀 서쪽으로 오면서는 숲보다는 농장형태의 초지가 더 많이 보인다. 마을에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벽돌건물이 대부분이다. 먼 발짓에서 보기에 인적도 없고 회색빛 탄광촌 분위기이다.
휴재폰의 동영상 사진으로 차창 밖을 찍어본다. 그것이 그것, 변함없는 광활한 초지 일색이다. 모두가 이발된 단정한 모습이다.
[ 시베리아의 광활한 초지]
아침식사는 임양식 회원이 후원한 청정원 제품 '사골미역국밥'이다. 즉석 식품 중에서는 '누룽지'와 '사골미역국밥'이 호평을 받는다.
10시 04분(한국시간과 같다). 울라우테에 도착하다.
지나온 곳 중 가장 큰 도시이다. 이동하는 승객도 많다. 한국 같이 대형 아파트나 고층건물은 없지만, 역사 주변에 제법 큰 건물이 많이 보인다. 30분 정차이지만, 어제 사건을 계기로 15분 만에 모두 승차하다.
오늘 오전은 어제부터의 밀린 일기를 작성하다 보니 벌써 12시 반이다. 지루함을 걱정했는데 전혀 기우였음이다. 갑영 형은 오전 내내 창밖 구경에 열중이다. 오늘 점심은 2시라고 하니 한 시간 정도 창밖을 바라보자. 무심(無心)으로.
역을 출발한지 십여 분만에 바다 같이 큰 호수가 나온다. 와- 드디어, 바이칼 호수다.
창가에 나와 지평선도 아득한 바이칼의 망망대해를 우측으로 바라보며 열차는 달린다.
바이칼(Baikal)은 원주민 브리야트 어로 “Big Water”를 의미한다. ‘시베리아의 파란 눈동자’라는 별명이 딱 들어맞게끔 파란 물이다. 길이 636km, 폭 20-80km, 둘레 2,000km이며 한반도의 1/3 크기(경상남북도 합한 크기)이다. 깊이 1,630m이며 전 세계 담수 량의 20%를 차지한다.
[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식사 중 ]
14시 00분. 식당 칸에서 최고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바이칼을 창밖에 끼고서 열차 식당 칸을 통째로 차지하고 식사를 하다니- 영화에서나 볼 장면이 현실이다. 피자가 곁들인 돈가스지만 메뉴가 무엇인지는 관심대상도 아니다.
오늘의 세미나 특강은 문미나 선생님(임지락 회원의 사모님)의 시낭송과 한지공예 실습시간이다. 푸시킨의 시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의 낭송은 성우 수준이다. 본인이 준비해 온 재료를 나눠주며 실습을 한 '마츄로시카 인형' 한지공예는 회갑을 넘긴 나이에도 동심으로 열중했다. 1시간이 짧았다.
저녁에는 이르쿠츠크에서 이 열차와 작별해야한다. 한지공예 작품의 풀이 덜 말랐지만 서둘러 침대칸으로 돌아와 하차준비를 한다. 침실에 비치된 수건과 베개커버 이불 홋창 등을 반납하는 절차를 마치고 비상식량으로 저녁밥을 때운 후에 짐을 싸는 일이다. 이제는 정든 이 열차에서 내리는 것이 아쉽다. "누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지루하다고 했던가!!!"
6시 30분. 열차는 정시에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한다. 도시에 가까워지면서 철도변 집들이 아름답다. 시내에 들어서니 책에서 본 앙가라 강물이 보이고 주변에는 제법 고층건물들이 보인다. 앙가라 강은 바이칼 호수에서 유일하게 물이 흘러 나가는 강이다.
열차에서 내리자 30분간의 정차역임을 감안하여 열차를 배경으로 우리 일행은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역사에서 빠져나와 버스를 타니 5분 만에 호텔에 도착하다. 저녁 7:00. 제법 큰 호텔이다. 3박4일 간 열차 안에서 샤워를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발 한번 제대로 못 닦았는데, 호텔에 입실하자마자 샤워부터 하고 본다.
[ 이르쿠츠크 역 ]
첫댓글 여행기 잘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