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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산선사유적은 1991년 3월 18일자 충청일보에 의해 보도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곳이다.
발굴은 충남대학교박물관과 한국선사문화연구소에 의해 1991년 5월 초부터 9월 중순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결과 능선 정상부(61.8m)를 중심으로 동남쪽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유적이, 그 동쪽에 구석기시대 유적이, 북쪽의 낮은 언덕에서는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에 대한 보존대책이 논의되었으나 택지개발공사 진행중에 발견되었기에 원래 지형을 보존할 수 없었다. 발굴조사가 완료된 후 구릉의 일부는 깎여졌고, 청동기시대 집터는 인접 지역인 현 위치로 이전하여 선사유적공원/약수터로 조성되었다.
지금까지 갑천유역에서는 2곳에서 구석기 유적이 확인 되었다. 송강택지개발지구내에서 발견된 구즉동 구석기 유적과 둔산 구석기유적이다. 두 유적 모두 갑천변 높이 50m 가량 되는 지점의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은 모두 과거 어느 때 갑천 또는 갑천으로 유입되는 개천 들에 의해 퇴적된 점토층이다. 지금까지 갑천유역에서 는 2곳에서 구석기 유적이 확인 되었다. 송강택지개발지구내에서 발견된 구즉동 구석기 유적과 둔산 구석기유적이다.
두 유적 모두 갑천변 높이 50m 가량 되는 지점의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은 모두 과거 어느 때 갑천 또는 갑천으로 유입되는 개천 들에 의해 퇴적된 점토층이다. 이런 유물의 내용은 신석기시대와는 많이 달라진 것으로 우선 돌칼이 눈에 뛴다. 신석기 유적에서는 아직 무기류가 나온 예가 없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각 유적에서 보편적으로 돌칼과 같은 무기류가 출토되고 있어 그만큼 집단간에 마찰이나 갈등이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이는 본격적인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생산물이 남게 되었고, 이것은 점차 세대공동체나 가부장적 세대공동체 등의 개별 집단 사유재산으로 축적되었다. 그러면서 소유에 대한 갈등과 같은 사회현상에 서 일어난 것으로 이해된다.
* 둔산선사유적지의 의의 *
둔산선사유적지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한곳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물이 한꺼번에 발견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며, 이곳 갑천(甲川) 유역이 얕은 구릉과 넓은 농토,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선사시대부터 많은 인류가 생활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부근의 괴정동 청동기유적, 석장리 구석기유적 등과 함께 이 지방의 선사문화의 갈래와 계통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움막집 : 둔산 선사시대인들의 원시적인 농경을 알 수 있으며 집자리 규모가 비교적 소형일뿐만 아니라 집자리 안에는 화덕시설도 없다. 이는 난방용 화덕이 필요치 않은 시기의 계절적인 주거일 가능성이 높다.
대전광역시 서구 문화축제관광 역사탐방 참조
이하, 대전문화유산울림 사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