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온돌과 아랫목 문화>/구연식
날씨가 차갑고 마음이 쓸쓸해지면 우리네 가족들의 정이 듬뿍하여 모든 것을 녹여주며 안아주던 아랫목의 온돌을 떠올리게 한다. 아랫목은 우리 민족의 따뜻하고 정감이 있는 온돌문화를 대표하는 단어이다. 하루 세끼 때면 어김없이 아궁이에서 지핀 불이 굴뚝에서 생명체의 기지개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그 가정의 생동감과 평온 그리고 오붓함을 한 눈으로 보는 풍경화의 한 폭이다.
‘온돌溫突’에 관한 정의의 보면, 방바닥에 불을 때서 구들장을 뜨겁게 난방을 하는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온돌의 순우리말은 ‘구들’이었는데 조선 시대에 비로소 ‘구들’이 한자어로는 ‘온돌溫突’이란 단어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예전의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아이를 낳고 아랫목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아랫목에서 자라고 생활을 하다가 아랫목에서 임종했다. 공식적 교육기관이 없었던 전통사회에서 우리네 가정은 안방의 ‘밥상머리 교육. 이 전부였고 온 가족이 대화의 장소는 아랫목에서 이루어졌다. 그 시절은 가정불화나 청소년 문제 등 사회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서적 자궁은 아랫목의 온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로부터 일본은 온천, 핀란드는 사우나, 우리는 온돌로 겨울을 났다. 아궁이 불은 땅속의 개미와 쥐들을 쫓아서 주택을 보존했고, 굴뚝의 연기가 땅바닥으로 빠져나오니 너무 뜨겁지 않으면서 마당의 나무와 흙집을 소독하고 모기 등 각종 벌레를 퇴치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았다. 우리의 온돌은 불이 꺼진 후에도 열기를 간직한 인류 최초의 축열 난방설비蓄熱暖房設備였다. 인류의 주거문화에서 독창성과 과학성을 갖춘 온돌은 조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하고 최상의 열효율을 얻을 수 있어 우리 민족 주택문화의 쾌거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정서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융합성을 갖춘 초가삼간이 소박한 삶의 보금자리였는가 싶다.
스마트 폰을 들고 이어폰을 꽂고 디지털 유목민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다. 앉은자리에서 세계와 실시간적으로 교류하고 화상으로 시공을 뛰어넘는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문득 혼자인 자신을 자각할 때가 있다. 대화도 단절되고 소통도 단절된 일인 만능주의 시대에 엄습하는 그 깊은 망연자실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면서 무의식 중에 느끼는 단절감 고독감 소외감도 바로 온돌로 따뜻하게 데워진 아랫목에 발을 묻고 오순도순 지내던 가족문화의 흔적이 사라지게 된 데서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시골에 나의 생가는 5칸 집으로 조금 큰 집이었다. 그래서 온돌 아궁이는 사랑방까지 3개나 있어서 겨울에는 군불 때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에 따른 땔감 준비도 겨우살이 준비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다가 땔감 준비와 군불 때는 일이 번거로워 사랑방 하나만 아궁이식 온돌이고 나머지는 석유 보일러로 교체했다.
우리 형제는 7남매이다. 추운 겨울날에는 아랫목 온돌이 식지 않도록 작은 포대기를 깔아 놓았다. 그래서 언제나 따뜻하여 7남매는 포대기에 발을 넣고 꼼지락거리면서 어머니가 쪄주신 고구마를 먹는 것이 일상적인 즐거움이었다. 음력 섣달이면 설을 쇠기 위하여 청국장을 발효시킬 청국장 항아리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랫목을 차지하여 밉기도 했다. 윗목에는 콩나물시루가 검은 보자기를 쓰고 어머니가 주는 물을 맛있게 받아먹으면서 노란 콩나물 머리가 하룻밤만 자고 나면 고개를 쑥쑥 밀고 올라온다.
그 시절은 물질이 넉넉하여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가족의 정情속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문화였다. TV도 스마트 폰도 이어폰도 없어도 부모님이 살아계셨고 7남매의 우애가 아랫목의 온돌처럼 식지 않았으며 이불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굴뚝의 하얀 연기를 타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7남매는 모두 결혼하여 이제는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흩어져 살고 있다. 손에 든 것은 가난해도 아랫목 가족들의 따뜻한 정으로 버무려진 화목이 있었기에 언제나 마음은 부자로 살았다.
고향 집도 군불 때기가 불편하여 석유 보일러 온돌로 교체하여 마지막 사랑방 하나만 아궁이를 그대로 보존하더니, 살고 있는 동생은 그것도 불편하다고 집 전체를 석유 보일러 온돌로 교체해 버렸다. 그래서 정감 있는 굴뚝 연기도 불 때면 앞자락을 따뜻하게 데워주며 아궁이 잿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던 마지막 아궁이도 사라졌다. 가마솥 숯 검댕과 푸성귀 물감이 너덜너덜 얼룩져 찌든 어머니의 행주치마 냄새가 그리도 좋았던 부엌도 볼 수 없다. 동생은 농촌이라 땔감이 많아 가마솥 화덕을 마당 구석에 만들어 놓았다. 김장철에는 김장 젓갈 다리기와 메주를 쑤기 위하여 콩을 삶을 때는 옛날 가마솥 화덕을 사용한다. 그럴 봐야 사랑방 하나쯤은 아궁이를 살려놓지! 하며 가마솥 화덕을 볼 때마다 푸념이 나온다. 석유 보일러 온돌은 편리하고 열효율도 높지만, 나이 든 것도 서러운데 소싯적 추억마저 지워버리는 것 같아 그것이 애잔할 뿐이다.
사람이 사는 공간은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해야 한다. 사람들의 온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서슴없이 올 수 있는 거처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는 초가 3칸 온돌 집을 짓고 고향에 살고 싶다. 그랬더니 아내가 극구 반대한다. 그렇게 지어서 당신은 만족하며 살 수 있어도 먼 훗날 우리 부부가 모두 떠나고 나면 어느 누가 우리 뜻 이어 살 사람 아무도 없고 모두 다 방치하여 흉물로 남으면 두고두고 손가락질 거리로 남는단다. 나 혼자 살자고 자손과 남들한테 눈살 찌푸리는 삶이 발목을 잡는다. 온돌과 아랫목은 가슴에만 담고 살아야 할 것 같다. (202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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