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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씨지(Assisi) 역에 내린 것은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는 낮 12시가 좀 넘었을 때였다. 걸어서 시내까지 가기는 힘들다는 가이드북의 조언이 있었는지라 우리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10분 쯤 후에 아씨지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태리 움브리아 지방의 산악도시 아씨지. 사실 볼 것 많은 이태리에서 이 곳 아씨지까지 오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유럽에 오기 전 여행 루트를 짜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이태리의 여행지를 소개할 때에 마치 요리의 양념처럼 빼놓으면 무척 섭섭한,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소개되고 있던 곳이 바로 이 '아씨지'였다. 로마는 추천 안해도(워낙 유명한 탓도 있었겠지만) 아씨지는 '강추'하고 있었다, 우리의 여행 선배들은. 그러니 어찌 우리가 그런 도시를 빼놓을 수 있었겠는가.
또한 죠셉과 나는 정형화된 여행 루트 보다는 비록 규모가 작고 유명하지 않더라도 특이하고 남들이 잘 찾지 않는 곳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결국 남들 다보는 '진실의 입'은 못보았어도 별로 유명하지 않은 '칭꿰떼레'같은 곳은 다녀오고 말았지 않았던가). 그런 우리에게 아씨지는 정말 좋은 볼거리가 될 것만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 올라가니 너른 대리석 광장과 함께 거대한 성당이 우리를 압도한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었다. 이 곳 아씨지는 우리가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핑크색 돌로 모든 건물과 광장을 짓고 있었는데 이 성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당의 전경과 넓다란 광장의 모습
성당 앞 광장 곁에 나란히 서있는 열주식 통로의 모습
성당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바라본 움브리아 평야의 모습.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과 나무들과 바둑판같은 농경지가 아기자기하다.
바싹 말라있는 것같은 느낌의 이태리 중부의 도시, 아씨지(Assisi).
성당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과 돌의 빛깔에 넋을 잃고 한참을 사진을 찍다가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여성들이 교회 입구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말투로 보아 미국에서 온듯한 그녀들은 반바지를 입고 있다는 이유로 성당 입장을 거부당했고, 마침내 어디서 구했는지 망사 쇼올 같은 것으로 몸을 가려보고 애쓰고 있던 중이었다. 가만 보니 성당 입구에 늙은 경비원이 서서 사람들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들 중 금발머리를 포니테일로 뒤에서 하나로 질끈 묶고 은빛으로 반사되는 최신 고글형 선글라스를 낀 그녀는, 가로 세로로 쇼올을 돌려가며 시원스레 드러난 핫팬츠 차림의 각선미를 가리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기장이 짧아 뜻대로 되지 않자 참고 있던 화가 마침내 폭발하여 버럭 성질을 내며 성당 앞마당을 박차고 가버렸다. 당당하고 콧대 높아 보이는 그녀에게는 성당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도, 그리고 6월 한낮의 땡볕도 너무 가혹했을 것이었다, 감정을 다스리기에는.
성당의 아름다운 조각장식 창.
성당 뒤의 부속 건물의 모습
아름다운 아치형 열주의 모습
성당 뒷편 건물을 둘러보다 발견한 특이한 조각상. 영화 '반지의 제왕'의 골룸과 비슷한 듯 하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나서서 만만치 않은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우리는 귀국 때 가지고 돌아갈 기념품을 고르기로 했다. 그동안 여러 여행지를 거치면서도 기념품을 거의 구입하지 않은 것은 중량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여행 초부터 이것저것 사 모을 수가 없어 아무 것도 사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었다. 그런데 이제 기념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뜻했다. 실제로 우리는 아씨지 여행을 마치면 다음날 오후 기차로 그리스로 넘어갈 페리를 타기 위해 이태리 동부 해안의 작은 도시 바리로 이동할 것이었다.
이렇게 걸어 올라가서...
대니는 아씨지의 소박한 모습을 담은 작은 도자기 벽걸이를 하나 구입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정말 아기자기한 벽의 화분장식. 저런 화분이 하나하나 모여 아씨지에 관광객을 세계로부터 불러들이고 있었다.
움브리아 평야지대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골목길. 가로등과 어우리진 모습이 무척이나 분위기 있다.
한 컷 더.
프란세스코 성인의 그라피티. 지금까지 유럽에서 본 그라피티 중 가장 종교적이고 성(聖)스러운 것. 프란세스코 성인의 도시다운 면모였다.
아씨지의 중심지인 꼬무네 광장에는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산타 키아라(Santa Chiara)성당의 모습. 1997년의 움브리아 지방 대지진때 파괴가 되어 당시까지도 복구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산타 키아라는 산타 클라라의 다른 이름으로 그녀는 프란체스코를 존경하여 평생 독신으로 그를 보필하였던 인물이라고 한다. 성당의 지하에는 그녀의 머리카락, 유품 등이 보존되어 있었다.
산타 키아라 성당을 등지고 바라본 다른 편 아씨지의 모습.
조금 떨어져 바라본 산타 키아라 성당의 모습.
아름다운 움브리아 평야의 모습. 한가로운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이다.
올려다본 로까 마죠레(Rocca Maggiore)의 모습. 로마시대에 지어진 성으로 14세기에 재건되었으며 아씨지 시내를 내려다 보는 조망이 일품이라고 한다. 우리도 로까 마죠레 오르는 길을 찾아 헤메었으나 정작 길은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정신이 팔려 사진을 찍다가 시간에 쫓겨 못올라가고 말았다. 대략 2시간에 한 대 정도 있는 로마행 기차가 우리의 일정을 압박해왔기 때문이었다.
The skyline of Assisi.
Assisi Silhouette.
아씨지 시내를 쏘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4시가 넘자 허겁지겁 로마로 돌아가기 위해 아랫쪽에 있는 마떼오띠 광장(Piazza Matteotti)으로 내려왔다. 사진은 광장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는 주택의 모습. 산악지형이라 집들도 층층이 자리하고 있다.
금방 올거라던 버스는 20분 이상 기다려서 탈 수 있었고 우리가 원했던 4시 반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헐레벌떡 플랫폼에 들어서 보니 방향이 모호한 기차 한대가 막 출발하려는 찰나였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놓치면 후회가 더 클거라며 열차에 오르고 말았는데 결론적으로 우리가 가야하는 방향의 반대방향 열차였다(늘 순간적인 선택을 하면 원하는 결과의 반대로만 나오는 것일까?). 어느 이름 모를 역에 내려 한참을 기다려 반대편으로 가는 열차를 다시 잡아타고 로마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본 아씨지 근교의 옥수수 밭.
죠셉과 대니의 아씨지 여행기 끝.
*다음에는 이태리 여행을 거의 마치고 로마 관광을 한 후 이태리 동부의 바리로 이동하는 죠셉과 대니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스로 이동하기 위해 배를 타러 바리에 간 죠셉과 대니는 열차에서 내려 뜻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럼 죠셉과 대니의 굿바이 이탈리아 편에도 많은 기대 부탁드리며 그럼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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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ny Kravitz - It ain't over 'til it's over
첫댓글 여행기의 음악을 giggs님께.
와~ 정말 아씨지 너무 멋있어요^^ 이번에 크로아티아에서 넘어오는 배편에 여유가 있으면 들르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죠...ㅠㅠ 간만에 보는 여행기 너무 반가워요^^
파란 하늘이 너무 좋아보이는 도시인듯허네여....
휴가때 시간이 안 되어서 몬 들린 곳이네여,,,아기자기한게 이쁜 동네군요,,,,^^
아버지 세례명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어머니 세례명이 글라라에요...원래 올 여름에 갈려고 했었는데 이태리를 아예 빼는 바람에 못갔지만~~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근데 인물 사진 왜 없어요?
그르네요.. 인물사진이 없는 듯.. ^-^ 풍경사진이 멋지네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올라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의 뒷모습 나온 분이 조셉님이신가요?? ^^;
풀몬티 님 정확. 걸어올라가는 게 죠셉 맞습니다. 스프라잇 네는 그야말로 성가정이네. ^^
헉, 그럼 죠셉님의 머리가 저렇게 크고 다리가 저렇게 짧단 말인가요? 다시 보러가야겠다
막바지로 향해가는건가요? 이 여행기?.... 차분한 맘으로 사진과함께 다시 한번 봐야겠어여..... 글구 스프야.. 넌 여행기 마저 안올려?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연한 빛의 사진을 보니 참 좋네요. 2003년 1월에 이태리에 갔을 때 이곳을 가보지 못했는데, 다음에는 꼭 가봐야겠어요.
피비 언니...조셉님의 다리가 짧은게 아니라 셔츠가 길어서 롱허리로 보이는걸테고 머리가 큰게 아니라 이발을 못해준 탓에 머리카락이 길어서 그런걸거에요...조셉님의 얼굴이 크고 다리가 짧을리가 절대 없어요..
ㅋㅋㅋ나도 리풀보고 다시 가보고 확인했는디 스프말에 백프로 동감..ㅋㅋ절대그럴일이없지..
ㅎㅎ 내가 사진을 잘못 골랐나보군.
정말 이번 겨울에 집에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직접 가보고 싶네요~~~이야~~~~~~~~~~~~~~~~~~
직접 가보세염. 백만원만 있으면 갈 수있고, 50만원만 있으면 일주일 버틸 수 있는데.
그날이 나두 오겠죠...........................아싸~!!
우선, 인사부터 너무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아씨시 정말 아름답고 한가로운 곳이죠, 개인적으로 유럽 여행 중 본 성당 중에서 두번 째로 마음에 들었던 성 프란체스코 성당, 다시 그때의 여유로움 속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진실의 입..별로 볼꺼 없어요... 여기가 백배 더 좋은걸요?? ^^ 오빠 사진이..이탈리아 특유의 햇살이 느껴져서 잠시 여행속으로 빠져보았습니다... 글솜씨가 갈수록 장난이 아니걸요?? 죽여요~~~
소년님의 담번 여행기도 넘 기다려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