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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독일어: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며, 한때에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었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출생.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고,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아버지는 법률가이며 제실고문관(帝室顧問官)으로서 엄격한 성격이었으며, 시장(市長)의 딸인 어머니는 명랑하고 상냥하여 아들의 좋은 이해자였다. 7년전쟁(1756∼1763) 때에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평화롭고 부유했던 괴테의 집도 프랑스 민정장관(民政長官)의 숙사(宿舍)가 되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계획 역시 중단되었으나, 괴테는 자유롭게 프랑스의 문화에 접할 기회를 얻었으며, 15세 때 그레트헨과의 첫사랑을 경험하였다.
1765년에 라이프치히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내다가, 1768년 각혈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하였다. 그 무렵에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鍊金術)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머니의 친구인 크레텐베르크의 감화로 경건파(敬虔派)의 신앙에 접근하였다. 그녀는 후일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의 모델이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머무르면서 J.G. 헤르더를 알게 되어 종래의 로코코 취미의 문학관은 철저히 분쇄당하고,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 감정의 순수성에 시의 본질을 구하려는 노력이 《들장미》의 가작(佳作)을 낳게 하였다.
이 무렵 근처 마을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목가적(牧歌的)인 사랑을 하였고 약혼까지 하였으나, 결국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하였다. 그 후 회한(悔恨)과 마음의 부담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겪은 내적 체험이 훗날 그의 시의 주제가 되었다.
1771년 변호사가 되어 고향에서 변호사업을 개업하였고, 1772년에는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 때 샬로테 부프와의 비련(悲戀)을 겪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1774)을 썼는데, 이 작품으로 일약 문단에서 이름을 떨쳤고, 독일적 개성해방(個性解放)의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1775년에 바이마르 공국의 젊은 대공(大公)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서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國政)에 참여하였다. 이 동안 그는 정치적으로 치적(治積)을 쌓는 한편, 지질학·광물학을 비롯하여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1784년, 동물에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던 간악골(間顎骨)을 발견하여(죽기 1년 전에 학회에서 인정되었음) 비교해부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무렵 괴테는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 12년에 걸친 연애를 하여, 부인으로부터 인간적 및 예술적 완성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1786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남으로써 부인과의 애정관계는 끝을 맺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업하는 화가로서의 생활을 보내면서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 《에그몬트 Egmont》(1787) 등을 써서 슈타인 부인에게 바쳤다.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전주의로의 지향(志向)을 결정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1788년에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조화업(造花業)을 하는 가난한 집안의 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하면서(정식 결혼은 l806년), 비로소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 무렵에 그는 시인과 궁정인의 갈등을 그린 희곡 《타소 Torquato Tasso》(1789)와, 관능의 기쁨을 노래한 《로마 애가(哀歌)》(1790)를 발표하였다. 과학논문 《식물변태론(植物變態論)》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1791년에는 궁정극장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 때부터 고전주의 연극활동이 시작되었다.
한편, 1789년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격동은 바이마르 공국도 휩쓸게 되어, 1792년에 괴테는 아우구스트 대공을 따라 프랑스로 종군하였다. 1794년부터 그는 J.C.F. Von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Horen)》에 협력하여 굳은 우정을 맺었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실재(實在: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이 우정은 l805년에 실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10년 남짓한 시기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Faust)》의 재착수,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徒弟) 시절(Wilhelm Meisters Lehrjahre)》(1796)의 완성,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Hermann und Dorothea)》(1797)의 발표 등, ‘현재에서의 완성을 지향하는’ 독일 고전주의는 여기서 확립되었다.
1797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만년의 문학작품으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Wilhelm Meisters Wanderjahre)》(1829)와 《파우스트》의 완성이 최고봉을 이룬다. 전자(前者)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묘사한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後者)는 한 인간의 생애가 전인류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엄한 드라마이다. 《파우스트》는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걸작의 하나이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였던 괴테는 만년에도 세 차례의 연애를 체험하였다.
그 하나는 미나 헤르츨리프와의 사랑으로서, 이 소녀를 모델로 하여 소설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1809)을 썼다. 또 하나는 아내 불피우스가 죽은 뒤에 알게 된 빌레머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Westöstlicher Divan)》(19)이 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괴테는 마리엔바더로 피서여행을 갔다가 74세의 노령으로 19세의 처녀 우를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랑은 거절되었으나, 그 연모의 정이 시집 《마리엔바더의 비가》(1823)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만년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1829)과 자서전인 《시와 진실(Dichtung und Wahrheit)》(1833) 등이 있다.
또한 그의 광학(光學) 연구의 결정인 《색채론(Zur Farbenlehre)》이 1810년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뉴턴의 이론에 대한 잘못된 비판이 들어 있어 순학문적인 견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탁월한 관찰과 견해가 많이 보이고 있다. 괴테는 문학작품이나 자연연구에 있어서, 신(神)과 세계를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세계관을 전개하였으며, 그의 종교관은 범신론적 경향이 뚜렷하지만, 복음서의 윤리에는 깊은 존경을 표시하였다.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괴테사진과 간판이 걸린 건물이 사무소 그 왼쪽 건물이 괴테의 생가>
괴테의 문학과 인간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시인, 극작가
1. 개요
독일의 대표적인 시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자유시에서 유서 깊은 명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832년 3월 22일 바이마르에서 뜻깊은 일생을 끝마쳤다. 25세 때 발표된 그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문제작이었다. 그보다 앞서 그는 슈트라스부르크, 라이프찌히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때마침 불어닥친 젊은 혈기의 문학운동 〈슈투름 운트 드랑〉에 휩쓸려서 새로운 문단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후 그는 바이마르 공국으로 초빙되어 국정에 참여하였고 국력배양과 국민복지를 위하여 근 10년 동안 다방면에 걸쳐 활약했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그의 문학 및 예술관에는 일대전환이 이루어졌다. 즉, 어두운 충동과 정열과잉의 시인으로부터 그는 밝고 우아한 고전적인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괴테는 《식물변형론》등 자연과학의 업적도 크지만, 시·소설·희곡 등 문학의 각 분야에서 놀랄 만큼 좋은 작품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빌헤름 마이스터(Wilhelm Meister)》 《친화력(Die Walverwandtschaften)》 《서동시집(Der West Meister)》등은 높은 예술성과 깊은 사상성으로 후세에까지 매우 높이 평가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가 긴 일생을 두고 자신의 온갖 경험과 사상을 한 작품 속에 쏟아넣은 비극 《파우스트(Faust)》야말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것이다.
2. 청년 괴테와 질풍노도
젊은 괴테가 최초로 접촉을 가지게 된 당시의 독일문단은 계몽주의의 일색이었다. 더구나 고도로 발달한 프랑스 고전주의의 영향이, 독일에서는 공허한 형식미와 미사여구를 논하는 기교로 변모하고 있었다. 여기서 시대적인 발달로서, 과거의 무미건조한 형식과 외면적 도덕률을 타파하고 진실로 독일적인 생명과 인간 감정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시대정신는 이제 합리주의에서 비합리주의로, 섭리의 질서에서 파괴적 카오스로, 프랑스적 고전 비극에서 셰익스피어적 성격 비극의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같은 질풍노도 운동이 독일 문단에서 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젊은 괴테와 헤르더의 우연한 해후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헤르더는 마침 파리 여행을 마치고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눈 수술을 받기 위해 체류하고 있었는데, 21세기의 괴테는 그곳 대학에 유학하고 있으면서, 5년 선배인 그를 자주 방문하여 담소했었다. 그때 헤르더의 자유분방한 정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괴테에게로 전파되었고, 그의 독창적이고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후일 괴테에게서 시적 표현으로 결실될 소지가 되었던 것이며 자연히 인간 감정의 심연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된 문학의 본질을 암시 받게 되었다. 그래서 문학의 전형으로서도 성서, 민요, 오시 안의 시, 호메로스,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이 지적되었고 프랑스적인 형식의 세련보다도 한층 근원적이고 소박한 요소가 강조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일문학이 독일의 민족성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당시의 괴테의 시에서는 소박하고 신선한 자연감각이 넘쳐흐른다. 모든 기교로부터 벗어나서 청순하고 솔직한 감정이 대자연가 융합되어서 그대로 토로되고 있다.
자연은 어쩌면 저렇게도 화려하고,
나를 향해서 빛나는 것일까!
태양은 저렇게 번쩍이고
풀밭은 저렇게 다정한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의 감각에도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진실한 행복과 보람이 나타난다. 그리고 괴테는 자신의 각 시기에 따라서 항상 이상적인 여성이 마련되었던 행운의 사나이였다.
어느 날 괴테가 슈트라스부르크의 교외, 제젠하임으로 소풍을 갔을 때 그 마을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를 보고, 그녀의 청순하고 목가적인 아름다움에 반했다.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감미로운 사랑을 속삭일 수 있었던 괴테는 그때 연속적으로 〈프리데리케〉의 노래를 작시하였으며, 서정시인으로서의 괴테가 이때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물론 그의 라이프찌히 시대의 장식적인 아나크레온류의 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풍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괴테의 사랑은 먼젓번의 케첸에 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불붙는 열광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약 1년간의 교제 후에는 그녀를 버리고 훌쩍 떠나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괴테의 두 번째의 도주인데, 그때그때의 여성으로부터 최대의 것을 섭취한 다음에는 자신의 보다 높은 비약을 위해서 매번 그 여성들을 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그처럼 위대한 시인을 탄생시키기 위해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만 도덕적으로 그가 나중까지 비난받게 된 동기가 되었으며, 자신도 양심에 크게 가책을 느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직후에 집필된 희곡작품 《괴츠》에는, 바이슬링겐이 충실한 약혼녀 마리아를 버리고 요부 아델하이트의 미색에 탐닉한 나머지 끝내 부하에게 독살 당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다분히 괴테 자신의 자책의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작품은 또한 괴테의 질풍노도적인 요소를 가장 강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사회적 예술적 전통에 대한 대담한 반항, 자연으로 향하는 뜨거운 정열, 문학의 형식과 법칙을 벗어나는 분방한 태도 등이라 하겠다.
그 1년 후에 발행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전작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그 결함과 무리를 다분히 극복한 괴테 최초의 성공작이다. 단순한 성공작이라기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젊은이들의 가슴에 충격을 갖다주어서 독서층을 감격의 소용돌이 속에 빠뜨린 문제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릴리와의 약혼
괴테가 릴리라고 불렀던 16세의 아름다운 이 처녀는 부유한 은행가의 딸로, 본명은 엘리자베드 쇠네만이라고 하였다. 26세의 괴테는 그 소녀와 사귄 지 불과 3개월만에 정식으로 약혼까지 하였으나 끝내 결혼에는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대체로 괴테의 여성에 대한 사랑은 매우 헌신적이었으며, 사랑을 할 때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바쳐 열렬히 사랑하는 그런 태도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릴리에 대한 사랑은 매우 열렬하였다. 그런데도 괴테는 약혼한 지 한 달도 채 못돼서 후회를 한다. 그 당시 헤르더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들어 있다. '자유를 동경하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가정이라는 행복의 항구로 가까이 가려는 생활의 배를 다시금 먼바다로 밀어냅니다.' 요컨대 그의 천부의 〈시〉정신은 결혼이라는 기반에 얽매이게 되는 것을 방해하였던 모양이며 그때 마침 기회가 있어 친구를 따라 스위스 여행을 떠났으니 그것이 말하자면 괴테의 여성으로부터의 제 4의 도주가 되었던 것이다. (제 3의 도주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계기가 되었던 여성임.) 그러나 릴리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였으며 괴테는 스위스에 가서도 끝내 그녀를 잊지 못하였고, 그녀 역시 괴테를 열렬히 사랑하여 '만일 이 나라에서 결혼하기 어렵거든 저를 미국이든 어디든 데려가 주세요' 하고 애원까지 하였다 한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악의 경치에 감탄하면서 괴테는 끝내 릴리를 잊지 못한다.
그리운 릴리여, 그대를 사랑하지 않았던들
아름다운 이 경치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는가.
그러나 만약에 내가, 릴리여, 그대를 사랑하지 않았던들
내가 행복을 대체 어디서 발견했을 것인가.
<산상에서>
바이마르 행과 슈타인 부인
괴테가 바이마르 공국의 영주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을 받고 궁정에 도착한 것이 1775년 10월이었으니 나이 26세의 젊은이였다. 잠시 체류한 후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던 것이, 자기의 일생을 거기서 바치게끔 된 것은 공작의 극진한 대접과 지우에도 기인하지만, 후일 독일문화의 황금시대가 거기서 이룩될 것 같은 패기와 예술적 분위기를 민감한 괴테가 이미 직감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과연 바이마르는 괴테를 중심으로 하여 독일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문화적 융성을 이룩하였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후진국이던 독일이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마르 체류 중 괴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그곳의 기라성 같던 시인이나 음악가 또는 철학자들이 아니고 슈타인 부인이란 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바이마르 체류 이후 10년간 괴테는 그 부인에게 정열을 쏟았으며, 그 시기의 괴테의 눈부신 활동 또한 슈타인 부인의 영향이 컸었다. 그녀는 괴테의 넘쳐흐르는 정열을 교묘히 진정시키면서 그의 타고난 재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게끔 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녀의 여성적인 우아하고 품위 있는 정신은 괴테의 거친 질풍노도를 극복하여 높은 고전주의에로의 발전을 이룩하는 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이었다.
3. 독일 고전주의와 괴테
독일 고전주의는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과 직결된다. 괴테는 자신의 말과 같이 〈이탈리아에서 다시 태어난〉것이었다. 괴테가 슈타인 부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버린 것은 부인에게 결정적인 감정의 타격을 주었지만 괴테에게는 오히려 〈감정의 인간〉으로부터 〈눈의 인간〉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즉 젊은 괴테에게 절도의 안정과 명랑성을 주려고 노력한 슈타인 부인의 교양의 목표가, 오히려 그녀로부터 도피해간 이탈리아에서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괴테에게 이탈리아는 결코 낯선 나라는 아니었으며, 이미 오래 전부터 동경하여 왔고, 또한 기대하였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가서의 여러 가지 체험과 고대 미술품에 대한 감상은 그에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바이마르에서의 불안과 초조는 말끔히 가시었고 정신의 안정과 균형이 다시 이루어졌으며, 맑은 남국의 하늘처럼 너그럽고 명랑한 분위기와 심정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오시안이나 셰익스피어를 대신하여, 고대 로마나 빈켈만이 그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지금껏 정체되었던 그의 문학활동은 새로운 고전적의적 정신 하에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괴테의 고전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은 역시 그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완성된 비극《이피게니에(Iphigenie)》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의 유명한 유리피데스의 원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형식과 내용이 모두 고전적이다. 그러나 괴테는 단순한 그리스 비극에서 진실로 독일적인 심령극을 창조해내고 있다. 여기서 여주인공 이피게니에의 고귀한 인간성이 구제의 열쇠가 되며(그리스 비극에서는 그렇지 않다), 제재가 그리스 것이긴 하지만 내용의 사상은 기독교적이며 괴테 특유의 휴머니즘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독일 고전주의의 특색이 담겨 있다. 괴테가 이탈리아를 찬미하고 고대예술에 심취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그저 단순히 모방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독일적이며 자기 자신의 특성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여성상으로서 이피게니에가 슈타인 부인의 면모를 띠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괴테는 슈타인 부인으로부터 도주하여(제 5의 도주) 오히려 그녀의 고귀한 본질을 구상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괴테에게는 언제나 우아한 여성의 힘에 의해 거친 남성의 격정이 진정되고 보다 높은 교양의 경지로 향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전주의 시대를 괴테의 일생에 있어서의 시대구분으로 본다면 그것은 괴테의 청춘시대였던 <질풍노도>와 그의 만년에 해당하는 낭만시대의 중간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질풍적인 광란에 대하여는 온순과 우아를, 낭만의 자유 분방한 공상에 대해서는 양식 적인 균형의 미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원리적인 관찰이고, 개개의 작품을 통해 관찰한다면 가장 고전적이라고 하는 《이피게니에》나 《타소(Tasso)》에서도, 그 마귀에 이끌린 점은 오레스트(이피게니에의 동생)의 가슴속에 광란하는 <마신적인 요소>가 얼마나 질풍노도 시대의 광포와 가까운 것인가―또는 타소의 현실도피와 공상 속에는 얼마나 많은 <낭만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는가―그리고 또 이피게니에의 입에서는 모든 주의와 경향을 초월하여 얼마나 보편적인 인류애의 정신이 흘러나오고 있는 가를 역력히 엿볼 수 있는 바이니, 대체로 생명이 있는 작가와 작품을 어떠한 이즘이나 주의를 가지고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4. 만년의 괴테
실러와의 교류
괴테보다 10년 아래인 실러는 괴테와 마찬가지로 젊은 정열과 정의감을 가지고 질풍노도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후일 독자적인 명상과 철학, 역사의 연구 등을 통하여 역시 고전적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시인의 근본적 차이도 있고 해서 같은 바이마르 시대에 살면서도 접근이 어려웠었는데, 1749년 예나 학회에서 우연히 의기가 투합하였으며, 그후 그들의 협력과 우정은 독일고전주의를 빛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괴테의 결혼
괴테는 일생동안 9 명의 여성과 애정 관계를 가졌는데 그 중 결혼한 여인은 크리스티아네 한 사람뿐이었다. 그녀와의 이탈리아 여행 직후부터 동거생활을 해오다가 1년만에 정식 결혼에 이르는 것이다. 크리스티아네는 교육 정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으나, 매우 영리하여 괴테의 성미와 일의 성질까지도 파악하고, 남편을 잘 섬기고 돌보았을 뿐 아니라 그의 저작과 자연과학 연구에 긴요한 도움까지 주었다. 그리고 괴테 가의 상당히 복잡하고 손님도 많은 집안살림을 적절히 처리해냈으며,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은 항상 겸손하게 들어앉아서 아는 척하지 않는 매우 이상적인 주부였다. 그런데 나폴레옹 전쟁 당시 바이마르 국도 프랑스군에게 침공 당하게 되었는데, 술 취한 군인들이 한때 약탈을 자행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밤 괴테의 침실에까지 침입한 프랑스의 난폭한 군인들이 그를 해치려 하였다. 그때 크리스티아네가 용감하고도 기지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던들 괴테의 생명은 위험했으리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그때 이후의 즉 괴테 만년의 가장 중요한 활약은―《파우스트》를 포함해서―그녀의 덕분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괴테도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억제치 못했으며 특히 그녀가 근 20년이나 첩이라느니 식모라느니 하는 뒷공론을 들어가면서도 한결같이 봉사해준 은덕을 생각하여, 마침내 서둘러 정식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천화력》과 소녀 민나
괴테가 저작을 위하여 잠시 바이마르를 떠나 예나에 체류한 일이 있었는데(1807년), 거기서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서점 주인 프롬만의 집에 자주 출입하였다. 그런데 그는 그 집에 양녀로 있는 민나에게 갑작스러운 연정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은 그녀가 열 살 정도였을 때부터 괴테는 잘 알고 있었던 터인데, 이제 몰라보도록 성숙하고 아름다워진 그녀의 모습을 대하자 그는 새삼스러이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피가 마구 솟아오름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도 위험감을 가지게 된 괴테는 의식적으로 그녀를 피했으며, 그후 용무도 생기고 해서 그녀로부터 도주(제7의 도주)하기 위하여 그곳을 아주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사랑의 체험은 그후 집필된《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속에서 영원히 그 모습을 남기고 있다. 그리하여 그 작품 속에 그려진 내용은 격렬한 정열이긴 하지만 그것을 그리는 작가의 필치는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서 가히 체념의 경지에 도달한 노시인의 높은 심경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한편 괴테 만년의 업적 가운데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나로서《서동시집》이 있다. 괴테의 깊은 인간통찰과 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은 멀리 동양에까지 미쳤으며 특히 14세기의 페르샤 시인 하피스에 대해서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인간적인 공감을 가졌다. 그래서 괴테는 그 무렵의 자신의 뜻깊은 시집을 《서동시집》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즉 서방시인에 의한 동양적인 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시집 속에서 한 가닥 광채를 발하는 것은 역시 괴테의 새로운 여성관계이다. 다시 말하면 그 시집 속의 백미인 <술레이카의 편>은 아름다운 마리안네에 대한 그의 정열의 소산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안네는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 빌레머 씨의 양녀로서 나중에 그의 후처가 된 여성인데, 괴테는 1814년 그 집을 방문하여 마침 꽃피는 나이에 있었던 그녀에게 몹시 이끌렸었다. 그 눈치를 챈 빌레모 씨는 재빨리 그녀를 자기의 정식 부인으로 피로하였다. 다음해 가을 괴테는 또 다시 그 집을 방문하여 그녀와도 친숙하게 지냈는데 그때는 그 남편도 그들의 친교를 방해하지 않는 아량을 보였다. 그런데 거기서 놀라운 일이 발견되었다. 즉 그녀가 뛰어난 서정시인이라는 점이었다. 괴테가 그녀에게 보내는 사랑의 시에 답하여 그녀가 쓴 시는 괴테를 놀라게 하는 솜씨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가 그대로 <술레이카의 편>으로서 전기한 《서동시집》속에 수록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물론 시인으로서 위대한 괴테의 힘이 <정신감응>이 되어 그녀에게 작용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하여간에 그녀가 놀라운 시재의 소유자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 사이는 더욱 친숙해지고 정열의 불이 붙었던 것인데, 그때 이미 나이가 65세였던 괴테는 내심의 고통스러운 투쟁 끝에 그녀를 단념하고, 어느 보름날 밤에 그녀와 작별하면서 '이제부터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서로의 생각을 하기로 하자'는 약속을 하고 그녀로부터 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제8의 도주).
그러나 《서동시집》은 <술레이카의 편>과 같은 사랑과 정열 이외에도 괴테의 인생관과 이상을 가장 깊이 있게 표현해주는 의미심장한 작품들로 가득찬 시집인 것이다.
노시인의 회춘
괴테는 아내 크리스티아네와 사별(1816년) 후 몇해가 지나서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경험할 기회를 가졌으니 그 상대방의 여성은 바로 마리엔바트의 온천지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던 19세의 소녀 올리이케였다. 1823년 여름, 괴테는 마침 나이 74세가 되던 생일날(8월 28일) 그 젊은 소녀를 껴안고 무용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때 그의 정열은 어느 젊은이 못지 않는 열렬한 것이었으며, 그 점은 그 당시의 연시, <마리엔바트의 비가>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또한 얼마나 진지한 사랑을 하였는가는 그녀에 대한 구혼 중매를 서 달라고 바이마르 국의 대공에게까지 정식으로 부탁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그 구혼은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서 괴테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완곡한 방법으로 거절되었지만 그 결과로 전기한 <마리엔바트의 비가>, 즉 노시인의 영원한 젊은 정열의 노래가 탄생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괴테는 긴 일생동안 그 풍부한 결실에 못지 않게 여러 여성들과의 사랑을 경험하였는데, 괴테의 사랑은 결코 고답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진지하고 헌신적인 사랑이었으며, 그 하나하나의 여성에게 적어도 그 순간만은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겸허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러하였기 때문에 그는 여성들에 의하여 항상 높은 단계의 정신적 발전을, 성취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괴테의 만년의 가장 큰 업적으로서는 역시 《빌헬름 마이스터》와 《파우스트》의 완성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두 작품은 그가 젊은 청년시대에 구상하여 쓰기 시작했으나 여러 번 중단되었다가 고령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에는 괴테의 일생의 전체험과 예지, 그리고 각단계의 여러 가지 감정감각이 내포되어 있을뿐더러 정치적 사회적 이념들로부터 인류문화와 예술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다.
비극 《파우스트》에 대하여
1. 괴테 이전의 《파우스트》전설
괴테가 중세 독일의 전설인 《파우스트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자기의 희곡작품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일찍이 소년 시절 때부터 품었다고 한다. 괴테의 《초고 파우스트(Urfaust)》가 작성된 것은 그의 슈트라스부르크 유학시절이니 1774년경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간행된 것은 그후에도 여러 차례 가필한 《단편 파우스트》로서 1790년이다. 그후 다시 실러의 권고 등으로 새 장면이 첨가되어 제 1부가 나온 것은 실러의 사후인 1808년이었다. 그 다음에 오랜 동안의 공백 기간이 경과한 후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전에서 전사하자 그에 자극을 받아 제 2부의 집필이 시작되었다(바이런의 운명은 본작 중 제 2부 3막에서 현시되고 있다. 주석 참조).
그리하여 전편을 완결한 것은 1831년 8월이었으니 그가 죽기 불과 반년 전이었다. 따라서 도합 60년이나 걸린 이 작품은 그의 젊은 질풍노도기로부터 고전기를 거쳐 만년의 종합적 완성기에 이르는 전생애가 포함되어 있다. 주인공인 전설상의 파우스트는 15,6세기경에 실재하였다고 전하는 연금술사 요한 파우스트 박사이며, 거기에 마술사의 이야기가 혼합되어서 16,7세기에는 널리 독일 각지에 〈파우스트 전설〉이 전파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처음으로 책이 되어 나온 것은 1587년, 괴테의 출생지인 프랑크부르트에서 출판업자 요한 슈피스에 의한 것이었으며 한편 영국의 극작가 말로우에 의한 비극 《파우스투스 박사의 비화》는 체제를 갖춘 최초의 파우스트극이라고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영국의 순회극단에 의해서 다시 독일로 역수입되어 그것이 민중극 또는 인형극의 형태로 상연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파우스트 전설에는 여러 가지의 변형이 생겨 일정치 않지만, 대체로 주인공이 종교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반항적 인물이었고 젊은 괴테가 좋아하였던 독일적 영웅의 기질을 지닌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학문과 능력을 획득하고서도 끝내 만족치 못하고 우주의 궁극적 신비를 규명하고자, 또는 온갖 부귀영화의 극치까지 누리고자 하는 것이 그 기본 성격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악마에게 몸을 팔고 그 대가로 악마의 도움을 받아 그 욕구를 달성하려 한다. 한편 악마는 파우스트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24년 후에는 그의 영혼을 차지하겠다는 계약을 맺는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는 악마를 일단 자기의 심복 종으로 삼고 데리고 다니면서 온갖 향락과 욕정을 만족시키는 데 사용한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외적인 욕망을 만족시켜도 마음의 안정은 얻지 못한다. 마침내 그가 회개하고 신에게 용서를 빌려고 할 때, 악마는 미녀의 대표적 존재인 고대 그리스의 헬레네를 마술로 재현시킨다. 파우스트는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녀를 포옹하려 들자 그 순간 헬레네는 복수의 여신으로 변해서 파우스트의 영혼을 앗아 지옥으로 끌고 간다. 왜냐하면 그때 이미 24년의 기간이 다했기 때문이다―대략 이와 같은 줄거리인데 괴테에게는 특히 그러한 파우스트의 과잉 의욕과 충동, 그리고 그 고뇌와 운명이 독일적인 인간상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괴테가 그 인간상을 인류의 보편적 상징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이상적인 형상으로서 끌어올리기까지는 80평생의 체험과 줄기찬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괴테의 《파우스트》에 있어서는 주인공이 멸망하지 않고 구제를 받는 점에 특색이 있다. 이 점은 괴테 자신이 인생관이나 종교관의 근본문제이기도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가 종래의 권선징악적인 전설 이야기의 경지를 벗어나서 위대한 인류의 문학으로 변모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기도 한 것이다. 하기야 괴테 이전에도 계몽주의자 레싱이 파우스트를 궁극적으로 구제시키려 하였고 그의 진리 탐구의 욕구 자체를 죄악시하는 종래의 관점에 대해서 최초로 반기를 들었지만, 레싱의 파우스트는 결국 완결을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입장은 단순히 지식의 면에서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 괴테에 있어서처럼 그것이 뚜렷한 체험으로써 전인적인 근본문제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었다.
2. 《파우스트》 제 1부 해설
권두에는 <헌시>와 <무대에서의 전희>가 있다. 본문의 내용과는 별로 관계가 없으며 전자는 작자가 일찍이 초고를 썼을 당시의 친구들을 추억하고 그후 그것을 다시 집필하게 된 동기와 감상이 들어 있다. <전희>는 작가와 극장장 및 비판자의 3인의 입장을 구별하여 표시함으로써 괴테 자신의 문학 및 연극에 대한 기본 관점의 일단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 다음에 <천상의 서곡>이 나오는데 여기서 작품 전체의 윤곽이 암시된다. 즉 메피스토는 천상의 신과 내기를 하여 기어코 파우스트를 유혹할 자신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대해서 신은 그가 옳은 길을 찾아가리라는 걸 알지만 그에게 시련을 주기 위해서 메피스토의 유혹을 허락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은 방황하는 것이다. (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하지만 신은 동시에 "선량한 인간은 설혹 컴컴한 충동에 동요될지라도 역시 올바른 길을 앓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메피스토는 관능적 향락과 욕망의 충족으로 인간을 끝내 유혹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만은 신과의 내기에서 이길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본곡에 들어가서 제1부의 막이 열리면 <밤>의 장면이다. 파우스트는 50여 세의 노교수로서 중세기풍의 고딕식 연구실에 혼자 앉아 있다. 그는 우주일체의 가장 깊은 진리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철학, 법학, 의학 등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모든 학문에 통달하였으나 목적하던 우주의 본질 규명에는 접근하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아무리 발돋움하여도 인간의 힘으로써는 어쩔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고 그는 일찍이 배워두었던 영술로써 초인의 경지에 들려 한다. 그러나 거기서도 실패한 그는 구차스러운 육신에 얽매였기 때문에 드높은 자신의 이상을 발휘할 수 없음을 통감하고 인간이라는 탈을 벗어나서 영들의 세계로 하늘 높이 비상하려는 결심을 한다. 그는 사방의 벽에 가득 찬 책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고요한 밤중에 홀로 독배를 마시려고 한다. 바로 그 순간, 부활절의 새벽 종소리와 더불어 예수의 재생을 노래하는 어린이들의 합창소리가 들려온다. 그 희망에 넘친 맑은 목소리는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다시 그 아득한 옛날의 생의 환희로 일깨워 주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었던 독배를 떨어뜨린다. 그가 필생의 학문과 지식, 그리고 정신력으로도 얻지 못했던 다른 하나의 생의 의의를 그 소박한 노랫소리―인간성의 근원에 담긴 자연성으로 말미암아 다시 찾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의 긴 독백과 맨앞의 파우스트의 독백은 그 이상과 내용에서뿐 아니라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매우 높이 평가되는 명문이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는 다음날 부활절에 오래간만에 거리에 나가보았으며, 민중들 사이에 끼어서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기도 하면서 한낱 인간으로서 이 고민과 향락을 체험하였고 그것으로써 지금까지 도달치 못하였던 진리를 발견해 보려고 한다. 산책길에서 돌아올 때 그는 강아지 한 마리가 뒤따라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변신이었다. 다시 서재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새로운 의욕으로 신약성서를 독어로 번역한다. 우선 "태초에 말씀이 계셨나니라"의 말씀(logos)을 독어로 das Wort(말)라고 했다가 주저한다. 그 단어를 그렇게 높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다시 der Sinn(뜻)이라고 번역해 본다. 그러나 그것 역시 너무 소극적이어서 또 다시 die Kraft(힘) 라고 바꾸어 봤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방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die Tat(업)로 하여 "태초에 업이 있었느니라"로 낙착되었다―우주의 근원에 존재하면서 만물을 지배하는 본질을 <행위>라고 규정하는 것은 괴테 자신의 이념이기도 하다. 이념 이외에도 이 장면은 언어와 개념의 문제, 번역과 표현력의 문제, 그리고 종교와 역사 등 여러 가지의 뜻을 지닌다. 한편 파우스트를 따라왔던 강아지는 학생의 모습으로 변모하여 차츰 악마의 본성을 드러낸다. 이어서 그 유명한 계약이 체결된다.
내가 어느 순간을 보고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하고 외친다면, 그때에는 자네가 나를 결박해도 좋네!
나는 기꺼이 멸망의 길을 걸어가겠네!
그때에는 조종을 울려도 좋아!
만약 파우스트가 향략이나 유혹에 빠져서 꾸준히 향상 노력하는 자신의 기상을 잃는다면――즉, 어느 한 순간에 향략의 극치를 맛보고 거기에 만족해 버린다면, 어떠한 벌이고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를 타락시키고 그 영혼을 탈취하려는 메피스토와 오히려 그 악마를 노예처럼 부리며 넓은 세계를 마음껏 체험하고 자기가 학문으로써 도달치 못한 인간과 우주의 근본 진리를 획득해 보려는 파우스트는 함께 인생수업의 길을 떠나게 된다.
마술의 힘으로 젊어진 파우스트는 맨 먼저 순진한 처녀 그레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메피스토펠레스의 예상과는 달리 그것은 너무나 깨끗하고 진실한 사랑이었다. 젊은 남녀는 마술의 힘도 곁들여 끝내 넘지 못한 선을 넘었고 그 결과로 뜻하지 않게도 처녀의 어머니와 오빠를 죽게 하는 과오를 범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져서 그후 멀리 환락경 <발푸르기스의 밤>에 참석하고 있었으나 그레첸이 곤경에 빠진 것을 알아차리고 분연히 메피스토펠레스를 힐책하여 되돌아간다. 파우스트는 도취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가 뿌린 죄의 씨를 회피함이 없이 달게 받으려는 각오가 있었던 것이다. 그레첸은 그 동안 사생아를 낳고 어쩔 줄 몰라 엉겁결에 아기를 죽이고 자수하였으며, 감옥에 갇혀서도 무서운 자책감에 시달려 광증까지 나타나게 된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구출코자 하였으나 이미 그녀는 속세를 단념하였고 오직 성녀 마리아의 은총에 매달려 영혼의 구원만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몽매에도 그리던 애인 파우스트가 감방에 나타나서 함께 도망치자고 하였을 때도 그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당신이 무섭다"하고 뒷걸음질친다. 그 처참하고 애처로운 광경을 보았을 때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녀는 심판을 받았소(Sie ist gerichtet.)"라고 말했지만 그때 천상으로부터 "구제받았으니라(Sie ist gerettet.)"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은 인간의 어떠한 죄과도 진실한 인간성과 양심으로써 정화될 수 있다는 괴테 특유의 기독교 정신의 일단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해서 비극 제 1부는 막이 내리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그레첸이 사랑하는 파우스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도덕적으로는 이미 갈라졌어도 인간적인 애정과 유대는 그래도 연결되고 있으며, 바로 이 영원한 인간적인 사랑이 다음 제 2부의 마지막에서 파우스트를 궁극적으로 구원하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파우스트》제 2부의 해설
대자연을 소생시키는 위력은 심신이 모두 처참하게 되어가지고 혼수상태에 있던 파우스트를 다시금 새로운 의욕으로 깨어나게 해준다. 파우스트는 이번에는 대세계(Makro Kosmos)를 체험하게 된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애초에 파우스트를 꾀어냈을 때 우선 소세계를 경험한 다음 대세계로 가자고 하였다. 그래서 제 1부는 소세계였으며, 즉 소시민의 세계 또는 인간의 개인적인 체험과 그 문제가 취급된 것이다. 반면 제 2부에서는 시야를 넓혀서 사회적이며 국가적인 차원, 즉 인간의 공동생활이 무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궁전으로 들어간다. 그때 마침 재정난을 당하여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 지폐를 마구 찍어내게 하여 위기를 극복하였으나 후일에는 인플레의 부작용을 당한다. 여기서 우리는 괴테 자신이 바이마르 공국에 입궁하여 국정에 참여하였을 당시의 고충을 엿볼 수 있다.
하여간에 파우스트는 재정난을 구제한 공으로 중용되었고 황제는 파우스트를 현자로 믿고 고금을 통함 미남미녀인 파리스 및 헬레네를 불러내 보라는 분부를 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마술을 믿고 그것을 승낙하였으나 독일적 내지는 북구 계열의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는 기독교적이고 낭만적인 세계의 소산물이기 때문에 남구적인 그리스의 고전미에 대해선 어두웠고 따라서 그들을 불러내올 재주가 없었다. 다만 메피스토펠레스한테서 열쇠를 얻어가지고 시공을 초월한 <어머니들>의 나라로 건너가 거기서 헬레네의 형태만을 빌어오게 되었다. 그곳에는 먼 과거로부터 미래에 걸친 일체의 형태와 도식이 보존되어 있으며 모든 형태가 그 어머니들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착상은 매우 괴테적이며 그의 이탈리아 여행의 상징성을 생각할 수 있고 한편 그의 《식물변형론》에서 피력된 독특한 생물발생의 이상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머니들의 나라에서 파우스트는 삼발이 향로를 이끌어왔으며 그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파리스와 헬레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것은 본체가 없고 그저 형태뿐인 유상이었는데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파우스트가 그것을 껴안으려 하였다. 그 순간 그 열쇠가 그녀에게 접촉되면서 폭발하여 파우스트는 기절하고 만다. 여기서도 우리는 미의 형태와 본질, 예술의 창조성과 시대성등 여러 가지 문제가 암시되어 있음을 본다.
제 2막에서는 기절한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 운반되어 와서 예전(제1부) 파우스트의 연구실에 뉘어져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전의 파우스트의 조수였던 바그너는 그동안 명교수가 되었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생명을 만들어낼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한때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대신하여 야유를 해줬던 대학신입생은 이제 신진학파의 학자로서 피히테, 쇼펜하워류의 주관철학을 대담하게 내세운다. 그 극단적인 절대주의에 대해서 메피스토펠레스는 또 다시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맹점을 찔러 야유한다. 체험을 존중하는 시인 괴테의 그 당시의 신념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바그너의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적인 시도는 마침내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를 탄생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단계에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시 마술의 힘이 필요하였다(여기서 자연과학의 한계가 암시됨).
하여간 호문쿨루스는 총명한 지능을 소유한 인조인간이 되었고 그의 투시력을 가지고 지금 옆방에서 잠자고 있는 파우스트의 꿈까지 해명될 수 있었다. 그때 파우스트는 미녀 헬레네의 출생의 아름다운 광경을 꿈꾸고 있었는데 그를 소생시키려면 고전미의 나라인 그리스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잠을 깨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마술의 비행 망토에 태워서 그리스로 운반하였는데 총명한 인조인간인 호문쿨루스가 유리의 레토르트 속에서 빛을 발하여 공로를 안내하여 갔다.
그리하여 그리스 최고의 전설의 발상지인 텟살리아에 일행이 도착하였으며 그곳에서 깨어나 파우스트가 헬레네를 찾아 헤맸으나 발견치 못하는 반면, 옛 고전의 세계가 화려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여기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제1부에 있었던 <발푸르기스>의 낭만성과 대응하여, 그리스 올림푸스의 신들보다 더욱 고대의 근원적인 요괴들까지 동원된다. 여기서 특히 괴테의 해박한 지식과 기발한 상상력이 종횡무진으로 발휘되고 전대미문의 스펙터클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사들에 어두운 우리독자들을 위하여 가능한 하나하나 주석을 달고 설명을 시도하였지만, 역자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통감한다.(Trunz 교수 Hamburger Ausgabe의 주석 등을 많이 참고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괴테가 멀리 아득한 옛날을 묘사하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이상과 관점을 잃지 않는 점이다. 특히 지구와 지각의 생성에 관한 논쟁은 오늘날 석유시대의 우리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먼저 수성론을 대표하는 탈레스와 화성론을 대표하는 아낙사고라스의 논쟁이 나온다. 괴테는 당시 베르너 교수의 수성론을 대체로 지지한 듯하나 양설이 모두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괴테는 만물 속에 내재하는 생명의 본질 같은 것을 생각하였으며, 그것이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고 촉진시키는 것인데 여기선 그 작용을 에로스의 신이 담당하는 것으로 하였다. 인조인간 호문쿨루스의 운명도 이 에로스와 연관이 된다. 그는 파우스트 일행을 이곳까지 안내해 왔지만 자기 자신은 영적인 존재일 뿐 아직 육체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육체를 지닌 인간이 되어 보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빛을 발하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아름다운 사랑의 여신 갈라테아를 만나고, 그녀의 만물을 길러내는 <물>에서 발생된 근원적 미에 혹하여, 그녀의 조개옥좌에 부딪쳐 레토르트가 깨어지면서 옥쇄하고 만다. 여기서 불과 물의 요소가 다시 화합하고, 4대 원소가 에로스 신의 통치하에 고차적인 질서를 지향하는 광경의 묘사는 아름다우면서도 뜻깊은 표현이라 하겠다. 대체로 이곳의 묘사는 파우스트 극의 진행하고는 직접 연결이 안되지만, 괴테의 세계관과 특히 그리스 미의 발생과정이 엿보인다. 즉 처음의 단계에서는 추악하고 비루한 요괴들이 많이 나타나지만, 차츰 세련되고 고귀한 모습, 아름다운 여신 등으로 장면이 순화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다음 제3막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왕의 궁전이다. 때마침 트로야 성이 함락되었고 왕비 헬레네는 다시 그리스로 귀환한다. 그런데 메피스토펠레스가 변장을 하고 기다렸다고 헬레네를 계략으로 꾀어서 게르만 침입군의 수령에게로 인도하여 결혼하게 된다. 그 수령이 바로 파우스트인 것이다. 여기 중세 게르만의 영웅과 고대 그리스의 미녀와의 결합은 북구의 생명력과 고전미의 조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오이포리온은 영국의 천재시인 바이런을 암시하고 있다. 조숙한 천재 오이포리온은 경쾌하고 개성적이며 투쟁적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의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언덕에서 대담한 비약을 하여 거꾸로 떨어졌으며 그 아름다운 육체는 증발하고 만다. 헬레네는 그 뒤를 따라 저승으로 내려가 버렸고 이제 파우스트에게는 그녀의 껍질, 즉 겉옷만이 쥐어져 있게 되는데, 이것은 독일문학이 고전미의 형식만을 향유하게 된 상징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고전주의적 세계의 방문으로 이상이 풍부해져서 돌아온 파우스트는 미적 향락으로 이루지 못한 만족을 인류사회의 공익을 위한 자신의 헌신적 노력으로써 얻으려 한다(제4막). 그는 광대한 해안지대의 황량한 소택지를 개간하여 만인을 위한 옥토로 만들어보려고 의욕에 불탄다. 그러기 위하여 그는 황제의 강적을 물리치고 그 보상으로서 그 토지를 입수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유로운 민중과 함께 자유로운 토지에서의 삶>을 꿈꾸고 전력을 다해 그 실현을 위하여 진력함으로써 정신적 만족을 얻는다.
파우스트는 연령이 백 세에 도달하며(제5막) 메피스토펠레스가 불러낸 요녀가 뿜는 입김으로 눈까지 멀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그때야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의를 발견한다. 그는 그 뜻깊은 순간을 심안으로 꿰뚫어보면서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도다"하고 외친다. 그러니까 메피스토펠레스는 애초의 약속대로 그의 영혼을 빼앗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져서 향락이나 물질적 욕심의 만족을 얻는 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내기의 외형적 조건에는 졌을 망정, 그 내용에 있어서는 최후의 시련에까지 훌륭히 이겨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구원될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의 궁극적 구원은 자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천상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괴테의 종교관이었다. 천사들이 뿌리는 장미꽃은 악마들을 쫓고 파우스트의 영혼을 보호했지만 그것이 천국에까지 오르기에는 하늘로부터의 은혜가 있어야 되었다. 그때 속죄하는 여인, 즉 옛 애인이었던 그레첸이 나타나 성모 마리아께 그의 영혼을 위한 은총을 빌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천국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
이것이 이 대작의 마지막 구절이거니와, 하나의 여성 그레첸의 사랑은 이제 영원히 여성적인 힘과 합쳐서 비로소 그의 무한의 높은 곳까지 인도하여 오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괴테 자신의 여러 여성의 힘으로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이지만, 여기서는 또한 게르만의 고대로부터 독일 남성이 언제나 여성을 통하여 정화되고 향상되어온 전통을 암시하는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1976년 2월 마인 강변의 프랑크부르크에서
朴贊機
출처: http://user.chollian.net/~w0752/jaryo/wlitter/faust.htm
괴테의 작품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여, 그대의 하늘을
구름의 연기로 덮어라!
그리고 엉겅퀴의 목을 치는
어린이처럼
참나무나 산정들과 힘을 겨뤄라!
그러나 나의 대지는
손대지 말고 내버려둬야 한다
그대가 짓지 않은, 나의 작은 집과,
불길 때문에 그대가
나를 질투하는
나의 화덕도
나는 태양 아래에서
신들인 그대들보다 가엾은 자들을 알지 못한다.
그대들은 제물과
기도의 숨결로
간신히 먹고산다.
대단한 분들이여
그리고 만일 어린이들과 걸인들이
희망에 부푼 바보들이 아니었던들
그대들은 굶주렸을 것을.
나 역시 어린애여서,
들고 날 곳을 몰랐을 때,
나는 당황한 시선을
태양을 향해 돌렸다. 마치 저 하늘에,
나의 탄식을 들어 줄 귀가 있고,
압박받는 자를 불쌍히 여겨 줄
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는 듯이.
그러나 누가 거인족의 오만에 대해서
나를 도왔으며,
누가 죽음과
노예상태에서 나를 구했던가?
거룩하게 불타는 나의 마음이
이 모든 것을 성취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젊고 선량한 마음은,
기만당하여, 구원에 감사하며
천상에서 잠든 자를 열애하지 않았던가?
그대를 존경하라고? 왜?
그대가 이전에 한 번이라도
짐을 진 자들의 고통을 덜어 준 적이 있는가?
그대는 이전에 한 번이라도
겁먹은 자들의 눈물을 달래 준 적이 있는가?
전능의 시간과
나의 주이며, 그대의 주인인
영원한 운명이
나를 사나이로 단련하지 않았던가?
꽃봉오리의 꿈이 모두
성숙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삶을 증오하고,
황야로 도주할 것이라고
그대는 착각하는가?
나는 여기에 앉아, 나의 모습에 따라,
인간들을 형성한다.
괴로워하고, 울며,
즐기고, 기뻐하는,
나와 같이
그대를 존경하지 않는
나를 닮은 족속을.
Prometheus
Bedecke deinen Himmel, Zeus,
Mit Wolkendunst
Und ube, dem Knaben gleich,
Der Disteln kopft,
An Eichen dich und Bergeshohn;
Mußt mir meine Erde
Doch lassen stehn
Und meine Hutte, die du nicht gebaut,
Und meinen Herd,
Um dessen Glut
Du mich beneidest.
Ich kenne nichts Armeres
Unter der Sonn als euch, Gotter!
Ihr nahret kummerlich
Von Opfersteuern
Und Gebetshauch
Eure Majestat
Und darbtet, waren
Nicht Kinder und Bettler
Hoffnungsvolle Toren.
Da ich ein Kind war,
Nicht wußte, wo aus noch ein,
Kehrt ich mein verirrtes Auge
Zur Sonne, als wenn druber war
Ein Ohr, zu horen meine Klage,
Ein Herz wie meins,
Sich des Bedrangten zu erbarmen.
Wer half mir
Wider der Titanen Ubermut?
Wer rettete vom Tode mich,
Von Sklaverei?
Hast du nicht alles selbst vollendet,
Heilig gluhend Herz?
Und gluhtest jung und gut,
Betrogen, Rettungsdank
Dem Schlafenden da droben?
Ich dich ehren? Wofur?
Hast du die Schmerzen gelindert
Je des Beladenen?
Hast du die Tranen gestillet
Je des Geangsteten?
Hat nicht mich zum Manne geschmiedet
Die allmachtige Zeit
Und das ewige Schicksal,
Meine Herrn und deine?
Wahntest du etwa,
Ich sollte das Leben hassen,
In Wusten fliehen,
Weil nicht alle
Blutentraume reiften?
Hier sitz ich, forme Menschen
Nach meinem Bilde,
Ein Geschlecht, das mir gleich sei,
Zu leiden, zu weinen,
Zu genießen und zu freuen sich,
Und dein nich zu achten,
Wie ich!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가 25세에 쓴 아름다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230여 년 전만 해도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였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방 자살이나 자살 도미노 현상을 두고 ‘베르테르 효과’라고도 한다. 유럽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노란 조끼를 입히고, 머리에 권총을 대게 했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키르케고르는 이 소설에 영향을 받아 <죽음에 이른 병> <이것이야 저것이냐>를 썼으며, 나폴레옹은 일곱 번이나 읽었을 뿐 아니라 이집트 원정 때에도 이 책을 들고 갔다.
1808년 10월, 나폴레옹이 괴테를 만났을 때 이 책의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자 괴테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께서 소설의 결말이 있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괴테가 친구의 약혼녀를 사랑했던 경험과, 학우인 예루잘렘이 유부녀에게 실연당해 자살한 사건(1772. 10. 30)을 소재로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로 고백하는 형식의 소설로, 그 편지는 1771년 5월 4일에 시작해서 1772년 1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마음의 병을 치유할 목적으로 어느 아름다운 산간 마을에 찾아든 베르테르는 그 마을의 공작 집안 출신 법관의 초청을 받는다. 그러나 차일피일 방문을 미루는 어느 날, 무도회에 가기 위해 로테의 집에 들렀다가 로테를 보게 된다. 두 살에서 열한살까지. 아홉 명의 동생들에게 흑빵을 나눠주는 로테의 우아한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리고 무도회장까지 가는 동안 마차에서 문학 얘기를 나누는데, 로테에게 매혹된 베르테르는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그 모습, 그 목소리, 그 몸가짐에 내 영혼은 완전히 몰입되고 말았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얼마나 응시하고 있었는지… 싱싱한 입술과 산뜻하고 생기 넘치는 볼에 내가 얼마나 매혹되었는지….’
그리고 마차가 무도회장 앞에서 멈추었을 때, 자신이 마치 몽유병 환자 같았다고 쓴다.
‘난 맹세했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 이외 누구와도 왈츠를 추게 하지 않겠다고. 비록 그 일 때문에 이 몸이 파멸한다해도 좋아.’
“만나야지… 오늘은 만나야지.” 베르테르에게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이 한 가지 소망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로테에게는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알베르트가 여행에서 돌아오자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질투를 느끼며 고통스러워한다. 감정적인 베르테르에 반해 너무나 이성적인 알베르트. 존경할 수밖에 없는 자가 로테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베르테르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토로한다.
‘어느새 나의 감각은 긴장되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게 되지. 마치 암살자의 손에 조임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목이 막히고, 답답한 나머지 숨을 쉬려 하면 심장이 무섭게 고동쳐서 그것 때문에 도리어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네.’
“안녕. 로테. 안녕, 알베르트. 다시 만날 겁니다. 언젠가는….”
그때 로테가 마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말한다.
“내일.”
베르테르는 그녀가 떠난 후 울다가 벌떡 일어나 언덕으로 뛰어 올라간다. 그때 마당의 사립문을 향해 가는 로테의 하얀 옷자락이 언뜻 보인다. 베르테르는 두 팔을 내민다. 그러나 로테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공사의 비서가 되어 먼 고장으로 떠난 베르테르. 그러나 공사의 관료 기질과 인습에 염증을 느낀 그는 로테와 알베르트가 결혼했다는 편지를 받고 가슴이 아린다. 결국 사표를 낸 베르테르는 다시 로테의 곁으로 돌아온다.
이미 알베르트와 결혼한 로테. 그녀에 대한 사랑을 결코 멈출 수 없었던 베르테르는 이렇게 탄식한다.
‘자나 깨나 꿈속에서도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은 그 모습이야. 눈을 감으면 눈 속에, 마음의 시력이 모여드는 이 머릿속에 저 검은 눈이 나타나. 눈을 감아도 로테의 모습이 비쳐. 바다와도 같이. 호수와도 같이 그 눈은 내 앞에, 나의 마음 속에 깃들어 내 몸의 모든 감각을 채워주고 있어.’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로테를 찾아간 베르테르에게 로테는 말한다. 나 같은 것을 슬프게 사랑하지 말아달라고. 당신을 측은히 여기는 것밖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여자라고.
“이게 마지막이에요. 베르테르, 두 번 다시 뵙지 않겠어요.”
베르테르는 로테가 직접 권총을 꺼내주었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이 좋아하며 받아 든다. 그리고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 때 홀로 로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그럼 로테, 로테여 안녕….”
다음날 사람들이 권총 자살을 한 베르테르를 발견했을 때, 그는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파란 연미복에 노란 조끼를 입고 있었고, 호주머니에는 로테가 그의 생일에 준 리본이 들어 있었다.
그토록 고통스럽던 사랑의 끝이었다.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다지도 외곬으로 그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지, 또 사랑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세상 사람 모두가 미쳤다고 해도. 사랑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고 고통을 느껴도, 이래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그 곁을 떠나려 해도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사랑. 내게는 단 한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그 자리를 옮길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의 자리를 결코 옮길 수 없는 사랑. 당신들의 시대에도 그런 사랑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왜냐하면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운명이기 때문이라고.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 모든 시간이 통곡의 소리를 내고,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 기쁨은 빛을 잃어버리는 운명의 사랑. 그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 막막한. 그리하여 슬픈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출처: 갑부학당>
이별
입으로는 차마 말 할 수 없는 이별을
내 눈으로 말하게 하여 주십시오.
견딜 수 없는 쓰라림이 넘치오.
그래도 여느 때는 사나이였던 나였건만
상냥스러운 사랑의 표적조차
이제는 슬픔의 씨앗이 되었고
차갑기만 한 그대의 입술이여
쥐어 주는 그대의 힘 없는 손이여.
여느 때라면 살며시 훔친 입맞춤에조차
나는 그 얼마나 황홀해질 수 있었던가.
이른 봄 들판에서 꺾어 가지고 온
그 사랑스런 제비꽃을 닮았었으나
이제부터는 그대 위해 꽃다발을 엮거나
장미꽃을 셀 수조차 없이 되었으니,
아아 지금은 정녕 봄이라는데,
프란치스카여
내게만은 쓸쓸하기 그지없는 가을이라오.
마왕 이 늦은 밤 어둠 속, 바람 속에 말타고 가는 이 누군가? Wer reitet so spät durch Nacht und Wind?
Mein Sohn, was birgst du so bang dein Gesicht? -
"Du liebes Kind, komm, geh mit mir!
Mein Vater, mein Vater, und hörest du nicht,
"Willst, feiner Knabe, du mit mir gehn?
Mein Vater, mein Vater und siehst du nicht dort
"Ich liebe dich, mich reizt deine schöne Gestalt; Dem Vater grauset's, er reitet geschwind, 연인의 곁 PROXIMITY OF THE BELOVED ONE (1795) 연인에게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WHO Never Ate With Tears His Bread 거룩한 갈망
The Holy Longing Tell a wise person, or else keep silent,
베토벤이 성장할 무렵 괴테는 이미 문호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베토벤은 그를 만나기전 부터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그들은 네 번 만났다. 7월19일, 20일, 21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23일. 만남 이전부터 괴테를 존경했던 베토벤을 만난 이후 괴테는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까지 그보다 더 집중력이 강하고 정력적이며 내면적인 예술가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는 최상의 찬사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 만남은 두사람의 기질차이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두사람이 길을 걸을 때 마주오던 황후와 그 일행을 향해 길을 비켜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던 괴테에 반해 고개를 들고 꼿꼿이 걸어가던 베토벤의 모습은 둘의 나이차이 만큼이나 기질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화다. ㅇ베토벤 : '괴테는 궁정의 분위기를 너무 좋아한다. 시인에게 적합한 정도를 넘어서는 정도로 과도하다.' 거나 ㅇ괴테 : '세상을 혐오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베토벤의 생각이 그르지는 않으나 그에의해 그자신과 세상이 더 나아지리라 보진 않는다.' 라고 하기도 했다. ㅇ 두사람의 만남과 상처에는 여성이 개입되어 있었다. 베티나 폰 아르님. (결혼전 이름은'베티나 발렌티노') 베토벤보다 15살이 적은 그녀는 괴테의 젊은시절 연인의 딸이었고 그 무렵엔 괴테의 연인이기도 했다. 그녀의 외할머니, 그녀의 오빠, 그녀의 남편, 그녀의 딸이 모두 알려진 문학가, 시인이며 그녀 자신이 현대 독일화폐(5마르크)에 인물이될 만큼 뛰어난 시인이 되기도 한다. 수녀원 생활을 하다 뛰쳐나온 베티나는 22살에 괴테를 처음 만나 연인이되었고 25살에 베토벤을 알게 된다. 그리고'그를 만난 순간부터 매혹당했고 그의 진한 고독은 저를 가슴 아프게 했다' 라고괴테에게 고백하게 된다. 녀는 베토벤의 고독을 자신의 것처럼 느꼈다. '부드러우면서도 열정적인 내면의 소유자' 라는 평을 받던 그녀의 사랑은 특히 괴테를 힘들게 했다. 이즈음 베티나가 둘의 만남을 주선한다. 이 셋의 만남은 드라마의 삼각관계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있다. 만남이후 서로가 서로에 대한 존경과 비난이 오가는 속에서도 둘은 서로를 인정했다. <출처: 아름다운60대>
그건 사랑하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아버지다.
아들을 팔로 꼭 껴안고,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다.
"뭣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무서워 하느냐?"
"보세요, 아버지, 바로 옆에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왕관을 쓰고 옷자락을 끄는 마왕이 안 보이세요?"
"아이야, 그건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란다."
"오, 귀여운 아이야, 너는 나와 함께 가자!
거기서 아주 예쁜 장남감을 많이 갖고 나와 함께 놀자.
거기에는 예쁜 꽃이 많이 피어있고
우리 엄마한테는 황금 옷이 많단다."
"아버지, 아버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지금 제 귀에 말하고 있어요."
"조용히 해라 내 아가야, 너의 상상이란다.
그건 슬픈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란다."
"귀여운 아이야, 자, 나와 함께 가자꾸나.
나의 딸들이 널 예쁘게 돌봐주게 하겠다.
나의 달들은 밤마다 즐거운 잔치를 열고
춤추고 노래하고 너를 얼러서 잠들게 해줄거다."
"아버지, 아버지, 저기에 보이지 않으세요?
마왕의 딸들이 내 곁에 와 있어요."
"보이지, 아주 잘 보인단다.
오래된 회색 빛 버드나무가 그렇게 보이는 거다."
"귀여운 아이야 나는 네가 좋단다. 네 귀여운 모습이 좋단다.
네가 싫다고 한다면 억지로 끌고 가겠다."
"아버지, 아버지, 마왕이 나를 꼭꼭 묶어요!
마왕이 나를 잡아가요!"
이제 아버지는 무서움에 질려 황급하게 말을 몬다.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아이를 안고서.
가까스로 집마당에 도착했으나
팔 안의 아이는 움직이지 않고 죽어 있다.Erlkönig
Es ist der Vater mit seinem Kind;
er hat den Knaben wohl in dem Arm,
er fasst ihn sicher, er hält ihn warm.
Siehst Vater, du den Erlkönig nicht?
Den Erlkönig mit Kron' und Schweif? -
Mein Sohn, es ist ein Nebelstreif.
Gar schöne Spiele spiel' ich mit dir;
manch bunte Blumen sind an dem Strand,
meine Mutter hat manch gülden Gewand."
was Erlenkönig mir leise verspricht? -
Sei ruhig, bleibe ruhig, mein Kind:
In dürren Blättern säuselt der Wind.
Meine Töchter sollen dich warten schön;
meine Töchter führen den nächtlichen Reihn,
und wiegen und tanzen und singen dich ein."
Erlkönigs Töchter am düstern Ort? -
Mein Sohn, mein Sohn, ich seh' es genau:
Es scheinen die alten Weiden so grau.
und bist du nicht willig, so brauch ich Gewalt."
Mein Vater, mein Vater, jetzt fasst er mich an!
Erlkönig hat mir ein Leids getan! -
er hält in den Armen das ächzende Kind,
erreicht den Hof mit Mühe und Not;
in seinen Armen das Kind war tot.
햇빛이 바다를 비출 때
나는 그대를 생각하노라
달그림자 샘에 어릴 때
나는 그대를 생각하노라
먼 길 위에 먼지 자욱이 일 때
나는 그대 모습 보노라
깊은 밤 좁은 길을 나그네가 지날때
나는 그대 모습 보노라
물결이 거칠게 출렁일때
나는 그대 목소리 듣노라
모두가 잠든 고요한 숲속을 거닐면
나는 또한 그대 목소리 듣노라
그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그대 곁에..
그내는 내 곁에 있도다
해는 기울어 별이 반짝일 것이니
아, 그대 여기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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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he des Geliebten
Ich denke dein, wenn mir der Sonne Schimmer
Vom Meere strahlt;
Ich denke dein, wenn sich des Mondes Flimmer
In Quellen malt.
Ich sehe dich, wenn auf dem fernen Wege
Der Staub sich hebt;
In tiefer Nacht, wenn auf dem schmalen Stege
Der Wandrer bebt.
Ich hore dich, wenn dort mit dumpfem Rauschen
Die Welle steigt.
Im stillen Hain da geh ich oft zu lauschen,
Wenn alles schweigt.
Ich bin bei dir, du seist auch noch so ferne.
Du bist mir nah!
Die Sonne sinkt, bald leuchten mir die Sterne.
O warst du da!
* Hain da.....in some versions: "Haine"
I think of thee, whene'er the sun his beams
O'er ocean flings;
I think of thee, whene'er the moonlight gleams
In silv'ry springs.
I see thee, when upon the distant ridge
The dust awakes;
At midnight's hour, when on the fragile bridge
The wanderer quakes.
I hear thee, when yon billows rise on high,
With murmur deep.
To tread the silent grove oft wander I,
When all's asleep.
I'm near thee, though thou far away mayst be
Thou, too, art near!
The sun then sets, the stars soon lighten me.
Would thou wert here!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위에 떠 있으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먼 길에 먼지가 일 때,
깊은 밤, 좁은 다리 위에서
방랑객이 비틀거릴 때,
나는 너를 본다.
희미한 소리의 파도가 일 때,
이따금 모든 것이 침묵에 쌓인
조용한 숲속에 가서,
나는 너를 듣는다.
너와 멀리 있을 때에도,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너는 나와 가까이 있기에!
태양이 지고 별이 곧 나를 위해 반짝이겠지.
아, 네가 이곳에 있다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슬픈 밤을 한 번이라도
침상에서 울며 지새운 적이 없는 자,
그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니,
하늘의 권능이시여.
당신을 통하여 삶의 길을 우리는 얻었고
불쌍한 죽을 자들 타락케 하시어
고통 속에 버리셨으되,
그럼에도 저희는 죄값을 치르게 됩니다.
WHO never ate with tears his bread,
Who never through night"s heavy hours
Sat weeping on his lonely bed,--
He knows you not, ye heavenly powers!
Through you the paths of life we gain,
Ye let poor mortals go astray,
And then abandon them to pain,--
E"en here the penalty we pay,
현자에게가 아니면 말하지 마라
세속 사람은 당장 조롱하고 말리니
나는 진정 사는가 싶이 살아 있는 것을
불꽃 속에 죽기를 갈망하는 것을 찬미한다
그대를 낳고 그대가 낳았던
사랑을 나눈 밤들의 서늘한 물결 속에서
그대 말없이 타는 촛불을 보노라면
신비한 느낌 그대를 덮쳐 오리
그대 더 이상 어둠의 강박에 매이지 않고
더 높은 사랑의 욕망이 그대를 끌어올린다
먼길이 그대에겐 힘들지 않다
그대 마술처럼 날개 달고 와서
마침내 미친 듯 빛에 홀리어
나비처럼 불꽃 속에 사라진다
죽어서 성장함을 알지 못하는 한
그대 어두운 지상의 고달픈 길손에 지나지 않으리
because the mass man will mock it right away.
I praise what is truly alive,
what longs to be burned to death.
In the calm water of the love-nights,
where you were begotten, where you have begotten,
a strange feeling comes over you,
when you see the silent candle burning.
Now you are no longer caught in the obsession with darkness,
and a desire for higher love-making sweeps you upward.
Distance does not make you falter.
Now, arriving in magic, flying,
and finally, insane for the light,
you are the butterfly and you are gone.
And so long as you haven't experienced this: to die and so to grow,
you are only a troubled guest on the dark earth.

괴테와 베토벤의 나이 차이는 21살.
그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았다.
괴테의 비극 '에그몬트(Egmont)'를 음악화하기도 했다.
1812년 오스트리아 테플리체.
자의식이 강한 천재들이라 그럴까?
서로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은 글들 말고 다른 마음들도 보인다.
극히 교양 없는 사람이며
그러다가 그 고독때문에 힘들어지면 너그러운 호의와 아버지같은 유연함을 지닌 괴테에게 기댔다.
묘한 감정이 뒤섞인 두사람의 만남은 서로를 긴장하게 했다.
그리곤 위와같은 후일담들을 남겼다.
괴테는 베토벤의 재능에 경탄했으며 그의 성격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고
베토벤은 괴테의 인간적인 도량을 존경했고 괴테의 시를 통해 영감을 얻기도 했다.
베티나 역시 뛰어난 시인이 되기도 한다.
Beethoven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 5
in F major Op. 24 'Sp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