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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VII. 남궁도(南容韜) [자용 子容, 남용(南容) BC 000 – BC ]
子謂 南容 "邦有道, 不廢; 邦無道, 免於刑戮." 以其兄之子妻之.
자위 남용 "방유도, 불폐; 방무도, 면어형륙." 이기형지자처지.
공자께서 남용을 평하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 그는 버림받지 않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그는 형벌에 처해지지 않았다"라고 하시고 자기 형님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셨다.
兄之子(형지자) 형의 딸 즉 질녀.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은 노나라의 시씨(施氏)에게서 딸 아홉을 얻었고 다른 부인에게서 아들 맹피(孟皮)를 얻었으며 노나라의 안징재(顔徵在)에게서 공자를 얻었다. 여기서 말하는 형은 그의 이복형인 맹피(孟皮)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는 이때 이미 죽었었기 때문에 공자가 질녀의 혼사를 주관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여식을 뛰어난 사내와 결혼시키길 원하나 공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불행했던 형 맹피의 딸을 먼저 생각했다.
불구로 태어나 맹피 알곡이 아닌 껍데기 대우를 받고 살았던 맹피형에 대한 연민과 형제애가 풍겨나고 있다.
공자는 자신의 딸 공교를 공야장에게 시집보냈고, 또 자신의 의붓형 맹피(孟皮)의 소산, 조카딸을 귀족 남용에게 시집보냄으로서 혀에 대한 도리와 신의를 다하고자 했다.
남궁괄(南宮括) 또는 남궁도(南容韜)의 자는 자용(子容)이다.
자용은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예는 활의 명수이며 오는 땅에서도 배를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장사였지만 모두 제 수명대로는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夏)의 우왕(禹王)이나 주(周)의 후직(后稷)은 몸소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천하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지요?
공자는 묵묵히 있었다.
자용이 물러간 뒤에사 제자들에게 대답했다.
자용은 군자다. 보아하니 자용은 덕(德)을 소중히 여기는구나.
저런 인물은 나라에 도(道)가 있다면 높이 등용될 것이고 설사 도가 없더라도 최소한 형륙(刑戮)은 면할 것이다.
자용은 <시경(詩經)>을 읽다 말고 어떤 구절에 와서 세 번씩이나 되풀이해 읽었다.
백규(白珪: 흰 瑞玉)의 흠이야 갈(磨) 수 있어도 실언(失言)은 갈 수가 없네...
그는 이 구절에 와서는 되풀이해 읽으면서 항상 말을 삼가했다.
공자는 두 말 할 것 없이 조카딸을 그에게 시집 보냈다.
南容 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 妻之 남용 삼복백규 공자이기형지자 처지
남용(南容)이 "옥의 흠은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흠은 없앨 수 없다" 는 백옥(白玉) 시(詩)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해서 외우자, 공자(孔子)께서 형의 딸을 남용에게 시집 보내셨다.
詩大雅抑之篇曰 白圭之玷은 尙可磨也어니와 斯言之玷은 不可爲也라하니 南容이 一日三復此言이라 事見家語하니 蓋深有意於謹言也라 (시대아억지편왈 백규지점 상가마야 사언지점 불가위야 남용 일일삼복차언 사견가언 개심유의어근언야)
시경 대아 억편에 흰 옥의 흠은 갈아낼 수 있지만 내가 한 말의 흠은 갈아 낼 수 없다 했다. 남용이 하루에 이 구절을 세 번 반복하였다. 이 일은 가어(家語)에도 나온다. 대개 말 삼가기에 깊이 뜻을 둔 것이다.
玷 이지러질 점 1. 이지러지다(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없어지다) 2. 잘못하다 3. 욕(辱)되게 하다 4. 욕보이다(辱5. 더럽히다 6. 가늠하다 7. 옥티(玉-: 옥돌에 있는 흠)
此 邦有道 所以不廢 邦無道 所以免禍 故 孔子以兄子妻之
차 방유도 소이불폐 방무도 소이면화 고 공자이형자처지
이것이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버려지지 않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형(맹피)의 딸로 처를 삼게 하셨다.
范氏曰 言者 行之表 行者 言之實 未有易其言而能謹於行者 南容 欲謹其言 如此 則必能謹其行矣
범씨왈 언자 행지표 행자 언지실 미유이기언이능근어행자 남용 용근기언 여차 즉필능근기행의
범씨가 말했다. 말이란 행동의 겉이며, 행동은 말의 실질이다. 말을 쉽게 하면서 행동을 삼갈 수 있는 자는 없다. 남용이 이처럼 말을 신중히 하였으니, 반드시 그 행동도 삼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남궁괄 南宮括, 성은 南宮(남궁), 이름은 括(괄. 史記), 适(괄, 論語). 자는 子容(자용). 노나라 사람.
孟僖子의 아들로 仲孫閱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史記 孔子世家에,
〈孔子世家〉曰, “南容從夫子往周見老子, 老子曰, ‘聰明深察而近于死者, 好譏議人者也. 博辯宏遠而危其身者, 好發人之惡者也.’ 遂三復〈白圭〉.”
사기 공자세가에 이르길, “남용이 공자를 따라 주나라에 가 노자를 만나니, 노자가 말하길,
“사람이 총명하여 사리를 깊이 살피고 있어도 죽게 되는 경우가 가까이 닥치는 것은 남을 비방하기를 좋아하는 자이고, 박학하고 변론이 능하며 넓은 식견을 지녔어도 그 몸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남의 나쁜 점을 들춰내는 자이다.”라 하고는,
드디어 〈백규〉의 시를 세 번 반복하였다.
(史記 孔子世家에는, 南容이 南宮敬叔으로 되었으며, 遂三復〈白圭〉의 구절은 없으며, 南宮縚는 論語의 南容, 南宮适, 史記의 南宮敬叔, 孔子家語의 南宮縚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南宮括 字子容. 問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 孔子弗答. 容出,
孔子曰, “君子哉若人! 上德哉若人!” “國有道, 不廢, 國無道, 免於刑戮.” 三復 “白珪之玷” 以其兄之子妻之.
남궁괄의 자는 자용이다. 어느날 자용이 공자에게 묻기를, “예는 활을 잘 쏘고, 오는 땅에서도 배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 모두 자연스럽게 죽지 못했고, 하나라의 우임금과 주나라의 후직은 몸소 밭을 갈며 고생을 했어도 천하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고 물으니, 공자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용이 나간 다음에 공자는 말하기를, “자용은 군자로구나, 자용은 높은 덕을 가졌구나, 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크게 쓰일 것이고, 도가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도 형벌을 받아 죽는 꼴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자용은 시경을 읽다가
‘흰 구슬의 흠은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입으로 뱉은 말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라는 구절을 세 번 반복해 읽었다. 이것을 보고 공자는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春秋左氏傳 昭公七年 九月篇에, (남궁경숙과 남궁괄이 동일 인물이라는 설)
孟僖子, 及其將死也, 召其大夫曰, “禮人之幹也. 無禮, 無以立. 吾聞, 將有達者, 曰孔丘. 聖人之後也, 而滅於宋. 其祖弗父何以有宋, 而授厲公, 及正考父, 佐戴武宣, 三命, 玆益恭. 故 其鼎 銘云, 一命而僂, 再命而傴, 三命而俯, 循牆而走, 亦莫余敢侮. 饘於是, 鬻於是, 以糊余口.” 其共也如是.
臧孫紇有言, 曰, “聖人有明德者, 若不當世, 其後必有達人. 今其將在孔丘乎. 我若獲沒, 必屬說與何忌於夫子, 使事之而學禮焉, 以定其位.” 故 孟懿子與南宮敬叔, 師事仲尼.
仲尼曰, “能補過者, 君子也. 詩曰, ‘君子是則是效. 孟僖子可則效已矣.”
맹희자가 죽어갈 마당에 그의 가신들을 불러놓고 말하였다. “예의는 인간의 근본이다. 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 놓여진 지위를 지키어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내 들었거니와, 앞으로 모든 일에 통달한 어진 이가 있게 될 것인데, 그는 공구란 분이다. 그분은 옛 성인의 후손인데 가문은 송나라에서 망했다. 그 분의 조상인 불보하는 송나라 군주가 될 입장인데도 군주를 여공에게 넘겨주었고, 그 증손인 정고보에 이르러, 송나라의 대공․무공․선공의 세 군주를 보좌하여, 상경이었으나 날로 더욱 공경스러운 태도를 취했었다. 그래서 솥을 만들어 경계하는 말을 새기기를
‘대부가 되어서는 고개를 수그리고, 하경이 되어서는 등을 구부리며, 상경이 되어서는 몸을 구부려, 집에 갈 때에 집의 담 옆으로 빨리 빨리 걸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감히 무시함이 없으리라. 나는 이 솥에 된죽을 끓이어 먹고, 묽은 죽을 끓이어 내 입에 풀칠을 하여 살리라.’했었다. 그 분의 공경스러움은 이와 같았다.
장손흘이 한 말이 있는데, “성인의 밝은 덕이 있는 것이어서, 그이의 세대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그이의 후손에 반드시 모든 일에 통달하는 어진 사람이 나게 될 것이다.’했다.
이제 앞으로 공구가 세상에 어진 사람으로 존재할 것이다. 내가 만약 이대로 죽게 된다면, 필히 열과 하기를 그분에게 배우게하여, 그들의 지위를 확보케 하라.”
이 유언이 있었기에 맹희자와 남궁경숙이 중니를 스승으로 삼았다.
공자께서는 맹희자를 다음과 같이 평해 말하기를,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군자다. 시에 이르길, ‘군자는 모범 삼고 본받을 바다.’라고 했다. 맹희자야말로 모범 삼고 본받을 분이다.”
孔子家語 曲禮子貢問에,
南宮縚之妻, 孔子兄之女, 喪有姑, 夫子誨之髽曰, “爾毋從從爾, 毋扈扈爾, 蓋棒以爲荓, 長尺而總八寸.”
남궁도의 아내는 공자 형의 딸이다. 시어머니 초상을 당하자 공자가 그 머리 모습에 대해 가르쳐 주기를, “너는 머리를 너무 높게 묶지 말며, 너무 폭이 크게도 하지 마라. 개암나무 가지로 비녀를 삼되 그 길이는 한 자 로 하여 묶는 끈은 여덟 치로 하여라.”
說苑 雜言에,
孔子曰, “自季孫之賜我千種而友益親, 自南宮敬叔之乘我車也, 而道加行. 故道有時而後重, 有埶而後行, 微夫二子之賜, 丘之道幾於廢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계손씨가 나에게 천종의 많은 봉록을 내린 이후로 친구들이 더욱 몰려왔고, 남궁경숙이 나에게 수레를 마련해 준 이후로 나의 도가 더욱 실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도란 때를 만난 이후라야 소중함을 얻게 되고, 세력을 만난 이후라야 실행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내려 주지 않았다면 나의 도가 하마터면 폐기될 뻔하였다.”
①論語 公冶長 5-2
子謂南容 “邦有道 不廢 邦無道 免於刑戮.” 以其兄之子妻之.
자위남용 “방유도 불폐 방무도 면어형륙.” 이기형지자처지.
공자께서 남용에 대해 말씀하시길,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버려지지 않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형벌로 죽임 당하는 일은 면한다.”하시고 그 형의 딸을 시집보냈다.
①南容(남용) : 성은 남궁, 이름은 适(괄), 南宮縚(도)(孔子家語), 자는 子容. 南宮子容을 줄여 南宮. 공자의 제자로 학식이 많고 덕행이 높으며 언행이 신중했다.
②邦有道(방유도) : 나라에 도가 있다면, (仁道가 있고 仁政이 행해지면)
③不廢(불폐) : 반드시 등용된다는 뜻. 버림받지 않고 등용된다.
④刑戮(형륙) : 형벌이나 주륙
⑤兄之子(형지자) : 형의 딸, 공자의 형은 孟皮라 하는 異腹兄
南容 孔子弟子 居南容 名縚 又名 适 字 子容 諡 敬叔 孟懿子之兄也 不廢 言必見用也 以其謹於言行 故能見用於治朝 免禍於亂世也 事 又見第十一篇
남용 공자제자 거남용 명도 우명 괄 자 자용 시 경숙 맹의자지형야 불폐 언필현용야 이기근어언행 고능현용어치조 면화어난세야 사 우현제십일편
남용은 공자의 제자로 남궁에 거처했으며, 이름은 ‘도’ 또는 ‘괄’, 자는 ‘자용’ 시호는 ‘경숙’이며 맹의자의 형이다. 불폐는 반드시 등용된다는 말이다. 그 언행을 삼갔기에 태평한 시대에는 등용이 되고, 난세에는 화를 면할 수 있다. 이 일은 11-6에도 나온다.
或曰 : “公冶長之賢不及南容, 故聖人以其子妻長, 而以兄子妻容, 蓋厚於兄而薄於己也.” 程子曰 : “此以己之私心窺聖人也. 凡人避嫌者, 皆內不足也, 聖人自至公, 何避嫌之有. 況嫁女必量其才而求配, 尤不當有所避也. 若孔子之事, 則其年之長幼․時之先後皆不可知, 惟以爲避嫌則大不可. 避嫌之事, 賢者且不爲, 況聖人乎.”
혹왈 : “공야장지현불급남용, 고성인이기자처장, 이이형자처용, 개후어형이박어기야.” 정자왈 : “차이기지사심규성인야. 범인피혐자, 개내불족야, 성인자지공, 하피혐지유. 황가여필양기재이구배, 우불당유소피야. 약공자지사, 칙기연지장유․시지선후개불가지, 유이위피혐칙대불가. 피혐지사, 현자차불위, 황성인호.”
혹자가 말하기를, “공야장의 현명함은 남용만 못했기에 성인께서 자기 딸을 공야장에게 시집보내고 형의 딸을 남용에게 시집보냈으니, 형에게는 후하고 자신에게는 박한 것입니까?” 정자가 말했다. “그것은 자신의 사사로운 마음으로 성인을 헤아린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혐의를 피하려는 것은 모두 속으로 꺼리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은 원래 지극히 공정하거늘, 무슨 혐의를 피할 일이 있겠는가? 하물며 딸을 시집보내는 일은 반드시 그 재질을 헤아려 배필을 구하셨을 뿐이지, 더욱이 회피할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공자께서 하신 일이라면 나이의 많고 적음과 시기의 전후를 모두 알 수 없거늘,
오직 혐의를 피한 사례로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혐의를 피하는 일은 현자도 하지 않는데 하물며 성인이리오.”
②論語 先進 11-5
南容三復白圭。孔子以其兄之子妻之。
註釋
남용이 백규의 시를 하루에 세 번이나 암송하였다. 공자께서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註解
①三復(삼부) : 세 번이나 거듭 외우다. 三은 거듭, 여러 번.
②白圭(백규) : 시경 대아 抑篇의 시
③妻之(처지) : 처로 삼게 하다, 시집보내다.
※可妻(가처) : 사위로 삼을 만하다. 처로 삼게 할 만하다. 妻는 동사.
詩大雅抑之篇曰: 「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 南容一日三復此言, 事見家語,
蓋深有意於謹言也. 此邦有道所以不廢, 邦無道所以免禍, 故孔子以兄子妻之.
시경 대아 억편에 “흰 옥의 흠은 갈아낼 수 있지만 내가 한 말의 흠은 갈아 낼 수 없다.”했다. 남용이 하루에 이 구절을 세 번 반복하였다. 이 일은 가어에도 나온다. 대개 말 삼가기에 깊이 뜻을 둔 것이다. 이것이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버려지지 않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5-2) 그래서 공자께서는 형의 딸로 처를 삼게 하셨다.
※옥에 티가 있는데 秥(점)은 검은 티, 붉은 티는 瑕(하).
范氏曰: 「言者行之表, 行者言之實, 未有易其言而能謹於行者. 南容欲謹其言如此, 則必能謹其行矣.」
범씨가 말했다. “말이란 행동의 겉(외피)이며, 행동은 말의 실질이다. 말을 쉽게 하면서 행동을 삼갈 수 있는 자는 없다. 남용이 이처럼 말을 신중히 하였으니, 반드시 그 행동도 삼갈 수 있었을 것이다.
論語 憲問 14-5
南宮适問於孔子曰:羿善射,奡盪舟,俱不得其死然。禹稷躬稼而有天下。夫子不答。南宮适出。子曰:君子哉!若人。尚德哉!若人。
남궁괄문어공자왈:예선사,오탕주,구부득기사연。우직궁가이유천하。부자부답。남궁괄출。자왈:군자재!약인。상덕재!약인。남궁괄이 공자께 물었다. “ ‘예’는 활을 잘 쏘았고, ‘오’는 배를 끌만큼 힘이 세었지만, 모두 제 명에 죽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와 ‘직’은 농사를 지었어도 천하를 가졌습니다. 공자께서 답하지 않으셨다. 남궁괄이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로다! 이 사람은! 덕을 숭상하는 구나. 이 사람은!”
①南宮适(남궁괄) : 魯나라의 대부, 자는 子容, 南容
②羿(예) : 하나라 사람, 하임금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으나 제자 寒浞(한착)에게 피살됨.
③奡(오) : 한착의 아들, 힘이 세다, 헌걸 차다. 하 임금 소강에게 피살.
④盪(탕) : 흔들다, 밀다, 움직이다.
⑤躬稼(궁가) : 몸소 농사를 짓다.
南宮适, 卽南容也. 羿, 有窮之君, 善射, 滅夏后相而簒其位. 其臣寒浞又殺羿而代之. 奡, 春秋傳作 「澆」 , 浞之子也, 力能陸地行舟, 後爲夏后少康所誅.
남궁괄은 남용이다. ‘예’는 유궁 나라의 임금으로 활을 잘 쏘았고, 하나라 왕 ‘상’을 멸하고 왕위를 찬탈했다. ‘예’의 신하인 ‘한착’이 다시 예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오’는 춘추전에 ‘요’로 되어 있다. 한착의 아들이다. ‘오’는 힘이 쎄 땅에서 배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 하후 소강에게 주살 당했다.
禹平水土曁稷播種, 身親稼穡之事. 禹受舜禪而有天下, 稷之後至周武王亦有天下. 适之意蓋以羿奡比當世之有權力者, 而以禹稷比孔子也. 故孔子不答. 然适之言如此, 可謂君子之人, 而有尙德之心矣, 不可以不與. 故俟其出而贊美之.
‘우’는 물과 토지를 다스려 ‘직’과 함께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지었다. ‘우’는 순임금의 선양을 받아 천하를 소유했고,‘직’의 후손은 주나라 무왕에 이르러 또한 천하를 소유했다. 남궁괄의 뜻은 아마 ‘예’와 ‘오’를 당시의 권력자에, ‘우’와 ‘직’으로 공자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공자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 남궁괄의 말이 이와 같았으니 군자다운 사람이고 덕을 숭상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하겠다. 그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그가 나가기를 기다려 찬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