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연말께 주요 간부 대거 교체…'한민구 체제' 구축
기사입력 2014-11-17 15:32
전진환 기자 = '병영문화 혁신 추진경과'업무보고를 위한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특위가 열린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 회의실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이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서울=뉴시스】김훈기 기자 = 국방부가 연말께 실국장 등 고위직의 상당수를 교체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신임 장관 취임과 동시에 주요 보직자들에 대한 인사가 진행되나 올해는 6월 한민구 장관 취임 이후 연이어 발생한 군 가혹행위와 방산비리 탓에 시기가 늦어졌다.
이번에 1급(차관부) 간부들을 상당수 교체하게 되면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군 전체의 분위기 쇄신은 물론 '한민구 체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부 실장과 국장급에 대해 후속 인사를 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인선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략적인 인사 범위와 시기에 대해서는 "인사 범위는 언론에 언급되는 것과 비슷하지만 시기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국방부와 청와대는 부임한 지 1년6개월이 넘은 이들을 12월 중으로 교체하기로 하고 후임자 물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인사 대상에 거론되는 인물은 심용식 국방운영개혁실장(예비역 중장·육사 34기), 이용대 전력자원관리실장(예비역 소장·육사 35기), 박대섭 인사복지실장(예비역 소장·육사 35기) 등이다. 국장급 중에는 정대현 국방교육정책관(예비역 준장·육사 35기) 등이 언급되고 있다.
반면 지난 9월에 취임한 황희종 기획조정실장과 올 초 직무대리에서 실장으로 취임한 류제승 정책실장(예비역 중장·육사 35기)은 유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0년 11월 부임한 김민석 대변인은 업무 연속성 차원에서 유임될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이번에 1급을 비롯한 국방부 고위직들을 대거 교체하게 되면 한민구 장관은 김관진 전 장관 시절 인사들과 결별하고 새로운 인물들과 조직 재정비와 분위기 쇄신에 나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또한 병영문화 혁신과 방산비리 척결 등 현 정권의 국방 현안에 대한 대책 마련과 실행에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620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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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근 장군이 증언한, 한국(6.25)전쟁 10대 불가사의
이형근 장군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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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06 ~ 1957.05 |
제9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
1954.02 ~ 1956.06 |
제1대 대한민국 합동참모회의 의장 |
1952.12 |
대한민국 육군 제1군단 군단장 |
1950 |
대한민국 육군 제2사단 사단장 |
1949 |
제1대 미국 대사관 무관 |
1946.09 |
대한민국 육군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
19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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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육군사관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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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일선 부대의 적정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했다는 점이다.
6·25 발발 직전인 1950년 4-5월께는 내가 지휘한 8사단뿐 아니라 다른 사단에서도 적의 대규모 남침 징후가 보인다는 보고가 잇따랐을 것이다. 8사단의 경우 1950년 3월-5월 태백산맥으로 침투한 이호재 부대의 잔당과 김무현 유격대를 토벌하던 중 생포한 포로들이 심문결과 이구동성으로 적의 대규모 남침을 거듭 예고했기 때문에 이 정보를 육본에 수차 보고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둘째, 각급 주요 지휘관의 이른바 6월 10일 인사이동이다.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 중앙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교류와 이동이 단행되었다.
셋째,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이다.
6월 13일부터 6월 20일에 걸친 전후방 부대 교대 역시 부적절한 조치였다. 전투를 지휘해야 할 지휘관들이 적정이나 지형은커녕 부하들의 신상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넷째,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하여 남한은 6월 11일부터 6월 23일까지 비상경계령을 내렸다.(그런데 전쟁 직전인 6월 23일 자정에 해제)
그 이유는 6월 10일 이른바 <조국통일투사 체포사건>에 대해 평양 방송이 맹렬한 비난과 무력행사 위협을 해왔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6월 23일 김일성이 남침 준비를 완료하고 대기하도록 결정된 날 자정에 비상경계령을 해제한 점이다. 좀더 부연 설명하자면 북한측은 남북협상을 위해 특사 3명을 파견할 것이니 남측에서 메시지를 받으라 했다. 남한측은 이들을 그날 38선 남방 1Km지점에서 맞아 메시지를 인수했다.
그러나 이들은 유엔감시위원단에게도 수교할 문서가 있다면서 서울로 들어가겠다고 떼를 썼다. 우리 경찰들이 이들을 체포했는데 북측은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강력한 무력을 행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렇게 남북이 티격태격거리고 있는데도 육본은 6월 24일 자정부터 비상경계태세를 해제한 것이다.
다섯째, 이런 위기상황에서 육본은 비상 경계령 해제와 더불어 전 장병의 2분의 1에게 휴가를 주어 외출과 외박을 시켰다.
여섯째, 육군 장교클럽 댄스파티가 6월 24일 밤 열렸다.
육군 장교클럽 낙성파티를 연다고 전후방 고급 장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참석장교들은 6월 25일 새벽까지 술과 댄스를 즐겼으며 일부 미 고문관과 한국 장교들은 2차를 가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초청장을 받았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엉뚱한 것이어서 불참했다.
일곱째, 적의 남침이후 우리 병력을 서울 북방에 축차 투입해 불필요한 장병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지만 군사적 기초상식을 깬 작전지도였다.
여덟째, 적의 공세로 국군이 퇴각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6월 25일-27일 우리 중앙방송은 국군이 반격, 북진중이라고 허위방송을 함으로써
군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상황판단을 그르치게 했다. 서울 북방에서 접전중이던 국군이 상황판단을 제대로 했다면 육본은 그들을 재빨리 전장에서 이탈케 해 다음 작전에 대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아홉째, 우리측의 한강교 조기폭파다.
전술의 원칙상 폭파나 차단은 퇴각군의 퇴로를 막기위해 추격군이 감행하는 법인데 한강교는 우리측이, 그것도 한강 이북에 국군만 믿고 있는 많은 시민, 그리고 병력과 군수물자를 방치한 채 서둘러 폭파했다. 더구나 대통령, 정부 고관, 육군 참모총장이 국민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한강이남으로 도피한 뒤, 한강교를 폭파했다는 것은 전술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하책이며 반역행위였다.
열째,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사형 집행이다.
최대령은 육군 참모총장의 명령에 복종, 한강교를 폭파했을 뿐인데 이에 책임을 지고 1950년 9월 21일 비밀리에 처형되었다. 그때는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는 시기였는데 이런 경황을 틈타 책임소재도 가리지 않은 채 미리 처형한 것은 정치적 복선이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물론 6·25초전의 패배 책임을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미국의 오판이 가장 컸다. 미국은 애초부터 싸우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특히 1950년 1월 21일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다고 공표한 것은 적에 대한 초대장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국군 수뇌부의 잘못이 간과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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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국방부장관과 군 수뇌부 적성세력 ]
▲ 전쟁이 터지기 일주일 전 38선을 방문한 덜레스 미 국무성 고문(중절모를 쓴 인물)과 신성모 국방장관 (그 오른쪽). 신성모는 6.25 전쟁 발발시 최악의 국방부장관이었다.
6.25 전쟁 당시 신성모 국방부장관과 군 수뇌부들은,
육사 8기생들의 증언과 여러 사실적 기록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적성세력(간첩)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신성모 국방부장관의 간첩행위와 허위보고]
1.군이 신성모 국방부장관에 보고를 위해 6.25 전쟁 직후, 공관에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전화를 아예 받지 않습니다.
2.전쟁 발발 직후인 6월 26일일 국회에 출석한, 신성모 국방장관과 최고 수뇌부는 아래 내용을 보고합니다.
"국군이 해주에 돌입하고 의정부 전선에서 적을 격퇴했다며, 만약 공세를 취한다면 1주일 이내에 평양을 탈환할 자신이 있다 "
그들은 국회에 허위 보고하였고, 그 결과로 국회는 국민을 피난시키는 대신 '서울사수' 를 결의합니다,
3.신성모 국방장관은 6월 26일 아침 8시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 중에 있다”는 내용으로 국민들에게 공식 담화를 발표합니다.
4. 같은 날 밤 신성모 국방장관을 비롯한 최고 수뇌부는, 육·해·공군 총참모장들과 군 간부를 소집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수도 이전'을 결의하고 자신들만 서울을 빠져나갑니다.
5. 그리고 1950년 6월 28일 새벽, 한강다리를 폭파시킵니다.
피난민들은 그 자리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즉사하거나 수장되고 부상을 입었으며, 한강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1)군 수뇌부의 한강교 조기 폭파로, 당시 북한에 밀려 후퇴 중이던 국군은 아래로 내려오는 퇴로를 완전히 잃게 되었습니다.
후퇴하던 국군이 북한군에 의해 고립된 것은 물론, 전투가능한 군 병력과 장비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치명상을 입었죠.
2)한강교 조기 폭파로, 피난치 못한 1백만명의 서울시민들은, 서울에 고립된 채로 공산군 지배하에 살아야 했습니다.
[신성모 국방부장관, 6.25 발발 직전까지도 북침 호헌으로 대통령과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신성모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는 6.25전쟁 직전까지도,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호헌을 하며,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우리는 3일 내로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이 사람들을 안심시켰던 말이었죠.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3일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곧 들통났죠.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은 서울 중앙청을 점령했습니다. 대한민국 서울은, 불과 3일만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죠.
[ 6.25 전쟁 직전, 한국 군대와 지휘부 상황 ]
▲ 스탈린이 북한에 제공한, 소련제 T-34 전차로 한국을 점령한 북한군
6.25전쟁이 발발하기 약 6개월 전인 1949년 12월 27일 육군본부 정보국에서는 박정희, 김종필, 이영근 주도 하에 연말 종합보고를 작성,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관해 상세한 보고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보고는 당시 정부와 군 수뇌부에 의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북한군 공격 15일전인 1950년 6월 10일 전격 단행된 인사이동으로 전방 사단장과 육본 지휘부 대부분이 교체되어 전쟁 발발 당시 이들은 자기부대 장악과 임무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전쟁 발발 직전인 6월 23일 24시에 한국군은 6월 11일 16시부터 유지되던 비상경계명령인 '작전명령 제78호'를 해제했다. 그리고 약 1/3에 달하는 병사들이 24일 새벽(토요일)부터 휴가와 외출을 떠나 막사를 벗어나 있었다.
결국 북한군이 남침을 개시했을 때 한국군은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전쟁 발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점령당하게 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한국군 수뇌부 일부는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는 말로 실상과 괴리된 대북 우월감을 유포시켰다.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1200&num=94222
[ 6.25 전쟁 직전, 스탈린에 김일성이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에 남침 전쟁 승인을 받으러 간 최룡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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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특사 최룡해, 푸틴 대통령에 김정은 친서 전달 … 어떤 내용 담겼나?
기사입력 2014-11-19
‘김정은 친서 전달 최룡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룡해 당 비서가 18일 오후(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크렘린 공보실은 언론 보도문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최룡해 특사를 접견했다”며 “최룡해 특사가 북한 지도자(김정은)의 친서를 갖고 왔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과 최룡해 비서의 상세한 면담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북 소식통은 “논의 내용은 경제 협력 및 정상회담 가능성 타진 등 다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이 러시아와 통상적 수준의 논의를 원했다면 모스크바에 상주하는 김형준 주러 북한대사나 10, 11월 러시아를 방문했던 이수용 외무상,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선에서도 가능했겠지만, 최룡해 비서를 특사로 보낸 건 그만큼 북―러 정상회담 성사를 비롯한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20일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최룡해와 동행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노광철 군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등이 맡은 역할도 주목된다. 김 제1부상은 6자회담 북한 대표 출신으로 북핵 협상에 정통한 인물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8일 오후 6시 “최룡해 동지가 17일 특별비행기로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3문장짜리 짧은 보도만 내보냈다.
‘김정은 친서 전달 최룡해’ 소식에 네티즌들은 “김정은 친서 전달 최룡해, 친서에 어떤 내용 담겨있을까?” , “김정은 친서 전달 최룡해, 줄타기하는 걸까?” , “김정은 친서 전달 최룡해, 면담 내용 궁금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최룡해 특사 일행은 22일까지 모스크바에 머문 뒤 극동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24일 평양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2692318
러 외무 "푸틴 대통령, 김정은과 정상회담 준비돼 있어"
기사입력 2014-11-21 07:58
러시아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0일(현지시간)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 최룡해 노동당 비서와 회담한 뒤 단독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라브로프는 "러시아는 최고위급을 포함한 북한과의 다양한 수준에서의 접촉을, 양측이 합의한 시기에 진행할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측과 합의한 시점에 김정은 제1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라브로프는 이어 북핵 6자회담 재개 문제도 논의됐다면서 "북한 측은 회담에서 2005년 9월 6자회담 참가국들의 공동성명에 기초하여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이 같은 북한 측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며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 이 중요한 정치 과정을 재개하기 위한 합의를 찾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브로프는 "오늘 회담에서는 지난 18일 푸틴 대통령과 최룡해 특사 간 면담에서 이루어진 원칙적 합의들을 확인했다"면서 "최 특사가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한 친서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양국 관계 발전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의지를 표시했다"고 친서 내용을 언급했다.
그는 또 "러-북 통상경제관계는 이미 진행 중인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을 포함해 질적으로 새로운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개성공단에 러시아 기업들이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달 말로 예정된 하산-나진 구간 철도를 이용한 석탄 시범 운송 행사가 끝난 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을 위한 구체적 작업이 시작되길 기대한다"면서 "북한 측도 이 사업이 성공하면 다른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을 검토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라브로프는 회견에서 유엔 위원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기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한 데 대해선 "비건설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는 결의안 채택에 반대했다"며 인권과 자유 문제를 다루는 유엔 기구가 감찰기관으로 변질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최 비서는 회담 뒤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앞서 라브로프 장관과의 회담을 시작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것은 두 나라 최고 지도자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밀접히 하고 친분 관계를 강화해서 양국 상호관계 발전의 더 큰 성과를 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한 김정은의 친서 내용에 대해 "정치·경제·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의 러-조(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방도에 대해서 김 제1위원장이 견해를 표시했다"고 소개했다.
최 비서는 모스크바 방문 첫날인 지난 18일 저녁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을 면담하고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했다.
라브로프 장관과 최 비서는 이날 모스크바 시내 외무부 영빈관에서 오후 1시 20분부터 약 1시간 30분 동안 회담했다.
북측에선 최 비서 외에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김형준 러시아 주재 대사 등 10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회담에서는 정치·경제·군사·인적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양국 간 협력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비서는 사흘간의 모스크바 방문 일정을 마치고 이날 저녁 극동 하바롭스크로 떠났다. 그는 오는 24일까지 러시아에 머물 예정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5&aid=0003199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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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김정일 영전 2014년까지 전쟁 공언 1 " 北 장성택 2013년 전쟁 반대로 김정은에 숙청"
(부하들 앞에서 김정일 사망한 2011년부터 3년 내에 남침 통일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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