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05>知之者가 不如好之者요 好之者가 …

知之者가 不如好之者요 好之者가 不如樂之者니라
‘논어’ 옹야(雍也)편의 이 장은 삶과 공부에서 알 知(지), 좋아할 好(호), 즐거워할 樂(락)의 세 단계를 차례로 비교하고, 樂을 궁극의 이상으로 삼았다.
知는 矢(시)와 口(구)로 이루어져 있다. 화살 矢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어 서약할 때의 표지로 사용했으므로 ‘맹세한다’의 뜻으로 사용된다. 口는 흔히 ‘입 구’라고 풀지만 실은 입과는 관계가 없다. 본래 신에게 기도하는 글을 넣어두는 그릇의 모양이었다. 따라서 知는 신에게 맹세하는 일을 가리켰으며 ‘분명히 한다’라든가 ‘분명히 깨닫는다’는 뜻을 지니게 되고 ‘맡아서 행한다’의 뜻으로도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智는 知에 신성한 방패인 干(간)을 더해서, 신에게 맹세하는 일을 더욱 신성화한 글자다. 하지만 뒤에 知가 ‘안다’는 동사로 쓰이는 데 비해 智는 ‘지식’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好는 갑골문자에서 女(녀)가 子(자)를 안은 모양이다. 곧,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안은 모습이다. 거기서부터 아름답다나 친하다의 뜻으로 쓰였고, 모든 것이 좋다는 의미에서 ‘좋다’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樂은 손잡이가 달린 방울에 술이 붙어 있는 모양인데 춤사위 때 그런 방울을 흔들어서 신을 즐겁게 하는 일을 가리켰다. 음악 악, 즐거워할 락, 즐길 요의 세 뜻과 음으로 사용한다. 不如(불여)는 둘을 비교해서 앞의 것이 뒤의 것만 못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삶의 가치 있는 일에서 보면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더 높은 단계이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거워하는 것이 더 높은 단계이다. 다만, 공자는 스스로 학문을 좋아한다고 했지, 즐거워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우리도 자기 일에서 궁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쉽게 자만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자 이야기]<606>知者樂水하고 仁者樂山이니 知者動하고…
‘논어’ 옹야(雍也)편의 이 장은 대단히 유명하지만 풀이가 쉽지 않다. 知者 즉, 지혜로운 사람은 꼭 물만 좋아하고, 仁者 즉, 인자로운 사람은 꼭 산만 좋아해야 하는가?
樂는 음악 악, 즐거워할 락, 즐길 요의 세 풀이가 있다. 처음 두 구절의 樂는 즐길 요, 뒤의 樂은 즐거워할 락이다. 者는 ‘∼한 사람’이다. 動과 靜은 상대된다. 動은 음 부분 童(동)과 뜻 부분 力(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金文(금문)에서는 童이 움직인다는 뜻을 지녔다. 뒤에 (뇌,뢰)(뢰·쟁기)의 모양인 力을 더해 농사짓는 모습을 나타냈다. 여기서 몸을 움직인다, 움직인다는 뜻이 나왔다.
靜은 靑과 爭으로 짜여 있다. 靑은 靑丹(청단)으로 만든 푸른 물감, 爭은 손으로 쟁기를 잡은 모양이다. 곧 靜은 해충을 막으려고 푸른 물감으로 쟁기를 정화시키는 행위를 가리켰다. 여기서 정화한다, 고요하게 한다, 고요하다의 뜻이 나왔다. 壽(수)는 축문 그릇을 밭두둑 사이에 두고 풍작을 기원하는 禱(도)와 관련이 있다. 거기에 老(로)의 줄임 꼴을 더해 長壽(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나타냈다.
지혜로운 사람이나 인자로운 사람이나 모두 山水를 좋아한다. 그런데 물은 순리대로 흘러가고 산은 중후한 덕으로 만물에 혜택을 주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더 즐기고 인자로운 사람은 산을 더 즐긴다고 할 수 있다. 또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라도 自得(자득)하여 동적이면서 즐거워하고, 인자로운 사람은 남과 어울리면서 다투지 않아 정적이면서 장수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仁을 이용하고 인자로운 사람은 仁에 편안하되, 결과는 같다. 둘을 별개로 나누어 본다면 옳지 않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