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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아직도 통곡은 계속되고
성지 순례 넷째 날 1월 4일 수요일, 요르단 알렌비-통곡의 벽
예루살렘, 시온산 마가다락방, 다윗의 무덤, 감람산, 예수 승천 기념 교회, 눈물 교회, 베드로 통곡 교회, 겟세마네 동산, 주기도문 교회, 히스기야 터널, 채찍 교회, 십자가의 길, 골고다 언덕, 예수 승천 교회, 통곡의 벽
어제의 힘든 페트라의 일정으로 이스라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로비로 나오니 어제 부탁한 성경책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서 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를 표하고 차에 올라타 알렌비 다리가 있는 국경으로 갔다. 가는 길에 요르단 이야기와 처녀인 가이드의 관심사가 결혼이라 그 이야기와 장례식 풍습을 들을 수 있었다. 출애굽 여정의 하이라이트 요단강 도하, 여리고 성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국경에 도착하여 보세 지역에서 남은 요르단 돈을 바꾸려 선물을 사서 가이드에게 초코렛 선물을 하고 짧은 이별을 하였다. 이스라엘 국경으로 넘어간다. 보안 검사가 힘들어서 팔레스틴 분쟁 화약고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전 1996년 성지 순례하던 때는 출애굽 여정으로 여리고로 들어갔었는데, 이제는 유대 광야로 곧장 가게 되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앞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던 그 광야로 가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빵의 문제, 돈의 문제에 조심하라. 이적과 표적, 순간적 요행적 성공을 추구하는 신앙 행태 조심하라. 이 세상 것, 우상과 권력에 절하지 말라.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전에는 이 광야에 서 있지 못했었다. 이 광야를 보고 동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먼저 시온산으로 가서 다윗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천도하여 비로소 세계의 중심지가 되고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던 곳, 성전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곳에는 마가의 다락방이 있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자리와 오순절 성령 강림 장소가 이곳이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되었다. 나와서 바로 옆쪽 건물에 다윗의 가묘가 있었고, 박물관이 있었지만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일정이 오늘 하루에 다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라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봐야 했다. 날씨가 을씨년 스러워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다.
점심 식사는 성지연구소의 이정복 목사님 댁에서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나이 드신 인자한 사모님이 우리를 반기며 32명분의 식사를 대접하였다. 이스라엘 안에서 한국인의 정을 나누며 우리는 감람산으로 향했다. 동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중요한 사역을 다 이루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은 곳, 그쪽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덤이 많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예수 승천 기념 교회, 여러 곳이 승천한 곳이라고 하는데 허름한 회교식 건물이 가능성이 높다고 그곳에 갔다. 어디가 주님이 하늘로 올라 간 곳일까. 부활의 장소, 부활 신앙을 기념하는 곳이다. 예루살렘 전도가 1달러에 두 장이라 더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 장을 고재은(고3) 학생에게 건넨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고난이 있는 곳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괴롭게 기도하시던 모습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화란의 두 수녀가 오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거절한다. 왜 거부하는 것일까. 거룩을 손상당할까봐. 이생에서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는 것이 불편해서 일까. 젊은 수녀는 노 수녀를 바라본다. 그의 반응이 곧 결정이기 때문이다. 아니(노)다. 주기도문 교회에서 각 나라로 된 주기도문을 또 본다. 전에 보이지 않던 글들이 보인다. 인도네시아 바탁족 언어, 각 인종들의 언어들이 보인다. 아직도 선교해야 할 많은 종족들의 주기도문이 다음에는 붙으리라 기대하며 그곳을 빠져 나왔다. 차로 이동하여 실로암 못, 히스기야 터널로 갔다. 허술한 성지, 팔레스타인 사람들 집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니 거기 우물이 있었다. 그곳이 그 유명한 히스기야 터널이라니, 와렌 세프트(Warren Shaft, 수직갱도)가 그곳에 있고 히스기야가 앗시리아 산헤립의 군대를 맞아 항전하던, 그 비밀이 이곳에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였다. 장소는 왜소해보였지만 실로암 연못과 연결된 결정적인 수원이었다. 그곳에서 올라와 기드론 골짜기로 가니 예수의 고난의 현장이 연결되었다. 우리는 그 길로 걸어 올라갔다.
먼저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던 곳을 보며 신앙의 기적과 고난의 현장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루살렘은 이 둘이 병존하는 곳인다. 오늘날도 네 종교가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가지고 서로 자신들의 성지라고 주장하는 곳이 되었으니 우리는 이곳에서 예수를 만나려 하고, 유대인들은 다윗을 만나려 하고, 회교도 인들은 마호멧을 만나려 한다. 기독교인, 아니 희랍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개신교인들이 만나는 곳이 이곳이 아닌가. 여러 생각이 교차되면서 채찍 교회와 선고 교회에서 예수님이 대제사장과 빌리도에게 고난당하신 장소를 보았다. 이제부터 드디어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 길, 비아돌로사(Via Dolorosa, 슬픔의 길)로 가는 길이다. 사자의 문에서 헤롯의 문으로, 다멕섹의 문으로 간다. 14곳을 다 가면 예수님의 빈 무덤이 있는 곳에 이른다. 우리는 예수님이 세 번째 넘어진 곳(9번 장소)에서 통곡하며 통성으로 기도하였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는가. 내가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기도할 수 없어서 얼마나 우리는 그곳에서 침묵하고 있었는지.
회교도인들이 장사하는 장소로 변모된 곳. 그들에게는 처절한 생존의 장소이다. 예수님은 다시 고난을 받으시며 인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이곳에 다시 십자가를 지고 가시고 계시었다. 우리의 여행 중 고난도 이곳에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13번째 장소인 아리마대 요셉의 예수님 장지에서 장로님 부부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도 모르고 계속해서 순례를 진행하였다. 골고다 언덕, 15번째 지역, 무덤에서 부활하신 알렐루야 상, 프란시스칸 교회 성 조각을 보고 통곡의 벽으로 갔다. 보안 검사를 한다. 이 통곡의 벽을 보존하려고 복잡한 절차를 갖는 유태인, 10년전의 자유로운 모습이 더 나아보이는 것은 왠 일까. 세 곳의 보안 검사소를 설치하고 남녀 경비병이 지키고 있었다. 통곡의 벽 옆으로는 유태인들이 시편 히브리어 책을 가지고 독서 의자에서 읽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유태인들이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면서 보여주는, 저 토라 읽는 모습, 저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모습이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거는 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담양의 장로님 부부는 우리를 찾느라 통곡하고 있는 줄 모르고 우리는 일정을 마치고 차에 다 왔을 때에 비로소 장로님이 안계신줄 알았다. 그래서 오세동 가이드와 목사님 두 분, 나는 그 통곡의 벽으로 다시 들어가 다른 방향 보안 검사소로 빠져 나가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다시 돌아와서 물어보니 호텔에 두 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세 분을 찾아 나서 다른 보안소를 빠져 나가니 세 분이 오시지 않는가 결과를 말하고 돌아와 호텔로 가니 그곳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그래도 인생의 경험과 지혜가 있어서 찾을 수 있었고 하나님이 인도해주어서 더 고생하지 않고 일행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샬롬 호텔로 가서 하루의 긴 일정 속에서 피곤한 피로를 달래며, 원기 회복을 위해 안식의 시간을 갖었다.
주여, 내일은 당신의 중심 사역지 갈릴리로 갑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우리를 잘 인도해주세요. 오늘 저녁 꿈에서도 계시로 보여 주시옵소서. 아멘.
요르단 이야기
후세인 압달라 2세 국왕, 사진을 부착하여 존경을 표하고 있다. 하심 왕가가 1200-1918년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에서 통치하였다. 그 하심 왕가가 요르단에 건너와 다스리게 된다. 국경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 통치하고 프랑스 네덜란드가 통치하던때 오스만 터키가 이집트 통치하던 때, 수에즈 운하를 정복한다. 맥만한 장군과 샤리프 후세인(조부)과 섹스피쿠 협정을 1916년 협정을 맺어, 1917년 요르단-아카바(홍해)를 1918년까지 아랍 로비하여 오스만 터키를 정복하고 점령한다.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가 이 이야기이다.
셜리모 비밀 협정, 불란서와 사이에, 금화 숨긴 것, 오스만 터키가 후퇴하면서 숨겨 놓았다.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틴은 불란서가 이집트, 요르단은 영국이 유엔의 관리하에 통치하게 된다. 바이후 협정은 유태인과 독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1948년 1차 중동전, 삿11장 아베그라임 지역이다. 입다가 20개 성읍을 쳐 부시었는데, 이 지역을 차지한다. 팔레스틴의 입장에서 1946년 영국 소환하여 하이퍼 항구에 유태인이 들어오게 된다. 그들은 대량 학살로 인해 독립기금으로 땅 쌌다. 웨스트 뱅크 가자 지역만 빼고 빼앗음. 1967년 2차 중동전 때, 압달라 국왕,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의 장자 파이샤 왕조를 세운다. 샤리프 압달라-탈라-후세인-압달라 2세 순이다.
요르단에서 관은 운반 수단이다. 시체가 금방 썩기 때문이다. 시체 처리 시간은 법으로 24시간 안에 묻어야 한다. 장례식이 간단하다. 탠트를 보면 베두인과 집시의 집을 구별할 수 있다. 텐트가 네모 반듯하고 염소털에 검정 누런색이면 베두인이다. 하지만 색깔이 컬러풀하면 집시 것이다. 색색이 화려한 것은 자기들 언어이다.
결혼식은 사촌간 결혼을 하는 근친 결혼제이다. 싯딤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 가나안 입성전 머물었던 곳이다. 지금은 이곳에 바나나 농장이 많다. 보이는 파이프는 농업 용수로서 요단강에서 끌어들인다. 시리아 국경 얍복강. 재산은 같은 부족에게 내려간다. 약혼식은 계약서를 통하여 중매장이가 중간에서 예단과 결혼 자금을 적는다. 남성이 준비를 한다. 파혼 조항도 기록한다. 결혼식은 목요일 금요일 한다. 결혼식날 예비 신부는 친구들을 초대하여 다과회를 열어 송별회를 갖는다. 신랑집이 결혼식장이 된다. 경적 소리를 울리면 동네를 몇바퀴 돌면서 시끌 벅적하게 한다. 점심식사는 대접하고 밤새 파티를 한다.
이스라엘 이야기
가이드는 오세동 전도사로, 전체 가이드로 인솔하다가 이스라엘에서 오래 살아서 직접 인도하였다.
유대 광야에서 예수가 40일 금식 기도하였다. 우측으로 여리고가 보이고 좌측으로 예루살렘이 보인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야기가 나온다. 해발 0m에서 1400m까지 유다 광야의 지형이 있다. 주전 722년 앗수르 혼합 정책에 의해 북 사마리아는 혈통이 잡종이 되었다. 유대인은 세 번 예루살렘에 올라온다. 단과 벧엘, 세겜에서 예배를 드리었다. 북쪽 사람들은 종교적인 정통성이 없었다.
여리고는 하스모니아 왕가에 의해 주전 165년, 시온산에 성서와 지성소를 가졌고 주전 63년에 멸망하게 된다. 다윗 왕의 가묘를 시온 산에서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을 평화의 도시(yir shalom)이라고 한다. 여호수아가 이 성을 정복하려할 때 여부스 족이 살고 있었다. 이 지역은 다윗이 정복하는데, 이곳을 정치 종교적 도시로 만든다. 역사적으로 다윗 왕 시대 주전 1020년 때에 예루살렘 성이 구축된다. 기드론 골짜기에서 힌놈 골짜기, 오벨 골짜기를 중심이로 성벽이 형성된다. 기르앗여아림에서 법궤를 옮겨온다. 주전 1000년 솔로몬 왕 시대에 성전이 건축이 된다. 7년간 공사 끝에 주전 962년 성전이 완성되고, 솔로몬이 궁전은 13년간 작업하여 완성된다. 그러다가 분열 왕국 시대로 나뉘어진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다스리다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르호보암에 의해 다스리다가 주전 587년 바벨론 느붓갓네살 왕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 70년 식민생활을 하다가 페르시야 고레스 칙령으로 스룹바벨이 귀환하여 주전 515년에 제2 성전을 건축한다. 이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파괴된다. 오늘날 통곡의 벽만 남아 그 때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히스기야 왕 때 예루살렘을 솔로몬 왕시대보다 3배로 확장한다. 수로를 건설하여 히스기야 터널을 만든다. 실로암(보냄을 받았다뜻) 샘물을 기혼(넘쳐흐른다뜻) 샘 밖으로 연결한다. 이 터널이 그 유명한 실로암 터널 히스기야 터널이다. 오늘날 성지 순례 객들이 이 터널(533m)을 40분 걸려 걸어갈 수 있다. 여름에 우기(4월중)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을 때에 할 수 있다.
먹는 것, 코셔를 지킨다. 정결의식으로 레위기에 규정한대로 정한 것과 부정한 것, 거룩한 것을 가린다. 음식 담는 그릇도 정확히 구별한다. 유대인들은 다른 곳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베다니, 벳바게가 보인다. 주기도문 교회가 있다. 여리고로 넘어간다. 그곳에 히브리대가 있고, 그 너머에 놉 기브아가 있다.
시혼성문에 다윗의 가묘가 있고, 다윗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은 유료라 들어가서 더 구경할 수 없었다. 베드로 통곡 교회, 가야바의 법정이 있었고, 실로암 연못 히스기야 터널을 볼 수 있었다. 힌놈의 골짜기 내려가는 길에 있었다. 힌놈이라는 말은 지옥 불이라는 말이다. 감람산 터널로 유다 광야에서 예루사렘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예루살렘 왼쪽으로 동 예루살렘 팔레스틴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지저분한 인상을 주었다. 서 예루사렘에는 유대인들이 사는 번화한 곳이었다. 기드론 골짜기는 여호사밧의 골짜기이었고, 감람산 올리브산이 바로 옆에 있었다. 양파 교회 마리아 교회인데, 후대에 막달라 마리아 교회로 주후 6세기 로마 카톨릭 수녀를 기리는 교회가 되었다. 겟세마네 동산 교회, 겟세마네라는 말은 기름을 짜다라는 말이다. 이곳에서 예수님이 피방울이 물방울처럼 흘리며 기도하던 곳이었다. 다윗 망대, 헤롯 궁전이 있던 곳에도 올랐다. 예루살렘 성벽은 슐라이만 대제가 1575년에 지었다. 오스만 터키 시절, 가로 세로 17km, 총 4km 5시간 투어 가능. 문이 8개 있는데, 황금문 한 문만 닫혀 있다.
올리브산(har zaith), 겟세마네 교회가 있다. 에슈아, 아니 오헤브 오트카(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부르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이 타는 버스가 에게디 회사 버스다. 그래서 그 차에서 많이 테러가 난다. 사고가 나도 바로 그 다음날 차는 만원이다. 점심은 이정복 목사님 댁, 성지 연구소에서 할 것이다. 그 분이 순례 객들을 섬긴다.
족장의 도로, 1967년 6일 전쟁, 요르단에서 편입되었다. 다멕섹 문 방향으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관계. 택시 모니트라고 한다. 시민권의 종류를 구분한다. A 는 동 예루살렘, 가자 지구 사람들로 유태인과 같은 신분이다. B는 경제권을 갖고 군사 경치, 통치에 관계한다. 군대에 갈 수 없다. C 지구는 웨스트 뱅크, 가자, 이스라엘 시민권이 없다. 이 차의 기사는 팔레스타인 아베드이다.
갈릴리를 향하여
성지 순례 다섯째 날 1월 5일 목요일 예루살렘-갈릴리
아침 일찍 일어나 갈릴리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날씨가 화창하여 하루의 여행이 순탄할 것을 예고해주었다. 기브아 쪽으로 차가 방향을 잡고 나가서 해안 도로로 들어섰다. 부활하신 주님이 예루살렘에 계시지 않고 갈릴리로 가셨던 것을 생각하며 그곳으로 가는 길은 편했다. 주님은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며 경치 좋은 갈릴리, 나사렛, 가나에서 자연을 벗 삼아 유유히 한가하게 지내시며 하늘 마음을 가졌다. 차를 타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가이사랴이었다. 멋있는 해변이 보이고 모래 사장이 펼쳐져서 물에 들어가고 싶지만 겨울이라 누구도 들어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유적을 설명하는 가이드를 따라 가이사랴의 풍경 감상은 뒷전이었고, 유적지 원형 극장과 우물, 수로등을 보기에 바빴다. 케사르, 가이사, 시저 등 동일 인물의 다른 칭호들을 생각하며 그의 이름을 딴 가이사랴에서 로마의 문화와 현대 이스라엘 문화, 그리고 기독교 문화를 생각하게 된다. 로마는 어디로 갔는가. 이름만 남아 그 옛날의 영화를 기억하게 한다. 이제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도 역사의 뒤 안길로 사라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히브리어가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 유적지를 찾은 반가운 한국 여학생이 있다. 미국 뉴욕의 나약 신학교 팀들이 30여명 있는데 그 중에 한국 사람 2명이 있다. 그 여학생들은 성경 전공과 교육학 전공하고 있었다. 사진 부탁을 하고 찍어주고,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을 빛내는 훌륭한 크리스챤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다시 갈멜산으로 향했다. 두 번째 보는 이 지역들에서 다른 것들이 무엇인가. 들의 백합화 아네모네가, 상수리 나무의 도토리 열매가 특이했다. 그리고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이 신앙 결투에서 엘리야에게 지고, 피를 흘렸던 기손강 시냇가를 보았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은 바로 다시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갈멜산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으면서 삼삼오오 소풍 온 기분을 만끽하였다. 김치를 먹으니 힘이 나서 므깃도로 향했다. 전쟁이 많았던 중요 군사 요충지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전쟁 아마겟돈의 배경이 되는 곳, 므깃도에 가면서 다볼산, 모레산, 길보아산을 볼 수 있었다. 사울의 마지막 전쟁, 엔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므깃도가 많이 발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물 저장소를 한참 지하 계단통하여 내려간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므깃도에서 다볼산, 모레산 길보아 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차를 몰아 나사렛에 도착하였다. 예수님 탄생 예언 고지 교회, 마리아 교회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일행에서 일탈하여 길을 헤메게 되었다. 한 참을 헤메다가 요셉 교회를 찾을 수 있었고 나사렛에서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생각하였다. 길에 차사고 난 현장을 보면서 나사렛 예수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감감하기만 했다. 상업화 도시로 바뀐 나사렛,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은 이곳에서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이곳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복음 전도자가 되면 그들이 동족과 유태인들을 변화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다시 가나로 움직였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던 주님의 첫 번째 이적 장소로 갔다. 가나 이적 교회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화장실 상품 가게에서 예수의 십자가상과 포도주를 선물하기 위해 샀다. 특히 므날 이라는 조그만 여자 아이가 올리브 기름을 파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불행하게 되었다는 운전사의 설명을 들은 가이드 설명으로 기름을 사주지 안 을 수 없었다. 이것이 두 번째 포도주의 기적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러나 돈이 문제지.
이제 마지막 목적지 갈릴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선상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어둠이 수면위에 잠겼다. 배를 타고 나가 중앙 지점에서 불을 키고 찬양을 하였다. 조중환 전도사의 찬양 인도로 깊은 데로 가라는 메시지를 전하니 그전에 아펐던 두통은 사라지니 신기했다. 돌아가는 길에 은혜 받은 최 목사님은 신나게 찬양을 하였다. 우리는 깊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안식하러 에인 게브 리조트 숙소로 향했다. 키부츠 농장의 사업으로 운영하는 리조트 호텔이었다. 자연 경관이 뛰어난 숙소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가지면 정완 장로님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버금가는 결혼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을 준비했다.
가버나움과 사해를 향할 여정을 그리며 다시 꿈나라로 가야 했다. 주여 감사합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별들을 보며 저녁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일은 주님의 사역 지를 보며 이 땅에서 우리도 그 사역을 잘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이스라엘 이야기
가이사랴 지역은 사도행전에서 자주 나오는 지역으로 로마로 가는 중요 항구이었다. 베드로는 욥바 성에서 환상을 받았던 곳이다. 2년 간 바울이 이곳 감옥에 있다가 로마로 갔었다.
갈멜산으로 가는 길에 샤론 평야가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녀가 의무 입대를 한다. 태양열 기구가 검은 색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고 하얀색은 이스라엘 사람 집이다. 팔레스타인 사람이면서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사면권과 아이들 교육혜택을 받고, 세금 혜택이 80% 감면받는다. 150-100-30. 육사가 없고 의무병으로 들어가서 뛰어난 병사는 장교로 선택된다.
이스라엘 공군력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최강이다. 인구 600-550만으로 국민총생산(GNP) 2만 불이다. 세계적으로 의료기 기술은 최고이다. 유태인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핫시딤은 정통 근본주의 유태인으로 5%로 해당한다. 닷티는 성도와 평신도이다. 할로님은 세속적인 유태인으로 30%가 해당된다. 세금은 이 할로님이 다 낸다. 의원 내각제로 의원이 120명이다. 20% 당원을 확보하면 다수당이 된다. 그래서 연정을 한다. 의원 중 10명은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세펠라(평지)지역에서 소렉 골짜기(아세라)로 가고 있다. ‘여호와는 거룩하신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노래를 자주 부른다. QADOSH QADOSH QADOSH ADONAI ELOHIM CHEBAOTH WEHOBA WAYABO(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나의 주 하나님은 만군의 하나님, 그가 오셨고 오실 것이다.)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 가자 가드(골리앗)지역을 가고 있다. TV 뉴스에 보니 샤론 수상이 위독하다. 그는 극보수주의자 이었는데 요즈음 평화주의 정책자로 바퀴어 가자 웨스트 뱅크 지역을 팔레스타인에게 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난 6번 도로 들어서려고 한다. 도로세는 15달러이다. 샤론 평야에는 샤론의 꽃이 4월이면 멋있게 핀다.
이스라엘 지형은 동서가 150 km, 남북이 500km이다. 강원도 땅 면적만하다. 평야로서는 악고, 악고 평야, 므깃도-이스르엘 평야, 하이퍼-샤론 평야, 야리온-블레셋 평야가 있다. 중앙 산악 지역은 산지이고, 해안 지역은 해안이다. 평지는 세펠라 지역이다. 고센 지역에서 출애굽 할 때 길은 세 가지였다. 해안 길, 족장의 길, 왕의 대로 요르단 길이였다. 갈릴리에서 사해까지 100km이다. 요르단 강이 흐른다. 요르단이라는 말은 단에서 흐른다는 뜻이다.
헤롯대왕은 건축에 미친 사람이었다. 가이사랴는 그 유물이 있는 곳이다. 옆에 보이는 아보카도는 과일도 아니고 기름도 아닌 식물이다. 무크라카(갈멜산)는 불이 내려온 곳이다. 아네모네는 들에 핀 백합화로서 붉은 색이다. 4월이면 만발하는데 지금 피어 있다. 아마도 기온이 높아서 그런 것 같다. 아폴라 지역, 엘리사가 벳산 성벽에서 문둥병을 낫고자 온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가서 7번 씻고 오라고 하였다.
젖과 꿀이 흐른 땅이라는 말은 비유적으로 한 말인가. 젖과 꿀은 꿀과 과일을 말하는 것으로 과일은 당도가 높다. 직접적으로 북쪽 지역을 말한다. 북쪽은 비옥한 지역이다. 교통 딱지는 20만원한다. 특히 제일 심한 벌칙은 중앙선 침범으로 즉석 심판에 회부된다. 남쪽은 허허벌판이다. 연평균 비가 예루살렘 500mm이고, 남쪽은 30-60mm이다. 북쪽 샤론, 이스르엘 평야는 200-800mm이다.
드루주족이 2만 2천명이 산다. 이 족속들은 헐만 산에 살며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이다. 사마리아에 500여명이 산다. 그리심산에서 자신들이 진짜 유대인이라고주장하며 구약 제사를 지내며 산다. 베두인족은 족장시대부터 있었다.
나사렛- 다볼산(변화산)-모레산- 길보아산이 붙어 있다. 그 산 앞으로 기손강이 흐르고 이스르엘 평야 있다. 기손강에서 지중해까지 40km 흐른다. 므깃도 옆에 나사렛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기독교인이 많이 산다. 예수의 어린 시절 고향. 이곳에 사는 팔레스타인들이 PLO 회교도인 친척들, 가족들로부터 개종을 요구받는다.
길보아산 밑, 나인(기쁘다, 즐겁다)성이 있다. 엔돌은 모레산 뒤쪽에 있다. 므깃도성에서 깊이 파야 물을 얻을 수 있다. 생명의 물이 나온다. 나다나엘은 가나 사람으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는가 예수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그것은 그 당시 나사렛은 깡촌이었다. 오늘날은 역전되어 관광지로 바뀌면서 나사렛이 도시화되어 더 커졌고 가나는 시골이 되었다. 가나에서 20리 거리에 나사렛이 있다. 나사렛 50가구가 있는 촌 동네이었다. 갈릴리의 200개 도성 안에 들지도 않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전되어 예수님 탄생 예언 교회, 요셉의 집 교회가 있어서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 찾아오고 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대부분은 유대인 시민권자들이다. 인구 8만의 중 도시이다. 미스타하 경찰차, 나째벹, 나사렛에서는 천주교식으로 예배를 드린다. 가나에 요단강 세례터가 있다. 갈릴리 선상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배가 아직 예약이 되지 않았다. 기도해달라.
갈릴리 선상 예배 설교 문
누가 복음 15장
우리는 지금 깊은 데로 왔습니다.
성지(聖地), 거룩한 땅은 예수가 걸었던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온 것은 깊은 신앙의 세계로 가기 위한 거보(巨步)입니다. 담양 장로님 부부, 대구 성도님 부부, 일산 가족분들, 논산 의정부 선생님들, 청주 목회자님들과 사모님, 그신 대학원생과 그 가족 분들, 가이드와 신혼 부부, 우리 32명은 예수님이 이곳으로 부르시었습니다. 마치 주님이 부르기 위해 갈릴리 바다로 가셔서 깊은 데로 가라고 초청한 것과 같습니다. 깊은 데로 가라.
요한복음 21장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생업으로 다시 돌아간 제자들, 그 중에 특히 베드로에게 가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에 153마리 풍성한 수확을 얻었습니다. 인생의 월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깊은 데로 가라. 이 말씀은 좀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의 신앙의 상태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러기 위해 우리를 성지로 불러냈고 무엇인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요구가 각자에게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는 오늘 므깃도에 갔다. 므깃도 물 저장소를 보기 위해 우리는 깊이 내려 갔습니다. 이 므깃도는 솔로몬의 병거성이 세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그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물 저장소입니다. 이 물을 얻기 위해서는 깊이 흙을 파야 했음을 보았습니다. 깊이 파야 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야만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얕은 물가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물가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버나드 앤더슨이라는 구약학자가 있습니다. 그 분은 시편의 깊은 세계라는 책을 써서 시편에 대한 신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시편은 탄식에서 시작하여 감사 찬양으로 나아가는, 예배의 자리에서 배태된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 예배에서 시편의 깊은 세계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자리로 나아가서 주님을 만나고, 우리 생의 깊은 곳으로 나아갑시다.
영성의 깊은 세계란 무엇입니까. 깊은 영성은 사랑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자신의 좌우명을 명함에다 새겼다, “믿음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우리도 이 사랑으로 목양하고 이 사랑으로 가르치고 이 사랑의 영성으로 살아갑시다. 오늘도 주님이 이 갈릴리에 오셔서 사랑의 세계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팔복, 공동체
성지 순례 제 6 일, 1/6 (금), 갈 릴 리-아 라 드
가버나움, 오병이어 기적 기념교회, 베드로 수위권교회, 팔복산(산상수훈), 요단강, 쿰란공동체, 사해(수영) 순례 후 마고아 호텔(MARGOA HOTEL)
갈릴리 바다 옆 엔게브 리조트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차를 몰아 반대편 갈릴리 호숫가 도로로 돌아 가버나움에 도착하였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안식일 날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던 곳으로 갔다. 새로 원형의 건물이 지어져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하였다. 회당 터가 남아 있어 예수님이 이곳에서 말씀을 선포하며 진리를 가르쳤던 흔적을 찾게 해준 고마운 곳이었다.
탁브가, 오병이어 기적 기념 교회로 가서 오천 명을 먹이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의 모자이크와 축사하시던 20-30cm 바위를 볼 수 있었다. 정원에는 우물 7개 중에 남은 3개의 우물터를 보고 나올 수 있었다. 주님은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사탄의 요구에 대하여, 단호히 거절하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시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양식을 뻥튀기하여 만들어 주시지 않았던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양식 만들기. 이 작업은 영권으로 가능하다고 말하시지 않고, 최소의 양식, 남은 양식 식품 7개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어린아이의 양식, 무엇인가.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간절하고 순수하게 양식을 구하고 성실하게 땀 흘려 노동의 댓가로, 사람들을 먹이라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경제학을 영원한 고전이 되어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고 있으니. 세계지도자들은 이 경제 법칙을 배우지 않을 수 없구나.
빠른 걸음으로 봐야 할 것들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빠르게 이동하여 베드로 수위권 교회로 갔다. 다 붙어 있는 지역들이라 이동 거리는 아주 짧았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서 베드로를 부르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던 곳, 갈릴리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조그만 돌을 주워 들고 수면으로 던지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묻는 음성을 들으며 거기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안드레아 신부님이 성경을 묵상하고 있었다. 사진 부탁하니, 한국말을 하시면서 자신을 산 할아버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 분은 마산에서 43년간 사역을 하고 와서 이곳에서 노년을 보내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이 분이 이 시대에 베드로이구나 감격하며, “너도 선교 현장에서 안드레아 처럼 일할 수 있느냐” 귓전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일행들과 함께 팔복 산으로 이동하였다.
팔복산은 아름다운 갈릴리 호수가 보이는 푸른 언덕이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쑷갓과 열무 김치을 보며 그 밭에서 팔복 말씀 경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래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위에 서서 들었다. 복 받는 삶을 살려면 이렇게 살아라.
“심령이 가난하여라. 애통하여라. 온유하여라. 의에 굶주리고 목마르라. 긍휼이 여기라. 마음이 청결하여라. 화평케 하여라. 의를 위하여 핍박받아라.”
그곳에서 한참 우리는 머물려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하였다. 토라의 삶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이 팔복을 완성하는 것이리라. 산상 수훈을 기리며 팔복 교회에 들어가 기도하고 웃고 있으니 한 수녀님이 침묵하라고 인상을 찡그리며 회초리를 들고 한국 사람이 아니냐고 호통하는 모습이다. 나도 찜찔한 마음으로 줄행랑치며 빠져 나왔다.
요단강 세례 터를 향하여 나섰다. 진지하지 못한 삶의 태도를 씻으라. 주님은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다. 그곳이 십년 전하고 많이 변한 모습에 놀랐다. 물도 많이 더러워졌다.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위에서 보다가 올라와 차에 탔다. 이제 멀리 쿰란 동굴, 사해를 향하여 이동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쿰란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바로 위에 있는 쿰란 유적지를 볼 수 있었다. 이곳도 시설을 잘 해나서 식당과 극장, 유적지 관람이 동시에 이루어 질 수 있게 해났다. 소수의 경건한 공동체 사람들(에센파)이 이곳에서 세상과 유리하여 자급자족하며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던 곳이었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는 사실을 듣고 필사하던 성경책 두루마리를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던 쿰란 동굴들을 또 다시 볼 수 있었다. 왜 이곳을 또 보게 되는가. 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너도 경건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가. 네가 있는 곳이 거룩한 쿰란 공동체와 같은 곳인가.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가는 공동체인가. 과연 신앙과 생명, 삶과 공동 운명을 같이하는 성도들인가. 이 질문은 계속되어 마사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돌을 던져 쿰란 동굴까지 이를 수 있는지 던져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사해 진흙 수영장으로 이동한다. 날씨가 추워져서 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염려한 만큼 춥지 않았다. 물에 들어가니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물에 들어갈 때는 쌀쌀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사계절이 1월에 동시에 있었다. 에일랏은 완전히 휴양지로 여름 스키와 수영 낚시를 즐기는 인파로 안식일 날 그리로 가는 차량이 줄을 이었다. 진흙으로 몸에 칠하니 시커멓게 되어 피부 미용에 좋았다. 여자 분들은 신나서 진흙 팩(머드팩) 효과를 보려고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외국인들과 함께 깊은 사해 바다로 헤엄쳐 가며 묻는 어느 곳에서 왔냐고 텍사스에서 왔단다. 테네시로 오라고 한 은퇴 교수는 두 차례나 강청을 한다. 또 한 분은 팔레스틴 사람으로 미국에 갔다가 미군이 되어 한국에서 군복무를 하였다고 자랑한다. 사해(死海)는 죽은 바다가 아니라 엄청남 보고(寶庫)로 살아있는 바다가 되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로니가 아니고 무엇인가. 세계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고, 피부 화장품, 제약품, 소금 공장 등 부(富)의 저장소가 되고 있다. 나는 사해에서 소금의 위력을 느끼고, 다음 사역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윗을 생각하며 성시를 쓰고 일행들에게 읽어주고, 다윗 솔로몬, 유다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라드 마고아 호텔에 도착할 때는 이미 해를 떨어지고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유대인들이 머무는 호텔에서 식사를 하며 그들의 까다로운 식사 분위기(정결례)를 느낄 수 있었다.
주여, 내일은 맛사다로 시내산 까지 갑니다. 주님의 거룩한 산에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옵소서, 엘리야의 여정과 모세의 여로를 생각하게 하시고 사명을 인식하게 하소서.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이야기
거라사가 동쪽에 있다. 돼지 같은 놈이라는 욕을 제일 듣기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리스 헬라 종교에서 신전에서 제물로 돼지를 바차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이 사역을 한다. 거라사에서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있던 군대라는 귀신을 명하여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사 돼지들을 몰사한 지방이다(막5:1-20;눅8:26). 돼지 2000마리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
북서쪽 갈릴리 출신의 제자가 안드레, 베드로등 7명이었다. 가버나움, 벳대다, 고라신이 북서쪽에 있다. 예수님이 이 지역에서 이적을 행하시며, 소돔과 고모라에서 이적을 행하였으면 더 나앗을 것이라 말했다.
오늘 일정은, 1) 가버나움, 뱃세다에서 베드로를 만난다. 베드로는 선주로 부자이었다. 2) 타보가, 오병이어 기념 교회를 보고, 3) 베드로 수위 교회,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던 곳을 본다. 4) 팔복산, 보물산에서 예수님의 팔복 설교를 재현한다. 5) 야르비니트, 요단강 세례터에 가고, 6) 사해, 쿰란, 엔게디. 맛사다를 보려 한다.
가버나움에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다. 예수님이 이곳 회당에 들어가신다. 답가는 7개 우물이 있는데 지금은 3, 4개만 남아 있다. 오병이어 교회, 베드로 수위 교회가 있다. 지금은 안드레아 신부가 주임으로 계신다. 그 분은 마산에서 43년간 사역을 하고 와서 이곳에서 성경을 묵상하고 있었다.
팔복 교회에서 권오만 목사님이 밑에서 위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팔복 말씀을 읽으셨다. 바람을 이용하여 설교하신 것이다. 팔복 교회에서 무릎 끊고 기도하였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팔복이 키아스무스(교차 댓구)구조로 대칭되어 있다. 1)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다. 8)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다. 2)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3)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 4)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임이라. 5) 긍휼이 여기는 자는 긍휼이 여김 받을 것이다.
키부츠는 1948년 시온주의 운동에 의해 팔레스틴으로 온 유태인들이 시작한 공동체 집단 농장이다. 저녁에 맹수들이 공격하고, 팔레스틴 사람들이 위협하기 때문에 모여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키부츠는 방어의 수단이었다. 이것이 공산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키부츠는 집, 먹는 것, 의복을 준다. 공동으로 일하고 노동의 댓가로 교육을 시켜주고 의식주를 제공한다. 갈릴리 북쪽 드가리아가 최초의 키부츠이다. 독립전에 만들어 진 곳이다. 요즈음은 키부츠가 쇠퇴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농작물을 생산하고, 공장을 만들고 호텔을 운영한다. 우리가 잔 겐게브 리조트 호텔도 키부츠에서 운영한다. 가족 단위로 모샤브, 소득을 돌려준다. 협종 노동한다.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왔다.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일을 잘 해서 인기가 좋다. 손정의씨의 키부츠에서 세계가 보인다라는 책이 있다. 자원 봉사자(volunteer) 혜택, 이스라엘 관광, 세탁, 용돈 150$을 준다. 키부츠 협동 농장이 독립에 크게 기여했다. 유럽에서 오면 히브리어 공부 3일간 하고, 3일 시간 선택하여, 7-8시간 노동한다.
벧샨, 안식의 집이다. 길보아 산에서 전사하여 이곳에서 사울의 시체가 옮겨온다. 벧하사다, 벧사다는 긍휼(자비)의 집이다.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가서 문둥병으로 인해 7번 씻는다. 오른쪽 길보아산이다. 아풀라이다. 사해, 얌에말라크, 염해이다. 둘레가 220km, 동서 폭이23km이다. 해발 -400, 397(8), -410m, 사해 물이 줄어들고 있다.
싯딤 골짜기, 염해 옆에 있다. 창12장 소돔 고모라가 나온다. 다섯 왕, 그돌라오멜 왕을 섬기다. 아브라함이 연합군을 무찌르고 롯을 데리고 온다. 아브라함의 318명 용사가 나온다. 다멕섹 좌편 호밥을 쫓아 롯의 가족을 구출한다.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다. 그 때 전쟁한 곳이 이곳 싯딤 골짜기이다.
수로, 오아시스가 있는 곳에 이 종려 나무가 있다. 지하 100m까지 수원이 내려 간다. 광야에 싯딤 나무(조각목)가 있다. 이 나무를 죽이는 나무가 있다. 그것이 하로니가 하싯딤나무인데, 그 나무는 뿌리가 없다. 이 싯딤나무는 기생하는 나무로 진액을 빨아먹고 산다. 유별나게 푸른 것, 싯딤 나무가 죽어서 그런 것이다. 이 하로니가 하싯딤 나무는 못된 나무다.
벤구리온, 브엘 세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나일강에서 가나안땅으로의 이주, 참 가나안 땅은 어는 곳인가. 풍요로운 곳은 나일 강인데,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곳이 바로 가나안 땅이다. 왜 남쪽 땅, 헤브론에서 다윗은 사는 가, 척박한 땅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요구된다.
이스라엘은 땅은 강원도 면적만하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형으로 남북이 500km, 동서138km가 되어 크게 보인다. 유네스코 보물이 이스라엘은 하나도 없다. 유네스코 1호는 그리스 아크로 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다. 엔게디에 다윗은 피신해 간다. 거시기 마려 사울이 앉아 있는 동안. 다윗은 사울이 기름 부음 받은 자라 죽이지 않는다. 오늘은 늦어서 내일 마사다를 본다.
광야로 모세의 시내산 기슭에서
순례 제 7 일, 1/7 (토) 아 라 드 -타 바 -시 내 산
맛사다(편도케이블카) 순례 후 이집트와의 국경 ‘타바’ 통과
시내산 도착후 호텔 투숙 및 휴식 HOTEL : CATHERINE PLAZA HOTEL
맛사다로 가는 길은 평탄했다. 날씨도 화창하고 좋았다. 여느 때와 같이 일찍 움직였고, 오늘은 이집트 국경을 통과하여 이스라엘을 떠난다는 생각에, 벌써 한국 고향 땅으로 마음이 달려가고 있었다. 짧은 기간 먼 거리 여행에서 지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마사다에 도착하니 전에 다른 방향에서 걸어 올라가는 코스이었다. 로마 군들이 쌓아 올렸던 토담을 보면서 오르니 실감났다. 등산 코스를 만들어 역사 현장을 보게 하는 것. 그것은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역사 현장을 생생하게 교육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경탄해하며 걸어서 올라가며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 되살라 나는 느낌을 가졌다. 4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니 정상에 도달하였다. 북서쪽 방향에서 올라가 유대교 회당을 보고 헤롯의 궁전 터에서 밑으로 중간 부분과 낮은 부분을 보고, 로마식 목욕탕을 볼 수 있었다. 길이 600m 에, 폭 300m의 마름모꼴 지형을 전체 다 돌아볼 수는 없었고, 북동쪽으로 이동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마사다 소개 영화를 보았다. 아, 이갈 야딘 장군이 나와서 마사다에 대하여 소개하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은가. 유명한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근데 그는 외꾸 눈 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반가운 마음으로 그를 만나고, 아버지 고고학자 수케닉 박사에게 한 말을 떠올리며 웃었다. “전쟁 중 사령관으로 아들은 사해 사본을 사러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고고학자로서 아버지는 사해 사본을 사러 갈 것입니다.” 결국 사해 사본을 구입하였고 그 사본이 구약 연구의 판도를 바꾸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갈 야딘도 고고학자가 되어 마사다를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철저한 이스라엘 역사의식에서 나오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람을 하고 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건포도와 마른 열매를 사서 먹었다. 차에 올라 에시온 게벨로 향했다. 솔로몬이 계발한 에시온 게벨, 에일랏을 향하여 가면서 휴일 개방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차량을 볼 수 있었다. 타바 국경에 도착하여 이집트로 건너가는 수속을 밟았다. 팔레스타인 운전사 아베드와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스라엘 땅에 살면서 많은 식구들을 거느리는 그는 한국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일본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려 주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평화 공존과 공영이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지 무언의 말을 하고 싶었다. 국경을 지나면서 아주 많이 깨끗해진 이집트 지역을 보았다. 옛날에 본 이집트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군인들의 눈동자도 훨씬 나아졌다.
새 이집트 차량을 향해 다가가니 새 가이드 50대 중반의 여자, 모 선생님이 보인다. 광야 길을 들어서 끊임없이 사막을 향하여 간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마주 보면서 홍해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시내산(에벨 무사)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갔다. 거꾸러 가는 출애굽 여정은 재미있었다. 전에 여행과 다르기도 하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미래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떠나는 여행과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였다. 광야의 영성에 대하여 들으며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환기하였다. 출애굽기 성경을 읽어주는 것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다. 시편을 묵상하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광야 길을 가면서 베두인들의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모래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두건을 쓰고 있는 사람들, 우리 차량이 내리자 몰려오는 아이들과 베두인들, 이 사막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어떤 의미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베두인의 눈에서 자연에 계시는 신의 눈길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너무도 때 묻은 문명인의 야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지 않는지. 1달러의 우월감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모래 바람에 그 만 빨리 차안에 오르는 존재가 되었다. 시내산은 그래도 우리의 세속에 묻은 발걸음을 용서해주며 오르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더 좋아진 숙소 시설이 있는 캐더린 프라자 호텔로 가서 여장을 풀고 우리 그대(그신대학원) 일행들은 ‘모세’라는 성시를 수업이랍시고 억지 감상시켰다. 저녁을 먹고 1시 30분 시내산 등산을 위해 초저녁 잠을 청하였다. 주여, 오늘 저녁에 모세처럼 시내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주여, 성산(聖山)에 오를 수 있도록 죄를 회개하게 하소서. 거룩한 존재가 되야 되지 않습니까. 주여 용서해주소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이 세상의 더러운 신발을 벗게 하소서. 주여 도와주소서. 이미 통풍의 발이 되었지 않았습니까. 깨끗하게 발을 씻어 주소서. 시내산, 호렙산에 설 수 있도록 오늘 밤에 계시로 꿈으로 보여 주소서. 예수이름으로 비나이다.
이스라엘 ․ 이집트 이야기
벤 유다가 성서 히브리어를 일반 히브리어, 현대 히브리어를 만들었다. 원래 예배때 사용하던 말이었다. 중요 행사가 있으면 유대인들은 두 군데에서 모인다. 통곡의 벽과 벤 야후다의 거리에 모인다. 그러면 수상은 젊은 사람들이 모인 벤 야후다의 세속적인 행사에 참석하여 연설하고 절기를 시작한다. 벤야후다는 우리 나라의 세종 대왕과 같은 존재이다.
미츠라임, 이집트 누에바에서 한국 식당. 시내산 2280m인데, 저녁에 1500m에 산장 호텔에 도착한다. 주일은 이집트 가이드와 함께 1시 30분 기상, 2시에 출발 시내산에 오른다. 낙타로 780계단을 오른다. 시내산 온도는 그 때 그 때마다 다르다. 해뜨면 덥다.
마사다는 주후 70년 로마 티투스(Titus) 장군이 멸망시킨다. 4000명의 로마 군이 960명의 열심당원들과 싸운다. 3년간 버틴다. 주후 76년 천연 요새 마사다에서 항쟁하다 자결한다. 유대인 노예 6000명을 동원하여 토담을 쌓는다. ‘동족 때문에’ 결사적으로 항쟁하지 못한다. 엘리에셀 야일이 설득한다. 로마인들로부터 수취를 당하니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노예로 살지 않고 끝까지 버티자고 한다. 성인들이 아이들 부인들을 죽이고, 10명의 성인이 나머지 사람들을 죽이고, 제비 뽑은 마지막 한 사람이 나머지 열 사람을 죽이게 된다. 나중에 식량 창고에 두 여인과 아이 다섯이 숨어서 이 일을 유세푸스 역사에 증언한다.
헤롯 이두메아 사람이다. 그가 맛사다에 요새를 만들어 났다. 반란 피난처로서 무기가 많았고, 22개의 저장소가 있어 식량과 물로 3년간 버틸 수 있었다. 군대, 네게브에 핵무기 200개를 만들었다. 성전산에 600만 학살 기념관을 지어 “힘없으면 당한다.” 팔레스타안 사람들 70만이 요르단으로 갔다. 유대인들은 갈 데가 없다. 그래서 힘을 길러라. 장교 임관 때(일반병에서) “마사다는 두 번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 “기억하라”, 교장 선생님, 졸업식장 정한다. “용서는 해주되 잊지는 말아라.” 정신 교육이 계속되고 있다.
십자군 전쟁 8차에 걸쳐 이루어진다. 1, 2, 3차는 종교적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1095년 우르반 2세 때 부터는 약탈 전쟁이었다. 예루살렘에 200년간 십자가군이 행패를 부렸다. 유대인 학살, 나찌가 600만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카톨릭과 기독교가 허락하였다. 유대인들은 십자가만 보면 싫어한다. 마겐 다윗드, 수학도 더하기 기호도 ○ 동그라미 안에 +를 넣어 사용한다. 교차로도 마겐 다윗드 기호를 사용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은, 일본의 천황에게 절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역사 속에서 혐오감이 생긴 것이다. 선교사 하면 싫어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스라엘에 와서 600만 학살한 것을 회개한다.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채널 1은 종교인들이 보고, 2는 세속인들이 본다. 요즈음 종교인들도 채널 1에서 예수님 영화본다. 현재 독일 총리가 이스라엘 TV에 나와서 미안하다 눈물 흘리며 사과한다. 이스라엘 유대인 축복하고 오히려 보호한다. 거시기 놈. 사진 자료을 가지고 벤즈 택시는 타지도 않고, 전쟁 보상금을 요구한다. 예수님 흔적, 유대인 팔레스타인들은 부담감이 있다. 싸늘한 인상이 있다. 유대인 선교, 백투더 예루살렘(Back To the Jerusalem) 운동은 힘들다.
마사다에서 소래하는 영화에서 이갈 야딘(Y. Yadin) 장군이 은퇴하여 고고학자가 되어 마사다를 설명하고 있었다. 사해 사본을 처음으로 아버지가 샀었고, 그 후에 미국에 건너간 사해 사본을 야딘이 정부 돈으로 사오게 된다. 박준서 교수의 성지 순례 책에 기록되어 있다. 남쪽 사해가 매년 줄어든다. 남 사해가 북 사해보다 더 예쁘다. 에메랄드 빛이 난다.
광야, 다윗의 시편에 다윗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는 말과 대조적이다. 광야는 모래 사막이다. 오아시스가 간헐적으로 있다. 시내산은 화산암이다. 영적 광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 2일간 찬양, 150편 시편, 찬양 시편이 계속 읽으면 좋다. 주전 333년 콘스탄티노플, 저스틴 황제. 어머니 헬레나가 성지 순례를 하게 된다. 마라, 르비딤으로 해서 시내산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왼쪽으로 홍해가 보인다. 산호는 탄산칼슘이으로서 붉은 빛이 난다. 화석, 몇 만년전에 생긴 것이다. 4-6월에는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빨간 노란색 고기가 많다. 산호 밭은 세계적이다. 바란 광야, 누에바 해안. 싯딤 나무가 많다. 3500년 전에 이곳은 돌산이었다. 유엔 평화 유지군이 이곳에 주둔해 있다. 이집트는 석유 산유국으로 1948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1956년 시나이 반도 2차 전쟁이 일어난다. 1952년 낫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여 1958-1968년간 이집트와 불란서가 합작 완공한다. 낙타 2000필을 준다. 영 ․ 불 ․ 이집트가 목화 산업을 한다. 1982년 6일 전쟁으로 가자 골란 고원을 점령하면서 시내산은 반환한다. 1973년 4차 전쟁이 일어난다.
에시온 게벨은 솔로몬과 시바 여왕이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 협정을 맺는다. 사막, 석회암, 철, 금, 터키석이 많다. 4500년 전 것이다. 수에즈 운하 30억$에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430년간 애굽에서 노예 생활은 한다. 애굽에 요셉이 팔려 오면서 역사는 시작되었다. 카라반 루트로 여러분이 왔다. 광야 길.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다. 고센 땅에 거주한 것은 뜻이 있었다. 고센 땅에서 야곱 가족 70명이 생활한다. 그 땅은 풍성한 땅이었다. 강성해졌다. 그 후에 430년 간 노예 생활을 한다. 모세는 요게벳 어머니, 미리암이 바로 공주에게 가서 유모를 소개한다. 그 유모가 생모 요게벳이었다.
탈무드 성경에는 왕자는 신의 아들이었다. 바로는 출애굽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결국 내 줄 수밖에 없었다. 광야 40년, 양과 염소 등 동물들도 나온다. 80세 모세는 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을 듣고 보고 안다. 95% 사막이고 5%가 옥토이다. 이집트 땅은 우리나라에 10배이다. 나일 강이 젖줄이다. 홍해에서 수르 광야 마라, 엘림, 르비딤으로 갔다. 광야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