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주의란 사탄을 믿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사탄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 질 수 있다.
첫째로 직접 사탄을 만나며 사탄을 주인으로 섬기며 사탄으로부터 적그리스도적인 메시지를 받아서 그것을 신봉하며 행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둘째로 사탄을 잘 알지는 못하여도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모시지 아니하면서 사탄적인, 반그리스도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그러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직접적인 사탄추종자요, 후자는 직접적이지는 아니하지만 결국은 알지 못하는 무지 속에서 사탄을 따르는 결과적인 삶을 사는 것이니 둘 다 동일하게 사탄에게 종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엔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나 깊이 살펴보면 실제적으론 두 가지의 삶 뿐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신적인 생명의 삶과 그러하지 아니하여 죄악 속에서 사탄에게 종노릇하는 죽음의 삶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삶이냐 아니면 사탄 속에서의 죽음이냐 하는 것이 모든 인생들 앞에 동일하게 놓여진 숙제요 중대하고도 유일한 문제이다. 그래서 인생은 그 앞에 두 갈래의 길이 나있는 영적인 갈림길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으로 향한 빛 된 생명의 길과 사탄에게 속아 종노릇하는 죽음의 암울한 길 말이다.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인생은 그 영적인 선택 앞에 서있는 것이며 누구를 따를 것인가를 결정하여야만 한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라고 한 여호수아의 고백처럼 말이다.
그래서 주님은 간곡히 말씀하셨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며 하나님과 바알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그래서 결국은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이나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이나 주님 오실 날까지 앞으로 살아갈 우리들의 후대들이나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두 부류에 속하였고, 속하고 있고 또 속할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과 그리고 나머지인 귀신들린 돼지 떼가 바다로 내리 치달은 것처럼 죽음의 질곡으로 쏜살같이 치달아 내리는 사탄에게 사로잡힌 죽음의 백성들이다.
사탄에게 속한 그들은 우리의 선교의 대상들이요 기도의 대상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담이 범죄하여 죄악 속에 빠진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자녀들인 인생들은 이 두 부류로 나뉘어져서 오늘날까지 그 안타까운 삶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주의라 함은 결국 그 기원을 인간이 사탄의 속임에 빠져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하여 죽음에 내동댕이쳐진 그 죄악의 현장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감히 도전하는 패역하고도 사악한 무리들의 역사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 되심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도전하는 사탄과 그 추종자들의 역사를 사탄주의의 기원과 흘러온 발자취로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그가 용감히 싸운 그 믿음의 선한 싸움, 곧 우리 또한 기필코 최선을 다하여 싸워야 하는 그 싸움의 대상이 바로 사탄이요 사탄주의인 것이다.
이러한 사탄주의는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지구의 구석구석마다. 인생의 심연 밑바닥까지 깊이깊이 스며들어 있고 팽배해 있기에 이 사탄주의에 대한 성서적인 통찰이야말로 실로 가치 있는 일이요, 중대하다 할 수 있겠다.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지금 이 순간도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으르렁거리며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고 있고 또 앞으로도 쉬지 않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 일을 할 것이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각성과 경각심이 실로 긴박하게 요청되고 있다.
그래서 우선 사탄의 추종자들과 인생을 죽이기 위한 사탄적인 현상 즉 사탄이 파놓은 구덩이(함정)들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한다.
물론 이 문제야말로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요청하고 있고 또 실제로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이어서 적지 않은 지면과 시간들이 요청되기는 하나 그래도 먼저 두드러지는 몇 가지 현상만이라도 크게 나누어서 소개함으로 여러 분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깨어 사는 삶을 조금이나마 돕고자 할 뿐이다.
1. 사탄추종자들에 대하여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0, 눅 11:23)
지금 현재 전세계적으로 직접 사탄을 만나며 그로부터 메시지를 전달 받아 살아가는 사탄 추종자들의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며 또한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우선 미국 켈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사탄제일교회에는 약 20만명의 신도(사탄 숭배자)가 있고, 사탄교회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국 런던의 사탄교회 지하조직의 구성원은 각계각층을 망라한, 측량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그 숫자가 많다.
우리나라 무속인들도 이 범주에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특히 얼마 전 죽은 ‘성철’이란 중이 살아있을 때 ‘사탄이 곧 부처요 성불하면 곧 사탄이 된다’는 말을 남겼는데 그 또한 그냥 지나칠 사소한 얘기는 아니다. 천만 명에 가까운 유태인들을 죽인 히틀러 또한 사탄주의자였으며, 그 히틀러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하수인이었다는 것도 설득력 있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1717년에 영국에서 처음 결성된 ‘프리메이슨’이란 세계정부 지하조직 또한 사탄 숭배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들은 유태인 지하조직이나 바티칸과도 무관하지 아니하고 요즈음 나타난 새세대운동(New Age Movement)과도 무척 가까운 사이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척하고 인간 중심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 물론 이것들의 배후엔 사탄이 독사처럼 독기를 내뿜으며 또아리를 틀고 무섭고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도사리고 있다. 물론 때론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자신을 감추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P2’조직이라든지 ‘일루미너티’라는 조직들 역시 사탄 숭배자들로부터 사탄을 신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악한 것들이다.
이러한 수많은 직접적인 사탄주의자들이 각국의 정치적인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공동체 속에까지 양의 탈을 쓰고 몰래 들어와 있음을 분명히 직시하여야만 할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몇몇 종교적인 지도자들과 아직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몇몇 정치 지도자들 또한 이 사탄주의와 그 조직에 연루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세상엔 사탄이 우리의 구세주이며 신이라고 노골적으로 떠드는 무리들이 있다.
그렇게는 아니하지만 사탄이 그 얼굴만 바꾼 모든 우상(여러 잡신들, 가치관, 온갖 종교…. 하나님 외에 경배의 대상이 되는 그 무엇이라도 우상이다)을 섬기는 자들 또한 결국은 사탄 숭배자들이다. 그들은 가는 길이 다른듯하나 동일하게 결국은 은밀한 하나를 이루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는 유일한 목적을 갖고 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5)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된 우리의 절대절명의 사명일 뿐이다. 주께서 이 일을 위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불러 모으신 것이다.
2. 사탄교회와 그 행사들에 애하여
평화롭게만 보이는 영국의 주택가 한가운데에 사탄교회가 은밀하게 들어서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이 그 사탄교회의 구성원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들의 생명을 사탄에게 담보로 잡힌 채 쾌락 속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무어라고 말할 것이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무슨 생각을,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그들은 그곳에서 사탄을 찬양하고 숭배하여 따르며 사람이나 동물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기도 하고 나누어 마시기도 한다.
그리고 난잡한 성행위를, 프리섹스를 행하기도 하며 마약을 먹기도 하고 수많은 청소년들은 사탄으로부터 사탄주의자가 아닌 부모나 친구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행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수많은 살인사건의 배후엔 사탄 숭배자들이 무수히 있다. 미국에서만도 1년에 2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행방불명이 되는데 그 중 5천 명 정도가 신체가 잘리어진 상태로 발견된다는 점도 그 무엇을 시사해 주고 있다.
최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탄 숭배자들에 의한 각종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남아공의 해변 유양지인 스코트부르그의 한 건물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여인을 한 쌍의 젊의 남녀 사탄 숭배자들이 사탄에게 바칠 제물로 사용하기 위하여 무참히 살해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유럽의 어느 지역에서 사탄주의자들의 집회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사탄 추종자가 젊의 소녀의 목을 칼로 쳐서 날려 그것을 사탄에게 바치는 끔찍한 장면을 직접 목도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여인을 발가벗겨서 제단위에 누인 후 그 몸을 뜯어내어 나누어 먹는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음침한 일들이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사탄 앞에서 사탄의 영광을 위하여 훌륭히(?) 즐기고 있다.
이러한 사탄교회가 우리나라에도 은밀히 들어와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음은 실로 심각한 일이다.
실제로 사탄교회 집회 광경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그 속에서 사탄을 접하는 끔찍한 광경들을 목격할 수 있다. 사탄교회의 지도자가 십자가를 가지고 사탄을 사람 몸속에 집어넣는 의식을 치르는데 한 여인이 까무러치듯 비명을 지르며 이어서 사탄의 음성을 대신하여 울부짖는 것이 나타난다(이루 말로 표현 못할 현상들이 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정말 기독교의 상징으로 여기는가?
십자가는 원래 이방잡신을 섬기는 자들이나 사탄주의자들의 상징물이었고 지금도 온갖 십자가가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나찌, 불교의 심볼…, 모든 종류의 십자가들).
나는 개인적으로 어찌하여 십자가가 예배당 종탑마다, 예배실 앞 중앙에, 사람들의 목걸이 등에 버젓이 세워져 있고 들어서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히 십자가는 기독교와는 상관이 없는 우상숭배자들의 상징물이다. 다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하시기 위하여 그 치욕의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그 위에서 피 흘려 몸 버려 죽으셨을 뿐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구주 밖에 우리의 자랑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그 위에서 죽으신, 성경대로 다시 사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지 그분이 달리신 해골의 곳, 골고다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가 아니란 말이다. 성경 그 어디에 그 십자가를 강조한 데가 있는가? 그러함에도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상징물이 되다시피 한 데에는 저 사악한 중세 로마 천주교의 교회사를 잘 살펴보면 충분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 주님이 사약을 받고 돌아가셨다면 종탑 꼭대기에 약사발을, 전기의자에서 돌아가셨다면 전기의자를, 교수대에서 돌아가셨다면 교수대 밧줄을 세워 놓을 것인가?
지금 눈이 어두운 우리들이 사탄으로 인하여 크고 작은 것들 속에서 다 속아서 사탄에게 속한 것들을 하나님께 소속한 것인 양 받아 움켜쥐고 있는 것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3. 나타난 사탄적인 현상들에 대하여
이 부분은 실로 방대하다.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행위 전체는 모두다 사탄적 행위요 사탄적이란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지 아니하면 다 죄악이란 뜻이다.
실제로 사탄은 각 민족 각 족속에게 모양은 다르지만 각양각색의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들의 눈과 귀를 막아 하나님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하여 죽음에 빠뜨려 놓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에 세상의 온갖 잡종교, 학문, 가치관, 쾌락, 이념/주의(ism), 이데올로기 등을 통하여 사탄을 경배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두드러지게 사용되는 사탄적인 현상은 세새대운동과 록음악(Rockn roll), 영화, 그리고 무분별한 쾌락 중심의 섹스(Sex) 등이 그러하다.
또한 사탄은 매스미디어(Mass media)를 장악하기 시작하여 여러 방송매체들, 음란 서적들, 대중만화 등을 통하여 영혼, 특히 어린 영혼들을 우선으로 죽여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방송매체들을 보면 거의 사탄의 시녀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러한 사탄적인 일들을 통해 밥 벌어먹고 사는 숱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적지 아니한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 중의 하나는 사탄교회가 직접 운영하는 전화선교시스템이다. 우리는 이것을 전문적으로 Call for the Death System이라고 부른다. 삶의 고통 받는 자들에게 정해진 다이얼을 돌리라고 자극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곳에서 아주 달콤한 사탄의 유혹에 접하게 되고 쉽사리 그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한 그들은 결국 사탄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절망하고 좌절해 있는 그들에게 쾌락과 즐거움과 삶의 보장을 제공하겠다는 유혹 말고 더 달콤한 유혹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그것은 죽이기 위한 속임수요 미끼일 뿐이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뿐더러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심각한 상태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해서 이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본다면 온갖 사탄적인 현상, 생명을 노략질하기 위한 사탄의 흉계를 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광명한 천사로, 어떤 사람에게는 쾌락으로, 종교의 탈을 쓰고, 또는 세상 자랑이나 그릇된 가치관으로 그 얼굴을 수시로 바꾸어 가면서 그들을 사로잡아 죽음으로 이끄는 사탄적인 현상을 대항하여 싸워 쳐부수는, 그리하여 생명을 건져내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다. 우리를 세상 한가운데 이 땅위에 두시는 이유이며, 목적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된 우리는 진실로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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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났던 그 여인,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먹으면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믿었던, 세상에 깊이 빠져있던 그 여인, 그 여인에게 주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이셨다.
사탄주의!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 되신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 어리석고 무지하며 스스로 잘난 체하여 교만한, 죄악된 인생들이 사탄에게 속아 생수로 여겨온,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윗에게 있어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요 삼손에게 있어선 데릴라요 요셉에게 있어선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아니었겠는가!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사탄주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속의 역사에 반기를 들고 나선 악한 영들의 무리요 그 추종자들의 역사요 하나님을 대적하여 거스르는 역모이다.
시대를 거듭하면서 복음이 더욱 왕성해질수록 이 사탄주의 또한 더욱 왕성해져서 오늘날 땅위를 두루 덮고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 속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역모를 멸하여 처벌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들이요 대사(Ambassador, Messenger)요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그러한 하나님의 교회와 군사 된 그리스도인들이 경건의 모양만 가진 채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무리가 되어서는 결단코 아니 될 것이다.
종이호랑이는 그 모양은 호랑이이되, 아무 힘도 쓸모도 없는 이름뿐인 호랑이이듯이, 오늘날 교회가, 그리스도인 각자가 이러한 종이호랑이 같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정말 안 된다는 말이다.
오늘 얼마나 많은 교회와 그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유명무실한 채로 쓰러져가고 있는가. 맥없이 주저앉아 서로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삿대질만 해대고 있는가!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의 신이 옮겨가기 전에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사명을 깊이 부둥켜안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기쁘고 거룩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최선을 다하여 싸워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장에서 취한 숱한 전리품들을 어깨마다 가득 둘러매고 승리의 노래를 소리높이 부르며 본향을 향하는 훌륭한 전도자요 순례자적인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결코 그냥 주저앉아 있거나 사탄이 불러주는 자장가에 취해 잠들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여호수아서의 말씀을 간절하고도 절박한 심정으로 여러 지체들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5~9)
* 이글은 신망애(대구 삼덕교회 회보) 1995년 10월호에 실었던 글 입니다.
* 시간이 부족하여 참고사진을 올리지 못합니다.
곧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