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한상림 / 작가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유행하기 전에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였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그러다 다시 ‘60세부터 150세까지 염라대왕이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이러이러 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는, 바로 ‘전해라’ 열풍이 불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멜로디와 함께 누구나 긍정하게 되는 가사의 글귀가 비교적 따라 부르기 쉽고 아이러니한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더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직설적으로 누군가 대신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앞으로는 백세 이상 수명연장이 가능하게 됐다. 현재 70-80세 이상 생존해 계신 어르신들이나 우리의 조상들은 환갑 나이 만 60세까지 생존하기도 참 힘 든 짧은 수명이었다. 그래서 환갑잔치에 인생의 큰 의미를 담아왔다. 하지만 요즘은 환갑에는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녀오는 추세로 조용히 넘어가는 편이다. 그래서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을 하게 되고, 자녀들을 낳아 양육하고 가르치고 출가시킨 후 여러 가지로 좀 한가해질 수 있는 나이가 육십이다. 그래서 요즘 나이 육십은 ‘인생의 청춘’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세계를 빛낸 사람들 중에는 코코 샤넬과 네오나르도다빈치, 빅토르위고 등 많은 위인들이 50세 이후에서 70세 중반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면서 이름을 남겼다. J.R.R 돌킨은 62세 <반지의 제왕>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열풍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테오도로 모노라는 여성은 93세에 티베트 산맥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 생을 마감하였다. 또한 일본의 19C 유명한 화가 가츠사카 호쿠사이는 다섯 살 때부터 사물의 형태를 스케치 하는데 열중했고, 쉰 살부터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일흔 살이 되어서야 새, 동물, 곤충, 물고기의 진정한 특성과 초목의 중요한 본질을 약간 파악했다고 한다.
결국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 듦에 따라서 노쇠해지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육신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구구팔팔 이삼사’, 즉 구십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죽어야 한다는 유머도 있다. 또한 99세를 “白壽”, 즉 ‘百’에서 ‘― ’ 한 획을 뺀 글자가 ‘白’이기에 ‘백수(白壽)’라고 부른다. 백수를 누리기에 앞서 대부분 만 60세가 되어 정년퇴직을 하고나면 마땅히 다닐 곳도 없는데다가 일자리 구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삼포세대라고 하여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마당에 정년퇴직 후까지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노후대책이 미흡한 노인들이 겪는 고통 또한 이중고가 아닐 수 없다. 젊어서 부지런히 돈 벌어 자식들에게 쓰고 저축할 겨를 없이 거기에 건강까지 안 좋다면 노후생활은 살아있는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백수를 편안하게 누리기 위해서 모두들 노력하고 있는 이때, 각종 복지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아마도 노인복지정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가 자살률 세계 1위라고 하는 점이다. 고독사(孤獨死) 혹은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심각한 현실이다. 풍요속의 빈곤이랄까, 물질의 풍요로움이 다양해지면서 정신적인 빈곤현상이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되어 소외되고 외로운 이웃에 대한 감정까지 냉랭해지고 있는 게 우리 사회 현실이다.
국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연금, 노령연금, 의료보험제도 등 많은 노력들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고 있는 노인 인구에 비해 시행되고 있는 각종 복지제도가 뒷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기댈 수만도 없지 않은가,
늙어서는 ‘돈’이 힘이라고들 말한다. 그렇다고 돈만이 인생의 전부도 아니다. 건강과 함께 적당히 생을 마감할 때까지 쓸 수 있는 약간의 돈과 진실한 친구 몇 명만 있다면 이보다 더 한 부자는 없을 거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근검절약으로 노후대책을 위해 준비해야한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제도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인드로 따라주면서,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면서 꾸준히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백세까지 살더라도 건강해야만 자식들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상림 / 작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 한국예총 ‘예술시대’작가회장 역임 / 저서『따뜻한 쉼표』, 『종이 물고기』가 있다.
첫댓글 작가님 말씀대로면 나도 부자에 속하네요 친구가 있고 약간의 돈이 있고 그리고 건강이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버티어 주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