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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인사점에서 찻집의 희망을 꿈꾸다.
종로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어귀에는 연 매출 천억 원을 자랑하는 스타벅스가 자리 잡고 있다. 2001 년 8 월에 문을 연 스타벅스 인사점은 개점 당시 인사동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하여 소위 문화마케팅의 기치 아래 세계 최초로 자국어로 된 한글간판을 내걸고 기와무늬로 외관을 꾸미고 실내 일부를 황토벽에 전통창호로 장식하는 등 문화적 이질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며 우리의 전통먹을거리에까지 관심을 기울인 이른바 본격적인 토종화전략의 산물이다.(참고: 한국경제 2001. 8. 8) 지금은 주변에 대형건물이 들어서서 그 화려한 위용이 돋보이지 않지만 개점 당시에는 인사동 길에 들어서면 곧바로 눈에 띄는 스타벅스를 바라보며 우리의 안방을 내준 것 같은 생각에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느라 숨을 몰아쉬곤 했었다.
새해 벽두에 오랜만에 찾은 그 곳은 오히려 다른 점포보다 낡고 초라한 느낌이 들었고 토종화의 상징이었던 전통적인 이미지의 조형물이나 소품들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이제 그것들은 서양문화에 점령당한 우리의 문화의 색 바랜 흔적들처럼 보일 뿐이었다. 3 개 층으로 이루어진 매장은 거의 빈자리가 없었고 이미 스타벅스문화라는 독특한 문화에 젖어버린 사람들이 저마다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고 간간이 찾아드는 외국인들마저 구세대가 이질감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그 분위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제는 토종화라는 스타벅스의 마케팅전략이 더 이상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 인사점은 그렇게 여느 스타벅스 매장과 다름없이 이 세대의 생활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바로 길 건너 맞은편쯤에 스타벅스와 맞먹는 규모의 찻집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대신 차와 전통음료를 취급하고 쿠키나 케이크 대신 떡과 한과를 판매하는 넓고 쾌적한 찻집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잇따른 의문들이 꼬리를 물면서 스스로 차오르던 벅찬 감동이 스러져갔다. 왜 찻집은 스타벅스처럼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찻집은 스타벅스처럼 일상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일까?
1. 찻집의 현주소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찻집’하면 떠올리는 곳이 인사동이다. 그런데 인사동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전 같지 않다. 인사동의 모습이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음식점이요 가게마다 바깥에 내놓고 파는 물건들이 주로 동남아에서 수입한 싸구려 공예품이다. 고미술품이나 고서적 도자기 등을 취급하던 가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그 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우리 문화의 향기를 맡기를 맡으며 느린 걸음으로 가게를 기웃거리던 사람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산 茶와 다구를 판매하는 가게가 많이 늘어난 것도 한 몫 거든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보태는 것이 찻집의 간판이다. 간판들 중에는 커피 & 전통차라고 써 붙인 것이 많이 보이고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민속주에 호프에 와인까지 보태 놓았으니....... 찻집의 고객이라야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뿐이니 현실적으로 당연히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업종의 세분화 전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에 찻집에서 어쭙잖게 커피를 판매하고 여기에 와인까지 취급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운영상의 어려움을 십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인사동에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오랫동안 차 생활을 해 온 다인들 중에는 찻집을 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과거에 실제로 찻집을 경영해본 적이 있는 한 유명 다인은 ‘찻집을 운영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털어 놓았다. 찻집을 열었더니 자연스럽게 지인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연일 벌어지는 찻자리에 취해서 한 삼 년을 보내고 나니 껍데기만 남았더라는 것이다. 즉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몰랐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결국 최소한의 수익을 올리는데도 실패했다는 말이다. 이는 찻집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매우 의미심장한 예라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다인들 중에는 찻집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통계자료가 없어서 숫자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현실을 직시해보면 그렇게 이야기할 만하다. 실제로 일부 유명 찻집을 제외하고 상당수의 찻집이 경영 상태가 예전만 못하거나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제 찻집이 흥하던 시절이 있었는가? 예전에는 다방에 치여서 뒷골목 신세였고 지금은 대형 커피전문점에 치여서 다방과 함께 밀려나고 있다. 그래도 옛날이 좋았다면 아날로그시대를 풍미하던 세대가 옛것의 낭만을 좇으며 찻집을 찾아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현재보다 조금은 낫지 않았던가 싶다. 그러나 오직 새로움과 편리성만을 추구하는 이 세대에게서는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찻집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업종인가? 그렇지 않다. 비록 대형 커피전문점만큼은 아니더라도 찻집이 설 자리는 분명히 존재하며 또한 존재해야 한다. 다만 세대적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2. 일상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지난 세대의 사랑방문화를 꽃피웠던 다방이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다방을 대신해서 새로운 세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하나 둘 생겨나던 토종커피전문점마저 국제적인 거대기업 스타벅스에 의해서 밀려났다. 스타벅스는 1999 년 이 땅에 1 호 점을 개점한 이 후 2006 년 말 현재 160여 개가 넘는 점포를 개설하며 급성장했다. 이제 스타벅스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속칭 별다방문화로 불리는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며 일상의 공간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이른바 스타벅스문화는 이미 대학교 구내에까지 깊숙이 침투했는데 아래의 기사는 그 문화의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매장 안을 채우고 있는 20여개 테이블에 빈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실내엔 은은한 조명과 함께 긴장을 풀기에 넉넉한 재즈가 흐르고 진한 커피향이 오는 이를 맞이한다. 원목 테이블에 자리 잡은 한 남자는 노트북 컴퓨터를 펼쳐놓고 열심히 컴퓨터 작업에 한창이고 한 여자는 창가 테이블에 홀로 앉아 독서에 열중이다. 또 친구들과 함께 자리한 이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여념이 없다. 주문대에서는 손님들로부터 주문을 받고 거스름돈을 건네주고 주문받은 커피를 제조하는 손길로 쉴 새가 없다. 이제 막 들어온 사람들은 주문대 앞에서 뭘 마실까를 놓고 품평회가 한창이다. 서울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타이거플라자 2층에 위치한 스타벅스의 풍경이다.”(오마이뉴스 2005. 6)
과거의 찻집은 만남과 휴식의 장소요 차를 좋아하는 이들의 사랑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찻집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하여 공간적인 만남의 개념이 사라지고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세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찻집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전통문화를 앞세워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그 존재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소수의 음차 인구에 의존하며 이따금 전통음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드는 고객만으로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도 없다.
음료와 간단한 먹을거리와 함께 문화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이른바 카페 시장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스타벅스에 이어 외국계 커피전문점들이 속속 입지를 굳히고 있으며 토종브랜드들도 치열한 경쟁에 합류하여 시장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국내 굴지의 제과업계가 테이크아웃 판매방식에 의존하던 기존 영업방식의 틀을 깨고 카페化를 선언하고 나섰다.
카페란 음료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취급하며 휴식과 교제가 가능한 문화 공간을 제공하는 업종이다. 바쁜 일상의 현대인들은 요기(療飢), 휴식. 교제, 간단한 업무활동이 동시에 가능하고, 양질의 음료와 먹을거리가 있는 시설 좋고 쾌적한 분위기의 카페를 선호한다. 스타벅스의 성공 요인 중에 하나가 이러한 현대인들이 욕구를 충족시킨데 있다. 최근 들어 커피전문점이 쿠키나 케이크 등 먹을거리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제과점이 커피나 녹차 등의 음료 판매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른바 베이커리카페로 변신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타벅스는 고도의 전문성으로 양질의 커피를 공급함으로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진한 커피향이 피어나고 재즈(jazz)가 잔잔히 흐르는 공간을 제공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판매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이 문화에 열광했고 이는 스타벅스의 성공신화를 창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찻집의 성공 여부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음차인구의 전유물이 아니요, 어쩌다 인사동 나들이 길에 한번쯤 들려보는 곳이 아닌 일상의 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연스런 휴식의 공간이요 사귐의 공간이요 한 권의 책을 들고 찾아드는 독서의 공간이요, 노트북컴퓨터를 이용하여 간단한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이요, 스터디그룹이 모여 학문을 논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즉 생활의 일부가 되어 누구나 자연스럽게 찾아 들어와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찻집은 차 문화에 그 뿌리를 두기 때문에 품격에 있어서 스타벅스보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차별화되어야 한다.
3. 전문성을 인정받는 음료와 먹을거리 그리고 정체성 확립
현재의 커피는 예전에 다방에서 취급하던 커피와는 그 차이가 대단히 크다. 전문가의 손에 의해 수천만 원짜리 커피머신에서 뽑아지는 커피는 그 종류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맛과 향을 내며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커피는 누구나 아는 음료다. 그래서 아무리 고급커피를 대해도 낯설어하거나 긴장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커피는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커피 자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다는 뜻이다. 또한 커피와 함께 먹는 쿠키나 케이크 역시 고급화와 함께 매우 다양해지고 있지만 매우 친숙한 먹을거리다. 누구나 아는 친숙한 것에 고도의 전문성을 보태서 고객을 사로잡는 영업 전략은 또 하나의 성공요인이다. 그리고 저들은 이제 막 우리와 친숙해지기 시작한 녹차를 비롯한 차 관련 음료들을 매우 발 빠르게 내놓으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는 커피전문점이나 베이커리카페에서 녹차나 녹차혼합음료 등을 만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찻집의 경우는 찻집만의 특색 있는 음료나 먹을거리를 찾아보기 어렵고 소위 전문찻집을 표방하는 곳의 경우는 소위 다인이라 불리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정도의 온갖 차를 나열하여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차 문화를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일반의 선입관을 부추기는 격이다. 게다가 얼마나 고급차를 내는지 몰라도 차 한 잔에 몇 만 원씩 하는 가격에 놀라서 기겁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런 식으로는 찻집이 일상의 문화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운영되는 찻집은 주인의 능력에 따라 하나 둘은 살아남을지 몰라도 카페라는 초대형시장의 영역을 넘볼 수 없고 결국 소수의 음차인구와 이따금 찾아드는 고객을 놓고 쟁탈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대형 커피전문점이나 베이커리카페는 깨알같이 적어놓은 여러 장의 종이를 한데 묶어 놓은 메뉴판이 없다. 주문대 뒤편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서 모든 메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빵이나 케이크가 매우 다양한 베이커리카페의 경우는 진열된 것들 중에서 선택할 뿐이다. 그런데 일부 찻집의 경우, 순차에서 전통음료와 과일주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섭렵하며 그 전문성(?)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결국 전문성이 없다는 것과 상통한다. 일부는 다방메뉴요 일부는 레스토랑의 음료메뉴요 일부는 커피전문점 메뉴에 불과하고 먹을거리라고는 동네 떡집메뉴요 시장의 싸구려 한과가 전부니 이쯤 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고 여기에 주류까지 보태지면 유구무언이다.
근래 들어서 녹차는 대중에게 매우 친숙한 음료다. 그리고 녹차는 우리에게 있어서 순차류(純茶類)를 대표한다. 그렇다면 ‘녹차를 마시려면 찻집에 가야한다’는 명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얼마 전까지 녹차는 비록 티백녹차일망정 다방에서 가장 많이 팔렸고 지금은 커피전문점이나 베이커리카페를 막론하고 녹차를 취급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그리고 녹차를 빼앗긴 찻집은 중국차의 이름으로 메뉴판을 가득 채우고 불필요한 전문성을 과시하려들거나 온갖 잡다한 음료를 판매함으로써 그 정체성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찻집이 고객층을 두텁게 학보하고 카페라는 시장에서 그 영역을 확보하려면 단순하고 친숙하면서도 전문성 있는 메뉴를 확보해야 한다. 찻집의 정체성은 우선적으로 녹차를 비롯한 순차류가 결정한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일반의 차 관련 지식이 상상 이외로 전무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문 다인들만을 상대하는 찻집이 아닌 한 수많은 종류의 차를 모두 취급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순차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선정하여 고객이 가볍고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좋은 차를 선별하는 전문성과 최고의 차 맛을 내는 숙련된 솜씨를 겸비하여 고객으로 하여금 찻집에서 판매하는 차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차가 건강에 좋기는 하지만 맛은 별로라거나 우려마시기 번거롭다’는 일반의 선입관을 불식시키고 ‘차는 과연 마실 만하다’ 정도가 아닌 ‘기호(嗜好)나 기능 모든 면에 있어서 커피 보다 낫다’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정체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객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전통음료를 추가할 수 있다.
찻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전통음료가 대추차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대추차라는 것이 명칭부터 잘못되어 있다. 대추를 고아서 만들었으니 차나무 ‘茶’ 자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탕’ 자를 붙여서 대추탕(~ 湯)이라고 불러야 옳다. 물론 ‘茶’라는 말이 사전적으로 ‘차나무의 어린잎을 우리거나 달인 물’이라는 뜻과 함께 ‘식물의 잎·뿌리·열매 따위를 우리거나 달인 음료’라는 광의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찻집에서 만큼은 순차(純茶)와 대용음료 정도는 구별해서 사용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대추차가 다방에서도 취급하는 음료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찻집과 다방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방에서는 인스턴트대추차를 내고 찻집은 직접 조리하는 것이 다르다? 이것만 가지고는 찻집의 전문성을 인정받기에 너무 부족하다. 결국 우리의 전통음료를 발굴 재연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등 옛 문헌을 통해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음료를 찾아 상품화해야 한다.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화채(花菜) 밀수(蜜水) 탕(湯) 장(漿) 갈수(渴水) 숙수(熟水) 즙(汁) 등으로 분류되는 우리의 전통 음료는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많은 우리 음료를 모두 사장시키고 흔히 접하는 몇 가지를 내놓고 전문성을 운운할 수는 없다. 예컨대 옛날에 임금이 단오절에 신하들에게 하사하던 여름철보양음료 제호탕(醍醐湯)이나 겨울철보양음료 습조탕(濕棗湯)을 재연하여 상품화한다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 세대의 관심을 유발시키고 전문성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카페의 기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요기(療飢)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스타벅스, 커피빈 등 주요 커피전문점들은 주요 메뉴인 커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베이커리와 케이크 메뉴 강화에 나섰다. 실제 베이커리류가 차지하는 매출도 전체에서 20% 안팎인데다 매년 5∼20%씩 늘고 있는 상황. 스타벅스는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베이커리에서 공급받아 베이글과 케이크, 샌드위치 등 총 40여종을 판매하고 있는데 지난해 매출도 전년보다 20% 이상 늘어났다. 스타벅스는 또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에는 스타벅스의 분위기를 살린 시즌 케이크류를 한정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다.’(참고: 파이낸셜뉴스 2007. 1. 2) 따라서 찻집이 온전한 카페의 기능을 갖추고 저들과 경쟁하려면 먹을거리에 대한 전문성까지 확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역시 전통먹을거리인 떡이나 한과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시장제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시중에 차와 어울리는 뛰어난 품질의 제품이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베이커리카페가 매장 내에서 빵을 구우며 그 전문성과 제품의 신선도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결국 직접 제조 판매를 통해 스스로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스타벅스의 정체성이 커피에 있듯이 찻집의 정체성도 음료와 먹을거리에 있다. 따라서 찻집이 단순하면서도 친숙한 차와 전통음료 그리고 떡 한과를 전문성을 가지고 취급하는 것은 그 존재 가치와 목적에 상응한다. 몇 년 전 어느 대기업이 현대적 개념의 대형 茶전문점을 서울의 심장부에 개설하겠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찻집의 희망을 꿈꿨었다. 그러나 얼마 후 정작 실체를 대면하고 보니 정체성이 불분명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곳은 찻집도 아닌 것이 베이커리카페에 녹차가루를 군데군데 덧칠해놓은 것 같은 부조화의 산물이었다.
4. 그 밖의 생각들
오늘날에 있어서는 찻집의 규모도 중요하다. 근래 들어 커피전문점이나 베이커리카페의 대형화는 일반적인 추세다. 널찍하고 쾌적한 공간에 고급스런 실내분위기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찻집도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고 시장을 확보하려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어야 한다.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넉넉하고 편안한 공간을 확보하여 저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자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찻집에서 취급해야하는 상품은 커피나 케이크 혹은 쿠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재료 및 노동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장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점도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더욱이 떡이나 한과가 저가경쟁에 의한 품질저하로 인하여 극히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제품이 싸구려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패스트푸드와 대비되는 슬로우푸드로서의 전통건강식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한편 우리 먹을거리의 위상을 되찾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리고 차 문화의 가치 즉 풍부한 감성으로 건전하게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높은 문화적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찻집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찻집의 입지에 대한 발상을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통떡카페 다미재의 주인 장향진 씨가 2004 년 3 월, 서울의 대학로에 점포를 개설하기 위해서 종로구청을 찾았을 때, 떡카페라는 생소한 업종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난 담당자는 곧바로, “그거 인사동으로 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차와 인생』 2006 년 여름호) 이는 찻집의 입지조건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찻집은 꼭 특정한 전통문화의 거리에 있어야 하는가? 물론 찻집은 그 정체성이 전통문화에 근거한다. 그러나 전통문화도 대중이 일상 속에서 향유하지 않으면 그것은 살아있는 문화가 아니며 박물관으로 보내져야할 유물일 뿐이다. 따라서 찻집이 특정지역에 존재하며 소수의 음차인구나 관광 나들이객들만이 찾는 곳이 되어버린다면 찻집의 미래는 없다. 찻집은 대중이 일상 속에서 찾아드는 생활공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스타벅스가 있는 곳에 우리의 전통생활문화공간으로서의 찻집도 당연히 존재해야한다.
그러나 찻집이 극복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실상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해방이후 겨우 반세기를 넘기면서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일이다. 한옥은 특정지역의 볼거리로 전락했고 한복은 명절이나 잔칫날만 겨우 입는 옷이 되어버렸다. 차나 전통음료는 커피와 콜라에 젖어버린 이 세대에게 그 존재 자체가 낯설다. 이러한 현실에서 찻집을 스타벅스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실소를 자아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찻집이 우리의 생활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으려면 먼저 우리의 의식 속에서 가물거리며 잊혀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 그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찻집은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과 함께 비로소 활로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찻집이 대중의 생활문화공간이 되려면 국민적인 관심과 더불어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앞서 예를 들었던 전통떡카페 다미재는 커피문화에 점령당한 대학로에서 만 3 년째 스타벅스 따라잡기를 시도하고 있다. 겨우 십 수 가지에 불과한 차와 전통음료 그리고 방앗간을 두고 직접 만드는 떡 한과만을 판매하며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 이쯤 되면 개인의 노력만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절반은 누구의 몫인가? 그것은 우리 것을 사랑하고 즐기며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우리들의 몫이다. 특히 다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利)를 좇는 귀족적 패거리문화 놀음을 중단하고 차 문화의 확산을 위해 진정으로 헌신해야한다.
찻집은 스타벅스나 베이커리카페보다 훨씬 품격이 높고 건전한 정신문화와 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생활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땅에 경쟁력을 갖춘 찻집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정신적 가치는 물론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아도 외화를 절약하고 우리 농촌을 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고품격 문화와 건강생활을 추구하는 오늘의 시대적 상황은 최고의 문화와 전통건강식을 두루 갖춘 찻집이 희망을 꿈꾸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최상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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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원고의 주제를 놓고 고민하다가 새해벽두에 스타벅스 인사점에 앉아서 찻집의 희망을 꿈꾸며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지난 일 년 간 개인의 짧은 소견을 독자발언대라는 귀중한 지면을 할애하여 실어주신 월간 Tea & People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첫댓글 바로 무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인 것이죠. 차와 문화와 우리의 먹거리가 결국은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것...그 안에 인연이라는 필독서는 분명히 있는 것이구요.
햇살님의 사명감이 촉구되어 지는 장이로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