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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강해(6)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문 : 마1:18-25, 눅1:26-38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신앙공동체의 신앙 속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님들이 예배하기 위하여 교회에 나온 것은 ....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신앙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공동체(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사도신경 원형에서는
“내가 믿사오니”(I belive)가 아니라
“우리가 믿사오니”(We belive)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신앙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신앙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반복하여 고백하면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보편적 교회의 신앙에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
사도신경을 우리의 신앙으로,
또 나의 신앙으로 고백하여
‘같은 신앙을 가지고’ 주 안에서 함께
성장해 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짧은 구절이지만 이 안에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고백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이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할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고백>
그리고 나서 “이는”이라는 말로,
왜 그렇게 고백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예수님의 생애 전(全) 과정에 통해 고백합니다.
그 첫 번째 고백으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사실 이 고백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대표적인 고백입니다.
한 마디로 상식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비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처녀가 남자와의 관계도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훗날 사람들이 지어낸 신화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예수는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사생아’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문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많은 분들이 다른 고백들은 다 믿겠는데 ...
이 고백은 믿기 어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이 대목에서 '이걸 도대체 믿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성도는 "한 평생 교회를 다녔어도
동정녀 탄생의 교리만큼은 믿어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라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교 신앙의 기본 교리가......
인간의 상식과 과학적 합리성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교리가 무엇입니까?
• 절대자인 신(神), 즉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그 분이 말씀으로 무(無)로부터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죽었던 예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여러 증인들 앞에서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장차 ‘심판주’로 다시 오셔서
온 우주와 인류를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믿어지십니까?
인간의 상식을 기반으로 하자면 믿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확신하는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믿어야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한 번 묻겠습니다.
- 하나님이 말씀으로 무(無)로부터
온 우주를 창조했다는 교리와 ..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교리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믿기 어렵습니까?
-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자신을 낮추셔서
가장 낮은 곳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다는
교리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교리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믿기 어렵습니까?
-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셨다는 교리와 ....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교리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믿기 어렵습니까?
성도님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에게 나셨다는
교리가 가장 쉬워 보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비하면 ....
성육신의 사건은 별로 대단한 기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한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분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에게서
나셨다는 것이 그리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으면 ......
바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말씀을 우리도 “아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으면....
바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말씀을 우리도 “아멘”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상식과 과학적 합리성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3차원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계획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 말씀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서 ‘믿음과 구원의 확신’에 이른 것입니다.
믿음은 이성을 압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
이성에 빛을 비추어주고,.....
눈을 가리고 있는 비늘을 벗겨
영안이 열려지게 해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다시 한 번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고백을 보겠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합니다.
<마1:18-21>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절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눅1:26-38에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예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합니다.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 마리아가 깜작 놀라서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더구나 유대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이 때 천사가 말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리니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라”(35), ..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37).
이 때 마리아는 순교적인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주의 계집종에게 이루어지이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음”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궁극적인 수태,
그 참된 주도권이 전적으로 창조의 영이신
성령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전적으로 창조의 영이신 성령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잉태와 출생에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와 관여 외에
어떤 다른 것을 말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의 ‘신비’입니다.
그럼 왜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 ?
첫째,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의한 잉태는 “예수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역사 안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의 생물학적인 영역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셨다가 중간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것이 아니라 ....
세상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요1:1-3>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절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양성론’,....
즉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양성을 동시에 지니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럼 왜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 ?
첫째,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말은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죄에 오염되지 않았음을 드러냅니다.
사람의 관계 가운데 태어난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예수님이 일반적인 생리학적으로 태어났다면
예수님도 원죄가 있으며,......
원죄가 있으면 인간의
죄를 대속할 자격이 없게 됩니다.
흠이 있는 것이 흠이 있는 것을 대속할 수 없습니다.
온 인류를 위한 대속 제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흠과 티’가 없으셔야 합니다.
곧 죄가 없으셔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잉태되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또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예언의 성취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1:22-23>
22절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말씀은 이사야 7:14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은 이사야가
주전 700년경에 성령에 감동되어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마태가 인용한 것입니다.
분명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 말씀이 잘못 인용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7:14의 말씀에서
‘처녀’라는 말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히브리어의 ‘아이마’라는 말은
‘처녀’도 해당되지만 ‘젊은 여자’도 해당됩니다.
이 ‘젊은 여자’란 말은 처녀인지
결혼한 젊은 여자인지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저 나이가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약 이 본문을 신약 성경과 관계없이 읽는다면,
그냥 “젊은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것은 결코
하나의 징조가 될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이 무슨 징조입니까?
그것은 이상하거나 징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은
분명한 ‘처녀 탄생’의 예언인 것입니다
(히브리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에도
‘처녀’로 번역). 마태는 정확히 인용한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는 고백이 중요한 것은 .....
예수님이 진정 역사적인 인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그가 ‘참 사람’이 되셨다는 것
곧 ‘온전한 인성(人性)’을 취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천사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눅 2:6-7).
이것은 온전한 인간, 참 사람이 되셨다는 의미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가현설 주장
-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二元論) 때문에 예수님의 완전한 인성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만을 강조하여 ‘가현설’을 주장하였습니다.
몸만 빌려 입었을 뿐 실제로
인간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완전한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를 온전히 입으셨기에
십자가의 고통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으로,
또한 참 사람으로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주님으로, 오늘 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사람 되심의 목적>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까?
그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죄'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잘못된 행동'을 생각합니다.
법을 어겼다든가 혹은 양심에 가책이 되는 행위를
한 것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죄는
그보다 더 깊은 차원에 관한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보다 더 깊은 차원,
즉 '잘못된 존재 상태'를 가리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래로
모든 인류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도록
존재가 망가진 상태를 가리켜
'원죄'(original si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예외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랑하는 성도님들 !
죄의 문제는 단순히
그냥 피해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단순히 죄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죄의 삯은 사망"(롬 6:23)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둘째 사망, 곧 지옥에서의 영원한 형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피하지 말고
심각하고 고민해야 합니다(환자에게만 의사가 필요한 법).
죄의 문제를 직시하는 사람에게만 복음이 은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죄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속제물’(희생제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름처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죄의 질병으로부터 치유하고
죄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 번째 아담'(The Second Adam)이라고 불렀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 이 고백은....
참 하나님이시면서도 .....
인류 구원의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참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서 오신 예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할 때,...
우리는 먼저 우리의 죄성을 인정하고
죄의 굴레에 갇혀 있는 무력한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의 몸에서
나셨다는 고백을 할 때....
우리는 또한 우리의 희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만이 내 죄를 사하실 수 있음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대속의 주’로 믿어
죄로 인해 흐려진 하나님의 형상이 오롯이 회복되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