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13일, 범이가 내게로 온 날 기록 첫마디입니다. “13일 월요일, 그치지 않는 폭우 중에 범이가 왔다. 범이는 앞으로 범바위 아래의 이 곳 복호(伏虎) 기슭 길뫼재에서 나와 더불어 생활하게 될 것이다. 범이는 진돗개 수놈 한 살짜리 이름이다. 삼천포 금암요 달묵 선생이, 자기가 아끼면서 기르는 진돗개들 중에서 더욱 아끼던 범이를 흔쾌히 내게 주었다.” 범이 온지 어느 듯 일 년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첫돌입니다. 일 년, 감개가 무량합니다. 아무런 대비 없이 엉겁결에 맞이하여 함께 하게 된 게 견공이 범이거든요.
13일을 범이 생일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마침 이 때 쎄울서 막내가 집에 와 있었습니다. 범이 생알(일) 파티 거창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내가 준비해줄 테니 아빠가 범이에게 고깔모자 씌어주고, 케이크 촛불 범이로 하여금 불어 끄게 해서 사진 찍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난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개에게 무신 고깔, 그건 개발에 닭 알”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범이는 민감해, 설령 모자를 씌웠다 해도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특히 내 디카는 작동이 늦습니다. ‘개발에 닭 알’이라는 말을 막내는 못 알아듣는 듯 했습니다. 아무튼 생일상을 내 나름대로 이렇게 차렸습니다. 편이 준비해 주었습니다.
세레모니가 시작됩니다. 두 놈 개를 불렀습니다. 부르면 퍼뜩 오기는 옵니다. 하지만 범이는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호비는 가만히 앉아 주인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생알(일) 축하한다. 기년 사진 찍자”고 했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얌전히 앉아 폼을 잡아 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찰각 찍었습니다. 고깔대신 월남 아가씨 모자, 씌우려고 갖다 댔더니 기겁을 하고 도망 가버립니다. 그래서 그냥 찍었습니다. 다음은 촛불 점화, 또 축하 노래. 노래는 내가 ‘해피 버스 데이 투 유’를 소프라노 나팔로 불었습니다. 불어도 듣는 둥 마는 둥, 줄 따라 저리 가 버립니다. 다음은 케이크 대신 준비한 빵 절단. 절단 하는 대신 둘둘 말았습니다. 호비는 뜸 고만 들이고 빨리 달라 아우성입니다. 이제 촛불을 꺼야 합니다. 불 끄라고 호호 불어 촛불 끄라고 말해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그냥 켜 두었습니다. 커피는 내 몫, 훌쩍 한 모금 마시고는 빵을 차례대로 주었습니다. 범이는 야금야금, 호비는 한입에 덥석. 이제 닭알 차례입니다. ‘개발에 닭 알’이라는 말에 힌트를 얻어 준비한 달걀입니다. 호비는 단숨에 먹어 치웁니다. 그런데 범이는 아닙니다. 진돗개 본성이 여지없이 들어나는 순간입니다. 이리 저리 굴리고 냄새 맡아 보고 핥아 보는 등, 시간을 끕니다. 토막을 내어 주었더니 입에 넣었다가 밭아버립니다. ‘개발에 닭 알’이라더니 자기에게는 소용 안 되는 물건입니다. 그러다가 한 참 후 야금야금 먹기는 먹었습니다.
호비는 또 자기 식대로 친구(동반자) 생일 파티를 열어준 모양입니다. 자고 났더니 작년 여름에 쓰고 구석에 처 밖아 둔 알루미늄 불판이 호비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밤에 지 둘이서 삼겹살 구워 먹은 모양입니다. 호비 의리 대단합니다. 범이가 많이 깽알대는데 그걸 다 받아 줍니다. 한 달 먼저 왔다고 텃세하는 칭구에게 열어준 삼겹살 파티라니.
그리고는 칭구를 즐겁게 해줍니다. 간지럽기 해주는 모양입니다. 범이, 불알을 공중으로 향하게 한 채 덩치 큰 친구의 간지럽기를 받아 줍니다. 그러니까 간지럼 타 줍니다. 미우나 고우나 둘 아닙니까. 물론 저러다가 ‘으르릉’으로 발전합니다. 대개는 범이가 호비 화를 돋웁니다.
밤이 왔습니다. 범이 경비 태세로 들어갔습니다. 보고 있는 나, 믿음직스럽고 든든합니다. 미세한 움직임이나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습니다. 두 놈이 협공하듯 짖어대면 지리산이 우렁우렁합니다. ‘범이 똥구멍 나팔 똥구멍’입니다. K는, 좋은 개는 딱 버티고 섰을 때 똥구멍이 주먹만 해야, 나팔처럼 커야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범이 똥구멍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범이 생일 하루는 이렇게 갔습니다. 머무는 3일 내내 구름-비, 비-구름이었습니다. 신선대- 형제봉-청학이골-악양천이 만들어 내는 운무(雲霧)의 조화에 감탄하면서 육체일 힘든 줄도 모르고 보냈습니다.
첫댓글 범이야 해피 버어스테이~ 둘이어서 다행입니다, 첩첩산중에 범이 혼자였으면 외로웠을텐데 아옹다옹 둘이어서 살만하겠습니다, 주인께서 직접 연주하시는 생일축하곡도 듣고 엄마가 채려주신 생일상도 받고 복 많은 녀석들입니다, 그러보 보니 범이 얼굴도 잘생겼습니다~
둘 다 적응 잘 한 것으로 보입니다. 개의 시간 감각과 사람의 시간 인지 능력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요새 해봤습니다. 돌아오면 일주일 동안 두놈이 사람없이 집안에서만 지내니 외로웠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유심히 살펴보니 두넘의 심리적 불안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좋은 쪽으로 보자면, 밥 잘 먹고, 풀장이 각각의 집안에 있으니 시원하게 여름을 넘길 수 있고, 가재가 사는 맑은 물을 음료수로 마시니 어쩌면 다른 개 처지모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놈들 때문에 저는 매주 내려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엇인가 돌볼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찮기도 하지만 참 살만합니다, 내 손에 의해 그들의 생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요, 혼자서는 외로워해요, 특히 작은 애완견은 혼자 두고 피서라도 다녀 오면 죽는 경우도 있어요, 제 집의 찌끄만 녀석들도 제가 시골에 가서 자고 오면 가족이 있어도 밤에는 현관문 앞에서 늑대처럼 운답니다, 고개를 하늘도 쳐들고 그렇게 서글프게 운답니다..
사포님 말씀에 저도 Me too~!
도야지 족발도 삶아 주고 그 궁물도 곰국 삼아 주려고 했는데 너무 더워 그건 다음 달 호비 생일 때까지 미루기로 했습니다. "이 놈아, 니 생일이다. 축하한다"하고 반복해서 말해도 범이는 알아 들은 척도 안 합디다. 사실은 저 빵에 모기가 옮긴다는 그 치명적인 병, 예방 가루약을 발라 주었습니다.
아~! 예방약을 그리 먹이면 좋겠군요. 한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아고, 세상에...저렇게 행복할 개들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개 좋아하는 신선도 생각 못할 일 입니다. 멋진 길뫼님께 박수를...
황송! 부끄! 다음 달 호비 생일 땐 아마 편과 함께 내려가지 싶습니다. 오늘 구포장에 가서 배추 씨앗을 샀다고 합니다. 처음엔 모종을 심으려고 했는데 씨앗 장사에게 넘어간 모양입니다. 깨도 추수할 겸 함께 내려가게 되면 호비에게는 모자도 씌우고 넷이서 파티하게 될 것 같습니다. / 거기도 요새 귀뚜라미 밤에 많이 울죠? 여긷 ㅗ그렇습니다. 시월 밤은 두넘과 함께 보내기에도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신선 마당쇠 왈, 자고로 배추는 모종을 심어야 하느니라 입니다. 일주일씩 기다려 배추 솎기에는 너무 할 일이 많답니다. 무우와 달라서...참고 하소서. 귀뚜라미와 낮동안의 매미의 절묘한 조화가 환상입니다. 나머지 파티도 기대합니다 ㅎㅎㅎ
난 왜 개만 보면 발길질할 생각부터 먼저 나는지 원~~^^
그리 오래되지 않는 옛날, 우리 누렁이 흰둥이 등 똥개들이 정지 앞, 축담앞에서 우리들로부터 발길질 더러 당했죠? 채이면서도 꼬리는 더 쎄게 흔들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