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몸도 마음도 많이 무거운 하루였다.
아침에 눈을 떴다가 그냥 세상이 다 귀찮게만 여겨져서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고 되려 머리만 더 아팠다.
생각다 못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것저것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슨 넘의 손바닥만한 집에 정리할 것이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준혁이 여름양말이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았다.
내가 작년에 E-마트에 들렀다가 제일 값이 싼 걸로 여섯 켤레인가...???
사주었었는데 싼게 비지(?)떡이라고 그 넘의 양말이 오히려 빨면 빨수록 줄지를 않고
자꾸만 늘어나서(일반적인 면양말의 경우는 신으면 잠시 늘어났다가도 빨면 다시 준다)
신고 걸으면 양말이란 게 발에서 자꾸만 삐져나오는 꼴(?)이되고 말았다... 쩝!
것두 잠시 몇 번 안빨아 신어서 벌써 세 켤레는 앞 뒤로 빵꾸가 나버렸고,,,
남은 것조차도 거의 위기일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여름 끝무렵에 준혁이와 함께 나긴 김에 'BYC 상설할인매장'에서
하얀색 발목양말을 두 켤래 더 사줬는데 이 넘이 그 건 마음에 들었든지...
죽자고 빨아놓으면 그 양말만 신는 것이었다.
제 옷을 사면서 'NOTON'(영`케주얼 브랜드 이름)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로고가 새겨진 것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신은 모양새가 영 마음에 안든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없이)
그런데 그 흰양말이라는 것이 처음 신을 때 좋지...
계속해서 하얗고 깔끔하게 보일려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학교에서 실내화를 신는다고 해도 하루만 신어도 발바닥이 까맣게 되고
(청소나 제대로 하는지...??? 온통 먼지투성이니까)
다시 하얗게 빨려면 세탁기로는 어림도 없거니와 손으로 빨아도...
몇 차례나 행궈가면서 '박박'문지르고 마지막으로 락스처리를 한다해도
썩 마음에 들 정도로 깨끗하게 하기에는 힘이 들었다.
근데 막내란 넘이 몽땅 흰색으로 발목양말을 사달랜다.
이제는 내가 예전처럼 빨아줄 수도 없거니와...
운동화조차 끈도 안푼 채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는 지 에미와 단 둘이 살텐데...에휴~
- 이제 내일부터는 교복도 하복으로 갈아 입는다 -
안 그래도 아픈 머리도 식힐 겸...
준혁이 양말도 사고 잠시 밖으로 나갈까...??? 생각하던 참에 휴대폰이 울렸다.
'철진'이였다... 그저께 통화할 때 나 떠나기 전에 꼭 한번 만나고 가라고 했었다.
내가 어디로 갈까...??? 물었더니 그냥 이쪽으로 오겠다면서...
대구호텔 커피숍에서 만나면 어떻겠냐길래...
내가 30분 후에 그곳으로 가마고 했다.
그리고는 여자친구와 함께 있는데...
아버지(나)를 꼭 만나고 싶다니 어떠신가...???를 물었다.
난 너(철진)만 괜찮으면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었다.(사실 솔직한 심정이었고)
늦은 시간에 예식이 있었든지...
호텔로비와 일층 커피숍이 꼭 '돗데기'(?) 시장처럼 소란스러웠다.
내가 막 들어서는 참에 그아이들도 막 도착 했는지 두어 걸음 앞서서
두리번거리면서 나를 찾고 있는 듯 했다.
이야기를 나누기엔 조금 시끄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옮길만한 마땅한 장소가 언뜻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다른 사람들 일행과는 조금 떨어진 구석자리로 앉았다.
앉고 보니 탁자 위에 하얗고 자그마한 플라스틱 명패에 '금연석'이라고 씌여 있었다.
그러니 좀 조용하지......*^^*
간단하게 시키는 인사를 받고는 편안하게 앉으라고 했다.
첫눈에도 갸름하니 예쁜 얼굴이었다...
몸매도 그정도면 요즘아이치고는 너무 깡마른 편도 그렇다고 해서 뚱뚱한 편도 아니었고...
姓(성)은 진보(안동 또는 청송 근처) '李'씨고 이름은 '은주'랜다.
일남 삼녀중에 막내라는데... 그렇게 막내티가 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든 것은...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아직도 시골(진보)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컴퓨터 채팅 같은 게 아니라 철진이가 머리(이발)를 깎으러 미용실에 들렀다가
서로 마음에 들어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미용실에서 일하는데 꽤 실력이 있어서 곧 독립을 할 예정이란다)
사실 철진이가 여자친구를 내게 소개시킨 건 처음이 아니었다.
몇년 전 우리가 스물 두해만에 다시 만났을 때...
그 때도 진이에겐 여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수성구 범어로타리 부근의 어느 직장(?)에 다닌다는 그 아이(여자친구)는
왠지 자꾸만 내 눈에 익은 듯이 느껴졌었고 만나게 된 동기도 컴퓨터 채팅이었다.
(물론 그렇게 만났다고 해서 다 그저 그렇고 그렇다는 선입견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무엇보다도 서울이 집인데...
부모가 불화로 찢어(?)지고 아버지가 다시 맞은 새엄마와의 갈등으로 남매(언니)와 함께
집을 나와 객지를 떠돈다는 것과 언니도 아니고 다른 친구와 원룸에서 산다는 것...
요즘은 그런 것이 크게 문제는 되지 않겠지만 화장이 짙고... 옅고...를 떠나서
너무 천박스러워 보인다는 것...(옷차림새까지도)
하여튼 그러한 이유들로 나는 마음이 그렇게 썩 내키지를 않았었고...
(순전한 부모된 내 욕심이라는 점에선 되려 그 여자친구에게 미안했지만)
그래서 간단하게 인사만 받고는 그냥 묵묵히 식사를 끝낸 후에 헤어졌고...
그 후 내 생일날 선물로 사주더라면서 커다란 홍삼엑기스를(아주 비싸보였다)
작은 도자기 항아리로 두 개나 들고 왔을 때(그중 한 개는 친구를 주었었다)...
나는 철진이에게 솔직한 내 심정을 말했었다.
"나는 그 어떤 일로 건... 그 누구에게 건...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거나 받기를 윈치 않는다."고...
"그래서 네(철진)가 꼭 결혼할 사이가 아니라면 될 수 있으면
이런 선물은 받지 않는 편이 덜 부담스럽겠다."고...
"그리고 나(아빠)는 무엇보다도 네(철진)이가 나처럼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따라서 어떤 여자 건 간에... 꼭 뿌리(?)가 있고... 가정과 가족이 온전하고...
기본이 반듯했으면... 하는 바램이고 욕심!"이라고...
"아무리 부모가 못 배우고, 무식하고, 가난하다 하여도...
그저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인간다운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런 부모님 밑에서 보고, 깨우치고, 자란 사람을 나도 간절하게 갖고 싶었고...
너(철진)도 그런 사람을 만나서 사는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자 소원!"이라고...
"나(아버지)에겐 그런 기회가 없었거나... 혹은 있었어도...
세상이 허락을 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사람들 관념도 많이 바뀌었고...
또 네(철진)게는 어떤 모습으로 건 내(에비)가 있으니...
마음 먹기 따라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내 마음을 헤아렸든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큰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차츰 그 여자친구를 피하는 눈치가 보이더니
어느날 완전히 헤어지게 되었다고 내게 귀띔을 했었다.
사실 따져보면...???
내게도 그런 자격(남의 집 자식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오늘 철진이의 여자친구에게 분명히 말했다.
"사람이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제 운명을 제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자신이 어떤 부모를... 어떤 가정과 가족을... 그리고 어떤 환경을 가지고
태어날 것인지 스스로는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때문에 지난날 우리 철진이가 처해 있었던 모든 상황들은 전혀 자신의 뜻도
자신의 잘못도 아니다.
차라리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겠지.
그러나 나 또한 내가 원해서 일부러 그렇게 된 것들은 아니었다.
그런 문제들은 차지하고라도...
지금... 현재의 상황이나 앞으로의 일들은 충분히 철진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엮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올곧게 살아가는데 있어... 너(철진이 여친)가 힘과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살지 않게 노력하는 일에......"
끝부분에서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소리가 흔들렸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숙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꼿꼿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목에 힘주어 말했다.
모든 잘못은 철진이가 아니라 이 못난 애비에게 있음을......
그 녀석이 나를 보고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마시고 아버지 건강이나 챙기고 하루 빨리 행복(?)하게 사시라."고...
"언젠가 자리가 잡히면 가까이서 함께 살 생각"이라고...
"준혁이도 데리고......"
나는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나는 너를 못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애비로서 걱정할 뿐..."
절대 나처럼 살아서도... 또 그렇게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을 함께 다짐하면서 헤어졌다.
함께 저녁식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얼마전 결혼한 친구가 오늘 저녁 집떨이를 해서
여`친과 함께 황금동까지 가야 한댄다.
속으로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래도 그 넘은 나와 달라서 그 나이에 시골친구도 대학친구도 있었다.
나처럼 젊은 시절 친구라고는 몽땅 깡패나 양야치(?) 밖에 없지는 않았으니까......
굳게 악수를 나눈 뒤...
여자친구를 먼저 차에 타라고 하고는 짤막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앞으로는 좀더 자주 전화도 하고 문자메세지도 보내고...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 받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애비 걱정도 말라!"고...
"틀림없이 지금보다도 더 온전하고 좋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마!"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
아파트 담벼락 옅은 회색빛을 닮은 저녁하늘이 낮게 깔려 있었다... 올려다 보니......
-집근처 시장에 들러 준혁이 발목양말 여섯켤레를 샀다.-
첫댓글 무엇보다도... 온전한 모습으로...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온전한 삶을 영위하리가 믿어요... 아빠가 믿어주는 걸 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