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손님과 어머니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이구요.
우리 집 식구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어머니와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났군,
외삼촌을 빼놓을 뻔했으니.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라고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옥희가
작중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섭 작가의 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녀의 애틋한 썸과
결국 이별로 끝나는 그 결말이
아련해서인지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 작품은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심지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종
패러디 되기도 한 걸 보면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일제강점기인 30년 대에 소설이 발표됐고
60년 대 흑백영화로 감상할 수 있다.
흑백영화를 통해 보는 느낌은
흡사 동화 한 편을 읽거나
맑은 수채화를 보는 기분이다.
흑백으로 된 고전영화가
늘 그렇듯...
'과부가 마음이 좋으면
동네 시아버지가 열둘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절이 대세였던 그 시절에
홀로 남겨진 여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미 가고 없는 남편을 향한 지고지순함.
숙명처럼 조신하게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어린아이의 말투라고는
다소 간지러운 감이 있는 옥희의
이 대사는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교사로 부임해 온 아버지의 옛 친구,
한 선생이 옥희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며
옥희 어머니와 한 선생 간에는
미묘한 남녀 간의 감정이 오가는데
옥희가 오작교 역할을 하면서
사랑의 상징물로 계란이 등장한다.
당시엔 좀처럼 실물을 접하기 힘들었던
밥상 위 귀하신 몸, 계란 반찬이
아저씨가 묵게 된 이후로
자주 등장을 하게 되고
옥희는 계란을 좋아한다는
아저씨의 말에 반가워한다.
아저씨도 좋고, 계란도 좋고...
아저씨가 계란을 좋아한다고
답하자 옥희는 그저 신났다.
아저씨의 밥상에 계란을
올리는 엄마의 수줍은 연심이야
옥희는 알 도리가 없고.
덕분에 살판난 건 계란 장수.
하루가 멀다 하고 문지방을 넘나들던
계란 장수는 의문의 1승을 거두게 된다.
“요즘 세상에 과부가 시집가는 건
흉이 아니란다.
아, 갈 수만 있다면 두 번이 아니라
열두 번이라도 가서 팔자를 고쳐야지.”
점점 바뀌어 가는 시대적 가치관을
앗싸라하게 실행해 버린 두 사람.
계란 장수와 성환댁.
성환댁은 옥희 집에서 부엌살림을
해주던 아낙이었는데 이리저리
능청스럽게 들이대는 계란 장수와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한다.
'헌 사람들끼리 만나 새살림 꾸리는
재미'를 옹골지게 느끼면서 말이다.
이 커플은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었다.
남의 눈치 의식할 것 없이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음에 원하는 선택을 하였으니
나름 행복한 결론이라 하겠다.
하지만 또 다른 커플은 사정이 영 달랐다.
사랑방 손님과 옥희 엄마의 연정은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를 생각나게 한다.
손에 닿지 않는 별처럼.
손에 넣을 수 없는
절벽 위 백합처럼.
멀리서 아름답게 빛나고
손에 닿지 않아 아릿한 그 무엇.
아저씨가 밥값이라고 어머니에게
드리라고 한 봉투에는 돈 말고도
무슨 종이 같은 게 있었다.
종이에 어떤 글이 담겼는지는
관찰자인 옥희의 독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종이를 읽은 엄마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가 빨개졌다가 하고
옥희의 뺨에 입을 맞추어 주는
엄마의 입술은 불에 달군 듯 뜨거워졌다.
그리움과 망설임의 사이를
수없이 오갔을 옥희 엄마는
곱게 다린 손수건에 넣어
이런 답장을 보낸다.
'선생님, 메마른 나무에
불을 지르지 마세요.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저에게는 다만 옥희가 있을 뿐이예요.'
'시험에 들게 마소서.'
애써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옥희 엄마는 성경책을 열고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한다.
마지막 장면은 아련함의 끝판왕.
이별을 고하는 사랑방 아저씨의 눈빛과
언뜻 눈물이 비치는 옥희 엄마의 표정에서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요즘 시대에는
결코 찾아보기 힘든 절제된 감정과
영혼의 우물에서 길어올리는
내면의 깊은 사랑이 느껴져
고귀해 보이기까지 했다.
언덕 위에 올라서서 멀리 기찻길을
바라보는 두 모녀.
연기를 내뿜으며 요란스럽게 떠나는
저 기차칸 어딘가에는
사랑했지만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던
나의 님이 타고 있다.
바람에 부질없이 흩날리는 옷고름이
옥희 엄마의 마음인듯 했다.
흔하디 흔한 B급 통속물이 될 수도 있었지만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로 승화된 것은
희생과 헌신이 따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했던 마음이 가치가 있기 때문 아닐까?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쇼팽의 이별의 곡이 왜 이리 가슴 시린 걸까.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쇼팽/ 이별의 곡
Etude Op.10 No.3 Tristesse
첫댓글
무비님
애틋한 사랑을
멋지게 잘 표현해 주셨네요.
아마도 저자는 경험자가 아닌가
생각할 만큼 울림을 주는 소설 이지요
소설가는 자신이나 주변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작품을 쓰는 것 같아요.
박경리님도 그렇게 썼다고 하더라고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참 아련하네요
나를 실험해 주소서~^^
그럴 능력이 안 됨~ㅋ
감사합니다~
영화로 본것같어유^♡♡♡
영화로 나왔지요~
추억 속의 소설을 오랜만에 떠올려봅니다
오랜만에 봐도 참 좋은 작품이지요?
시험에 들게 하소서~
왜 그리해야 했을까요.
마음 가는대로 행복한 선택을 했으면~
메마른 나무에도 불씨가 살아있을 때~
비내려 나무가 젖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그 선택이 옳다고 판단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