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단심 / 김정희]
행여나 오시려나
기다리는 밤
지나쳐 가실까 하여
담장 위 붉은 꽃등
서리서리 밝혀 놓고
풀 먹인 이불자락
뒤척이는 긴긴밤
한숨소리
장지문 밖 들릴까
안으로 삭이는데
속 모르는 바람
문풍지 흔들다 가버리고
흰 아미 굵은 주름
뉘에게 죄를 물을까
하룻밤 풋사랑 죄라면 죄인 것을
l해설l
우리가 색이라고 느끼는 것은 눈과 뇌에서 느끼는 합성된 감각이지 물체 고유의 물리량이나 성질은 아닙니다. 물체의 표면에 빛이 반사하는 정도에 따라 눈으로 감지해서 나타나는 감각적 특성일 뿐입니다. 스펙트럼으로 빛을 나누어보면 그중에서 가장 파장이 심한 색이 빨강입니다. 빨강의 특성은 모든 색채 중에서 가장 강한 채도와 가장 큰 매력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피, 열정, 위험 등등에 쓰이는데 김정희 선생님의 ‘붉은 단심’은 보통은 잘못 쓰인 제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붉은’ 뒤에 단심의 단은 붉은 ‘丹’자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다시 번역하면 ‘붉은 붉은마음’이 되기 때문에, 보통은 잘못되었다고 합니다만, 우리말의 풍부한 범위를 가득 채워 넣은 김정희 선생님의 시제 ‘붉은 단심’은 그리워하는 마음 하나로는 부족하여 한숨으로 지새운 긴긴 세월까지 보태어 ‘붉디 붉은마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새빨간 꽃등불을...
-맹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