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관 쓰시는 그리스도 (1622)
헤리트 반 혼토르스트
화가들은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수난 중에서
그리스도께서 모욕당하시는 장면을 세 가지로 그렸다.
<조롱당하는 그리스도>(Mocking of Christ),
<가시관 쓰시는 그리스도>(Christ Crowned with Thorns),
<채찍질 당하시는 그리스도>(Flagellation of Christ)가 그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장면들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면으로 묘사되었고,
마태오복음 27장 27-31절, 마르코복음 15장 16-20절,
요한복음 19장 1-3절이 그 배경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조롱당하시는 장면은 간결하지만
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에는 비교적 길고 자세하게 그 장면을 기술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하였다.
군사들은 또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그분께 다가가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그분의 뺨을 쳐 댔다.(요한 19,1-3)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
또 그분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마태 27,27-31)
카라바조를 추종하는 화가들은 카라바조가 그린 것처럼
예수님께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는 장면을 자주 그렸는데,
우아하고 매혹적인 밤 풍경을 잘 그린 17세기 위트레흐트 화가
헤리트 반 혼토르스트(Gerrit van Honthorst, 1590-1656)도
1622년에 <가시관 쓰시는 그리스도>을 그렸다.
그는 1610년에 로마로 건너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명암의 극적 대비와
사실적인 묘사를 배워 1620년 다시 고향인 위트레흐트로 돌아와
그곳에서 대형 공방을 열어 유럽 전역에서 의뢰받으며 화가로서 명성을 쌓았고,
1621년에 결혼하였으며,
1622년에 성 루카 화가 협회장으로 임명되어 성공적인 시기를 보내는데,
바로 이 시기에 이 작품을 통해
횃불을 들고 인물들을 비추어 낮에 이루어진 사건을 밤의 풍경으로 그렸고,
같은 주제로 1617년과 1620년경에 로마에서 이 작품을 그렸기에
이 작품도 같은 주제의 그림과 등장인물과 구도와 표현 기법 등이 비슷하다.
이 작품은 진한 갈색의 어둠을 배경으로 일곱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사선 구도의 중심에 예수님께서 밧줄에 결박되어
가시관을 쓰고 갈대를 들고 맥없이 앉아 계시고,
왼쪽 끝에는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푸른색 옷을 입은 소년이
활짝 웃으면서 횃불을 밝히고 있고,
오른쪽 끝에는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뿔 나팔을 부는 소년이
뿔 나팔을 예수님 귀에 대고 힘주어 불고 있다.
왼쪽 아래에 횃불을 머리로 가린 군사는 무릎을 꿇고 혀를 내밀고 손을 볼에 대며
‘용용 죽겠지.’ 하고 예수님을 놀리고 있다.
예수님 뒤에는 머리에 흰 천을 두른 자주색 옷을 입은 군사와 갑옷을 입은 군사가
유쾌하게 웃으며 지팡이로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있고,
왼쪽 뒤에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다른 군사가 예수님의 옷을 잡아당기면서
손가락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며 관람자들에게 벌거벗은 예수님을 보라고 한다.
빛을 듬뿍 받은 예수님의 몸과
어둠 속에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익살스럽고 들뜬 군사들과 소년들의 다양한 표정과 정반대로
예수님은 양팔을 교차하여 무릎에 내려놓고 갈대를 들고
두 눈을 뜨고 고요하게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예수님은 모든 걸 체념하듯이 입을 살짝 벌리며
하늘을 향해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 같다.
그런데 횃불에 비친 예수님의 모습은 거룩하게 빛나고 있다.
채찍질 당한 그분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고,
가시관에서 흐르는 피도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수난 하는 그분이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런 기물이 없는 진한 갈색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심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