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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설(輪廻說)
김 동 리
두꺼비를 잡아먹은 능구렁이는 과연 죽었다.
그러나 그 죽은 능구렁이의 뼈 마디마다 생겨난 그 수많은 두꺼비의 새끼들은, 그 형제들은, 또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였다.
“오빠는 천성이 고독을 좋아하시니 괜히 홀로 고집을 부리시는 게지, 지식인치고 좌익단체에 가담하지 않은 이가 몇이나 있기에 그러세요?”
성란(性蘭)은 얼굴이 빨갛게 되어 종우(宗祐)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
“혜련도 이제는 뭐, 토요일마다 예술가동맹에 나온대나요…… 두고 보세요, 이제 오빠를 지지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나 있는가.”
종우는 혜련(惠蓮)이란 말에 가슴이 뜨끔하였으나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기가 싫었다. 그는 입을 뗀다면 누이를 반박하는 말, 꾸짖는 말, 그런 것밖에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었다.
그는 피우던 담배의 불을 꺼서 재떨이에 던지고는 누이를 혼자 서재에 남긴 채 잠자코 밖으로 나와 버렸다.
사람의 마음이란 물과 같은 것이니라―그는 이 즈음 와석 이 말이 늘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풀의 형체가 담는 그릇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이 쉽사리 곧잘 변하고 움직여지는 것인가 하고 생각되었다. 그것도 처음부터 성란이나 혜련들이 무조건하고 시류잡설에 추종을 했었다면 종우도 이제와 새삼스레 괴로워할 리도 섭섭해할 것도 없으련만 해방 직후 소련군이 내일 들어온다 모레 들어온다 하고 일부에서 선동들을 하게 되자, 종우의 친구들도 대부분이 이에 호응하여 전환을 한다 추세(趨勢)를 한다 하였고, 그러나 성란들은 종우를 찾아와서,
“모두 겁쟁이들뿐이에요, 정말. 예술적 주관을 가진 사람이라곤 없는가 봐요.”
하며 윤군들의 전향을 비방하던 그였다.
그 성란이 차츰차츰 남편(윤군)의 이론에 설복이 되어, 이제 와서는 종우의 태도에 반감을 가질 뿐 아니라 어쩌다 한 번씩 친정이라고 올 적마다 종우에게 도로 선전을 하려 들곤 하였다. 물론 종우로 말해도 성란이 제 남편의 사상노선에 끝까지 항거를 하라든가, 자기와 함께 공동전선을 펴자든가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저희 내외끼리 보조를 맞추어 가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였다. 다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어쩌면 그렇게 남의 선동이나 주장에 쉽사리 변하고 움직여지는가 하는 것이 못 견디게 안타깝고 쓸쓸할 뿐이었다.
거리에 나온 종우는 숙전(淑專)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교수시간 중이라고 하며 대어 주지를 않아 그러면 시간이 끝나는 대로 부탁을 한다고 성명과 전화번호를 일러 주고는 늘 들르는 다방 창공엘 갔다.
한 삼십 분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여보세요, 네, 한종우올시다.”
“선생님이에요?”
“네.”
“저 혜련이에요. 거기 어디세요?”
“창공…… 몇 시에나 오우?”
“급한 일이세요?”
“뭐, 별로…….”
“보통으론 역시 다섯시…….”
“세시 반까지 이리 좀 나오슈, 여기 기다릴 테니까.”
“그럼 기다려 주세요. 혹 시간이 좀 지나더라도 꼭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혜련도 토요일마다 예술가동맹 에 나온대나요.’
종우는 성란의 이 말이 또 머리에 떠올랐다.
“선생님께 얘길 좀 해야겠는데…….”
혜련 자신도 요즘 가끔 이런 말을 하였다.
“전 아무래도 일개 평범한 인간인가 봐요.”
이런 말도 하였다.
종우는 혜련의 이러한 말뜻을 진작부터 대강 짐작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었다. 혜련이 종우를 향해 좀더 육체적인 교섭을 바란다는 것은 벌써 여러 해 전부터의 일이요, 자기 역 가끔 이러한 동물적 충동을 받지 않는 바도 아니었으나, 인간적 자존이 유지하는 날까지 이것과 겨루어 보려는 것이 그의 유일한 보람이라면 보람이요 괴벽이라면 괴벽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요즘의 혜련의 두 눈에는 분명히 어떤 슬픔과 불만이 흐르고 있어 그것이 무척 초조한 빛까지 띠게 됨에는 종우도 여간 괴롭고 불안스럽지가 않았다. 그 머뭇머뭇하는 것으로 보아 역시 말하기 힘들고 또 중대한 문제인 듯도 하였다. 혜련이, 대체 무엇을 그렇게 머뭇머뭇하는 것일까. 그것은 요즘 좀더 열을 내어 예술가동맹에 출입을 한다는 사실과 어떻게 관련을 가지는 것일까. 또 혜련과 성란 두 사람 사이에는 대체 어떠한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종우의 머릿속에는 요즘 한창 신명이 나서 쏘다니는 성란과 그리고 날로 더 파리해만 가는 혜련의 얼굴이 떠올랐다.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은 어느덧 저 꿈결 같이 아득한 바닷물 소리가 되어 아련히 그의 고막을 울렸다.
종우가 서른하나, 혜련이 스물둘, 그리고 성란이 스물하나 그들의 나이가 이렇게들 되던 해 여름, 종우는 계획적으로 성란을 집에 남겨둔 채, 그들 두 사람만이 해운대로 여행을 떠난 일이 있었다. 그때 아직 혜련은 동경서 학부에 학적을 두었을 때요, 종우는 자기 자신도 놀라리만치 건강 회복이 순조롭게 진척될 때였으므로 두 사람은 즐겁게 이 명랑한 걸음을 만들었던 것이다.
씩― 하고 모래 씻는 물결, 멀고 가이없는 바다, 흰구름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아득한 수평선에서 히끗히끗 실낱같이 떠오던 물거품이 점점 가까워 올수록 초록빛 산맥처럼 넘실거리며 울― 하고 먼하늘의 뇌성 같은 우렁찬 소리보 몰려와서는 또 쏴― 하고 모래를 씻어 철썩 돌아가고 하는 해운대의 바다는 종우가 어려서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그의 온 영혼을 사로잡아 버리는 것이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이라.
혜련은 나직한 목소리로 그러나 함초름히 정서에 젖어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어쩐지, 이 노래가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구먼요…… 가없이 가없이 멀고 아득한 바다 무언지 눈물이 돌고 목이 메이는 슬픈 얘기를 들려 주는 듯한 물결 소리…….”
혜련은 소곳이 고개를 수그리며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그날 밤 종우는 바닷가에 나와 맥주를 마시었다. 달까지 훤하게 밝은데 희뿌연 물결은 갈매기 소리와 함께 밤이 새도록 호소하듯 위협하듯 먼 하늘가에서 울― 하고 천둥이 일어나는가 하면 그것이 바로 그들의 발끝까지 와서 쏴― 하고 모래를 씻고 돌아가곤 하였다.
“혜련 곁에서 내가 이렇게 술을 먹고 있어 어쩐지 죄를 짓는 것 같구려.”
처음 술이 얼근했을 때 종우는 무척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술이 취했을수록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맥주잔을 기울일 때마다 되풀이를 하고 하여서 혜련도 끝내 그냥 잠자코만 있을 수 없어서,
“제가 이렇게 실과를 먹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뭐…….”
한마디 했더니, 종우도 그러자 흐뭇해져,
“선생님은 술을 먹고 있소. 생도님은 실과를 먹고 있소.”
하며 한바탕 유쾌한 듯이 웃었다. 이리하여, 그는 결국 술이 아주 취하고야 말았다. 혜련 역시 하도 성가시게 권하는 잔이라 마지못해 몇 잔 마시고 했더니 정신이 알쑥해져서 일변 은근히 걱정도 되고, 일변 또 신명이 좀 나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갈매기가 나부끼는 물결을 가리키며,
“사람도 평생 저 갈매기처럼 물결 소리나 듣고 살아갈 순 없을까!”
이렇게 감탄을 했고, 또 그러고 나서는,
“그러다간 도로 타락할는지도 모르지.”
했던 것인데, 공교롭게도 이 말이 예언이 되어, 그날 밤 과연 그들은 타락을 해버렸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종우가 눈을 떴을 때 그는 간밤에 자기가 저지른 그 부끄러운 사실을 생각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나이 삼십이 넘도록 거의 동정을 지키다시피 해온 그는 그러한 남녀관계 같은 것을 ‘동물적 타협’이라 하여, 경멸하고 저주해 오던 그였다.
그는 다시 눈을 떠서 방 안을 가만히 살펴보았으나 분명히 혜린은 방 안에 있지 않았으나 지금부터 혜련의 얼굴 대할 것만이 그지없이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뼈가 저리는 듯하였다. 지금까지 간신히 유지해 온 인간적 자존을 자기 발로 짓밟고 한 마리 짐승이 되어 혜련 앞에 나선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종우는 갑자기 오한이 들기 시작하였다.
종우가 두 번째 눈을 뜬 것은 오정이 가까이 되었을 때였으나 역시 방 안은 잠잠하였다. 그는 갑자기 겁이 더럭 났다―종우에게 모욕을 당한 혜련은 자기들의 슬픈 타락을 저주하며 새벽 바다에 몸을 던져 버린 것이나 아닐까. 종우에 대한 환멸과 분노에 절망한 나머지 혜련은 짐을 꾸려 먼저 서울로 떠나 버린 것이나 아닐까. 혹은 저 바다 물결이 사철 부딪히고 있는 어느 검은 바위 위에 앉아 홀로 가슴을 찢고 울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종우는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구원을 청하듯 그는 절망적으로 고개를 두르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자기 앞에 말없이 나타난 혜련의 언제보다도 단정한 화장, 아담스런 차림새와, 그리고 약간 수그린 얼굴에서 천연스레 이쪽을 치떠보는 그 맑고 빛나는 두 눈을 보았을 때, 그는 또 한 가지 새로운 감격과 설움에 정신이 어지러워 다시 자리에 쓰러진 채 잠이 들어 버렸다.
저녁때부터 종우는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여 이틀 동안이나 헛소리를 질러 가며 앓게 되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의 여행은 끝이 났다. 종우는 몸의 열이 내리고 정신이 돌아오자 곧 혜련의 손을 잡고 사죄를 하고 싶었고 다시 서울 오는 차 중에서도 몇 번이나 거기 대해 망설이고 주저하다 종시 이루지 못한 채 그대로 서울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세시 반까지 오기로 약속한 혜련은 네시에서 오 분을 남겨 놓고 겨우 나타났다. 언제나 똑감은 그 차림새로―곤색 투피스에 누런 소가죽 가방을 들고 다방 문을 밀고 들어선 혜련은 그쪽 구석의 종려분(棕櫚盆) 곁에 앉아 있는 종우를 발견하자 그 대리석같이 싸늘해 뵈는 두 볼에 약간 표정을 지으며 그가 앉아 있는 맞은편 의자에 와 앉았다.
“꽤 기다리셨죠.”
혜련은 자기의 커다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사과하듯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상대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 달에 한 번이고 두 달에 한 번이고 그들이 만나 하는 일은 오직 이것뿐이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엔 이밖에 더 깊은 교섭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종우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성란이 다녀갔어요?”
“음, 참, 그 애가 왔더구먼.”
“무슨 얘길 했어요?”
“별 얘기도 없고…… 윤군과 똑같은 얘기를 하다, 참, 혜련도 또 저이들처럼 맘이 변할 게라구, 이제 아주 나 혼자 될 게라구, 그런 얘길 하는구먼.”
혜련은 시선을 떨어뜨리며, 순간, 꼭 다문 입술엔 가벼운 경련이 지나갔다.
혜련의 얼굴만 한참 바라보고 있던 종우는 어느덧 미미한 오한을 깨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방에서 나온 혜련은 저희 집에 가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종우에게 권했다. 혜련의 아파트에 가기를 저어하는 종우는,
“글쎄, 어떻게 두통이 좀 나는 것 같애…….”
하며 손으로 이마를 만지었다.
“얘기가 좀 있어요…… 꼭…….”
순간 혜련의 맑은 두 눈에는 슬픈 그림자가 어리었다.
‘무슨 얘길까, 혜련의 그 맑은 두 눈에 어리우던 슬픈 그림자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종우는 혜련의 뒤를 따라가며 이렇게 가슴을 졸였다.
아파트 이충 저희 방 도어 안에까지 온 혜련은 가방 안에서 길다란 키를 내어 짤그닥 소리와 함께 곧 노브(손잡이)를 쥐어 비틀며, 뒤로 고개를 돌이켜,
“자, 들어오세요.”
한다.
종우는 방에 들어와 혜련이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고, 또 재떨이를 보자 이내 담배를 피워 물고 하였지만, 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언제나 느끼는 그 협심증과도 같은 무거운 불안이 어느덧 그의 가슴을 엄습하였다. 혜련이 저녁을 짓는 동안, 그는 혜련의 책상에서 혜련이 읽다 둔 듯한 천문학 책을 이리저리 뒤지며, 그 새까맣고 아득한 허궁이란 것을 머릿속에 그려 보곤 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 채 못 되어, 혜련은 아까보다 명랑해진 얼굴로 밥통을 안고 들어오는 것이었으나, 종우는 한 시간 전 그가 여기 들어온 것이 벌써 여러 날 이전과 거의 일 같은 착각을 느끼며 혜련의 얼굴만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저께 거리에서 윤선생을 만났어요…… 왜 동맹엘 자주 안 나오냐고 그러시더군요.”
헤련은 일본 여자와 같은 앉음새를 하여 종우 앞에 밥공기를 놓으며, 그리고,
“아 참, 반주를 한잔 하시죠.”
하였다.
영자(英子) 레벨이 붙은 네 홉짜리 백포도주 한 병을 들고 오며,
“요즘 걸로는 비교적 나은 게라나요…… 어때요, 과히 숭하지 않아요?”
“글쎄 괜찮은 것 같구먼.”
종우도 술을 보자 마음이 좀 누그러지며,
“자, 그럼 혜련도 한잔!”
하고 혜련에게 술잔을 건넸다. 혜련은 먹을 줄도 모르는 술을 사양을 한다든가 수삽을 부린다든가 하는 빛도 없이 의젓이 잔을 받았고, 종우는 혜련의 그러한 태도가 도리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둘째 잔부터 종우는 자작을 시작하여 서너 잔 들이켜고 나니 몸에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
“그럼 윤군과는 그 길로 갈렸구먼.”
“아니에요…… 같이 동맹 엘 들르셨죠.”
순간, 혜련의 두 눈에는 또 아까 거리에서 보던 그 슬픈 그림자가 어리었다.
“그럼 역시 정치 공부를 했겠고…….”
“정치 공부보단…… 사회과학 강좌를 들은 셈이죠.”
혜련은 약간 얼굴을 붉히었다.
“강사는?”
“강사는…….”
혜련은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지며 말하기를 머뭇거리다가,
“저어, 박용재 씨라고 아시죠……? 이번 해외에서 들오신 인데…….”
“…….”
“저어, 윤선생 친구에요…… 윤선생들같이 편협하지는 않더구먼요. 자기는 가장 진실한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우선 가장 진보적인 민족주의자가 되겠다구 그러 더군요.”
혜련은 종우의 잔에 술을 쳐주며 이렇게 말했다.
“진보적인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진보적인 공산주의자도 필요하겠지…… 밤낮 진보적 진보적 떠들긴 해도 실제이론에 있어서나 행동에 나타나는 걸 보면 수십 년 전의 케케묵은 팜플렛에서 별로 진보된 건 없으니, 그러고 보면 소위 이 진보적이란 말도 요즘 무슨 민주주의니 무슨 민족이 어떠니 하는 말들처럼 그저 일종의 선전표어에 불과한 모양이지…… 그런데 혜련, 나는 대관절 이 진보적이니 퇴보적이니 무슨 주의니 하는 것들이 딱이 싫구려!”
그는 분명히 어떤 적의를 띤 어조로 분연히 이렇게 말했다.
“…….”
혜련은 밥공기를 들어 밥을 입에 가져가다 말고, 한참 동안 말 없이 종우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종우의 얼굴에 나타난 그 분명한 적의와 분연한 어조는 무엇 때문일까. 과연 ‘진보적’이란 말 그 자체에 대한 수사적 불만에서일까, 혹은 공산주의란 그 사상에 대한 반감일까, 그런 것보다는 바로 박용재란 사람에 대한 적의일까…… 혜련은 종우의 얼굴에서 이것을 읽으려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 일 분간쯤 뒤엔 어느덧 까닭 모를 성이 뾰족 치밀어,
“박용재 씨가 자기는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우선 진보적인 민족주의자가 되겠다고 한 것은 그냥 자기 자신의 신념을 말한 짓이지 어떤 상대자를 예상하고 한 말은 아니에요.”
분명히 노기를 띤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종우는 의외라기보다도 당황에 가까운 얼굴로 혜련을 바라보았다.
“더구나 선생님을 두고 비진보적 민족주의자라고 한 건 절대로 아니에요. 그보다도 오히려 선생님에 대해선 여간 경의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 에요.”
점점 더 도전적인 어조였다.
종우는 잠자코 혜련에게 술잔을 권했다. 혜련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종우는 술잔을 놓고 담배를 피워 들었다. 그는 혜련이 이 한 두어 해 전부터 이렇게 별안간 물과 불을 못 가릴 정도로 성을 내어 버리고 하는 것을 이삼 차 겪은 일이 있었고, 그것이 혹은 오랫동안의 부자연한 금욕생활에서 기인 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되는 점도 없지 않고 하여서, 이 점에 대해서는 되도록이면 이쪽에서 관대하고 또 침착성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평소도 생각은 하여 왔지만 막상 당하고 보면 여간 난처하고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날 밤같이 박용재를 처음부터 변호를 하려 든 사실과 관련을 시켜 생각할 때에는 더욱 속이 상했다. 박용재라면 십여 년 전에 극문화협회(劇文化協會)에서 윤군의 소개로 처음 인사를 했고 그 뒤 역시 공석에서 수삼 차 만난 것뿐으로 개인적으로 별로 친분이 있은 것도 아니요 게다가 그 동안 십 년이 가깝도록 통히 얼굴을 대한 적도 없고 해서 최근의 그의 위인이나 사상이 어느 정도로 되어 있는지 딱히 알 수도 없는데다 그 밖에 또 혜련과의 사이에 무슨 특수한 관계나 있는 것처럼―보다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일부러 와서 일러 주고 가는 사람들까지 있고 하여, 실상 속으로 은은한 적의까지를 품은 터이라 이렇게 혜련의 입에서 직접 그의 이름을 자꾸 듣게 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종우는 자기의 불쾌한 감정을 혜련에게 내뵈느니보다는 되도록이면 누르고 혜련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싶었다. 그래 혜련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언제나 상투 수단으로 두고 쓰는 사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어,
“혜련!”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이렇게 불렀다.
“우리는 진보적이니 퇴보적이니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그런 문구를 가지고 다틀 필요가 어디 있단 말유? 오늘날의 이 땅의 민족주의자들이 과연 공산당측에서 비방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와 결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개혁시켜야 할 것이고, 또 공산당이 민족진영에서 비난하는 것처럼 소련식 제국주의의 전위가 된다면 이것도 용인할 수 없을 것이오.”
종우는 잠깐 말을 끊고 술을 마시었다.
“그런 건 소용 없는 말씀이에요. 마치 좋은 게 좋다는 거와 꼭 같아요!”
혜련의 음성은 조금도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종우에 대한 반감은 점점더 강렬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좋은 걸 그럼 좋다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해…… 그러나 내가 말하려는 건 그런 시사 문제는 아니야, 그보다는 근본 사상에 있어 가령 우리는 저 자본주의의 경제적 계급적 죄악과 모순을 제거하는 동시 공산주의의 기계적 공식론도 버려야 된단 말유. 즉 우리는 경제적으로 계급적으로 해방이 되는 동시 인간성의 자유와 정신적 존엄 이것도 확보해야 한다는 것뿐이지.”
“인간성의 자유, 정신적 존엄!”
혜련은 글귀를 외듯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것을 부인한 데서―아니, 바로 저주하고서 마르크스 사상의 체계는 성립되는 게니까…… 소위 마르크스주의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담당한 것이 저 유물사관이란 게지만 유물사관의 물질이란 유심철학의 소위 정신이란 거나 꼭 마찬가지로 한 개 완고한 관념인데 이것으로써 인간생활의 전부를 규정하려는 것이 근본적 오류겠지…… 가령 세상에 사람이 사는데 즉 생활을 해가는데 거기 생활조건(生活條件)이란 게 있잖우? 그 생활조건 가운데 경제적 조건이란 역시 중요한 한 조건 아닌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한 조건만을 들어서 다른 중요한 조건들을 부인한다는 건 첫째 인간생활의 현실이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 거야. 사람이란 과연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니까 경제적 조건 이외에도 종교적 조건, 예술적 조건, 도덕적 조건 등등 인간생활애 불가피한 정신적 조건이 얼마든지 있는 게고. 또 그 어느 한 조건을 통동해서라도 저 경제적 조건에 지지 않게시리 얼마든지 합리적이요 과학적인 이론적 체계를 성립시킬 수도 있단 말유.”
“히지만 누가 이론 그대로만 꼭 지키는가요? 우선 소련서만 해도 벌써 신교의 자유를 허락한다고 하잖아요?”
“문제가 거기 있거든! 인간생활의 현실이 그 사상을 용납하지 않을 게라는 것도 그런 거유. 인류가 역사를 가진 지도 이미 오천 년이 넘어 되지만 그 오천 년 동안 우리의 선조들이 돌에 새기고 종이에 그리고 해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 준 그 가장 귀중한 유산의 하나가 이 자유정신이라는 거유. 즉 인간성의 자유, 개성의 자유, 이것이 현대인의 신(神)이요, 영혼이란 것을 알아야 할 거유. 이십 세기의 인류에게 만약 개성의 말살과 기계적 획일(晝一)을 강요한다면 거기는 다만 타락과 암흑…… 그리고, 또 무엇을 발견할까? 이러한 정신적 질식을 완화시키려고 남녀관계를 거의 무제한으로 방임한다든가, 대규모의 극장 설비를 단행하여 영화, 연극, 음악 등을 국책적으로 국민 소일에 제공한다든가 여러 가지로 대책을 강구를 해보겠지만, 그러한 일시적 말초신경의 향락이나 소견으로는 인간의 제일 귀한 것은 구원되지 않을 것이며 빛나는 정신적 창조란 있을 수 없는 게구, 그러자니, 수백 수만의 에세닌(S.A.Esenin : 러시아의 시인)은 역시 자살을 할밖에…… 그러므로 오늘날 전세계 인류가 도달하려 하고 성취하려 하는 것은 이와 같은 구비한 생활조건의 총화에서 경제균등의 사회를 실현시키는 동시에 인간성의 자유와 정신적 존엄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며 이러한 진정한 세계사적 과제를 바로 포착하는 것이 가장 진보적이요, 과학적인 세계관이 아닐까.”
종우는 처음 혜련의 기분을 돌리려고 시작한 이야기에 술기운이 돎을 따라 어느덧 자기 자신이 흥분되어 버렸다.
“저도 요즘 박선생에게 빌려서 유물변증법이란 책을 읽는데 역시 진보적이요 과학적이긴 하더구먼요.”
혜련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혜련 대신 이번엔 또 종우가 골이 났다.
“조선서야 인텔리로 자처하는 친구들이라고 해도 모두 어느 대학에서 주워 모은 노트나 팜플렛 범위인 걸 어디 문제가 되나?”
그는 우선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 속에는 마디마디 독(毒)이 들어있었다.
혜련은 또 처음과 같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말없이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종우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윤군 같은 사람을 두고 말하더라도 세상에 이름난 평론가요 극작가요 또 대학 강사까지 다니는, 말하자면 자타가 공인하는 지식인이지만 그 사람들한테 팜플렛 범위 이상의 무슨 창조적 주견이 한마디나 있던가?”
종우는 흡사 혜련을 비웃듯이 입을 비쭉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혜련이 말끝마다 윤군이나 박용재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어떻게 자기를 모욕하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이러한 종우의 빈정대는 표정은 혜련의 겨우 진정되려는 신경을 여지없이 찔러서,
“하지만 그이들은 비록 팜플렛 범위에서라도 그만한 혁명적 실천을 하고 있어요.”
완연히 종우를 비웃는 말투였다.
종우는 혜련의 이 말에 더러 속이 아주 뒤집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혜련으로부터 그가 너무 정신주의적 경향이 많다든가 실천력이 부족하다든가 육체를 과도히 경멸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충고와 비난과 불만을 받아 온 것이 한두 번 아니지만 그건 언제나 호의와 애정에서 우러난 말이지 이번과 같이 바로 박용재나 윤군 같은 사람을 전제해 두고 이렇게 악의에 찬 조소를 받아 본 일은 물론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종우는 자기의 그러한 흥분을 스스로 비웃으며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혜련?”
하고 불렀다. 그는 어느덧 입가에 웃음까지 띄우며,
“나를 괴롭히지 마슈. 나는 대체 어째야 되겠수. 나는…… 혜련도 알다시피 지낸 겨울 한 철만 더 산에 들어가 생각하고 나와서 이 봄엔 꼭 당신과 결혼을 하려고 했던 것이 돌연히 당신의 폐렴으로 서울을 떠날 수 없었던 것 아니유? 혜련! 나는 대관절……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우? 꼭 바로 말해 주…… 나는 대관절 짐승일까 사람일까…… 혜련, 그것만 꼭 일러 주. 당신은 어째서 자신을 가지는가……? 나를 어째서 당신은 용서할 수 있는가? 나는 어째서 사람이란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개나 돼지도 가졌다는 그 불성을 나는 어째서 나이 서른이 넘도록 체험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러고도 나는 왜 당신을 이렇게
그리워해야 하는가?”
얼굴이 벌겋게 되어 이마에 땀방울까지 떨어뜨리며 마치 무슨 주문(呪文)이나 외듯 한숨에 이렇게 지껄이다가 그는 문득 말을 뚝 끊고 불쑥 일어나려 하였다.
혜련은 당황히 그의 손을 잡아 자리에 도로 앉히며,
“…….”
말없이 한참 동안 종우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종우는 법정에 선 죄인이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처럼 처량한 얼굴로 혜련의 시선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혜련의 입에서는 뜻도 아니한,
“최후로 꼭 한마디만 일러 주세요…… 전 약한 인간…… 이대로 낙오해 가는…….”
어느덧 두 눈에 눈물까지 비친 채 나직하나마 어딘지 스며들 듯한 음성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
“이것으로 아주 결별이 되더라도…… 꼭 한마디…… 선생님껜 역시 정희(貞姬)가 있고 또 전공하시는 철학이 있고, 하지만 혜련은…… 혜련은 무엇이 있어요? 혜련은 여태껏 혼자 살아왔어요…… 여태껏…….”
“혜련!”
종우는 혜련의 푸념을 막으려는 듯이 이렇게 불렀다.
“대관절 나는 혜련의 말뜻을 알 수가 없구려…… 정희가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단 말유?”
그러나 혜련은 종우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전 혼자뿐예요…… 전 여태껏…….”
하며 돌연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어깨를 들먹거리며 느껴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종우는 한참 동안 넋 잃은 사람처럼 혜련의 우는 양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그 새하얀 얼굴에 젖어 흐르는 눈물을 본 순간 문득 그도 혜련의 목을 안고, 한없이 울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었다. 별안간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그는 까닭 모를 공포와 비애에 휩쓸려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쪽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누르며, 그러면서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는 곧 이 자리를 일어나야 한다는 것, 여기서 다시 한번 자기의 인간적 자존을 유린한다면 혜련과의 결혼은 영원히 결렬되고 만다는 것…… 이러한 이성의 소리를 들으며 그는 마치 몽유병자와도 같이 일어나 자기의 모자를 집어 들며 밖으로 어물어물 쉬어가고 있었다. ― 순간 방 안은 조용해졌다. 책상 위에 놓인 시계 소리가 잘깍잘깍 들리었다. 혜련은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들어 막 도어를 향해 비실비실 걸어가고 있는 종우를 노려보았다. 혜련의 눈살을 받은 순간 종우의 심장은 예리한 칼날에 베어지듯 짜르르 하며 그의 받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한순간 전 절망의 눈물이 담겨 있던 혜련의 두 눈엔 어느덧 형언할 수 없는 애련과 분노와 증오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종우의 두 눈 언저리에는 미미한 경련이 일어나며 그의 입술은 정체 모를 미소로 일그러져 갔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노브를 비틀었다.
우연히 불빛이 반사하고 있는 복도를 돌아, 층계를 내려, 종우가 포치까지에 나왔을 때, 갑자기 뒤에서 ‘토드락’, ‘토드락’ 하고 여자의 구두 소리가 울려 왔다. 종우는 그 외등이 희미하게 비치는 포치에서 당황히 어둠 속으로 묻혀 버렸다.
“종우 씨…… 종우 씨!”
혜련은 한달음에 포치에서 어듬 속으로 뛰어내려오며 이렇게 외쳤다. 그리하여 그 캄캄한 거리 위에 또 발이 얼어붙어 있는 종우를 발견하자,
“이거, 가져가세요.”
속삭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까만 책보에 싼 것을 종우에게 건네주었다.
종우는 의외로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이 돌아와 또 한번 여자와 목을 안고 한없이 울고 싶은 충동을 깨달으며, 어느 손끝인가 발끝에서 훈훈한 피가 돌아 들어오는 듯한…… 두 발이 둥둥 구름을 타는 듯한 순간…… 그는 길바닥 위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
종우가 그날 밤 겉에서 졸도를 한 지 사흘 뒤다. 그는 자리에 누운 채 혜련이 두고 간 혜련의 묵은 일기책들을 뒤지고 있었다.
그이는 언젠가 어려서 사주를 보니 평생이 중의 팔자라고 하더란 말을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그이는 확실히 스스로 중과 같이 고독한 팔자를 만들려는 괴벽을 가진 것 같다.
아, 나의 귀에는 지금도 그날 밤의 바닷물 소리가 들린다.
그이는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제일 위대한 사건이란 눈과 눈이 서로 마주 본다는 것 이것뿐이라고. 그래 그이가 내 눈을 들여다보실 띠마다 나는 내 눈을 되도록이면 크게 떠서 한 구석도 남김이 없이 속속들이 들여다보시도록 한다. 처음은 어쩐지 쑥스럽고 부끄럽고 무언지 거북하던 것이 이젠 아주 습관이 되어서 처음의 그 쑥스럽고 부끄럽던 생각 대신 형언할 수 없는 환희와 쾌감만을 깨달을 뿐이다.
그이는 그날 밤의 탈선을 지금까지도 뼈가 저리도록 참회를 하시고 무슨 큰 죄악이나 저지른 것처럼 아파하신다. 그것은 물론 내가 어려서부터 성란의 동무요, 그 뒤 내가 대학을 치르는 데 전혀 그이와 그이의 삼촌의 은혜를 입었다는 특수한 관계도 있겠지만, 그러한 비열한 조건으로 누구를 유혹했다든가 또 유혹을 받았다든가 하는 것이 아닐진대 그렇게 별스레 자기 자신을 저주하고 하는 것이 나는 도무지 알 수 없고 도로 반감이 들 뿐이다.
오늘이 시월 보름, 아아, 팔월 십오일이 지난 지토 두 달이나 된다.
밤중이나 되어 막 자리에 들어가 잠이 들려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리기에 누구냐고 했더니 ‘내’라고 한 이가 그이였고, 그이는 술이 취해 있었다.
“혜련.”
이렇게 그이는 나를 불렀다.
“오늘 밤엔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합시다.”
한참 뒤에 그이는 다음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는 내 나이 다섯 살 때 우리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켜서 왜놈을 여럿 죽이고 그러고는 만주로 달아났던 것이오. 만주서 아버지는 왜놈이라고만 하면 여자나 아이들까지도 보는 족족 다 잡아죽이고, 그뿐만 아니라 죽여서는 반드시 목을 찔러서 피를 받어 마셨다는구려. 처음 나는 하도 거짓말 같아서 곧이듣지 않았더니 이번에 북지서 나욘 신덕상이란 노인을 오늘 만나 이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 노인이 바로 우리 아버지 뒤를 따라다니던 인데 그것이 정말이라는구려. 두 눈에 핏대가 벌겋게 되어 언제나 병을 차고 다니다가는 왜놈의 목을 찌르면 그 병에 피를 받어 넣어 마신다는구려. 음식이래야 만주 소주와 왜늠의 피와 두 가지밖에 별로 잡수신 게 없었다는구려. 그러시다가 결국 왜놈의 손에 잡혀 대련 감옥에서 옥사를 하셨지만, 그것은 내 나이 열네 살 되던 해요. 그런 지 두 달 만에 어머니마저 잃고 우리는 완전히 고아가 되어 이 삼촌 댁엘 왔던 것이오…… 이제 우리 아버지를 잡어먹은 왜놈이 거꾸러진 지도 두 달이 되었고, 지금 나는 뒷산에 올라 아버지의 산소를 향해 절을 하고 내려왔소.”
나는 그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웬일인지 눈물이 자꾸 흘러 내려 손수건을 함뿍 적시었다.
오늘은 성란이 와서 그이는 평생 결혼을 하시지 않을 게라고 하였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 오빤 지독한 정신주의자다. 너를 평생 동안 정신적 애인으로만 삼고 결혼은 절대로 안 할 게다.”
나는 성란이 돌아간 뒤 온종일 우울하였다.
내일부터 박용재 씨가 공교롭게도 우리 학교에 나와 함께 일을 보시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확실히 이 아파트 생활엔 지친 모양이다. 이따금 턱없이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다. 이것이 히스테리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십여 년 동안 수백 번 혹은 수천 번의 그이와의 시선교환을 통해서 나의 영혼은 내 몸의 피와 기름과 함께 송두리째 그이에게 옮겨 가고 말았다. 그이는 본래 중의 팔자를 타고 났다니까 몇십 년 동안이고 이렇게 참고 외롭고 슬푹 생활을 견디어 낼 수 있는 겐지 모르나 선천적으로 빈약한 나의 영혼으로는 이제 더 감당해 낼 힘이 없다. 이제 그이가 삼 년만 더 이 생활을 나에게 강요하신다면 내 몸은 분명히 뼈와 뼛골만이 남을 것이다. 그보다도 나는 아주 죽어 버릴는지도 모른다.
교장이 나에게 박용재 선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였다. 나는 아직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교장은 또 물론 자기도 박선생의 부탁을 받고 하는 말이나 자기의 생각에도 훌륭한 자리 같으니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신중히 고려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또 성란이 찾아와서 ‘박선생과 결혼을 하게 된다지’ 하고 졸랐다. 나는 물론 그이와의 결혼할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만약 그이 이외의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다면 물론 박선생도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했더니, 성란은 ‘우리 오빠는 평생 가야 남과 같이 가정을 가져 본다든가 무슨 기술에 열을 낸다든가 그러지는 못 할 거야. 밤낮 드러누워서 이것 저것 지나간 일이나 생각하고 그러다가 인제 한 사십쯤짓 하면 아주 절로 들어가 바로 중질을 할 테니 두고 봐라’는 것이다. ‘게다가 또 그뿐만도 아니다 오빠에게 정희란 여자가 있다. 오빠가 스물여덟 살 때 색주가 하나를 빼내서 우리 삼촌과 말썽을 내버리고…… 오빤 처음으로 동정을 바샀다고 밤낮 자랑을 하지 않어? 바로 그 여잔데 오빠와 두 사람 사이엔 특별한 무슨 관계가 있는 모양이더군. 적어도 오빠가 소위 결혼이란 걸 한다면 그건 정희 이외의 다른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게야…… 이 점은 내가 보증을 설 테니 어디 두고 봐’ 하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한참 동안 아래턱이 덜덜덜 떨리어 말을 할 수 없었고 성란에게 내 얼굴을 보이기가 무서워 나는 외면을 하였다. 성란은 손수건을 내어 제 먼저 눈물을 닦으며 목이 메어 그렇게 여자란 가엾은 게라고 일껀 한 남자를 위해서 일생을 바치리라 해도 남자의 맘이란 언제 변할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남자야 사십이 돼서도 장가를 들고 오십이 되어도 외도를 하지만, 여자란 한껏 해야 서른 고개 넘으면 일생은 아주 굳어진 게 아니냐고…… 아무리 저희 오빠이긴 하지만 같은 여자의 하나로 자기들의 운명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성란의 말을 들으면 그이는 요즘도 가끔 정희와의 사이에 육체적 교섭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이의 정신적 애인으로만 일생을 마칠 수 있는 것일까. 그이가 그렇게 이중생활을 하신다면 나도 이 기회에 아주 박씨와 결혼을 해버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
최후로 한 번만 더 그이의 다짐을 받아 보자.
종우는 여기서 일기책을 팽개쳐 버리고 눈을 감았다. 그는 이 이상 더 혜련의 일기를 뒤질 수가 없었다.
종우는 지금까지 자기의 거룩한 미래의 아내인 혜련에 대하여 자기 딴은 힘 미치는 데까지 사람 노릇을 한번 해보느라고 한 것뿐이고 그것이 도리어 혜련을 점점 오해와 절망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해도 자기로서는 혜련과의 결혼에도 달할 수 있는 최선의 첩경을 걸어왔을 뿐이라고 그는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었다. 다만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하나 성란의 심정뿐이다. 성란이 제 친정 오라비인 종우에 대하여 무슨 그리 뼈에 사무칠 원한이 남아 있기에 이다지도 잔인하고 가혹한 마음이 가져진단 말인가. ―본래 결혼을 하려야 할 수 없는 병든 몸이기도 하였거니와 그보다도 한껏 좀 외롭게 살아 보고 싶은 청춘의 몸부림도 있고 하여 일체의 결혼에 대한 수의를 한참 거절하여 왔던 것인데 그즈음 종우의 심경이라면 무엇이든 그대로 제 것으로 해버리는 버릇이 있던 성란은, 종우의 그 무서운 병이 완쾌되는 날까지 그의 간호와 치다꺼리로 일생을 같이하리라 혼자 속으로 결심했던 것이고 그러나 이러한 성란의 심경은 그대로 다시 종우에게도 전달되지 않을 수 없어 이것을 차마 묵인할 수 없는 종우는 그때 마침 상경해 있던 윤군이 집에 묵고 있던 기회를 이용하여 혜련을 더불어 저 계획적 여행을 떠나 버렸던 것이다. 종우로 말하면 분명히 누이의 불행을 덜어 주려고 한 것이 본의였고 과연 그 길로 윤군과의 결혼은 성립이 되었고, 그간 저희 내외의 금실로 보나 성란의 다정한 성격으로 보나 언제든 한번은 반드시 풀릴 날이 있으리라고 믿어 온 오빠에 대한 원한이 이날까지 그냥 남아 있어 이제 종우의 생명 전부가 매이다시피 되어 있는 혜련과의 사이에 틈을 내려고 애꿎은 정희까지를 끌어넣고 하는 것인가고 그는 한숨을 지었다.
그는 온종일 자리에 드러누워,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하루를 쉴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이 사십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어이한 설움이 그렇게도 많았던지. 온종일 펑펑 솟는 눈물을 그는 부끄러워할 줄도 몰랐다.
사흘째 되던 날, 해가 지고 거리에 어둠이 내린 뒤 그는 집을 나왔으나, 그 동안 노 굶기만 한 그의 몸은 후들거릴 뿐으로 조금도 시장함을 깨닫지 못했다. 바에 들러 술을 몇 잔 마시고 나서 종우가 혜련의 아파트를 찾아간 것은 밤도 열시가 지난 뒤였다. 혜련의 방에 불이 없는 것을 보고 처음은 벌써 잠이 든 것인가고 했더니 방문이 그냥 잠가져 있으므로 곧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잠깐 기다려 보리라 한 것이 문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인 채 어느덧 잠이 들어 버렸던 것이다.
종우가 눈을 떴을 때는 그의 앞에 두 여자가 서 있었다. 혜련과 성란…… 순간 종우는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두 여자의 뒤를 따라 종우는 묵묵히 방으로 들어가 전등이 켜지자 시계를 꺼내 보았다. 열한 시 반. 종우는 언제나 하는 버릇인 혜련의 눈을 바라볼 것을 피하였다. 그 대신 성란을 향해, 밤이 이렇게 오래됐는데 집으로 바로 가잖고 왜 이리 들렀냐고 인사를 하였다.
“밖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헤어지려다 좀더 놀고 싶어서…….”
성란은 변명을 하듯 거북한 말씨였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아 무거운 침묵이 그들을 괴롭혔다. 종우는 다시 성란을 향해,
“마침 이렇게 잘 만난 셈이다…… 나는 지금부터 혜련에게 결혼신청을 하려고 생각한다…… 너의 생각은?”
“정말이에요?”
갑자기 성란은 두 눈에 불을 켜듯 하여 이렇게 물었다.
종우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물론 정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사람이란 동물을 좀 과대평가해 왔는지도 모르나 이 인류적 자존(自尊)을 저주하고 절망하는 것을 마치 무슨 현대인의 의무나 자랑인 것처럼 생각하는 건 확실히 제 자신들의 저열(低劣)과 무성의에서 오는 현대적 타락이요 일종의 우상 중독이다…… 사람이란 확실히 좀더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제 혜련을 사랑할 만한 자격과 자신을 가졌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 인류적 자존에 대하여 바쳐 온 나의 정열이 결혼으로서 정당한 결실을 가질 게라고 믿는다…….”
“글쎄요, 그것 이 오빠의 자기 변호가 아닐는지?”
성란은 역시 비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음, 설사 네 말대로 이것이 나의 자기 변호라고 하자…… 내가 내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나에게 있어서는 막대한 성공이요 거의 기적과도 같은 승리다…… 그리고 너는 지금도 그렇게 이죽거리고 있지만 너의 입으로 한 번도 너희 결혼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분명히 너도 결혼을 했었다.”
“저희 결혼이야 제가 했으니깐…….”
“음, 그건 나도 안다……그렇더라도 너는 나를 의심할 권리가 없다…… 너는 나를 존경해야 한다.”
“오빠!”
성란의 두 눈에 또 불이 켜졌다.
“…….”
“…….”
두 남매는 한참 동안 숨소리도 없이 서로 마주 바라보았다. 성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돌기 시작하였다. 다음 순간 성란은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깨물며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성란이 밖으로 뛰어나가 버리자 종우는 혜련의 곁으로 가며,
“혜련!”
하고 불렀다.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시오.”
“…….”
혜련은 약간 발그레해진 얼굴에 술픈 미소를 띤 채 말없이 종우를 바라보았다.
“엊그제 밤 바로 이 자리에서 나는 이것을 결심했던 것이오…… 혜란의 그 오랜 아픔에서 내가 분명히 용서받은 것을 깨달았을 때. 그러나 나는 다행히도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구려! 혜련! 내가 길에서 쓰러졌다고 해도 그것은 나의 자존을 보장하는 증거는 될지언정 혜련에 대한 나의 애정이나 존경을 의심할 이유는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오.”
“…….”
혜련은 고개를 수그린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곧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누르듯이 자기의 손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월 열하룻날이 종우는 그 아버지의 휘일이었다.
해방 이래의 첫 제사라 하여 종우의 삼촌은 여러 날 전부터 청결을 하고 음식 준비를 하였다.
종우는 종우대로 또 이날 그의 삼촌 내외분과 성란 부처 앞에서 혜련과의 결혼식을 거행하려 했던 것이다. 처음 그의 삼촌 내외는 왜 하필 이 모양으로 좁은 집 안에서 결혼식을 치를까 보냐고 펄펄 뛰었으나, 기어이 종우가 고집을 세워서 그의 삼촌 내외도 필경 양보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만 성란 부처가 어찌 된 셈인지 끝끝내 나타나지 않고 말았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고 또 일부러 사람을 보내고 했어도 그들은 칭병을 하고 오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며칠 전 종우의 숙모가 성란더러,
“이번 아버지 제삿날엔 너희 내외 꼭 와야 한다.”
했더니, 성란은 그냥 입을 비쭉하고 돌아서 버리더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성란 부처가 결국 보이지 않은 대신, 마침 시골서 이 제사에 참례하려고 일부러 올라온 종우의 고모 내외분이 있어, 필경 삼촌 내외분과 네 사람 앞에서 혜련과 종우는 서로 절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 사람들과도 절을 하였고, 그것으로 결혼식은 간단히 끝나 버렸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요, 또 독립전취 국민대회를 하는 날이었다.
종우 내외, 삼촌 내외, 고모 내외 이렇게 세 쌍의 남녀가 서울운동장에 갔을 때 그 넓은 운동장은 벌써 만원이 되어 문자 그대로 거의 입추의 여지가 없을 판이었다. 라우드 스피커에서는 연송 선동적 사자후가 ‘왕’ ‘왕’ 울려 나오고 만장의 민중들은 파도 소리 같은 아우성과 함께 주먹을 들어 흔들었다.
“어저께 첨으로 광고가 붙었는데, 하루 동안에 어쩌면 이렇게들 많이 모였을까?”
혜련은 감탄하듯 종우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종우도 혜련의 말을 받아,
“글쎄 이런 데서 역시 민족혼이라는 걸 보는 게지.”
이렇게 대답은 하였으나 그의 마음은 어느덧 칠팔 년 전의 옛날에 돌아가 그가 처음으로 각혈이란 것을 하던 날, 그 퍼런 유리병에 넣은 벌건 능구렁이를 그의 코끝에 들여대며,
“이제 이놈 죽어서 마디마디, 두꺼비 새끼가 나는 걸입쇼. 아주 불개미떼같이 까맣게 나는뎁쇼.”
하던 강서방의 말이 귀에 쟁쟁 울리어 왔고 그러나 이 불개미떼같이 많은 두꺼비 새끼들 중에도 성란 내외는 역시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는 혜련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서울신문》, 1946. 6.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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