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사가망처(徙家忘妻) : 이사할 때 자기의 처(妻)를 깜빡 잊고 데려가지 않음. 잘 잊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사고무친(四顧無親) : 사방을 둘러보아도 친족이라고는 하나도 없음. 곧 친척이 없어 의지 할 곳 없이 외로움.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 헛소문에 겁을 먹다. 삼국지(三國志)에서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도망가게 했다는 내용에서 유래됨.
사기충천(士氣衝天) :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음.
사농공상(士農工商) : 선비, 농부, 공장(工匠), 상인 등 모든 계급의 백성. 봉건시대의 계급관념을 순서대로 일컫는 말.
사마골오백금(死馬骨五百金) :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다.
사마난추(駟馬難追) : ‘사마(駟馬)’는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로써 엄청나게 빠른 것을 비유한다. ‘사마난추(駟馬難追)’는 이런 사마(駟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난추(難追))로 빠른 것이니, ‘입조심을 하라’는 뜻이다. ‘발 없는 말[言]이 천리 간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말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 : 매우 외로운 처지에 놓임. 【동의어】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출전]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
항우(項羽)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과 진평(陣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게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한데다 군량미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방에서 초(楚)나라 노래 소리(사면초가(四面楚歌))’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초나라 군사들은 전의를 잃고 그리운 고향의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을 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張良)의 작전이 주효(主效)했던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서 외치듯 말했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들이 많은가?” 이미 끝장이라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酒宴)을 베풀고는 사랑하는 우미인(虞美人)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애절한 노래를 부르자, 비분강개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力拔山兮氣蓋世 [역발산혜기개세]
時不利兮騶不逝 [시불리혜추불서]
騶不逝兮可奈何 [추불서혜가내하]
虞兮虞兮奈若何 [우혜우혜내약하]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때는 불리하고 추(항우의 애마))는 가지 않누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고
우(우미인(虞美人))야 우야 그대를 어찌 할거나
사면춘풍(四面春風) : 두루 춘풍. 누구에게나 모나지 않게 다 좋도록 처세하는 일. 또, 그런 사람. 【동의어】팔방미인(八方美人).
사반공배(事半功倍) : 일은 반만 하고 공은 배로 세우다.
사분오열(四分五裂) : 힘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다.
사불급설(駟不及舌) : 사두마차(四頭馬車)의 속력으로도 입에서 한 번 나온 말(言)의 빠르기를 못 따른다. 말(言)을 삼가 하라는 뜻이다.
[출전] ‘논어(論語)’의 ‘안연편(顔淵篇)’.
자공(子貢)을 보고 극자성(棘子成)이 물었다. “군자(君子)는 그 바탕만 있으면 되지 어찌해서 문(文)이 필요합니까?” 이 말을 듣고 자공은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다. 그대의 말은 군자답지만 사(駟)도 혀에 미치지 못한다. 문(文)이 질(質)과 같고 질이 문과 같다면,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이나 개와 양의 가죽이 같다는 말인가?” 당(唐)나라 때의 명재상인 풍도(馮道)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구시화지문 설시참자도(口是禍之門 舌是斬自刀)).”
‘명심보감(明心寶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입을 막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느 곳에 있으나 편안할 것이다(구시상인부 언시할설도 폐구심장설 안신처처뢰(口是傷人斧 言是割舌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
사상누각(沙上樓閣) : 기초가 견고하지 못한 일을 일컬음.
사생취의(捨生取義) : 목숨을 버리고 의를 좇음.
사숙(私淑) :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 배우거나 따름.
사양지심(辭讓之心) : 겸손히 마다하며 받지 않거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인(仁)의 근본이다.
사이불사즉태(思而不學則殆) : 생각만 하고 더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태롭게 된다.
사이비(似而非) :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짜.
【원말】사이비자(似而非者).
[출전]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 ‘논어(論語)’의 ‘양화편(陽貨篇)’.
전국시대 아성(亞聖)으로 불리던 맹자(孟子)에게 어느 날 만장(萬章)이라는 제자가 물었다. “한 마을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 훌륭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공자(孔子)께서는 어찌하여 그들을 가리켜 ‘향원(鄕原:지방의 토호(土豪))은 덕(德)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맹자(孟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을 비난하려 해도 들어서 비난할 것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구실이 없으나 세속에 아첨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류한다. 또 집에 있으면 충심(忠心)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나아가 행하면 청렴결백한 척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는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공자(孔子)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느니라. ‘사이비한 것(사이비자(似而非者))을 미워한다 … 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 음악을 미워하는 것은 아악(雅樂)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향원(鄕原)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德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사이후이(死而後已) : 어떤 사업을 함에 있어서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만둔다. 그 만큼 뜻이 굳음을 말한다.
사인선사마(射人先射馬) : 상대방을 쓰러뜨려 굴복시키려면 그 사람이 의지하고 있는 것을 먼저 쓰러뜨려라.
사자신중충(獅子身中盤) : 자기편에 해를 끼치는 사람.
사자후(獅子吼) : 사자가 욺. ①열변을 토하는 연설. ②질투 많은 여자가 남편에게 앙팡스 럽게 떠드는 일.
사조별(四鳥別) : 모자(母子)가 서로 이별함. 네 마리의 새끼 새가 그 어미를 떠난다는 고사(故事)에서 비롯됨.
사족(蛇足) : 뱀을 그리는데 발까지 그렸다는 고사에서 비롯한 말. 곧, 쓸데없는 군더더기.
【동의어】화사첨족(畵蛇添足).
[출전] ‘전국책(戰國策)’의 ‘제책(齊策)’, ‘사기(史記)’의 ‘초세가(楚世家)’.
전국시대인 초(楚)나라 회왕(懷王) 때의 이야기이다. 어떤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여러 하인들 앞에 술 한 잔을 내놓으면서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이런 제안을 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마신다면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혼자 다 마시기로 하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하세.” 하인들은 모두 찬성하고 제각기 땅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뱀을 다 그린 한 하인이 술잔을 집어 들고 말했다. “이 술은 내가 마시게 됐네. 어떤가, 멋진 뱀이지? 발도 있고.” 그때 막 뱀을 그린 다른 하인이 재빨리 그 술잔을 빼앗아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발 달린 뱀이 어디 있나!” 술잔을 빼앗긴 하인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사족(蛇足)’은 제(齊)나라를 방문한 진(秦)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이 제나라 민왕의 요청으로, 초나라 재상 소양(昭陽)을 만나 제(齊)나라에 대한 공격 계획을 철회하라고 설득할 때 인용한 이야기이다.
사지(四知) :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사취(私聚) :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동포요 형제이다.
사통오달(四通五達) : 사방으로 왕래할 수 있는 편리한 곳.
사필귀정(事必歸正) :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대로 돌아감.
사해형제(四海兄弟) :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동포요 형제이다.
사회부연(死灰復燃) :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세력을 잡음, 혹은 곤경에 처해 있던 사람이 훌륭하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 시기를 잃어 낭패를 보는 경우를 가리킴. 죽은 뒤에 약방문. 상여 뒤에 약방문.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동의어】사후청심환(死後淸心丸). 【유사어】망양보뢰(亡羊補牢).
산상수훈(山上垂訓) : 예수가 산꼭대기에서 행한 설교. 예수의 사랑의 윤리가 표현되어 있다.
산자수명(山紫水明) : 산천의 경치가 아주 아름다움.
산전수전(山戰水戰) : 산에서도 싸우고 물에서도 싸웠다는 뜻.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겪어서 쌓은 경험.
산해진미(山海珍味) : 산과 바다의 진귀한 맛. 곧 온갖 귀한 재료로 만든 맛좋은 음식들.
【동의어】수륙진미(水陸珍味).
살신성인(殺身成仁) : 옳은 일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함.
[출전]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
이 말은 춘추시대, 인(仁)을 이상적 덕목으로 삼는 공자(孔子)의 언행을 수록한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志士仁人 [지사인인]
無求生以害仁 [무구생이해인]
有殺身以成仁 [유살신이성인]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仁)’을 저버리지 않으며
스스로 몸을 죽여서 ‘인(仁)’을 이룬다.
공자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인(仁)’의 도는 제자인 증자(曾子)가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서 지적했듯이 ‘충(忠)’과 ‘서(恕)’로 귀착된다. 부자(夫子)의 道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부자지도 충서이이의(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충(忠)’이란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정신이고, ‘서(恕)’란 ‘충(忠)’의 정신을 그대로 타인에게 미치게 하는 마음이다. 증자(曾子)는 공자(孔子)의 ‘인(仁)’이 곧 이 ‘충서(忠恕)’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삼강오륜(三綱五倫) : ‘삼강(三綱)’은 군신, 부자,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 ‘오륜(五倫)’은 부자 사이의 친애, 군신 사이의 의리, 부부 사이의 분별, 장유 사이의 차례, 친구 사이의 신의를 이르는 다섯 가지 도리이다.
삼고지례(三顧之禮) : 세 번 찾아가서 예를 다하다.
삼고초려(三顧草廬) : 훌륭한 인물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비유의 말.
【동의어】삼고지례(三顧之禮), 초려삼고(草廬三顧). 【유사어】삼고지우(三顧知遇).
[출전]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
후한(後漢) 말엽, 유비(劉備)는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漢室)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全軍)을 통솔할 군사(軍師)가 없어 늘 조조군(曹操軍)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에게 군사(軍師)를 천거해 달라고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룡(伏龍)이나 봉추(鳳雛) 중 한 사람만 얻으시오.” “대체 복룡(伏龍)은 누구고 봉추(鳳雛)는 누구입니까?” 그러자 사마휘(司馬徽)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량(諸葛亮)이 복룡(伏龍)인 것을 안 유비는 즉시 수레에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 땅에 있는 제갈량(諸葛亮)의 초가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저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은 새파란 애송이라던데….” “그까짓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다.” 마침내 수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다. 그 열의에 감동한 제갈량(諸葛亮)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軍師)가 되어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유비는 그 후 제갈량의 헌책에 따라 위(魏)나라의 조조,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三分)하고 한실(漢室)의 맥을 잇는 촉한(蜀漢)을 세워 황제(皇帝)를 일컬었으며, 지략과 식견이 뛰어나고 충의심이 강한 제갈량(諸葛亮)은 재상이 되어 후주(後主) 유선 때까지 2조(二朝)를 섬겨 후세 충신의 표상이 되었다.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훗날 웅비(雄飛)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르는 말. 【동의어】삼년불비불명(三年不飛不鳴). 【유사어】자복(雌伏).
[출전]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심응람(審應覽)’,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
춘추시대 초엽 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을 간하는 자는 사형(死刑)에 처할 것이오.” 그 후 장왕은 3년간에 걸쳐 국정(國政)은 돌보지 않은 채 주색(酒色)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신 오거(五擧)는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諫言)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차마 직간(直諫)할 수가 없어 수수께끼로써 우회적으로 간하기로 했다. “전하,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볼까 하나이다.” “어서 내보내시오.” “언덕 위에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이겠나이까?” 장왕(莊王)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오.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이제 그대의 뜻을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시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으나 장왕의 난행(亂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죽음을 각오하고 직간했다. 그러자 장왕(莊王)은 꾸짖듯이 말했다. “경(卿)은 포고문도 못 보았소?” “예, 보았나이다. 하오나 신은 전하께서 국정(國政)에 전념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알았소. 물러가시오.”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다. 3년 동안 장왕이 주색을 가까이했던 것은 충신(忠臣)과 간신(姦臣)을 선별하기 위한 사전공작이었다. 장왕은 국정에 임하자마자 간신을 비롯한 부정부패 관리 등 수백 명에 이르는 반윤리적 공직자를 주살(誅殺)하고, 수백 명의 충신을 등용했다. 그리고 오거(五擧)와 소종(蘇從)에게 정치를 맡겨 어지러웠던 나라가 바로잡히자 백성들은 장왕의 멋진 재기를 크게 기뻐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 우주 사이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현상.
삼매(三昧) :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모아 생각하는 경지.
삼불거(三不去) : 칠거지악(七去之惡)의 이유가 있는 아내라도 버리지 못하는 세 가지 경우. 즉, 보내도 아내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부모의 삼년상을 같이 치른 경우, 장가들 때에 가난하다가 뒤에 부귀하게 된 경우.
삼세지습지우팔십(三歲之習至于八十)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삼순구식(三旬九食) : 한 달에 아홉 끼만 먹을 정도로 먹을 것이 부족함.
삼익우(三益友) : 세 가지 유익한 벗. 매화, 대나무, 돌을 말한다.
삼인성호(三人成虎) : 근거 없는 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믿게 됨을 이름.
【준말】시호(市虎). 【동의어】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 시유호(市有虎), 시호삼전(市虎三傳). 【유사어】십작목무부전(十憩木無不顚), 증삼살인(曾參殺人).
[출전]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設)’, ‘전국책(戰國策)’의 ‘위책혜왕(魏策 惠王)’.
전국시대 위(魏)나라 혜왕(惠王) 때의 일이다. 태자와 중신 방총이 볼모로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심각한 얼굴로 혜왕(惠王)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나이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믿으시겠나이까?” “그땐 믿을 것이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明白)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옵니다. 신은 이제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사온데, 한단은 위나라에서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게다가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던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방총이 한단(邯鄲)으로 떠나자마자 혜왕(惠王)에게 참언을 하는 자가 있었다. 수년 후 볼모에서 풀려난 태자는 귀국했으나 혜왕(惠王)에게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귀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삼일유가(三日遊街) :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사흘 동안 온 거리로 돌아다녔던 관례.
삼종지도(三從之道) : 여자는 어려서 어버이께 순종하고,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관념.
삼천지교(三遷之敎) :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집을 세 번 옮긴 일을 이름.
【원말】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유사어】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현모지교(賢母之敎).
[출전] ‘열녀전(列女傳)’의 ‘모의전(母儀傳)’.
전국시대 유학자(儒學者)의 중심인물로서 성인(聖人) 공자에 버금가는 아성(亞聖) 맹자(孟子)는 공자처럼 생이지지(生而知之)했다고 추앙되지도 않았고, 태어나자마자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이라고 했다는 신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스승이 유명한 분도 아니어서 증자(曾子)의 문인(門人)에게서 사숙(私淑)했다는 것을 보면, 기초는 스승에게서 배웠으나 그의 독특한 이론인 성선설(性善說)과 사단설(四端說), 호연지기설(浩然之氣說)은 다 그의 독학(獨學)에서 얻은 독창적인 것이다. 맹자는 독학자였기에 노력과 의지 못지않게 교육 환경이 중요했고, 이 교육 환경 조성을 위해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세 번씩이나 이사를 했던 것이다.
맹자(孟子)의 어머니는 처음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어린 맹자는 묘지 파는 흉내만 내며 놀았다. 그래서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한 맹자 어머니는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이곳 역시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맹자 어머니는 서당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러자 맹자(孟子)는 제구(祭具)를 늘어놓고 제사 지내는 흉내를 내고 놀았다. 서당에서는 유교(儒敎)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예절(禮節)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자 어머니는 ‘이런 곳이야말로 자식을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하며 비로소 만족했다고 한다.
상가지구(喪家之狗) : 초상집 개. 여위고 기운 없이 초라한 사람을 빈정거리는 말.
[출전] ‘공자가어(孔子家語)’,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
춘추시대 말엽의 대철학자(大哲學者)요, 사상가(思想家)로서 유교의 비조(鼻祖)인 공자(孔子)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魯)나라 정공(定公)때 대사구(大司寇)로서 재상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던 공자(孔子)는 왕족인 삼환(三桓)에게 배척을 당하여 노(魯)나라를 떠나고 말았다. 그 후 공자는 십 수년간 자신이 이상으로 삼는 ‘도덕정치(道德政治)’를 펼 수 있는 나라를 찾아서 6~7개국을 순방했으나 받아 주는 군주(君主)가 없었다. 한 번은 정(鄭)나라를 찾아갔던 공자(56세)가 제자들을 놓쳐 버리고 홀로 동문(東門) 옆에 서서 그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스승을 찾아 나선 자공(子貢)이 한 행인에게 공자(孔子)의 인상착의(人相着衣)를 대면서 혹시 보지 못했느냐고 묻자, 그 행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동문(東門) 옆에 웬 노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마는 요(堯)임금과 같았고, 목은 순(舜), 우(禹)임금과 같았으며, 어깨는 명재상(名宰相) 자산(子産)과 같았소. 그러나 허리 아래로는 우(禹)임금에게 세 치쯤 미치지 못했고, 그 지친 모습은 마치 ‘상갓집 개(상가지구(喪家之狗))’같습디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동문으로 달려간 자공(子貢)은 공자(孔子)를 만나자, 방금 행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고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공자는 웃으며 말했다. “용모(容貌)에 대한 형용은 들어맞는다고 하기 어려우나 상갓집 개와 같다는 표현은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 후 정(鄭)나라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한 공자(孔子)는 그야말로 상갓집 개와 같이 초라한 모습으로 기운 없이 노(魯)나라로 다시 돌아갔다.
상궁지조(傷弓之鳥) : 화살을 한 번 맞아 상처를 입었던 새가 늘 의심과 두려움을 품음.
상사병(相思病) : 남녀 사이에 사랑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해 생긴 병.
상산구어(上山求魚) : 산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다. 당치 않은 데 가서 되지도 않는 것을 원한다는 말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 :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말로, 세상의 변화가 매우 심한 것을 이름. 【동의어】상전창해(桑田滄海).
[출전] 유정지(劉廷芝)의 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신선전(神仙傳)’, ‘태평어람(太平御覽)’.
초당(初唐)의 시인 유정지(劉廷芝)가 지은 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흰머리를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하여)’의 제4연은 이렇게 되어 있다.
己見松柏 [기견송백]
更聞桑田變成海 [경문상전변성해]
송백도 찍혀서 땔감 됨을 이미 봤고
뽕밭이 바뀌어서 바다 됨을 들었네.
이 시로부터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지만 ‘신선전(神仙傳)’이란 책에는 이런 기록도 전한다. 마고(麻姑)라는 선녀가 어느 날 왕방평(王方平)이라는 신선에게 말했다. “지금껏 곁에서 모셔오면서 저는 동해가 세 번이나 뽕나무 밭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봉래산(蓬萊山)에 가보았는데 도주의 바다가 다시 얇아져서 이전의 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또 육지가 되려는 것일까요?” 왕방평(王方平)이 대답했다. “그래서 성인들께서도 ‘바다의 녀석들이 먼지를 일으킨다’고 하지 않던가?”
또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곳에서 노인 셋이 만나 서로 자기의 나이가 많음을 허풍스럽게 자랑하는데 두 번째 노인의 주장이 이러했다. “나는 푸른 바다가 뽕나무 밭으로 바뀔 때마다, 산(算)가지 한 개씩을 놓아 그것을 세어왔는데 이제 그 산가지가 열 채의 집에 가득 찰 정도로 쌓여 있다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음.
상하탱석(上下撑石) : 웃돌 빼고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을 굄.
【참조】하석상대(下石上臺).
상행하효(上行下效) : 윗사람이 하는 짓을 아랫사람이 본받음.
새옹지마(塞翁之馬) : 한때의 화(禍)가 훗날의 복(福)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이(利)가 훗날의 해(害)가 될 수도 있듯이 세상일이란 헤아리기가 무척 어렵다는 말. 【원말】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 【동의어】북옹마(北翁馬), 새옹마(塞翁馬). 【유사어】새옹득실(塞翁得失), 새옹화복(塞翁禍福), 화복규승(禍福糾繩).
[출전]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편(人間訓篇)’.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福)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致賀)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禍)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福)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에서 복(福)이 화(禍)가 되고, 화(禍)가 복(福)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너무 깊어 측량할 수가 없다.
생구불망(生口不網) :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말.
생살여탈(生殺與奪) : 살리고 죽이고, 주고 빼앗음.
생이지지(生而知之) : 배우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깨달아 앎. 【반의어】학이지지(學而知之).
생자필멸(生者必滅) : 무릇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것이 모두 마침내 죽기 마련이란 뜻.
서리지탄(黍離之歎) : 세상의 영고성쇠가 무상함에 대한 탄식.【동의어】맥수지탄(麥秀之歎).
서시빈목(西施顰目) :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는 뜻. 곧, ①영문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냄의 비유, ②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의 비유.
【동의어】서시봉심(西施捧心), 서시효빈(西施效嚬).
[출전] ‘장자(莊子)’의 ‘천운편(天運篇)’.
춘추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그러나 서시는 가슴앓이로 말미암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길을 걸을 때 가슴의 통증 때문에 늘 눈살을 찌푸리고 걸었다. 이것을 본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서시(西施)의 흉내를 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겁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장자(莊子)’의 ‘천운편(天運篇)’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원래 반유교적(反儒敎的)인 장자(莊子)가 ‘외형에만 사로잡혀 본질(本質)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사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실로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 춘추 시대 말엽의 난세(亂世)에 태어난 공자(孔子)가 그 옛날 주왕조(周王朝)의 이상정치(理想政治)를 그대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 재현시키려는 것은 마치 ‘서시빈목(西施顰目)’을 흉내 내는 추녀의 행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서시유소추(西施有所醜) : 월(越)나라의 서시 같은 이름난 미인도 추(醜)한 구석이 있다. 현명한 사람이라도 과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서절구투(鼠竊狗偸) : 쥐가 물건을 훔치고 개가 남의 눈을 속이는 것. 남모르게 숨어서 부당한 물건을 취하는 좀도둑을 말함.
서제막급(噬臍莫及) :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미치지 않는다는 뜻. 곧, 기회를 잃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음의 비유. 【동의어】후회막급(後悔莫及).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專)’의 ‘장공육년조(莊公六年條)’.
기원전 7세기 말엽 주왕조(周王朝) 장왕(莊王) 때의 이야기이다. 초(楚)나라 문왕(文王)이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있었던 신(申)나라를 치기 위해 역시 하남성에 있었던 등(鄧)나라를 지나가자, 등(鄧)나라의 임금인 기후(祁侯)는 ‘내 조카가 왔다’며 반갑게 맞이하여 진수성찬으로 환대했다. 그러자 세 현인(賢人)이 기후(祁侯) 앞으로 나와 이렇게 진언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머지않아 저 문왕(文王)은 반드시 등(鄧)나라를 멸하고 말 것이옵니다. 하오니 지금 조치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서제막급(噬臍莫及))’이옵니다.” 그러나 기후(祁侯)는 펄쩍 뛰며 듣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문왕은 군사를 이끌고 등(鄧)나라로 쳐들어왔다. 이리하여 등(鄧)나라는 일찍이 세 현인이 예언한 대로 문왕(文王)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서족이기성명(書足以記姓名) : 학문만을 내세우는 것을 비웃음을 이르는 말.
석권(席捲) : 자리를 마는 것처럼 한쪽부터 토지를 공격하여 취하는 것.
석별지정(惜別之情) : 이별을 아쉬워하는 인정.
선견지명(先見之明) : 앞일을 미리 보아서 판단하는 총명함.
선공후사(先公後私) : 공적인 것을 앞세우고 사적인 것은 뒤로 함.
선남선녀(善男善女) : 불교에 귀의한 신앙 깊은 사람들, 불신도(佛信徒).
선발제인(先發制人) : 본래는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뜻.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하면 능히 남을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선사좌우(善事左右) : 임금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잘 섬긴다.
선시어외(先始於隗) : ‘먼저 외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나(너)부터 또는 말한 사람(제안자)부터 시작하라는 말.
[출전] ‘전국책(戰國策)’의 ‘연책 소왕(燕策 昭王)’.
전국시대 연(燕)나라가 영토의 태반을 제(齊)나라에 빼앗기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즉위한 소왕(昭王)은 어느 날 재상 곽외(郭隗)에게 실지(失地) 회복에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방법을 물었다. 곽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옛날에 어느 왕이 천금(千金)을 가지고 천리마를 구하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 얻지 못했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잡일을 맡아보는 신하가 천리마를 구해 오겠다고 자청하므로 왕은 그에게 천금을 주고 그 일을 맡겼나이다. 그는 석 달 뒤에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고 달려갔으나 애석하게도 그 말은 그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 죽었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죽은 말의 뼈를 오백 금(五百金)이나 주고 사 오자(가사마골(賈死馬骨))’ 왕은 진노하여 ‘과인이 원하는 것은 산 천리마(千里馬)야. 누가 죽은 말뼈에 오백 금을 버리라고 했느냐’며 크게 꾸짖었나이다. 그러자 그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천리마라면 그 뼈조차 거금으로 산다는 것을 안 만큼 머지않아 반드시 천리마를 끌고 올 것’이라고 말했나이다. 과연 그 말대로 1년이 안 되어 천리마가 세 필이나 모였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전하께오서 진정으로 현재(賢才)를 구하신다면 ‘먼저 신(臣) 외(隗)부터’ 스승의 예로써 받들도록 하옵소서. 그러면 외(隗)같은 자도 저렇듯 후대를 받는다며 신(臣)보다 어진 이가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스스로 모여들 것이옵니다.” 소왕(昭王)은 곽외의 말을 옳게 여겨 그를 위해 황금대(黃金臺)라는 궁전을 짓고 스승으로 예우했다. 이 일이 제국(諸國)에 알려지자 천하의 현재(賢才)가 다투어 연나라로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는 조(趙)나라의 명장 악의(樂毅)를 비롯하여 음양설(陰陽說)의 비조(鼻祖)인 추연(鄒衍), 대정치가인 극신(劇辛)과 같은 큰 인물도 있었다. 이들의 보필을 받은 소왕(昭王)은 드디어 제국(諸國)의 군사와 함께 제나라를 쳐부수고 숙원을 풀었다.
선우후락(先憂後樂) : 천하의 근심은 남보다 내가 먼저 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남보다 나중에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선종외시(先從隗始) : 어진 사람을 쓰려면 먼저 어리석은 사람부터 우대하라는 뜻.
선풍도골(仙風道骨) : 신선의 풍채와 도사의 골격.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이 녹은 진땅에 큰 기러기가 걸어가 발자취를 남기나 그것은 곧 사라진다. 인생이 허무하고 남는 것이 없음을 비유한 말로 쓰인다.
설망어검(舌芒於劍) :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 논봉(論鋒)이 날카로움을 뜻한다.
설부화용(雪膚花容) : 눈같이 흰 살과 꽃 같은 얼굴. 흰 살결에 고운 얼굴을 형용하는 말로도 쓰이고, 미인(美人)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설상가상(雪上加霜) : 눈 위에 또 서리가 덮였다는 뜻으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행이 거듭 생김을 말함. 【반의어】금상첨화(錦上添花). 【참고】뇌성(雷聲)에 벽력, 흉년에 윤달.
설왕설래(說往說來) : 서로 변론(辯論)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 함.
설중송백(雪中松柏) : 송백(松柏)은 눈 속에서도 그 색이 변하지 않는다 하여 사람의 절조(節操)가 굳은 데 비유한 말이다.
섬섬옥수(纖纖玉手) :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을 형용하는 말이다.
성심성의(誠心誠意) : 정성스러운 마음과 뜻.
성하지맹(城下之盟) : 굴욕적 항복이나 강화를 이름.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환공십이년(桓公十二年)’.
환공(桓公) 12년 초나라가 교(絞)로 쳐들어가 성의 남문에 진을 쳤을 때, 막오(莫敖)라는 벼슬에 있는 굴하(屈瑕)가 환공(桓公)에게 말했다. “교(絞)의 사람들은 편협하고 경솔합니다. 경솔하면 도모함이 적은 법이니, 청컨대 땔나무를 취하는 인부를 호위를 붙여 내놓아 이로써 그들을 유인하면 어떨까요?” 이리하여 그 계교대로 하자, 교(絞)의 군사들은 첫날 초(楚)의 인부 30명을 사로잡았다. 다음날 교(絞)의 군사들은 초나라 인부들을 쫓아 산속으로 달려갔다. 초나라 군사들이 그 북문을 지키고 산 아래에 매복하였으므로, 크게 패하여 성 아래에서 맹세하고 돌아갔다.
성혜(成蹊) : 샛길이 생긴다는 뜻. 곧 덕(德)이 높은 사람은 자기선전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듦의 비유.
【원말】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
[출전] ‘사기(史記)’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전한 6대 황제인 경제(景帝)때 이광(李廣)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당시는 북방 흉노족(匈奴簇)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때인 만큼 이광의 무용담(武勇談)도 자연히 흉노족과의 전쟁과 결부된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 어느 날 이광(李廣)은 불과 100여 기(騎)를 이끌고 적 후방 깊숙이 쳐들어가 목적한 기습 공격에 성공했다. 그러나 곧 적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광(李廣)은 부하 장병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침착하라. 그리고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어라.” 적은 깜짝 놀랐다. 그 행동이 너무나 대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표를 찔린 적은 필연 뭔가 계략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믿고 주춤했다. 이때 이광(李廣)은 10여 기를 이끌고 질풍처럼 적진에 돌입하여 한칼에 적장을 베었다. 그러자 적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났다. 이리하여 이광(李廣)은 한 사람의 병사도 잃지 않고 개선했다.
그 후에도 많은 무공을 세운 이광을 칭송하여 사마천(司馬遷)은 그의 저서 ‘사기(史記)’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장군은 언변은 좋지 않았으나 그 덕과 성실함은 천하에 알려져 있었다. 복숭아와 오얏꽃은 아무 말하지 않아도(도리불언(桃李不言):덕 있는 사람의 비유) 그 아름다움에 끌려 사람들이 모여드므로 나무 밑에는 자연히 샛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하자성혜(下自成蹊)).』
성호사서(城狐社鼠) : 성 안에 사는 여우와 사단(社團)에 사는 쥐.
세답족백(洗踏足白) : 남의 빨래를 하였더니 제 발이 희어졌다. 남을 위하여 한 일이 자기에게도 이득이 있다. 혹은 일을 하고 아무런 보수도 얻지 못하였을 때를 비유하기도 한다.
세세불철(世世不輟) : 대대로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 흘러가는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세유백락연후유천리마(世有伯樂然後有千里馬) : 세상에 백락(伯樂)이 있어야 천리마(千里馬)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재능(才能)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진가(眞價)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재능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그대로 썩어버린다. 【주】천리마(千里馬)(재능)는 항상 있지만, 백락(伯樂)(알아보는 사람)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
세척(洗滌) : 깨끗하게 씻음.
세한송백(歲寒松柏) : 날씨가 추워진 후의 송백.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한겨울에도 변색되지 않기에 날이 추워져야 그 지조(志操)와 절개(節槪)가 굳음을 보여주는 진가(眞價)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세한연후지송백(歲寒然後知松栢) :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송백의 진가를 알게 된다. 즉, 지조와 절개가 굳은 사람은 어려운 상황이 되어야 구별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유사어】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
소국과민(小國寡民) : 작은 나라, 적은 백성. 이상적 사회, 이상적 국가를 말한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말.
[출전] 주자(朱子)의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의 ‘권학문(勸學文)’.
이 말은 남송(南宋)의 대유학자(大儒學者)로서 송나라의 이학(理學)을 대성한 주자(朱子)의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이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순간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
소리장도(笑裏藏刀) : 외면으로는 웃으면서 온화한 척 하지만, 마음속에는 음흉하게 칼을 품고 있음.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속에는 해칠 뜻을 품고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동의의】구밀복검(口蜜腹劍).
소생(甦生) : 다시 살아남.
소인(騷人) : 시인과 문사.
소탐대실(小貪大失) : 작은 이익에 욕심을 내어 큰 이익을 놓침.
속수무책(束手無策) : 어찌할 도리가 없어 손을 묶은 듯이 꼼짝 못함.
손강영설(孫康映雪) : 손강(孫姜)이 집이 가난하여 기름을 구하지 못해 쌓인 눈빛에 비추어 책을 읽었다는 고사(故事). 어려운 가운데 고생하면서 공부한다는 비유로 쓰인다. 【참조】현두자고(懸頭刺股), 형설지공(螢雪之功).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 하늘이 명(命)을 통해 부여해 준 자신의 ‘본성(本性)’을 잘 파악하고 발달시키는 것, 그것을 일컬어 ‘도(道)’라고 한다.
송구영신(送舊迎新) :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
송무백열(松茂栢悅) : 소나무가 무성해지니 잣나무가 기뻐한다. 친구의 잘됨을 기뻐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송양지인(宋襄之仁) : 너무 착하기만 하고 수단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을 이름.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의 ‘권일(卷一)’.
춘추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목이(目夷)는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보가 위(位)에 올라 양공(襄公)이라 일컫고 목이(目夷)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로부터 7년 후, 춘추(春秋)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覇者)가 될 징조라며 양공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公子) 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齊)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를 세워 추종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에는 송(宋)과 제(齊), 초(楚) 세 나라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목이(目夷)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禍根)’이라며 걱정했다. 이듬해 여름, 양공(襄公)은 자기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자 그 해 가을,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으나 전군(全軍)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목이(目夷)가 참다못해 진언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오.” 양공(襄公)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수적으로 열세(劣勢)였던 송(宋)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襄公)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되어 이듬해 죽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두고 ‘송나라 양공의 인(仁)’이라며 비웃었다(세소이위송양지인(世笑以爲宋襄之仁)).
수구초심(首丘初心) : 여우도 죽을 때는 제가 살던 쪽으로 머리를 돌린다는 뜻으로, 근본(根本)을 잊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 【동의어】호사수구(狐死首丘).
[출전] ‘예기(禮記)’의 ‘단궁상편(檀弓上篇)’.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일으킨 여상(呂尙) 태공망(太公望)은 제(齊)나라에 있는 영구(營丘)에 봉해졌는데, 계속해서 다섯 대(代)에 이르기까지 주(周)의 호경(鎬京)에 반장(反葬)했다. 군자께서 이르시기를 음악(音樂)은 그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바를 즐기며, 예(禮)란 그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옛사람의 말에 이르되,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향하는 것은 ‘인(仁)’이라고 하였다.
수도어행(水到魚行) : 물에 이르면 고기가 그 물 속을 가게 된다. 무슨 일이건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의미.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 자신에게 주어진 명(命)을 파악하고 본성(本性)을 발달시켜야 하는 자신의 길(道)을 꾸준히 다듬어 나가는 그것을 일컬어 ‘본받음(敎)’이라고 한다. 【유사어】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복강녕(壽福康寧) : 오래 살고 복되며 건강하고 편안함.
수불석권(手不釋卷) :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 【참조】개권유익(開卷有益).
수서양단(首鼠兩端) : 쥐가 의심이 많아 쥐구멍에서 머리를 조금 내밀고 이리저리 살피는 일. 【동의어】수시양단(首施兩端).【유사어】좌고우면(左顧右眄).
[출전] ‘사기(史記)’의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
전한 7代 황제인 무제(武帝)때의 일이다. 5代 문제(文帝)의 황후의 조카인 위기후(魏其侯) 두영과 6代 경제(景帝)의 황후의 동생인 무안후(武安侯) 전분은 같은 외척이었지만, 당시 연장자인 두영은 서산낙일(西山落日)하는 고참 장군이었고, 전분은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신진 재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영의 친구인 관부(灌夫) 장군이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모인 주연(酒宴)에서 전분에게 대드는 실수를 범했다. 사건의 발단은 관부가 두영을 무시한 한 고관을 힐책(詰責)하는데 전분이 그 고관을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부가 한사코 사죄를 거부하자 이 일은 결국 조의(朝議)에 오르게 되었다. 양쪽 주장을 다 들은 무제(武帝)는 중신들에게 물었다. “경들이 판단컨대 어느 쪽에 잘못이 있는 것 같소?” 처음에는 의견이 둘로 나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영의 추종자로 알려진 내사(內史) 정당시(鄭當時)조차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어사대부(御史大夫) 한안국(韓安國)도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폐하! 양쪽 다 일리가 있사와 흑백(黑白)을 가리기가 심히 어렵나이다.” 중신들의 불분명한 태도에 실망한 무제(武帝)가 자리를 뜨자 조의는 거기서 끝났다. 전분은 화가 나서 한안국(韓安國)을 책망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수서양단(首鼠兩端))’처럼 망설였소? 이 사건은 시비곡직(是非曲直)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인데… 그대와 더불어 머리 벗겨진 늙은이를 해치우려 했는데, 어찌하여 애매한 태도를 취했는가?”
수석침류(材石枕流) :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 곧, ①(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씀. 억지로 발라 맞춰 발뺌을 함. ②(남에게 지기 싫어서 좀처럼 체념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의 비유.
【동의어】침류슈석(枕流漱石). 【유사어】견강부회(牽强附會), 궤변(詭辯), 아전인수(我田引水), 추주어륙(推舟於陸).
[출전] ‘진서(晉書)’의 ‘손초전(孫楚專)’.
진(晉)나라 초엽, 풍익태수(馮翊太守)를 지낸 손초(孫楚)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대부 간에는 속세의 도덕과 명문(名聞)을 경시하고, 노장(老莊)의 철리(哲理)를 중히 여겨 담론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손초(孫楚)도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친구인 왕제(王濟)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이때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침류수석(枕流漱石))’고 해야 할 것을, 반대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수석침류(漱石枕流))’고 잘못 말했다. 왕제가 웃으며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데다 문재(文才)까지 뛰어난 손초는 서슴없이 이렇게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은사(隱士)인 허유(許由)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기 위해서라네.”
수수방관(袖手傍觀) : 조금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옆에서 보고만 있음.
수심가지인심난측(水深可知人心難測) : 물의 깊이는 알 수 있으나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
수어지교(水魚之交) : 고기와 물과의 사이처럼 떨어질 수 없는 특별한 친분.
[출전]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전(蜀志 諸葛傳)’.
유비(劉備)에게는 관우(關羽)와 장비(張飛)와 같은 용장이 있었지만, 천하의 계교를 세울 만한 지략이 뛰어난 모사(謀士)가 없었다. 이러한 때에 제갈공명(諸葛孔明)과 같은 사람을 얻었으므로 유비의 기쁨은 몹시 컸다. 그리고 제갈공명이 금후에 취해야 할 방침으로,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눌러서 그 곳을 근거지로 할 것과 서쪽과 남쪽의 이민족을 어루만져 뒤의 근심을 끊을 것과 내정을 다스려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실리를 올릴 것과 손권과 결탁하여 조조를 고립시킨 후 시기를 보아 조조를 토벌할 것 등의 천하 평정의 계책을 말하자, 유비는 그 계책에 전적으로 찬성하여 그 실현에 힘을 다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유비(劉備)는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어 두 사람의 교분은 날이 갈수록 친밀해졌다. 그러자 관우(關羽)나 장비(張飛)장비는 불만을 품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제갈공명(이 때 공명의 나이는 28세)만 중하게 여기고 자기들은 가볍게 취급받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이 이리 되자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즉, 나와 제갈공명은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자, 관우와 장비 등은 더 이상 불만을 표시하지 않게 되었다.
수오지심의지단야(羞惡之心義之端也) : 그릇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의(義)의 근본이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 나무가 고요하고 싶어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어도 이미 때가 늦어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음을 슬퍼하는 말.
【유사어】수풍지탄(樹風之歎).
수원수구(誰怨誰咎) :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랴.
수적천석(水滴穿石) :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 곧, ①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래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의 비유. ②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큰 것이 됨의 비유. 큰 힘을 발휘함의 비유.
【동의어】점적천석(點滴穿石). 【유사어】산류천석(山溜穿石), 우공이산(愚公移山), 적수성연(積水成淵), 적토성산(積土成山).
[출전] ‘학림옥로(鶴林玉露)’.
북송(北宋)때 숭양 현령(崇陽縣令)에 장괴애(張乖崖)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관아를 돌아보다가 창고에서 황급히 튀어나오는 한 구실아치를 발견했다. 당장 잡아서 조사해 보니 상투 속에서 한 푼짜리 엽전이 나왔다. 엄히 추궁하자 창고에서 훔친 것이라고 한다. 즉시 형리(刑吏)에게 명하여 곤장을 치라고 했다. 그러자 그 구실아치는 장괴애(張乖崖)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사또! 그까짓 엽전 한 푼 훔친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이 말을 듣자 장괴애(張乖崖)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네 이놈! 티끌 모아 태산(진합태산(塵合泰山))이란 말도 못 들었느냐? 하루 한 푼이라도 천 날이면 천 푼이요,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을 뚫는다(수적천석(水滴穿石))’고 했다.” 장괴애(張乖崖)는 말을 마치자마자 층계 아래 있는 죄인 곁으로 다가가 칼을 빼어 목을 치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은 당시 상관을 무시하는 구실아치의 잘못된 풍조를 고치려는 행위였다고 ‘옥림학로(玉林鶴露)’에서는 기술하고 있다.
수족지애(手足之愛) : 형제 사이의 우애를 일컫는 말.
수주대토(守柱待兎) : 노력은 하지도 않고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송(宋)나라에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오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는 것을 보았다. 덕분에 토끼 한 마리를 공짜로 얻은 농부는 농사일보다 토끼를 잡으면 더 수지(收支)가 맞겠다고 생각하고는 농사일은 집어치우고 매일 밭두둑에 앉아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그 곳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농부 자신은 송(宋)나라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밭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농사를 망친 것은 물론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요순(堯舜)을 이상으로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들었다. 그는 시대의 변천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진화(進化)하는 것이라고 보고 복고주의(復古主義)는 진화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주장하면서, 낡은 관습을 지키며 새로운 시대에 순응할 줄 모르는 사상(思想) 또는 사람에게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적용한 것이다.
수즉다욕(壽則多辱): 사람이 오래 살면 욕심이 많다. 장수(長壽)를 하면 욕됨도 많이 당한다.
[출전] ‘장자(莊子)’의 ‘천지편(天地篇)’.
전국시대를 살다간 사상가 장자(莊子)의 저서 ‘장자(莊子)’의 ‘천지편(天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그 옛날 성천자(聖天子)로 이름 높은 요(堯) 임금이 순행(巡幸)중에 화(華)라는 변경에 이르자 그곳의 관원이 공손히 맞으며 이렇게 말했다. “장수(長壽)하시옵소서.” 그러자 요(堯) 임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장수하기를 원치 않네.” “그러시면 부자가 되시옵소서.”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네.” “그러시면 다남(多男)하시옵소서.” “그것도 나는 원치 않네. 다남(多男)하면 못난 아들도 있어 걱정의 씨앗이 되고, 부자가 되면 쓸데없는 일이 많아져 번거롭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은 법(수즉다욕(壽則多辱))’이네.” 이 말을 들은 관원은 실망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대듯 말했다. “요(堯) 임금은 성인(聖人)이라고 들어 왔는데 이제 보니 군자(君子)에 불과하군. 아들이 많으면 각기 분수에 맞는 일을 맡기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재물이 늘면 느는 만큼 남에게 나누어주면 될텐데… 진정한 성인이란 메추라기처럼 거처를 가리지 않으며, 병아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잘 먹고, 새가 날아간 흔적 없는 자리처럼 자유자재(自由自在)해야 하는 법. 그리고 세상이 정상이면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그 번영을 누리고, 정상이 아니면 스스로 덕(德을) 닦고 은둔하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한 100년쯤 장수하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그때 신선이 되어 흰 구름을 타고 옥황상제(玉皇上帝)가 계시는 곳에서 놀면 나쁠 것도 없지.” 관원은 말을 마치자마자 그 자리를 떠났다. 허를 찔린 요(堯) 임금은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으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 : 두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물을 숨기지 못해)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너무 결백하면 남이 가까이하지 않음의 비유.
【원말】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 【동의어】수청무어(水淸無魚), 수청어불(주)서(水淸魚不(住)棲).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반초전(班超專)’ ‘공자가어(孔子家語)’.
후한시대 초엽, ‘한서(漢書)’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에게 반초(班超)라는 무장 동생이 있었다. 반초(班超)는 2대 황제인 명제(明帝) 때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켜 한(漢)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으로 4대 화제(和帝)때인 영원(永元) 3년에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庫車)에 설치되었던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도호의 직책은 한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복속을 맹세한 서역 50여 나라를 감독, 사찰(査察)하여 이반(離叛)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영원 14년, 반초가 대과(大過)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任尙)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서역(西域)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반초(班超)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政治)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임상(任尙)은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任尙)은 반초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安帝) 때,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이반(離叛)하였으며,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 또한 폐지되고 말았다.
숙맥불변(菽麥不辨) : 콩인지 보리인지를 분별하지 못함. 곧, 사물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킴.
순망치한(脣亡齒寒) :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①가까운 사이의 이웃 나라 중 한 쪽이 망하면 다른 한 쪽도 온전하기 어려움의 비유. ②서로 도우며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 또는 서로 도움으로써 성립되는 관계의 비유. 【동의어】순치보거(脣齒輔車), 순치지국(脣齒之國). 【유사어】거지양륜(車之兩輪), 순치지국(脣齒之國), 조지양익(鳥之兩翼).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희공오년조(僖公五年條)’.
춘추시대 말엽, 오패(五覇)의 한 사람인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아버지 헌공(獻公)이 괵과 우(虞) 두 나라를 공략할 때의 일이다. 괵나라를 치기로 결심한 헌공(獻公)은 진나라와 괵나라의 중간에 위치한 우(虞)나라의 우공(虞公)에게 길을 빌려 주면 많은 재보(財寶)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우공(虞公)이 이 제의를 수락하려 하자 중신 궁지기(宮之奇)가 극구 간했다. “전하,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 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입니다.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덧방나무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보거상의(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순망치한(脣亡齒寒))’란 말이 있사온데, 이는 곧 괵나라와 우나라를 두고 한 말이라 생각되옵니다. 그런 가까운 사이인 괵나라를 치려는 진나라에 길을 빌려 준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옵니다.” “경은 진(晉)나라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소. 진나라와 우리 우나라는 모두 주황실(周皇室)에서 갈라져 나온 동종(同宗)의 나라가 아니오? 그러니 해(害)를 줄 리가 있겠소?” “괵나라 역시 동종(同宗)이옵니다. 그러하오나 진(晉)나라는 동종의 정리(情理)를 잃은 지 오래이옵니다. 예컨대 지난날 진나라는 종친(宗親)인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초(楚)나라 장공(莊公)의 겨레붙이까지 죽인 일도 있지 않사옵니까? 전하, 그런 무도한 진(晉)나라를 믿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그러나 재보(財寶)에 눈이 먼 우공은 결국 진나라에 길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자 궁지기는 화(禍)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일가권속(一家眷屬)을 이끌고 우나라를 떠났다. 그 해 12월, 괵나라를 멸하고 돌아가던 진나라 군사는 궁지기(宮之奇)의 예언대로 단숨에 우나라를 공략하고 우공(虞公)을 포로로 잡아갔다.
슬갑도적(膝甲盜賊) : 남의 시문(詩文)을 표절하여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승두지리(升斗之利) : 대수롭지 않은 이익.
승승장구(乘勝長驅) : 싸움에 이긴 여세를 몰아 계속 몰아침.
시비지심지지단야(是非之心智之端也) :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근본이다.
시시비비(是是非非) : 옳고 그름을 가림.
시오설(視吾舌) : ‘내 혀를 보아라’는 뜻. 곧 혀만 있으면 천하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 【동의어】상존오설(尙存吾舌).
[출전] ‘사기(史記)’의 ‘장의열전(張儀列傳)’.
전국시대 위(魏)나라에 장의(張儀)라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언변과 완력과 재능이 뛰어난 그는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귀곡자(鬼谷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따라서 합종책(合從策)을 성공시켜 6국이 재상을 겸임한 소진(蘇秦)과는 동문이 된다. 장의(張儀)는 수업(修業)을 마치자 자기를 써줄 사람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초(楚)나라 재상 소양(昭陽)의 식객이 되었다. 어느 날 소양은 초왕(楚王)이 하사한 ‘화씨지벽(和氏之壁)’이라는 진귀한 구슬을 부하들에게 피로(披露)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연석에서 구슬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모두가 장의(張儀)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가난뱅이인 장의(張儀)가 훔친 게 틀림없다’고 그래서 수십 대의 매질까지 당했으나, 장의(張儀)는 끝내 부인했다. 마침내 그가 실신하자 소양(昭陽)은 할 수 없이 방면했다.
장의가 초주검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쩌다가 그래 이런 변을 당하셨어요?” 그러자 장의(張儀)는 느닷없이 혀를 쑥 내밀며 보인 다음 이렇게 물었다. “‘내 혀를 봐요(시오설(視吾舌)). 아직 있소, 없소?”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혀야 있지요.” “그럼 됐소.” 몸은 가령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상관없으나 혀만은 상(傷)해선 안된다. 혀가 건재해야 살아갈 수 있고 천하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의(張儀)는 그 후 혀 하나로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연횡책(連衡策)으로 일찍이 소진이 이룩한 합종책을 깨는 데 성공했다. 【주】합종책(合從策) : 전국시대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6국의 동맹책. 연횡책(連衡策) : 6국이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하는 정책.
시위소찬(尸位素餐) :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서 한갓 자리만 차지하고 녹만 받는 일.
【참조】반식재상(伴食宰相)
시자조슬(視子蚤蝨) : 큰 인물을 본 후 작은 인물을 보면 벼룩이나 이처럼 보인다.
시종여일(始終如一) : 처음과 끝이 똑같음.
시하(侍下) : 부모나 시부모가 살아 있어 모시고 있는 사람.
식소사번(食少事煩) : 소득은 적은데 일만 번잡함.
식언(食言) : 약속 한 말을 지키지 아니함.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앎으로써 근심을 사게 된다. 문자를 배우고 학문을 하게 되면 많은 걸 알게 되는데 바로 그 때문에 근심거리도 많아진다는 뜻. 우리 속담에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과 같은 뜻이다.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을 얻기 전에는 서서(徐庶)가 군사(軍師)로 있으면서 조조(曹操)를 괴롭혔다. 어떻게 해서든 서서(徐庶)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조조(曹操)는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한 가지 계획을 꾸몄다. 서서(徐庶)의 어머니가 조조의 영역인 위(魏)나라에 있는 것을 이용해 그를 불러들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서(徐庶)의 어머니 위부인(衛夫人)은 학식이 높고 의리를 아는 여장부(女丈夫)여서 오히려 한 군주를 잘 섬기라고 아들을 격려하는 형편이었다.
조조(曹操)는 모사(謀士) 정욱(程昱)의 계책에 따라 위부인의 필체를 흉내 내어 급히 위(魏)나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서서에게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위부인(衛夫人)은 깜짝 놀라 그 까닭을 물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의 필체를 본뜬 가짜편지 때문이었음을 알고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글자를 안다는 게 근심거리를 부르는 원인이 되었구나(여자식자우환(女子識字憂患)!” 세상에는 모르면 괜찮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이란 시(詩)에서 소동파(蘇東坡)도 이렇게 읊고 있다.
人生識字憂患始 [인생식자우환시]
姓名粗記可以休 [성명조기가이휴]
문자를 알게 되면서 우환은 시작되느니
제 이름자나 겨우 쓸 수 있다면 편히 쉴 수 있으리.
식전방장(食前方丈) : 사방 열자나 되는 큰 상에 잘 차린 음식. 매우 사치스러움.
식지동(食指動) : 음식이나 사물에 대한 욕심 또는 야심을 품는 것.
신언서판(身言書判) : 신수와 말씨와 글씨와 판단력.
신출귀몰(神出鬼沒) : 귀신이 출몰하듯 자유자재하여 그 변화를 헤아리지 못함.
[출전] ‘회남자(淮南子)’의 ‘병략훈(兵略訓)’.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엮은 ‘회남자(淮南子)’의 ‘병략훈(兵略訓)’은 도가사상(道家思想)을 기본 이론으로 한 전략론(戰略論)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군의 계략과 진(陣)치는 일과 군대의 세력과 병기가 겉으로 보아서 적군이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라면, 용병에 교묘한 것이 못된다고 말하고 있다. ‘교묘한 자의 행동은 신(神)이 나타나고 귀신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별과 같이 빛나고 하늘과 같이 운행하는 것이다. 그 나아가고, 물러남과 굽히고, 펴는 것은 아무런 전조(前兆)도 없고, 형태(形態)도 나타나지 않는다.’ 고 말하고 있다.
【주】신출귀행(神出鬼行) : ‘신(神)이 나타나고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귀신과 같이 나오고 들어감이 자유자재(自由自在)하여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 :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
[출전] ‘한서(漢書)’의 ‘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
이 말은 ‘한서(漢書)’의 ‘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에 실려 있는 ‘학문을 닦아 예를 좋아하고, 일을 참답게 하여 옳음을 구함(수학호고 실사구시(修學好古 實事求是))’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초기, 즉, 청나라 말기에서부터 중화민국 초기에 걸쳐 계몽사상가로서 활약한 양계초(梁啓超)는 ‘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을 써서 청대(淸代) 학술의 개론을 시도한 사람이다. 양계초(梁啓超)는 다시 능정감(凌廷堪)이 대진(戴震)을 위하여 지은 ‘사략장(事略狀)’에서 다음과 같은 논평을 이용하여 대진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드러내 밝히고 있다.
『옛날 하간(河間)의 헌왕(獻王)은 실사(實事)에 대하여 옳음을 구하였다. 도대체 실사(實事)의 앞에 있으면서 내가 옳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하고, 내가 그르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한다. -‘교례당집((校禮堂集) 35권-』
【주】실사구시(實事求是)란 사실을 토대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말하며, 청조(淸朝)의 고증학파가 공론(空論)만 일삼는 양명학(陽明學)에 대한 반동으로 내세운 표어이다. 고증학자(考證學者)들은 정확한 고증을 존중하는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학문연구의 입장을 취하였다.
실언실인(失言失人) : 헛된 말로 말을 잃어버리고 터놓고 말을 하지 않아 사람을 잃는다.
심사숙고(深思熟考) : 깊이 생각하고 익히 생각함.
심원의마(心猿意馬) :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생각이 한 곳에 있지 못하다.
심재홍곡(心在鴻鵠) : 바둑을 두면서 마음은 기러기나 고니가 날아오면 쏘아 맞출 것만 생각한다면 어찌되겠느냐는 맹자(孟子)의 언질에서 비롯된 말이다. 학업을 닦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에 씀을 일컫는 말이다.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 : 목적을 가지고 오랫동안 때를 기다리다.
십년지기(十年知己) : 오래 전부터 사귀어 온 친구.
십년한창(十年寒窓) : ‘10년 동안 사람이 오지 않아 쓸쓸한 창문(寒窓)’이나, ‘오랫동안 두문불출(杜門不出)한 채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공부한 세월’을 비유한다.
금(金)나라때 유기(劉祁)의 ‘귀잠지(歸潛志)’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古人謂 十年窓下無人問 一擧成名天下知
[고인위 십년창하무인문 일거성명천하지]
옛 사람이 이르기를 10년 동안 창문 아래 묻는 이가 없더니 한 번에 이름이 나니 천하 사람이 다 알게 되었다.
【주】‘이름이 나다(성명(成名))’는 것은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해야만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기에 젊은이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책과 씨름했다. 그런 고생스런 과정을 거쳐 일단 급제만 하면 ‘천하지면(天下知名:세상에 이름이 알려짐)’이었으니, 요즘 산사(山寺)에서 공부해 고시(考試)에 합격, 양명(揚名)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십맹일장(十盲一杖) : 열 소경에 한 막대기.
십목소시(十目所視) : 여러 사람이 다 보고 있음.
십벌지목(十伐之木) :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뜻.
십보방초(十步芳草) : ‘십보(十步)’는 열 걸음, ‘방초(芳草)’는 향기로운 꽃과 풀이니, 십보방초(十步芳草)를 직역하면 ‘열 걸음 안에 아름다운 꽃과 풀이 있다’는 뜻이다. 도처에 인재가 있다는 뜻으로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비유한다.
한(漢)나라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十步之澤 必有芳草 十室之邑 必有忠士
[십보지택 필유방초 십실지읍 필유충사]
10보 안에 반드시 방초가 있고, 10채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충성스런 선비가 있다.
【주】‘보(步)’는 한 걸음이고, ‘무(武)’는 반걸음이다. ‘보무당당(步武堂堂)’은 모든 걸음걸이가 당당하다는 말로 군인들의 행진을 일컫는다. ‘녹음방초(綠陰芳草)’는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그늘(녹음(綠陰))과 아름다운 꽃이란 말로 ‘여름 경치’를 뜻한다. 윗글에서는 ‘방초(芳草)’를 ‘충사(忠士)’에 비유했다. 한문은 이 같은 비유가 많은데 반드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대비시킨다.
십시일반(十匙一飯) :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한 사람을 돕는 일을 가리키는 말.
【참고】열의 한 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
십일지국(十日之菊) : 국화는 핀 지 9일 되는 날이 절정이므로 이미 때가 늦었다는 말이다.
십전구도(十顚九倒) : 여러 가지 고생을 겪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