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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16 - 제암산 구간 : 시목치에서 봇재까지..
언제 : 임인壬寅년(22년) 푸른달 05월 이레 (금요무박) 흙날
누구랑 : 다음수도권산악회 호남정맥 산우님들과 함께..
어딜 : 시목치 ~ 제암산 ~ 사자산미봉 ~ 일림산 ~ 한치고개 ~ 봇재 (북진 진행)
더 자세한 답사기는 https://blog.daum.net/kmhcshh/5752
백방산과 서마제 뒤 500봉 사이로 한의 소리 서편제가 태동한 서마리 하마 마을이 있다. 호남정맥 고당산 구간에서..
남원 운봉에서 곡성으로 이어지는 송홍록, 송만갑으로 대표되는 섬진강 동쪽으로 발달한 동편제에 대비해서
주로 섬진강 서쪽인 호남정맥을 중심으로 익산에서 나주 목포까지 발달한 한의 소리 하면 떠오르는 서편제..
특히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영화 '서편제'에서 연기자의 연기임에도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다.
그만큼 한국 정서에 어울리는 소리에 더해 장면마다 보여주는 우리네 고향에서 보았던 익숙한 풍경 속에 녹아든 장면들..
서편제의 탯줄이 바로 여기 복흥면 서마리..
서편제를 완성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박유전(朴裕全 1835-1906)이 태어난 곳이다.
무등산 서석대瑞石臺와 같은 뜻의 상서로운말 瑞馬..
瑞馬가 소리꾼 박유전이 태어날 것을 미리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 영화에서처럼 어려서 눈을 다쳐 외눈으로 지내면서 오직 맘으로 담아내야 했던 서러움과 고독함이
恨의 소리로 남지 않았을까?
서편제가 백방산 아래 상서로운 마을에서 발아했다면 완성은 보성이므로
호남정맥 보성 제암산 구간에서 자세히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 이 제암산 구간으로 답사를 떠나본다..
백두대간 그리고 금남호남정맥(화살표)과 호남정맥(산경표)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전도
호남정맥이란..
전국에 걸친 산천의 계통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산경표에 따르면 하나의 백두대간을 축으로 하여 10대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령을
13개의 정맥으로 나누어놓았는데 정맥 중 가장 짧은 약 65㎞의 산줄기인 충청도와 전라도의 젖줄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인
금남호남정맥을 백두대간상의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줄기 하나가 분기하여 주화산(조약봉)까지 이어놓고 다시 나뉘는데
북.서로 금강을 따라 금남정맥이 장항과 군산 앞바다로 흘러들고 남으로는 섬진강을 따라 호남정맥이 남해 광양만 앞 남해로 흘러들며
생을 다하게 되는데 역시 호남정맥도 산경표에는 백운산까지만 되어 있어 광양만까지는 신산경표를 따라 마치게 된다
호남정맥 16 제암산 구간 : 시목치에서 봇재까지.. 북진으로 진행
장동면(장흥면) 속살로 들어온 호남정맥은 시목재(제암터널)를 출발하여 작은산을 지나면서 보성군 웅치면 경계가 시작되는데
활성산까지 웅치면 경계를 따라 환종주를 하는 구간으로 매봉갈림길에서 장흥읍, 사자지맥 분기봉에서 장흥 안양면과 경계를 지나
주봉산 갈림봉에서 장흥군과 완전히 헤어지고 보성군 속살로 들어가는 구간으로 보성군 회천면의 경계를 따르다
활성산 다음 봉에서 웅치면 환종주를 마치고 보성읍과 회천면 경계인 봇재에서 마치게 되는데 오늘은 봇재에서 북진하게 된다.
답사기 중 서편제 내용은 출처 : 순창인물(6) 서편제 시조 박유전 명창 - 열린순창 (openchang.com) 참조
03:44분 보성읍과 회천면을 넘나드는 관행길로 무거운 봇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갔다는 봇재에 도착하여 준비를 하고..
보성 차 생산량의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다는 봇재 경계에 있는 회천면 영천리 다향길.. 영천리는 또한 판소리의 성지이기도 하다.
영천리 도강마을에는 보성을 '판소리의 성지'로 만들어 준 박유전·정재근·정응민·조상현 등 서편제 명창을 기리는 공간으로 서편제 테마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03:50분 명랑다원 주차장으로 산행은 시작되고..
차밭이 시작되는 명랑다원 안내판을 지나고..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일화가 있는 곳이였네요..
03:58분 차밭을 지나 임도를 따라 활성산으로..
보성군 회천면과 보성읍 경계가 끝나고 회천면과 웅치면 경계가 시작되는 354봉은 확인하지 못하고..
04:35분 활성산 직전 이정표.. 왕새고개로 하산해야 하는데 이정표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 무박산행시 주의가 필요..
활성산活城山과 동학의 근거지로도 활용됐다는 활성산성 안내판..
05:03분 왕새고개(삼수고개. 개념도)라고 하는 도로에 내려서고.. 직진하면 형제봉으로 가고 호남정맥은 도로따라 삼수마을로 우회한다..
좌측으로 마루금으로 추측되는 능선을 보면서 도로따라 삼수마을로 내려오면..
05:11분 삼수마을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05:14분 득음정 갈림길.. 봇재에서 헤어졌던 영천리에 서편제 태마공원에 있는 독음정으로 가는 길..
05:21분 보성강 지류인 비래천과 단풍천, 찬샘의 3개의 천이 있어 붙여진 삼수마을 표지석 삼거리를 지나고..
열심히 걸어서 가야할 웅치면 경계인 제암산이 우측 멀리서 손짓하고.. 그래서 오늘은 웅치면 환종주라고 했던 것..
그런데 아미산에서 왕새고개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확실하지 않은데.. 삼수마을 표지석 삼거리까지 계곡이 들어와 있다.
선답자들이 아미산에서 좌틀하여 하산하는 이 길이 개념도에 나와있는 마루금으로 생각된다..
05:29분 ~ 05:44분 우리는 한치재 바로 밑에서 휴식겸 잠시 쉬었다가 앞에 보이는 한치재 능선으로 접속한다..
그래서 잠시 초보산꾼은 한치고개의 한치재 표지석을 답사해 본다.. 한치고개 넘어에 또 다른 주차장이 있다..
05:44분 그렇게 다시 출발하고..
드디어 호남정맥의 분수령인 섬진강이 합수하는 남해 바다와 첫 대면.. 이제 호남정맥길도 꽤 진행했음을 실감하고..
개념도에 나와있는 마루금인 여맥이 삼수마을 우측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렇게 또 다시 활성산을 일으키고..
왕새고개에서 마루금인 활성산과 반대편으로 삼수마을을 감싸고 있는 호남정맥의 분맥인 형제봉 능선..
06:06분 드디어 마루금인 개념도상 413봉인 아미산에 접속하고..
06:20붕 아미산을 넘으니 이제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이 식량을 구하였다는 득량得糧만이 계속 좌측에서 친구하기를 자처하고..
06:30분 삼거리인 보성군 웅치면 봉산리 매남골 갈림길을 지나고..
전망이 열리는 전망대마다 남해로 이어지는 해변이 아침을 열고 있어 호남정맥길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아미산에서 활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활성산 넘어 봇재 아래에 보성소리의 탄생지인 득음골이 있다.
06:47분 헬기장 직전 삼각점이 있는 구 일림산 정상..
바로 헬기장 전망대와 626고지 이정목..
이제 삼비산(신산경표 개념도)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현 일림산이 철쭉을 머리에 이고 기다리고 있고..
07:00분 회령리 갈림길인 헬기장 이정목..
보성강 발원지 계곡과 제암산과 시루봉 그리고 작은산으로 이어지는 정맥길까지 보이기 시작하고..
07:05분 ~ 07:17분 개념도상 봉강사거리인 발원지 안부를 지나면서 철쭉의 향연은 절정에 이르고..
잠시 마루금에서 벗어나 보성강 발원지인 선녀샘을 답사하고..
위에서 본 선녀샘.. 선녀샘을 출발한 보성강은 압록에서 섬진강 본류와 합류하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 보성강의 힘으로 섬진강이 동류를 하게 된다.
아침 햇살에 놀라 잠에서 덜깬 모습으로 햇살을 품은 남해의 모습이 인상적이긴 한데..
07:21분 봉수대 직전 철쭉을 더 알차게 즐기시라고 전망대까지 만든 센스..
07:28분 호남정맥 최남단인 봉수대 삼거리... 장흥군과 헤어지고 회천면과 웅치면의 경계인 보성군의 속살로 들어가는 지점이다..
07:33분 정상 삼거리1 이정목에서 안내판..
07:36분 삼각점이 있는 호남정맥 가장 남쪽에 있는 산인 일림산日林山 정상(보성군 제공)..
옛 지도에는 옥황상제의 세 황비가 내려와서 놀았다는 설화를 간직한 '삼비산(三妃山)이라 표기되기도 한다.
가야할 마루금.. 좌측 사자산 미봉과 바로 옆 곰제산 뒤로 희미하게 멀리 월출산이 보이고..
당겨본 수인산 넘어로 월출산... 이후로는 월출산은 육안으로도 볼 수 없었다는..
방금 지나온 호남정맥이 보성군 속살로 들어가는 봉수대 삼거리에서 주봉산과 봉수대로 이어지는 능선과 남해..
참조.. 봉수대 : 일명 전일산 봉수대라 하며 봉화산에 있다고..
선녀샘을 출발한 보성강이 마지막으로 걷게 될 강산리를 지나 보성군을 통과하여 만난 섬진강은 남진을 마치고 동진을 하게 된다.
07:23분 ~ 08:30분 개념도상 623봉에서 식후경
08:51분 골치骨峙 사거리.. 잡목으로 사라진 길이였는데 일림산이 유명해지면서 새롭게 다시 태어난 길이라고..
09:08분 마루금이 우측으로 이어지는 개념도상 579봉 갈림길을 지나고..
09:58분 사자산 직전 달바우산 갈림길.. 여기 이정표는 장흥군의 고집으로 일림산을 아직도 삼비산으로 부르고 있다.
달바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사진상 좌측 장재도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인상적이다..
되돌아 본 개념도상 567.6봉과 570봉.. 570봉은 안부에서 567.6봏으로 이어왔다. 가운데가 일림산
사자산 두봉에서 억불산으로 이어지는 사자지맥과 우측 땅끝기맥 사이로 흐르고 있는 탐진강을 품은 장흥군..
가야할 호남정맥 마루금인 사자산 미봉과 제암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10:10분 사자지맥 분기봉인 사자산 미봉..
제암산과 사자산 안내문..
사자지맥獅子支脈 사자산 두봉 방향 땅끝지맥과 함께 시작됐던 탐진강 구역도 끝나는 지점이다.
사자산 미봉에서 사자지맥 첫 봉인 장흥의 후지산으로도 불린다는 사자산 두봉으로 이어지는 날등..
사자산 미봉 아래 전망대와 제암산 자연 휴암림 방향.. 뒤로 출발지인 활성산을 지나 호남정맥은 보성강을 따라 북진하게 된다.
가야할 마루금.. 개념도상 바로 앞 곰재산과 674봉 그리고 곰치와 매봉 갈림봉에 이어 제암산 지나 시루봉까지..
10:39분 장흥군에서 설치한 개념도에는 없는 사자산 미봉과 곰재산 사이의 고개인 간재
10:51분 개념도상 곰재산 바로 아래 제암산 철쭉제단.. 곰재산 정상에는 제암산 철쭉평원 정상석을 설치했다.
11:02분 ~ 11:14분 개념도상 614봉
그런데 요?바위가 가깝다고 해서 내려갔다가 보지 못하고.. 멋진 바위만 감상하고..
11:23분 곰재 사거리.. 이번 구간의 환산행을 제공한 웅치면熊峙面 지명유래가 된 고개이다..
11:38분 가족바위.. 개념도에 가난한 형제가 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떨어져 죽어 바위가 되었다는 형제바위
11:52분 촛대바위가 있다는 매봉 갈림봉인 현위치 제암산 이정표를 지나고..
금산 저수지를 출발한 탐진강 지류가 장흥읍을 흐르는 탐진강 본류에 합류하여 흐르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12:10분 제암산 삼각점은 정상 직전 헬기장에 있다..
제암산 아래 정상석..
제암산帝巖山779m 보성군 웅치면과 장흥군 장동면 경계에 있는 산.
서쪽 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탐진강으로 유입된다. 넓은 풀밭으로 이루어진 산정에는 3층 바위가 있는데, 주위의 낮은 산과 암석들이 이 바위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제암이라 했다고 한다.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제암단이 있으며, [네이버 지식백과] 제암산 [帝岩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12:24분 ~ 33분 제암산 정상의 정상석에서 본 사자산 줄기
12:34분 제암산 정상 임금바위에서 내려와 갑낭재(시목치)로.. 아직까지 옛 이정표가 있어 지명에 혼선이 되고 있다.
시목치로 가면서 되돌아 본.. 여기서 보니 바위들이 임금바위를 향하고 있는 듯 하기도 하고..
12:40분 촛대 바위
12:43분 휴양림 갈림길
12:54분 시루봉 전망대도 지나고..
작은산에 오르며 판소리 강산제의 고향 박유전과 말년을 함께 했던 강산리 방향..
판소리강산제─岡山制
서편제 판소리는 박유전(朴裕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가 만년에 전남 보성군 웅치면 강산리(江山里)에서 살면서 서편제를 바탕으로 우조(羽調)의 맛을 입힌 새 유파를 개발하여 강산리의 건너 마을에 살았던 정재근(鄭在根)에게 전함으로 말미암아 정응민(鄭應珉)과 정권진(鄭權鎭)으로 이어지는 서편제의 한 갈래를 강산제라 부른다. 강산제는 특히 계면조 창법에 있어서 남자가 흐느껴 우는 처절하고 숙연한 ‘그늘진 목소리’로 소리 마디 마디에 심력을 다하여 판소리 주인공들의 갖가지 한을 표현함으로써 시달림 받는 서민들을 대신하여 울음을 토하는 예술이었다.
자료 : 판소리강산제 - Daum 백과
마지막으로 담아 본 출발지점.. 이렇게 박유전에서 시작된 보성의 소리가 이 길을 따라 영천리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13:22분 작은산 정상
작은산에서 분기된 장흥 장동면과 보성군 웅치면 강산리 경계인 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박유전의 소리를 다른 유파의 소리와 구별하기 위해서 강산제康山制..
그가 살았던 보성군 강산리(康山) 설과 흥선 대원군이 주었다는 '네가 제일강산(第一江山)'에서 나왔다는 두가지의 설이 있다.
되돌아 본 제암산.. 임금바위가 이제는 임금이 쓰고 있는 왕관?.. 임금은 둘이 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춘향가를 잘 불렀다는 박유전은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소리에 대한 갈망도 유난했던 것 같은데..
보성의 제암산 기슭에서 <춘향가>의 한 대목 ‘사랑가’를 익히던 중이다. 더 이상 진전이 없어 스스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던 그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유전아! 입을 벌려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입을 벌린 박유전은 산신령이 준 팔뚝만한 쇠뭉치를 꿀떡 삼켰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후로 박유전은 목이 트여, 걸림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자료 : 순창인물(6) 서편제 시조 박유전 명창 - 열린순창 (openchang.com)
이제 보성군 웅치면 환산행을 마치고 장흥군 장동면 시목치로 내려가고.. 우측 철탑을 지나 직진해야..
하산 저수지 방향.. 가운데 호남정맥인 용두산
13:44분 철탑이 있는 388봉..
13:51분 쉼터.. 내림길이라 그런지 개념도의 망바위는 지나치고..
14:07분 용두산으로..
14:10분 임도에서 좌측으로.. 직진이 마루금이지만 도로 절개지로 갈 수가 없다.
14:15분 갑낭재(시목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이곳에 예로부터 감나무가 많이 있어 시목치(柿木峙)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 지명들이 장흥군에서 계속 국토지리원과는 다르게 표기하고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이렇게 남녘땅 이른 여름 길목에 피어난 철쭉의 향기에 취하고
섬진강 물따라.. 호남정맥길따라.. 역사의 흐름따라..
남겨진 한의 소리에 취하고..
눈과 귀가 즐거웠던 제암산 구간을 마치게 된다..
혹시 서편제 영화를 재밌게 보신 분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
북소리와 창만으로 길을 통해 ‘서편제’에 나타난 길의 의미(박유희) - Daum 백과 참조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명창 故박동진 선생이 남기신 명언 중의 명언이다.
여기에 임권택 감독이 가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평소 생각했던 지론이 합쳐지면서 탄생시킨 영화가 바로 '서편제'이고
당시 세계적인 초대박 작이였던 쥬라기 공원이 관객 수 100만을 넘기고 있을 때라는 점에 비춰보면
요원할 것만 같았던 영화인들의 오랜 꿈이였던 단일관 100만 시대의 신드룸을 이루었으니
흥행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한국영화산업의 현실에서 이루어진 성과라는 상징성이 있었음을 인정한 정부도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되어 1994년을 '국악의 해'로 지정하는데 이른다.
이 서편제의 창시자로 알려진 조선 후기 8대 명창 중 한 분인 박유전朴裕全이 태어난 곳은
호남정맥에서 만났던 순창 서마리이고 소리꾼이였던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타고난 천부적 재능은
어려서 한쪽 눈을 잃어 외눈이 되어 감내해야 했던 고독과 한이 더해지며 서울로 올라와 꽃을 피웠고
동편 소리와 서편 소리의 맛을 가미한 자신만의 세계를 창시했는데 바로 서편제와 또 다른 '강산제江山制' 이다.
박유전의 소리에 총애를 주었던 흥선대원군이 실각하면서 보복을 피해 마지막 여생을 보낸 곳이 보성군 강산리이다.
박유전이 강산리에 정착하면서 그의 소리는 정재근, 정응님, 정권진으로 이어지며 '보성소리'의 기초가 되었고
이렇게 여러 판소리 명창들을 배출한 도강과 영천 마을 등 봇재 아래 영천리 마을에 서편제 테마공원이 탄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어디서 죽었는지 어디에 묻혀 계신지 알 수 없어
강산리에 '박유전 예적비'란 안내판 만이 유일한 그의 흔적..
그렇게 지금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그의 혼에 남겨진 한의 소리가 전국을 떠돌고 있기에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가 더해지면서 우리는 서편제라는 영화에 열광했고 빠져든 것은 아니었을까?
호남정맥 고당산 구간에서 만났던 서편제 탯줄이였던 박유전의 탄생지 순창 복흥면 서마리에 이어
오늘 호남정맥 제암산 구간 시작과 끝점에 남겨진 서편제 박유전이 끝까지 소리를 놓지 않았던 마지막 흔적..
하지만 한 점 혈육도 두지 못하고 불우한 말년을 보냈던 강산리에 지금도 그의 혼백이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여생을 마치고 사흘 동안이나 밤만 되면 마을 뒷산에서 계속 들려왔다는 혼백의 외침이 한의 소리로 남아
제암산 철쭉이 들려주는 얘기의 여운과 함께 돌아온 지금도 계속 들려오는 듯 하다..
“내 소리 받아가라!”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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