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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7년 6월10일 민주정의당은 `체육관 선거`에 내보낼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씨를 선출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바라는 국민 열망을 철저히 무시한 조치였다. 그런 까닭에 국민들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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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은 ‘체육관 선거’에 내보낼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 씨를 선출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바라는 국민 열망을 철저히 무시한 조치였다. 그런 까닭에 국민들은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박종철 ‧ 이한열 학생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더욱 강력히 촉구했고, 민주화 시위는 온 나라를 뜨겁게 불태웠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천명했다. 현행 헌법대로 대통령을 선출하겠다는 4월 13일의 ‘호헌 조치’ 발표 이후 대략 두 달 반 만에 이루어진 ‘6월항쟁’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에게 6월항쟁을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금시초문인데요?’라고 답변한다. 대학생들이 6월항쟁을 알지 못하는 현상은 현대사교육 미비 등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고질적 병폐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이 황지우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속뜻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하략)”
영화 시작 전 정부 영상물을 강제 시청했던 과거사를 모르는 사람은 시 속 시대상황을 제대로 실감하기 어렵다. 이 시와 흡사한 소설에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가 있다. “사회가 나에게 술을 권한다”는 남편에게 아내는 “사회라는 그 술집에 안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사회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기 이전 시대였으므로 아내는 아직 그 말뜻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되묻는 것이다. 남편은 더욱 마음이 답답해서 또 술을 마시러 나간다. 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드는 법도 없이 그저 술에 취해 살아가는 지식인의 삶이 지금 눈으로 보면 한심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와 소설은 당대의 가슴과 눈으로 읽어야 한다. 1920년대 독자는 〈술 권하는 사회〉를 민족소설로 읽었고, 1980년대 독자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민주화운동 시로 읽었다. 그만큼 현진건과 황지우는 투철한 시대정신을 가진 참지식인이었다. 물론 더 바람직한 현상은 문인들이 그런 작품을 쓸 까닭이 전혀 없는 민주 사회의 정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