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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강연(1984)」 검토(3). .
박홍규, 형이상학 강의 1: 박홍규전집 2, 민음사, 2007(1995) pp. 457-492.(P. 524).
박홍규(1919-1994), 1988년 8월 22일 녹음
「고별강연(1984)」 검토(1)에서 윤구병의 등장으로 “같잖은 이야기”가 나오고, 아페이론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 그리고 「고별강연(1984)」 검토(2)에서는 이태수, 양문흠, 김남두, 손동현 등이 제기한 서양 철학 발달사의 개관이 있었는데, 라틴어를 어원으로하는 우연(contingence)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벩송이 제기한 우연(hasard)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아자르라는 우연은 아랍에서 온 용어이다.
「고별강연(1984)」 검토(3)에서는 윤구병, 이태수, 양문흠 등이 참석하지 않아서인지 논의를 더 전개하지 못하고 강연록에서 따르면서 자구 수정 정도이다. 그래도 원인(aitia)와 원인론(aitiology)에 대한 설명은 부가되었다.
「고별강연(1984)」 검토(4)[1989년 2월]에는 윤구병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태수, 양문흠, 김남두 등의 참석으로 다시 아페이론과 공간 등에 대한 형이상학에 대해 깊이를 더할 것이다. (53NKH)
이 강연 검토(3)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1988)」(6월 19일) 다음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 당시에 고별강연 녹취록이 정밀하게 완성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다음 검토(4)에서는 녹취록을 보완하고 나서 다시 검토하는 과정을 겪을 것이다. 물론 전집에 실린 「고별강연(1984)」은 보완하여 윤독을 거친 것이라 한다. (53NKH)
# 「고별강연(1984)」의 내용을 목차로 만들어 보았다. 13-55[42쪽]
[§1. 데이터로서 문헌(원문)] 7-13
[§2. 데이터의 특징: 고유명사, 재다(동일반복, 동일성). 13-24
[§2-1 차이들에 의한 개별학문들의 성립] 24-27
[§3. 학문들의 계승, 발전과 분화] 27-29
* [§3-1. 천문학에서 물리학으로] 29-31
* [§3-2. 근세 물리학] 31-32
* [§3-3. 실증철학] 33-37
* [§3-4. 생명철학] 37-53 - [16쪽 – 14쪽이 1/3인데 삼분의 일이 넘는다.]
[§4. 마치면서(결론)] 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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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별강연(1984)」 검토(3).
박홍규, 1988년 8월 22일. 457-492.쪽.
박홍규: <무가 아니라는 것> ... 모순율은 모순을 회피하라는 얘기야. 무가 없다는 것, 무가 아니라는 것, 모순을 회피하라는 얘기야. 여기서 모순율은 동일률하고 다른데, 동일률은 추상적(abstract)인 것이야. (457)
박: 요컨대 모순율이란 것은 모순을 회피하라는 뜻 아냐? 그런데 모순이 없다는 얘기는 아냐. 모순율의 이면(other side)은 모순이 있다는 얘기야. 있는데 모순이 회피될 수 있는 측면만을 보라는 얘기지. 그러니까 나중에 가면 우연하고 모순은 서로 일치해. 그러니까 이렇게 생가하면 돼. 가장 기본적인 우연이란 무엇이냐? 우연이란 라틴어에서 온 접촉(contact), 부딪치는 것이거든. .. 같은 것은 부딪치지 않아. 그럼 가장 같지 않은 것은 무엇이냐는 문제가 생겨. 가장 같지 않은 것은 무엇이냐? 존재와 무지. 유와 무가 양립해서 부딪힐 때, 그 한계선에서 존재와 무가 우연한다고 해. 그런데 그것은 정적(static)으로 보는 것이고, 동적(dynamic)으로 보면 모순이 돼. 요컨대 존재와 무의 관계를 동적으로 보면 모순이 되고, 정적으로 보면 우연이 돼. 그러니까 우연과 모순은 항상 표리일치한다고 생각하면 돼. (460) [플라톤에서 필연(아낭케 anankê)는 우연과 관계없다. 필연은 제작자(dêmiourgos)의 대상이지만, 우연으로 ‘되고 안되고’가 아니라, 필연에 설득되는 정도와 안되는 정도에 있다.]
가령 플라톤의 소피스트편을 보란 말이야. 존재(ousia)가 있고 최고류(megista genê)가 나오고 그래. 이것은 데이터에서 추상적으로 올라가니까 최후의 존재(ousia)가 나온 것 아니냐하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거꾸로 존재, 즉 <우시아>가 분열해서 운동과 정지, 다름(heteron)과 같음(tauton)이 나오더라 하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 그렇지? (460)
운동도 뭔가 존재의 측면을 가지고 있어. 무한정자(apeiron)도 그래. 뭔가 가지고 있어. 그것을 다 모아놓자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체 이론이야. 모아놓자, 그래야 존재가 나온다는 것이지. 그런데 그런 무가 아닌 것이 분열되어서 이것은 운동이고, 이것은 정지고, 모두 이렇게 나타나. (461) [이데아를 설정하든 아페이론을 설정하든, 그 원인에서 운동과 정지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 벩송에서는 이데아는 정지(상징)고 아페이론은 운동(흐름)으로 보아하나, 영혼의 흐름은 신체의 정지 속에서 정지해 있는 듯이, 현상적으로, 정지해있는 데이터로 설명하게 될 때, 공간화되어 표현되는 것이다. 언어도 이중적일 때 하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정지이다. (53NKD)]
그러니까 플라톤은 무는 없으니까 우리의 인식의 대상이 안 된다고 말해. 반성에서 보지 않고 1차 지향에서(prima intentio)에서 보거든. 그러면 그것(현실)이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인 것이고 거기에서 추상하면 되풀이된 것이 나오고 보통명사가 나와. 요전에 아리스토텔레스 얘기할 때, 고유명사가 어디서 성립하는가를 얘기했었지? 뭔가 닫힌(closed) 세계가 나오지 않으면 고유명사가 나오지 않아. 그런데 학문의 세계에서는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닫힌 세계야. (461) [<그러나 우주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어. 한정되어 있으니까 공간상에서 모든 사물은 <tode ti(여기 이것)>로서 이렇게 딱 지시할 수 있고, 따라서 고유명사로 딱 나와. 여기에서 완전한 고유명사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나와. 공간에서 일회적인 것, 시간에서 일회적인 것, 그 내용에서 일회적인 것이 나와야만 완전한 고유명사가 나올 거야. (51) / 한정된(begrenzt) 어떤 것에서만 고유명사는 성립하고, 그 점에서만 고유명사야. (52) -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1988, 06, 19)]
공간 같으면 닫힌 어떤 것, 한계 지어진(begrenzt) 무엇이 나와야 돼. 그런 한에서만 우리‥…(테이프 교체)‥… 어두운 종류(amydron)이고 사생아적 로고스(nothos logos)야. 이것은 이론(logos)이지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냐. 시간이니 공간이니 추상적 공간이니 무한정자니 하는 것은 직접 인식이 안 되는 것 아냐? (462) - [벩송은 ‘무매개적으로 주어진 것들(데이터)’가 있다고 한다. 그것들은 살아있는 한 있다. - 열역학 제2법칙으로 생명계에 대한 주목 이전에는 정태적 사고가 맞는 것 같다. 극한에서 한계(경계)를 그은 추상 개념들이다. (53NKE)]
그러나 진정한 데이터는 그런 추상적인 것이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은 것이야. 그ᅟᅥᆫ 것은 따라서 구체적인 사건으로서만 나타나. 그러니까 플라톤에서는 고유명사가 나오잖아. 성서도 그렇고. 하나의 사건의 기록이야. (462)
정치학이냐, 윤리학이냐, 우주론이냐, 심리학이냐, 아니면 철학이냐? 학문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 아냐, 응? 데이터로 보면, 데이터가 주어진 것하고 공간하고는 달라. 데이터는 구체적인 것이고 질적 것의 집합[다양체]이야. 공간은 추상적인 것이고, 상황(situation)[생태, 환경]은 구체적인 것이고, 전혀 달라. (463) [일반적으로 공간은 환경, 풍토, 상황 등을 말하지만, 철학의 사고의 극한에서 공간은 추상적인 것이다. 수(1)도 무한도 추상적인 것이다.]
공간, 대표적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적 공간과 같은 수학적인 공간은, 사물을 그 속에 어떤 면만 추상하고 동질화하고 동일화해서(identity) 진열할 수 있는 추상적인 공간이야. 상황은 전혀 달라. 플라톤이 대화편에 쓴 사건의 공간성은 공간이 아니라 상황[환경, millieu]이야. (463) [플라톤에서 고유명사의 성립은 상황(millieu)에서 사건으로 성립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여기 이것(tode ti)과 같을 것일 것이다. 그런데 ‘토 티 엔 에이나이(to ti ên einai, τὸ τί ἦν εἶναι)’에 대한 것이 개체에 대한 현존인데, 고유명사라고 해야하나. - 문법적 고유명사하고 철학에서 논하는 고유명사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박: .. 가령 티마이오스편에서는 우주의 발생론으로부터 아테네의 생성의 역사를 써놓았어. 그러니까 역사 철학이지. 우주 발생론(cosmogony)으로 보면 역사 철학이야. (463)
박: .. 티마이오스편을 읽어보면 아테네의 우주의 발생론을 썼는데, 그 아테네 속에서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사건들이 모두 이루어졌거든. 그 대화편에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사건들은 우주사적인 하나의 사건이고, 그 우주사적인 사건을 설명하는데 원인론(aitiology)를 가지고 설명했다, 그 말이야. ... 그런데 그 우주론적 사건은 원인론에 의해서 전부 가설적(hypothetic)으로 설정된 것이라는 말이야. 그러니까 플라톤은 철학이 된다는 것이다. (464) [실증적이 되려면 20세기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전부 다 실증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해서 아는 데까지 실증적인데, 그 실증적이 우주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매우 좁다는 것이다.]
박: 플라톤은 읽는 방식이 두 개 있어. 하나는 앞에서 읽고, 하나는 뒤에서 읽고, 알아들었지? (466) [벩송은 순서대로 읽으면서 행간과 말하지 않은 것(non-dit)를 읽어내야 한다. 들뢰즈는 가끔은 결론을 먼저 읽고 앞에서 읽는 것도 좋다.]
박: 티마이오스편 자체가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어. [/] 플라톤은 기술만 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이것을 사람들이 모여서 우주를 얘기했다는 상황(situation) 속에서의 하나의 기술로만 볼 수도 있고, [/] 또 읽어보면 그것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거든 원인론적(aitiological)인 정초 가정(Bergründung hypothesis)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 아냐? (466)
박: 가정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가정이 원인(aitia)이야. 최후[최초]의, 최종[태초]적인,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가정이. (466) [거슬러 올라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원인(aitia) 또는 시초(arche), 그래서 태초에 말씀(logos)가 있다고 하는 것은 언어학(논리학)의 가설(가정)일 것이고, 태초에 하나(다양체)라는 것도 가설일 것인데, 전자는 규정성이 들어가고 후자는 비규정성이라. 그 점에서 하나는 생산(생성, 창안, 창발, 창조)할 수 있는 권능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정지의 기본위에 종교성, 분석성, 명령성인데 비해, 후자는 운동의 결에서 실재성, 자료성 등으로 과정의 전개를 펼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박: ... 최종적으로 추상해서 우주론(cosmology)을 설명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것이 원인(aitia)이야. (467) - [추상의 극한에서 자료(기호, 상징)이 원인으로 가정되는 것은 실재론에서 보면 전도된 사고이다.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실재적인 자료에 대한 탐구로서 원인은 그 다음에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과정의 탐구에서 (시초) 원인을 설정할 수 있을 뿐인데 그 설정은 임시적이다. 왜냐하면 실증의 탐구가 깊어지고 넓어지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화해서(simplify) 질료(mattter)와 형상(form)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요컨대 무가 아닌 것은 둘로 나눠진다는 얘기야. 플라톤은 무가 아닌 것이 무한정자하고 형상하고 제작자하고, 셋으로 나눠진다고 해. 아까 맨 처음에 무가 아닌 것이 분열되어서 여러 가지가 나왔다고 했지? 그 얘기야, 지금. (468)
하하. <모순율이 최고다>는 <무가 아니라는 것이 최고다>로 말을 고쳐야겠어. 그리고 <무한정적(indefinite)>이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말이야, 봐. 양화하려면 무한정이어야 돼. 그것이 들어가. 형상 세계는 고유명사의 세계거든. 되풀이 되는 것이 없어. ... 그러나 자연현상은 사계절처럼 자꾸 되풀이되거든. 그러려면 양화되어야 하고, 양화되려면 무한정성(indefinite)이 들어가야 돼. (469)
박: .. 그러니까 플라톤도 형상(idea)dp 대해서 각자(hekasta)란 말을 쓰거든. 또한 형상이 아닌 사물도 각자라고 해. 형상도 각자란 말을 쓰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형상이 무수히 간다고 하면 고유명사를 이야기할 수가 없어. (469) [무수히 간다를 뒤에서는 무제한 간다고 한다. 즉 원의 가장자리를 무한히 나눌 수 있듯이 무한히 각자가 있다고 해야할 것 같다.]
박: 형상 자체 속에 자체성(kath’ hauto)이니 동일성(tauton hôs autôs)이니 하는 것들이 들어있어. (470) - [플라톤은 <동일한 것에 따라서 동일한 방식으로(kata tauta hôs autôs)>란 말을 자꾸 사용하잖아? 결국 이 물리적 세계는 자기 동일적인 것과 방황하는 원인이 서로 관계를 맺어서 성립시키는 것이야. 그런데 그것은 모순하고는 다른 제3자의 세계이지. (263-264) - “방황하는 원인”(1987, 06)]
박: .. 고유명사라는 것은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야.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한정된, 닫힌 세계가 나와야 돼. <이것이 고유명사다>는 말은 모든 나머지 것과 비교해 볼 때 다른 것에는 없는 어떤 것이 있더라고 할 수 있어야 돼. (470)
박: 응, 무한히 가서는 안돼. <anankê stênai(반드시 멈춰야 한다)>, 우리 학문의 입장에서는 항상 <anankê stênai>야. 왜냐하면 인식이란 딱 한계지어진 것만 받아들일 수 있어. 오려진 것만. 인식 자체가 분류하는(classify) 것이고, 그 자체가 오려내는 작업이거든. 그러니까 <anankê stênai> 안 되면 인식이 안 되지. (471) [‘오려내는’, 예전에는 자르는(재는) 작업이라 했었던 것 같은데.]
박: 완전히 잘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왜 인식이 되냐? 그러니까 내가 테아이테토스편에서 그것은 물질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했잖아. .. 그것은 영혼(psychê)의 기능(function)이지 물질적인 현상은 아니다. 물질적으로 [영혼의] 인식은 설명이 안 된다. 설명하려하면 아포리아에 빠진다고 했어. 영혼의 기능이니까. 여기도 마찬가지야. 영혼의 기능, 생명현상은 물질 현상으로 양화[공간화]해서는 설명이 안 돼. 베르그송이 누누이 하는 얘기가 생명현상은 비약하는 데에 있어. (471)
설명한다는 것은 전제가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한다[속좁은 이성의 합리적 사고]는 것이야. 그런 것은 공간적 사고야. 대표적인 것이 수학, 기하학, 그리고 그것을 응용한 물리학이야. (472) [심리(영혼) 문제는 수학이나 물리학과 다르다. 차히.]
공간은 그 속에 들어있는 사물에 대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니까. 딴 거야 딴 것. 별개의 것이지. .. 고전 물리학에서 공간이 따로 있다고 하지? 그것은 공간 속에 들어있는 물질하고 공간은 별개의 것이라는 뜻이야[절대공간]. .. 현대물리학은 달라. 그런 공간은 없어. 고전 물리학적 공간을 인정하지 않아. .. 공간이라는 한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 개념과 어울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을 한정된(limit) 사물의 내적 경계(inner boudary)라고 해. .. 그 공간과 사물은 다르니까, 공간이 있다고 해서 어떤 것이 꼭 있어야 한다는 말은 할 수 없어. 그러나 구체적 세계는 달라. 다 연관이 되어 있어. 거기에 추상적인 것은 없어. (473) [다 연관이 돼 있다는 공간은 물질들이 공간의 위치에 따라 다른 효과를 드러낸다. 중력이 그러하다. 달의 중력은 지구중력은 1/6이라고 하지 않는가.]
강상진: <그러면 플라톤의 철학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우리의 일반적 기능인 서술의 능력의 발현이냐? 만약 그렇다면 플라톤의 저술은 단순한 데이터의 서술[표현]이죠. 그러나 또한 서술이 아니라 그 서술 문장 앞에 어떤 가정(hypothesis)이 빠진 결론(apodisis), 그 결론 문장만 주워 모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강연” 52)> 박: 가정이 빠진 결론만 주워 모은 거지. (474)
박: 학원 철학이란 것은 추상적인 어느 일부분의 가정을 툭 내 놓는데, 그것이 어디서 나온 지를 몰라. 실제 스콜라철학을 읽어보면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르면 절대로 몰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定意)한 대로 나오거든. 스콜라 철학만 한 사람은 그러니까 왜 그러지를 몰라. 그래서 외우고 다니는 거야. (477) [신수와 혜능 사이에도 마찬가지 일 것 같은데..]
박: 요컨대 불란서의 고전이라는 것은 없어. 독일에는 독일의 고전이 있고, 영국에는 영국의 고전이 있잖아. .. 불란서 사람이 고전을 공부한다고 하면 희랍이나 로마를 공부하는 것이지. (477)
최정식: 베르그송이 불란서 철학에 대해서 죽 써놓은 것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불란서 철학을 몽테뉴인가 데카르트부터라고 했지, 9세기부터라는 말은 전혀 없던데요. (477) [맞아. 그렇게 쓰여 있지. 앙드레 로비네의 “프랑스 철학사”는 영국 신학자 철학자인 알쿠이누스(Alcuin, 735-804)를 샤를마뉴가 초대해서, 궁정에서 가르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박: 로마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중심이었고, 또 카톨릭 교회 뿐만 아니라 칼뱅이니 루터니 모두 아우구스티누스 영향을 받았지. 그러니까 서로만 문화의 계승자들을 우리는 넓은 의로 서구라파라고 해. (480)
박: 이탈리아를 거쳐서 불란서로 간다고 해야겠네. 김남두: 그게 아까 맏딸이라고 한 것과도 통할 것 같습니다. (480) [내가 어디서 본 글에서, 파리를 로만 카톨릭의 딸이라고 하고, 모스코바를 그리스 정교의 딸이라 하던데. 이 둘의 공통점은 자연주의 태도를 중요시 한다고 했다. 여기에 둘 다 자연(토지)의 존중이 있는 것 같다. 사회주의자들은 전래의 프랑스에서 자연(숲)의 존중은 셀트(켈트) 문화라고 한다.]
박: .. 여기서 내가 기억나는 것은 플라톤은 시간과 공간을 다 원인(aitia)으로 놓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 위주이고, 베르그송은 시간 위주라는 것이야. 원인론(aitiology), 원인의 조합(combination) 관계가 셋이 있는데, 이 세 개가 여기서 다 나왔다는 것을 얘기했어. .. 이 셋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에다 시간을, 정지에다 운동을 종속시켰고, 플라톤은 정지와 운동, 형상과 제작자들 동시에 놓았으며, 베르그송은 시간을 독립변수로 봤다는 얘기야. (482)
박: .. 원인론의 조합 방식(combination)은 그 세 가지뿐이야. 그러니까 플라톤은 원인론을 끄집어낸 데에 공헌이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서 베르그송에 이르면, 원인론의 조합 방식은 다 끝났다는 말이야. (483) [세 가지 위상의 사유는 인류가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중국의 팔괘도 삼원성이고, 종교도 삼원성이고, 플라톤의 국가의 구성도 3원성인데 말이다. 사유의 한계일까? (53NKE)]
박: 그렇지 않는[데이터로 출발하지 않는] 학문도 많지. 에피쿠로스나 뭐 그런 것들. (잠시 녹음 중단)‥… 불교 같은 것은 원인론인지 몰라. 그런 분석이 없어. 정의(definition)를 가지고 하지 않아. 정의 가지고 해야만 원인론이 나와. (484) [유클리드도 스피노자도 정의를 먼저 하고 시작한다.]
최정식: 제가 떠나기 직전에 선생님께서 소쉬르를 읽으시고 이것은 또 다른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씀하셨어요. (484)
<요컨대 서양 철학의 주류는 데이터에서 출발합니다. 예전부터 서양의 학문은 대상화된 것을 취급합니다.(54)>
박: ... DNA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대상화 되지 않는데?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 아냐? 분명히 모르는 것이거든. .. 우리가 보기에 철학적으로 미숙하지. 보통의 물질적 배열과 DNA에 의한 물질의 배열이 전혀 다르다는 거야. 그렇게 배열되어서 성장을 한다는 거야. 종에서 성장해서 개체가 나오고, 또 종으로 가고 하는 식의 배열이 나오는데, 물질은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지. 거기가 의미가 다르대. (483-484)
박: .. 헤겔 철학은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하는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 자기 조절능력의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야. (484) [토미즘일 것 같다. 자기 적응과 자기 조절의 완성. 그 완성이 상층 신에로 귀의.]
박: .. 그러니까 서양 철학의 특색은 제멋대로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나 인간이나 모든 것을 대상화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 다시 말하면 그것이 진리라고 하는 한에 있어서 그것에 따라 조절하자는 것이야. 그것이 <physis(본성, 자연)>이야. 헤겔 철학은 <physis>에 약해. 물리학하고는 가장 동떨어진 것이야. 그러나 <physis> 일반이 아니라, 헤겔의 <physis(본성)>를 찾으려고 한다면 헤겔 철학에서 찾아야 돼, 요컨대. 허허. 희랍철학은 <physis> 일반을 찾아. (487) [플라톤까지는 <physis>라는 아페이론을 고민한 것 같다.]
박: .. [동양의 공동체에서는] 감정(feeling) 속에서 많이 살았다는 얘기야. 서양 사람들은 추상적 사고 속에서 많이 살았다는 얘기고. (488) [들뢰즈는 그리스인들이 제국도 아니고 신화도 아닌, 철학을 사랑한 것은 폴리스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경쟁(agôn)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 운동경기, 정치, 행정 직위 등에서.]
박: .. 왜 추상적 사고가 발달했는가를 적응능력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한정된(begrenzt) 환경을 넘어서서 어디 가든지 적응하려고 할때에 추상적 능력이 나온다는 거야. (488) [한정된 환경을 넘어서: 들뢰즈 탈영토화. 그런데 왜 그 시절(아테네)이냐는 것이다. 정치경제학적으로 철기생산력이 인민들에게까지 전수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추상의 능력으로 탈영토화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리아 시대에 논리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일 것이다. (53NKH)
그러니까 지능의 발달은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려고 할때에 이루어지는 거야. 베르그송에도 그런 말 나오지? 왜냐? 불안하니까. 여기 한 군데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이 인간의 운명이 불안하니까. 여기서도 살 수 있고 저기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추상적 사고가 발달해. (488) [추상공간이전에 자연 환경(토양)에서 추상화가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이행이 아닐까?]
박: .. 난관[aporia]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것이냐, .. 그것이[그점에서] 플라톤에서는 먼저 앞서. (489) [철학적으로 플라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있음에는 정지와 달리 운동이라는 것이 먼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 플라톤이라는 것은 선생님의 주장일 것이다.]
박: [난관 즉 시대의 난문제의 해결은 철학의 과제이다.] 헤겔 철학은 헤겔 철학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설명 못해. 왜? 원인론(aitiology)은 기본적으로 난관에 대한 분석에서 나오는 것이거든. (490) [자기 자신을 설명 못해: 러셀의 자기 지시에 대한 역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발사의 역설”이 있다. - 의미론의 착오일 것이다.]
<우리는 서양철학을 데이터로서 취급하고, 어떤 것이 좋으냐 나쁘나 하는 것은 학문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어떤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도 취급하지 않습니다. (55)>
박: 그렇지 .. 대상 자체가 무엇이냐를 취급하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기호(嗜好)나 성격을 벗어나야 해. ... 형이상학은 기호(嗜好)같은 것을 벗어나야 해. (491)
박: <모든>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은 시간적(tempral)인 것이지. 전부 다 상대적인 것이야. 아까 형상(idea) 얘기할 때도 말했잖아. 형상이란 무수히 나가야 될 것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상이란 고유명사다, 되풀이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 질(quality)이지. 형상 아닌 것, 즉 무한정자[apeiron]와 비교해보면 그런 측면이 가해져야 된다는 것이지. 그것만이 전부라는 얘기는 안돼. (492) (1988년 8월 22일)
****인명록
427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427-347; 80살) 플라톤이란 ‘어깨가 넓음’을 의미한다. 이데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나이 42살이었고) [그리고 18세 이후에 배울 수 있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 나이 60살이었으며 10여년을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Aristotélēs, 384-322: 62살) 스타지르(Stagire)에서 탄생. (플라톤 나이 3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50살에 아카데미아에 입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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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 게오르크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독일 관념철학자 칸트의 이념과 현실의 이원론을 극복하여 일원화하고, 정신이 변증법적 과정을 경유해서 자연·역사·사회·국가 등의 현실이 되어 자기 발전을 해가는 체계를 종합 정리하였다.
1857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 스위스의 언어학자,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조. 말투(parole), 말씀(langue, 씀씀이), 말(language, 언어)을 구별하고, 기표와 기표의 차이로 인해 기의가 구성된다. 용어의 자의성은 관계와 연관 없이 해명할 방법이 없다. 한 용어도 신체처럼 배열, 배치, 계열, 계속, 지속에 따라 달리 내용(의미)을 함축한다, 당연하지 않는가?
1947 김남두(金南斗, 1947-) 서울대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독일 Freiburg대학 철학 박사.
1949 기종석(奇宗錫, 1949-) 서울대학교대학원 소속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교수
1952 박희영(1952-) 대전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학력 파리소르본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경력 서양고전철학회 회장,
1958 최정식(崔晶植, 1958-) 필명 최화. 파리대학대학원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교수
1965 강상진(姜相溱, 1965-) 서울대 철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서양 고중세철학, 서울대 교수.
(9::15, 53N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