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깨달음의 세계로 환원되는 과정
이상에서 우리는 미혹의 세계가 연기하게 된 것은 본래 맑고 청정하던 진여가 느닷없이 일어난 무명의 영향을 받아 점차 타락해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본래 착하고 참된 진여의 세계에서 이렇게 악하고 거짓된 중생의 세계로 굴러 떨어진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다시 그 진여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만일 되돌아갈 수 없다면 우리 중생은 영원히 중생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진리를 배울 까닭도 도를 닦을 필요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미혹의 세계[迷界]가 진여보다 무명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 연기하게 된 것이라면, 반대로 진여의 영향력이 무명을 능가하게 되면 다시 깨달음의 세계[悟界]로 연기하게 될 것임은 당연한 논리의 귀결이다. 다만 남은 문제는 번뇌에 깊이 빠져 있는 우리 범부중생들이 어떠한 방법과 조건에 의해서 진여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이 아무리 업장이 두텁고 어리석을지라도 그 안에 간직하고 있는 진여는 부처님과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지니고 있는 진여를 양과 질에 있어서 A라고 한다면,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진여 역시 조금도 오차가 없는 A이다. 단지 부처님이나 중생이 지닌 무명 즉, 번뇌의 양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생이 8만4천 내지 무량한 번뇌를 가지고 있다면 성인이나 부처님은 극히 적은 번뇌만을 지녔거나 전혀 없거나 한 것이다. 마치 흐린 날 하늘이 어두운 것은 태양광선 자체가 약해서가 아니라 태양을 가린 구름이 짙기 때문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진여로 돌아갈 조건 즉, 인因은 이미 갖추어져 있음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본래 지니고 있는 자신의 진여를 인으로 하고 성현의 가르침을 연緣으로 삼아 충실히 노력해 가면 능히 무명을 없애고 진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혹의 세계로 흘러내려옴[向下流轉] 때 그 과정이 구상九相으로 설명되었던 것처럼 다시 깨달음의 세계로 되돌아갈[向上還流] 때에는 네 단계의 과정이 있다. 이것은 미혹한 중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차차 깨달아 나아가는 것이므로 시각始覺이라고 한다. 그 네 가지 과정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범부각
범부각凡夫覺은 중생들이 깨달아 들어가는 첫 번째 과정으로, 성인들의 가르침에 의하여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도리를 자각하고 고통이 두려워 악을 짓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인과의 도리를 자각하고 업을 짓지 않는 것일 뿐 아직 본격적으로 지혜를 일으켜 번뇌를 끊는 적극성이 없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범부각은 다른 이름으로 불각不覺이라고도 한다.
상사각
상사각相似覺은 소승의 성문· 연각의 2승과 대승의 삼현三賢보살들이 체득하는 단계로, 비록 이 몸이 거짓 화합하여 생긴 것인 줄을 알고 내가 존재한다는 고집인 아집我執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깨달음에 비슷한 경지에는 이르렀지만, 아직 사물[法]의 참된 바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깨달음이라고는 할 수 없는 단계이다.
수분각
수분각隨分覺은 보살의 십지十地 가운데 초지初地에서 구지九地까지의 법신法身보살들이 이르는 단계로, 사물의 이치를 올바로 깨달아 마음 이치 이외에 따로 참된 법이 있다는 고집인 법집法執마저 끊었지만 아직 진여와 완전히 합일하지는 못한 상태를 말한다.
구경각
구경각究竟覺은 보살의 마지막 자리인 십지보살들이 십바라밀의 수행을 마치고 미혹의 세계가 연기하는 원인인 근본무명의 최초의 일념을 깨달은 다음 비로소 마음의 본바탕[心性]을 보고 진여로 돌아가 마음이 생주이멸生住異滅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상의 시각은 우리가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과정이지만, 일단 깨닫고 나면 그 깨달음이란 본래 우리에게 구비되어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본래 중생들의 내면에 갖추어져 있는 본질적인 깨달음을 본각本覺이라고 한다. 이 본각은 다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수염본각
수염본각隨染本覺이란 일단 거짓에 물들었다가 시각의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본질적인 깨달음을 말한다.
성정본각
성정본각性淨本覺이란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청정한 깨달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