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들은 서울시의 정책에 협조해 이주를 한 것인데, 행정관청의 정책에 협조한 대가가 결국 자신의 생존권 박탈이라면 과연 어느 누가 앞으로 공공사업에 협조할 것인가.
국회의원 17대 선거가 끝난 뒤, 나는 전국빈민연합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빈민연합은 노점상과 철거민을 지원하는 단체다. 이곳에서 양극화로 고통받는 노점상, 철거민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최근 이들 노점상의 시름을 더 깊게 하는 일이 서울시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 바로 동대문운동장 노점상의 생존권을 무시한 채 벌어지고 있는 동대문운동장 개발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5·31 지방선거 당시 강북 도심상권 부활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그 공약의 하나로 서울시는 9월18일, 동대문운동장을 디자인콤플렉스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고, 나아가 오세훈 시장은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노점상을 그대로 두고는 강북을 고급스런 이미지로 개발할 수 없다며 노점상 철거를 공론화했다. 동대문운동장의 노점상들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을 원활히 하는 데 협조하여 청계천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당시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 주변 노점상들에 대해 별다른 생계 대책 없이 철거를 추진했고 생존의 막다른 길에 이른 노점상들은 이에 강력히 저항하였다. 결국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 노점상들에게 당시 사용하지 않고 있던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주하면 이곳을 국제적인 풍물시장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노점상들은 이를 믿고 동대문운동장으로 자발적으로 이전한 것이다. 그러나 노점상들과의 약속은 결국 이명박 시장 시절 지켜지지 않았고, 현 오세훈 시장에게로 미뤄진 상태다.
오세훈 시장은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노점상에 대한 설득과 대책마련을 병행하겠다고 했으나, 이명박 전 시장이 노점상들에게 해준 약속은 노점상의 권리가 아닌 배려 차원이라며 의미를 격하하는가 하면, 노점상 철거 과정에서 벌어질 상황에 대한 비난은 감수하겠다고 하는 등 노점상들의 처지에서는 상당히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발언도 함께 하였다.
오늘날의 노점상은 정부와 국회가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장하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거리에서 장사를 하면서 생존을 모색하게 된 처지의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보니 아예 노점상부터 시작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막막한 삶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애초에 자기들이 했던 약속조차도 지키지 않고 탄압한다면 과연 이것이 합당한 일인가. 게다가 동대문운동장의 노점상들은 서울시의 정책에 협조해 이주를 한 것인데, 행정관청의 정책에 협조한 대가가 결국 자신의 생존권 박탈이라면 과연 어느 누가 앞으로 공공사업에 협조할 것인가.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은 앞으로 동대문운동장 사업과 관련하여 노점상들과, 또 그들의 대표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임 시장의 약속을 후임 시장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뒤집어 버린다면, 앞으로 누가 위정자들의 말을 믿을 것인가. 후임 시장은 사력을 다해서라도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서민의 대표라 하지 않겠는가.
김종철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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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전세계적으로 주목할 일이 벌어졌다.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2354만명이 ‘빈곤에 저항하자’는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선 건 너무나 고통스런 지구의 현실 때문이다. 매일 3만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숨지고, 1억명 이상의 아이들은 가고 싶어도 학교에 가지 못하며, 11억명의 사람이 오염된 물로 목숨을 잇는 게 오늘 지구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런 현실은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빈곤의 심화는 남의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해선 굶주려 숨질 정도는 아니다. 뻔히 알면서도 오염된 물로 목숨을 잇는 이들도 우리 주변엔 거의 없다. 대신 우리의 고민은 어떤 음식이 좀더 안전한지, 입시지옥을 어떻게 해결할지 따위다.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곤 해도, 이렇게 영 딴판이니 그들의 고통을 진정 느끼기는 쉽지 않다. 나와 동떨어진 타인을 상상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우리 일상도 이래저래 힘들고 버겁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돕자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은 눈앞에 보이는 내 이웃을 생각하는 데서 출발해 조금씩 키워갈 수 있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항상 그들을 기억하고 불편해하는 마음, 이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의무다. 요즘 특히 기억해야 할 이들이 북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다, 그 어느 때보다 나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핵무기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핵실험 때문에 주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도 두고 볼 순 없다.
북한 지원 단체인 좋은벗들이 전하는 북한 소식을 보면, 북한 주민이야말로 핵실험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지난여름 물난리로 수백만명이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는데다, 인심도 예전 같지 않아서 장애인이나 나이 든 이들의 형편은 더욱 말이 아니라고 한다. 이제 날도 점점 추워질 텐데, 세계의 경제제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더욱 옥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실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몇푼 도와준다고 해결될 일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무기력감이야말로 사태 해결의 진짜 걸림돌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 그들을 기억한다는 걸 그들에게 알릴 방도를 찾는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이들의 가장 큰 공포는 아무도 자신들의 현실을 알지 못할 거라는 고립감이다. 우리가 북한 주민을 기억한다는 걸 널리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의 정치인과 정부는 물론이고 전세계 곳곳에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도울 힘이 모아지고, 이 힘은 남북 관계의 파탄을 막을 압력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동북아 정세가 평범한 시민이 개입할 수 없는 차원에서 요동치는 듯하지만, 그래서 더욱 방관하면 안 된다. 미국 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세계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하면서도 진보세력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했다. 체제가 안정됐을 때는 작은 힘이 별 영향을 끼칠 수 없지만 혼란기에는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당신 안의 힘을 드러낼 때다. 개인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그것이 모이면 북한 주민들의 목숨을 구하는 데는 충분하다.
신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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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방글라데시의 ‘빈민은행’이 선정됐다. 가난한 이들한테 낮은 이자의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무담보 소액창업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벌여 자활을 통한 빈곤 퇴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 사업은 국내에서는 개념조차 낯설지만 이미 수십년 전 금융 후진국에서 창안돼 온세계에 전파된 대안금융 제도의 하나다. 지금은 선진국의 거대 금융기관들도 사회 책임경영과 잠재적인 시장 개척 차원에서 진출 움직임이 활발하다.
안타까운 건 이런 국제적인 움직임과는 영 딴판인 국내 서민금융의 현실이다.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외환위기 이후 수익성과 안전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워 서민금융을 끊임없이 외면해 왔다. 상호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이른바 서민 금융기관들은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은행권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면서도 서민이 드나들 문턱을 지속적으로 높여 왔다. 담보도 신용도 없는 이들은 결국 금융 빈곤층으로 전락해 사채 시장을 전전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국내에서도 몇몇 은행들이 소액 창업대출 사업에 출자하고 있지만, 미래를 내다 본 투자라기보다는 기업의 자선활동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빈민은행과 같은 대안적 제도를 금융이 아닌 사회보장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여전한 탓이다. 지점망 2185곳에서 660여만명한테 자금을 지원하는 방글라데시 빈민은행의 성공 사례는 먼 얘기일 뿐이다.
국내의 소액 창업대출은 소규모의 초기 단계다. 하지만 대출 상환율이 90%를 웃돌고 기업들의 참여도 활발해지는 건 희망적인 신호다. 이 사업의 성패는 철저한 운영과 관리에 달렸다. 단순히 저리 대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창업 상담과 사후 관리를 통해 자활을 꾀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금융권의 자발적인 노력이나 민간 기부금에만 의존해서는 지속되기 어렵다. 희망제작소가 9월부터 시작하는 휴면예금 활용 마이크로 크레딧 300억원 안정적인 재원을 골고루 서민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