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일어날것 같지 않던 일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신 것입니다.
급히 병원응급실로 옮겼고. 곧 큰병원 응급실로 재 이송되셨습니다.
대형병원 응급실로 옮겼을때.
의사가 하는 말은.
"대동맥 박리다.
지금 돌아가셔도 아무런 할말이 없다. 전혀 이상할게 없다. 1시간 내에 심장이 멈춰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의사가 할말이 맞나 싶습니다.)
였습니다.
하지만 다행인지..하늘이 도운것인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흉부외과 담당 교수님이 계셨고. 응급처치로 아버지의 상태는 호전되어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스피린(혈압약)서.때문에 지혈이 되지않아 수술은 어려웠고. 중환자실에 입원하였습니다.
이게 2013년 1월 13일 일요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스피린 효과가 떨어진 후에야 수술이 가능하다기에 일주일을 기다리기로했습니다.
기다리는 중에 아버지상태가 다시 좋아지지 않아 응급수술을 들어갔지만.
수술은 하지 못했습니다. 수술을 계속 진행하기엔 아버지 상태가 너무 위험해 수술장에서 돌아가실수도 있다고 했거든요.
1차 수술후..중환자실 3일. 중중환자실 2일, 일반병실 10여일 경을 입원해계셨습니다.
입원해 계시는 동안.대상포진도 앓으셨지만.
가족들과 웃고 대화도하고. 혼자 활동도 하시고 잘 지내셨습니다.
설기간에는 잠시 퇴원하셔서 3일간 집에도 다녀가셨습니다.
2월 12일..재입원
2월 13일 수술 예정이였지만, 응급수술이 생겨 수술이 하루 미뤄졌습니다.
2월 14일. 오전 8시 수술을 들어가가셨고.
가족들은...그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중환자보호자대기실로 옮겼습니다.
수술은 오후 11시40분경 끝났고, 가족들은 아버지 얼굴을 잠깐 볼수 있었습니다.
2월15일.
병원측에서 보호자 대기실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며
비워 줄것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안내문이 붙어있긴 했지만.
정확한 시간은 안내되어있지 않았고,
임시로 옮긴 보호자 대기실은 다른건물 5층에 있었습니다.
중환자의 경우 응급상황이 발생될수도있기에 보통 10분거리내에 대기 하라고 하면서.
보호자 대기실을 옮기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병원측에 항의하자 내어놓은..대기실은 장례식장 입구에 건물 청소여사님들이 쓰시던.
작은 방이였습니다.
저희 가족이야 급한마음에 그곳에 머물렀습니다만.
다른 중환자 가족들은 찜찜하다며 오지 않더군요..
수술 이후로 아버지는 계속 중환자실에 계셨습니다.
수술후 다음날 아침 마취가 깨서. 식구들을 알아보셨고,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하셨습니다.
그러나
손과 발은 묶인채로.
낙상 위험과 환자 치료를 위해 하는 행위라지만.
가족입장에서는 마음 아픈일입니다.
묶인 손과 발을 시트에 비벼 아버지는 허물이 벗겨지고, 엉망이 되었습니다.
의료진은.
환자분이 너무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환자분의 덩치가 커서 힘들다.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가족은 하루에 두번. 20분씩의 면회만 가능했습니다.
감염예방과 소독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를 바르고.
하지만 의사나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을 비롯 중환자실 청소하시는 여사님
기타 다른 사람들은........잘 하지 않는것 같더군요..
다른 곳에서 끌고온 수레도 그냥 들어가고
청소여사님 쓰레기통 뚜껑도없이 끌고 들어왔다 나갔다하시고..
아버지는 의식은 있으셨지만..
쉽게 호전되지못하셨습니다.
산소호흡기를 떼었다가 다시 달기도하고,
부정맥이 생겨 전기충격을 하기도하고.
신장이 좋지않다며 혈액투석도 했습니다.
혈변을 보시기도했고, L-tube나 기관삽관(인공호흡기)를 통해
피를 토하시기도했습니다.
이때..의료진은 더이상 가망이 없다. 약도 없고, 치료법도 없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비를 넘겨 잘 버텨주셨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의료진은 환자가 너무 힘들어해서 그랬다며
잠자는 약을 투여했습니다.
면회를 들어가면 아버지는 거의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역시 손과 발은 묶인채로 말이지요.
일반 자리(?)에 계시던 아버지의 자리가
격리실로 옮겨졌습니다.
산소호흡기를 떼고 기관절개를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계셨습니다.
폐렴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왼쪽폐가 유독심해 관을 박았습니다. 농배출을 위해서요.
격리실로 이동한 후에도 아버지는 잠자는 약을 투여했고,대부분 잠자는 모습만 봐야했습니다.
아버지의 상태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고, 가족들은 의료진의 말한마디에 웃고 울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상태가 어찌될지몰라.
대부분 병원에서 대기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습니다.
새벽 5시 30분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환자가 위독하니 지금 빨리 오셔야겠다고 말이죠.
5분후쯤 병원까지 얼마나 걸리냐는 확인전화도 왔습니다.
택시를 타고. 급히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 앞에 도착했을때 어디쯤이냐고 전화가왔고, 병원앞이라고 대답하자 전화가 끊겼습니다.
중환자실에 도착해 인터폰을 누르자 황당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환자분은 잘계시다. 주무신다. 죄송하다. 다른사람인데 오해해서 전화한거다. 정말 죄송하다.
어머니와 저는 그자리에 주저앉았고, 급히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오던 가족들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중환자실에서는 병동간호사가 실수한거다 라고 이야기했지만.
지금껏 실수했다는 병동간호사의 사과는 받은적이 없습니다.
저녁 면회에 들어가니
아버지의 심정지가 발생했었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심장이 금방 돌아오셨다고.
보호자가 놀랄까 싶어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3월23일 00시경 식구들은 중환자실의 급한 호출을 받았고,
기관지의 심한 출혈로 인해.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음날까지..버텨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상태는..
심폐소생술 후에 아버지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의료진도..소생가능성이 없다는 소견을 밝혔습니다.
가족들은....뼈아픈 결단을 내렸습니다.
3월25일 날짜로
DNR동의서(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를 작성하고
더이상의 연명치료를 하지않겠다는 뜻을 주치의와 담당교수에게 전달했습니다.
잠자는 약도 끊고.모든것을 중지한채 아버지를 지켜봤습니다.
우려하던것과는 달리. 만성 신부전일것 같다는 예상을 뒤엎고,
소변도 보셨고, 코로 영양분도 섭취하셨습니다.
그리고 4일만에 눈을 뜨고 의식을 찾으셨습니다.
명확하진 않았지만, 눈을 뜨고, 가끔 웃기도하시고 말이죠.
여전히 상태의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아버지는 버텨 주셨습니다.
가족의 바람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편안하게 힘들지 않게 보내드리는 것.
애초에 약속한것도 그것이였습니다.
편안하게 예쁜 모습으로..돌아가시는것..
4월 6일 토요일. 비가왔습니다.
오전 면회를 들어갔더니.아버지가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그리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내려고 혀를 열심히 움직이셨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꼭 꼭 누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힘들어 보이셨습니다.
3시30분.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힘들어하고 계셨습니다.
헛구역질 하듯 계속 혀를 움직이고 계셨고.
눈은 위로 치켜떠져 흰자위만 보였습니다.
당직의사가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합니다.
당당하게 갈비뼈는 다 부러졌다고 했습니다.
또 심정지가 왔을때는 심폐소생술을 못한다고 하더군요.
아버지를 힘들지 않게 보내주고자 했던 가족들의 바람이 모두 무너져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혼절하기 직전이셨고,항의를했습니다.
DNR서명을 했다는 왜 했느냐고 누가시켜서 했느냐고 말이죠.
담당교수를 불러달라고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의료진이...슬슬 피하더군요..
어렵사리 담당교수와 전화연결을 해주었고, 당장 오라고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한 이유는.
DNR 서명이 오래되어서. 유효하지 않은줄 알았답니다.
보통 DNR서명을 하면 하루 이틀내에 환자가 사망하는데 저희아버지는...아니였단 이야기죠.
그날의 당직 간호사나 의사 모두 착각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수였다고도 하더군요..
결국.
아버지는 4월 6일 오후 8시 50분.
먼곳으로 떠나셨습니다..
3개월동안 최선을 다해 치료해준 의료진을 탓하고자 하는건 아닙니다.
담당 교수님은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힘을 주는 분이였고 최선을 다해주셨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나 주치의 선생님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저희가 속상한건.제대로된 사과한마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1월13일부터 4월6일까지 약..3개월간.
인천의 유명한 병원에서 일아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