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크리스찬 시리즈 감사함으로 놀라운 일을 경험하자 (딤전 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저는 늘 기독교인들의 행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행복한 크리스찬이 되려면 어떤 삶이 필요한것일까? 불행한 사람은 감사가 없습니다. 불행은 우리의 마음과 말에 감사가 없을 때 시작됩니다. 불행한 시점은 감사가 살아진 시점과 일치합니다. 고난과 역경이 오면 감사치못합니다. 손해가 오고 고통이 다가올 때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유익 될 때 뿐 아니라 손해와 고통이 될 때에도 범사에 감사하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 불평, 불안 등 불자로 시작합니다. 시점이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감사와 불평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려있습니다. 불평은 불안, 불통, 불발의 인생입니다. 감사는 행복, 형통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은 마귀가 우리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반면에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과 축복과 은혜를 제공하십니다. 감사와 불평은 단순히 마음의 상태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영안서 일어나는 영적인 전투입니다. 마귀는 불평으로 우리 마음을 열어서 우리를 무너뜨리고 저주 안으로 인도합니다. 첫째, 불평은 마귀가 우리 마음을 여는 열쇠불평은 마귀가 우리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타락했습니까? 마귀가 성공적으로 저들의 마음속에 불평을 심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하와에게 와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하와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죠. 하나님께서는 “동산 모든 실과의 나무를 다 먹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며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불평을 심습니다. 불평을 심는 마귀의 궤궤입니다. 하와는 말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반드시 죽을 것 이라고 말하였지 죽을까 하노라고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한마디 더 붙여서 마귀는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않으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너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도 좋고 나쁜 것을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되는 것이 샘이 나서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불평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 결국 반역죄를 짓게 하고 타락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마귀는 온갖 궤계를 다해서 결국에는 하나님께 불평을 말하게 말하고 불평을 말하니 그 마음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반역의 죄를 짓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민21:4~6에 보면 광야에서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야훼께서 불뱀 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 할 만합니다. 그들은 광야를 지나면서 길이 험하고 고달프고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음식도 없고 물이 없었습니다. 불평 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불평은 결국 그들에게 심판을 가져오고 만 것입니다. 광야에는 원래 불 뱀이 많이 서식했습니다. 하나님이 막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을 할 때 하나님은 그 막는 손길을 떼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광야에 서식하는 불 뱀 들이 달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서 많이 죽게 만든 것입니다. 불평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들은 버림을 받고 만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원망과 불평은 마귀에게 열쇠를 열어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와 심판을 재촉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마귀의 궤궤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해무익 한 것이 원망과 불평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감사와 찬양은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하고 우리 스스로를 훈련하지 않고는 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한 우리들은 원래 심성이 불평하고 원망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마음에 변화를 받지 않고는 원망과 불평의 세계를 떠날 수 없고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마귀에게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심판을 당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살 때가 많은 것입니다. 시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과 은혜를 받는 열쇠인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마귀에게 우리 마음 문을 열고 우리를 점령하게 하는 열쇠가 되는 것과 같이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 열쇠를 드려서 우리 마음 문을 열어서 우리에게 들어와서 구원과 축복과 은혜를 줄 수 있는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인천에 선비 하나가 살았는데 이름이 김진규입니다. 그에게는 본 마누라가 있고 첩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첩한테서 딸 하나가 태어났는데 얼마나 영리한지 모릅니다. 이 첩이 나중에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왔습니다. 선교사의 집에 가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봉사하면서 딸을 공부시켜서 이화여전에 들어갔는데 이 딸에게 혼기가 되자 신랑감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이 딸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할까요, 나는 지금 미국 유학 가서 공부할 길이 열렸는데 공부를 더 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할까요? 밤을 세우며 며칠을 기도하는데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큰 홍수가 나서 범람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떠내려갑니다. 아우성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보니 모두 여자들입니다. 마음속에 응답이 오기를 저 여자들을 네가 살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공부를 더 하라는 뜻이구나 싶어서 유학을 하고 한국의 여성들을 깨우치고 가르치고, 봉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혼을 포기하고 유학을 다녀와서 이화여자 전문학교 교장이 되었습니다. 대학이 되니 대학 학장이 되었고, 종합대학이 되어 이화여자대학 총장이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김활란 박사입니다. 한국 여성 교육계의 가장 큰 별입니다. 그 분이 총장 자리에만 앉아서 만족했습니까? 아닙니다 방학 때가 되면 7인 전도회, 나중에 금난 전도회를 조직해서 학생들을 데리고 산골을 누비며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그분은 죽을 때 내가 죽었다고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 그런 찬송을 부르지 말고 개선가를 부르며 묻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첩의 자식이 기를 펴는 때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공부를 하고 열심히 봉사했더니 하나님
께서 그를 한국의 큰 별로 키워주셨습니다. 김활란 박사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보잘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이화여대에서 가르치게 된 것도 하나님 은혜입니다’라고 감사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 직전에도 수많은 후배들과 제자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이여, 울지 마시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죽은 후에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할렐루야 코러스를 불러 주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활란 박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16] Be joyful always; [17] pray continually; [18]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 땅에 왔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열수 잇는 무기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 지속적으로 기도하라. 어떤 환경에도 감사하라. 왜! 하나님의 뜻이다. 왜 감사해야합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미리감사해보십시오. 서원감사입니다. (시 56: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저는 욕심이 많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사실 욕심이 많습니다. 애들이 따라주지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부를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될 줄 믿고 감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들어주십니다. 성도들이 문제가 있을 때 이렇게 미리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보셔서 다 들어주십시오. 미리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모르시죠 성도님들 문제로 제가 감사를 미리드립니다. 혹시 여러분은 잊고 잇을 지 모르지만 제가 미리, 사실 여러분 보다 미리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그 고난을 이기고 감사하니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 쓰시는 겁니다. 애매한 고난을 받아도 감사해야합니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은 감사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지으심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시 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잘보십시오. 가만히 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은 마귀를 초청하는 동기가 될 수 있지만 감사와 찬송은 야훼 하나님을 초청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약성경에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증가하다가 잡혀서 빌립보 감옥에 갇힌 사건이 있습니다. 관원들이 옷을 벗기고 많이 매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감옥 깊숙한 곳에 쇠고랑에 채워서 투옥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는 조건이 많습니다. 복음을 증거 했는데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감옥에 들어가게 했습니까? 원망할 수 있잖아요. 많이 맞아서 등에 피가 흐르고 배는 고픈데 캄캄하고 습기 찬 깊은 감옥 속에 쇠고랑을 차고 들어갔으니 탄식 할 만 하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행16:25~26에 보면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말했습니다.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하나님이 보내신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진동해서 보통 지진이 아닙니다. 보통 지진이면 왜 쇠고랑이 다 열립니까? 천사들이 와서 그 옥토를 뒤 흔들어 버리고 모든 사람의 쇠고랑을 끌러 버린 것입니다. 찬송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자유와 해방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답답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찬송하면 그 묶임에서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과 환경이 고통과 괴로움으로 묶였을 때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자유와 해방을 갖다 주는 큰 지진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진동, 우리의 생활에 진동을 일으켜서 흑암의 세력을 쫓아내고 자유와 해방을 갖다 주는 능력이 바로 찬송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적진동이 일어나야합니다. 감사할 조건이 아니지만 감사 찬송하니 영적인 진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안될 때는 한 번 흔들어 버려야합니다. 우리의 잘 안 되는 삶에 천사가 나타나셔서 흔들어 주셔야합니다. 불평불만 불신 불안 다 덜어져나가고 마귀권세 저주권세 다 떨어져나가라고 말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오셔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옥문이 열리니 간수가 죄수들 다 도망친 줄 알고 놀래서 자살하려고 할 때 바울이 말하기를 “자살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그러니까 그가 뛰어와서 “선생들아 내가 어찌하여 구원을 얻을까” 그때 바울이 말하기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말을 듣고 간수와 그 식구들이 다 회개하고 세례 받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이 자유와 해방을 가져 왔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도 열어준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항상 원망, 불평, 탄식하는 것만 보면 어떻게 마음에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고통과 괴로움 속에도 감사하고 찬송하며 눈물을 흘리고 주께 영광을 돌리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희한하게 여길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곤고 가운데서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를 드리는가. 그 연유가 어디에 있는가 물을 것이고 그들은 그 연유를 듣고 마음에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송은 우리의 원수를 물리치는 힘이 되고 감사와 찬송은 우리를 속박에서 해방과 자유를 주는 놀라운 역사가 되며 복음증거의 큰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혼다 목사님은 일본에서 1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파하신 일본의 한경직 목사님으로 비유되는 분이십니다. 혼다 목사님은 평생에 늘 3가지 감사하는 것이 있는데 첫째는 키가 작은 것에 대하여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키 큰 자들은 전쟁에 끌려가서 모두 전사했으나 자기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 남아서 복음을 전하니 너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얼굴이 못생겨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얼굴이 잘생겼으면 이성의 유혹에 빠져 타락했을 텐데 얼굴이 못났으니 누가 자기를 유혹하지 않으니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자신은 실력이 없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실력이 없으니까 늘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어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사니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여러분들에게 광야와 같은 어려움이 있다고 불평과 원망하지 마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하고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딤전 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감사하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며, 분노 속에 살면 모든 병이 생깁니다. 그러니 감사할 것이 없어도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할 때 축복이 오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건강이 회복됩니다. ‘감사’와 ‘불평’은 습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감사합니다’라고 의도적으로라도 말하십시오. 우선 작은 일에서부터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서는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행하므로 축복받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시편 100:4-5 (시 100:4-5) 『[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5]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로 미치리로다』 감사가 기적을 낳는 재료입니다. 씨앗입니다. 감사해야 기적이 일어나고 하늘문이 열립니다. 우리의 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십일조는 사실 감사해서 드리는 예물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하늘문이 열립니다. 감사하면 하늘문이 열립니다.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하늘 문으로 들어갑니다. 감사하면 천국문이 열립니다. 천국열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천국열쇠는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하면 살면 가정의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엽기 아내 바닷가 리조트에 놀러온 한 꼬마가 엄마에게 물었다. 꼬마 : 엄마, 바다에서 수영해도 돼요? 엄마 : 물이 너무 깊어서 수영하면 안돼. 꼬마 : 아빠는 저기서 수영하고 있잖아요? 엄마 : 얘는~ 아빠는 보험을 들었잖니! 하나님이 짝지어준 천생연분으로 알고 사랑하며 감사하며 삽시다. 천생연분 노총각과 노처녀가 어느날 선을 보게 되었다. 워낙 말수가 적어서 애인이 없었던 두 사람은 멀뚱멀뚱 앉아서 커피를 시켰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철’입니다. 철이요…. 성은 ‘전’이구요. 전 철이 제 이름입니다.” 남자는 사뭇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가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뒤집어지는 게 아닌 가. 남자는 민망한 듯 물었다. “아니, 뭐가 그리 우스우시죠?” 그러자 여자가 대답했다. “사실, 전 이 호선 이거든요 감사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죠. 감사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사랑하는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겁니다. 천국의 모형인 우리 가정이 잘되고 행복하기를 누구보다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세 자녀를 둔 아버지가 장난감 하나를 사왔다. 그러자 서로 장난감을 가지겠다고 싸웠다. 그러자 아버지 왈. “엄마말에 고분고분하고 말 잘듣는 사람이 가져라.” 잠시동안 아무 소리도 없다가 일제히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아빠가 장남감 가지고 노세요….” 지난 주 성공하는 남편의 3소 5쇠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남의 말을 경청하고 집중해주면 성공합니다. 3소 5쇠 원칙: 3소 * 1. 마누라가 하는 모든 말에는 그렇소! 하며 맞 장구 치고, 2. 집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맞소! 하며 동의해 주고, 3. 안 사람이 주장하는 모든 것에는 그저 옳소!
* 5 쇠 * 1. 집에 들어오면 마누라를 위해서 집안 청소부터 모든 집안 잡일에 마당쇠 2. 생략 3.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밀로하고 서로 불리한 말을 하지 않는 자물쇠 4. 마누라가 조금 짜구나 할 정도로 남에게 헛돈을 쓰지 않는 구두쇠 5. 집 사람이 하는 가정일에 간섭없이 모른척 하는 모르쇠가 되어야 한다 이 번주는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 아내를 위한 남자 아내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하는 충성심 강한 '돌쇠' 일할 때는 개미처럼 부지런한 '마당쇠' 아내의 마음이 닫혀있을 때에는 언제나 활짝 열어주는 '만능열쇠' 모진 풍파에도 끄떡없이 가정을 지키는 '무쇠' 아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려도 그저 둥글둥글 '굴렁쇠'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릴 때는 돈 한푼 안 쓰는 짠돌이 '구두쇠' 그리고.....쇠' 시34:13~14에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 찌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 찌어다” 엡5:4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시141:3에 “야훼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에 결심을 하고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서 원망, 불평이 못 들어오게하고 감사를 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빌4:6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는 길이 되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한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태어날 때부터 그 자손들이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세상에는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가득 찹니다. 여러분께서 어느 곳에 가든지 두세 사람만 모인데 가보십시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마귀에게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합니다. 마귀에게 우리를 점령할 수 있는 열쇠를 주어서 우리 마음의 아파트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 아예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를 내어 쫓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사하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고 그리고 항상 관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불평한 말을 하는 것보다는 감사한 말을 하는 그 일을 찾아야 됩니다. 불평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 중에도 감사할 일들을 우리가 찾아야만 우리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50:14~15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건지시고 그리고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는 먼저 감사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삶속에 불평할 것을 찾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 가지 불평할 사건 중에도 감사할 일들을 찾으면 또 많이 감사할 것을 찾을 수있습니다. 불평할 것을 헤치고 그 중에서 감사할 보화를 찾아서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원망과 불평이냐 감사냐 찬송이냐 영적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은 우리 마음속에 불평이냐 감사냐 찬양이냐 원망이냐 전쟁입니다. 영적인 전쟁이에요. 이 전쟁에 지면 낭패를 당하고 전쟁에 이기면 축복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불평하고 싶은 유혹을 대적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항상 우리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을 하고 싶은 유혹이 있어요. 아담과 하와도 유혹을 받았는데 우리라고 유혹 안 받을 턱 있어요? 원망과 불평하고 싶은 생각이 늘 나와요.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의 유혹이 넘쳐납니다. 사람이 불평을 하려 하면 언제나 불평할 수 있는 조건있죠. 그러나 감사하려면 얼마나 감사할 수 있는 조건도 우리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대화중에서 감사보다 불평을 말하도록 심리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사람 만나면 벌써 남의 흉을 보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도록 심리적으로 타락해 있어요. 어느 목사님의 사모가 위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50세도 안된 나이에 위암에 걸린 것 생각하니 너무나 억울해서 예전에 신학교에 남편과 함께 공부하고 그리고 개척하면서 고생하던 것이 생각이 나서 “이렇게 일찍이 위암에 걸려 죽는 것은 시집 잘못 가서 그렇다. 유능하지 못한 남편 따라 목회하고 개척한다고 너무나 고생하고 속상하고 괴로웠기 때문에 위암에 걸렸다.” 그래서 밤이면 기도하지 않고 남편 멱살을 잡고 “왜 내가 먼저 죽어야 되느냐? 같이 죽자!” 그리고 고함 고함을 쳤습니다. 남편이 하루는 노트를 가지고 오더니만 부인에게 “당신 내내 불평을 하는데 불평하다가도 죽을 수 있고 감사하다가도 죽을 수가 있는데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감사하다가 죽는 것이 낫지 불평하다가 죽는 것이 낫겠느냐? 이 노트에 감사할 사람을 과거에 감사를 드리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감사할 조건을 적고서 찾자 다니면서 감사를 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인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감사할 사람들의 이름을 다 적어가지고서 그 이튿날부터 힘이 있을 동안에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떠나기 전에 인사하러 왔습니다.”하면서 감사했는데 죽는다는 사람이 감사하러 돌아다니면서 더 살아났어요. 그래서 감사를 다 하고 난 다음 병원에 가서 조사해 보니까 암이 나아 버렸어요. 원망과 불평은 암에게 생명을 주지만 감사와 찬송은 암을 멸하는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서 감사하고 있을 동안에 치료가 계속되어 그는 병에서 고침을 받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로 감사한다는 것은 굉장히 치료의 역사와 은혜를 받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집사람에게 신경통이 올 때마다, 목사님 고생 시켜주어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행복해요. 미국의 한 사업가가 자동차 사고로 무남독녀 외딸이 정신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자동차에 부딪혀서 뇌가 손상당했어요. 3년 후에 차를 몰고 딸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다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통곡을 하고 우는데 하나님 성령께서 말씀하셨어요. ‘네 딸이 자동차 사고 나서 뇌손상을 받아 미친 것을 감사해 본적이 있느냐?’ 그는 말했어요. “우리 딸이 사고 나서 뇌손상을 입어 미쳤는데 그것이 뭐가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건 자체가 감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하나님이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네가 감사했으면 감사를 통해서 내가 역사할 수 있을 것인데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했으므로 그것이 너와 나의 장벽이 되어서 내가 너의 딸을 도와 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아버지가 크게 회개하고 “하나님 내 딸이 사고가 나서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3년 동안 있는 것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회개시킨 것 감사합니다. 우리 딸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하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병원에 가니까 의사들이 놀란 눈으로 크게 뜨고 그를 맞이했습니다. “당신 딸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인사불성이었는데 오늘 아침부터는 사람을 알아보고 아버지, 아버지하고 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가 정신병원에 들어간 딸이 “아버지 내가 왜 여기 와있어? 아버지 왜 아버지 나를 버렸어?” 할렐루야 감사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자기 생명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구원의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건강주신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고난 가운데도 감사할 수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십시오. 감사를 할 때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왜 감사를 하느냐. 환경이 감사할 수 없는데 왜 감사를 해야 되느냐? 그것은 내가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을 초청해 오는 길입니다. 병자가 의사를 찾는 것처럼 배고픈 자가 음식을 찾는 것처럼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찾는 길이 바로 감사의 길입니다. 감사하면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의 해군 장교인 가와가미 기이치는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고국의 현실은 처참했습니다. 피폐해진 거리를 본 가와가미 기이치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더구나 어딜가나 군인만 보면 “저것들 때문에 패전했다”고 손가락질하고 노려보는 사람들 때문에 기이치는 매일 분노와 좌절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심한 병이 나서 얼굴을 제외한 온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의 진료를 받게 되었고, 후치다는 가와가미 기이치에게 살고 싶으면 ‘감사합니다’라고 따라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분노와 적개심으로 기이치 장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해도 입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후치다는 기이치에게 “하루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일만 번씩 하셔야 병이 치료될 수 있으며, 감사하는 마음만이 당신의 마비된 몸을 치료해 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가 돌아간 후 기이치는 누운 채로 병을 낫기 위해 억지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분노와 적개심으로 불편했던 마음에 평온이 찾아 왔습니다. 그의 얼굴표정도 편안해졌고, 행동도 점점 부드러워졌습니다. 우울했던 집안 분위기가 밝아지며, 예전처럼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막내 아들이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서 아버지의 방문을 열면서, “아버지, 감 드세요”라고 하자 아버지인 기이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마비되어 꼼짝도 못한 손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손에서 일어난 기적은 팔, 다리 등 구석 구석까지 회복되어 굳어 있던 그의 몸이 풀렸다는 것입니다. <결론>우리는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서 항상 영적인 전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쟁 중 확실하게 마귀를 끌어들이는 길은 불평이요, 원망입니다. 그러나 감사 또한 확실하게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이 있는 곳에 보좌를 배설하고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적은 일에서 큰일까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과 마귀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로 문을 열면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면 하나님을 몰아내시고 마귀를 받아 들여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어요. 바로 그것이 영적인 전쟁입니다. 감사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원망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얻고 싶으면 감사를 하십시오. 그러나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며 고통과 슬픔을 당하기를 원하면 원망과 불평을 하십시오. 선택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시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 하시니이다.”이스라엘이 찬송할 때 그 가운데 주님이 와 계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와 계시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살전5: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에요. 사람의 뜻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 일을 힘껏 행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큰 은총과 축복과 영광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담과 하와 이후로 우리들은 끊임없는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영적전쟁에 패배해서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마귀의 암시를 받아서 원망과 불평으로 탄식하다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처참한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오늘날 구원받은 우리들도 끊임없이 마귀의 암시와 유혹에 넘어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쉽게 하는 심리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마음을 점령하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힘을 주셔서 원망과 불평할 곳에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도와 주시 옵소서. 원망과 불평을 택하지 말고 감사와 찬양을 택하므로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게 하여 주시 옵시고 하늘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