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6. 부활 제4주간 금요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살아 행복하고, 죽어 구원 받는
옛날 형제들을 양성할 때 많이 얘기한 것이 성숙입니다.
양성이란 미성숙한 형제를 성숙한 형제로 키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성숙과 미성숙을 얘기하면서
제일 먼저 얘기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있느냐, 있다면 뭐냐고 끈질기게 물었습니다.
바꿔 얘기하면 왜 사냐고 묻는 것이지요.
왜 사는지를 알아야 어떻게 사는지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성숙하고 방황하는 인생은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방황이란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는 것인데
목적이 뚜렷이 없으니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까?
출가해야 하는데 가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절에 가서 수행하려는 뚜렷한 목적으로 집을 나서면 출가인데
목적도 이유도 없이 집이 싫어서 무작정 집을 나서면 가출이지요.
그리고 가출하여 방황하는 미성숙한 인생은 열심히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갈 데가 없는데 어떻게 열심히 갈 수 있습니까?
딱히 갈 데가 없으니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어슬렁거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떤 목적이든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야 열심히 살 수 있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사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그 목적이 단기적 목적입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는 대학 가는 것이 목적이고,
대학 가서는 취직하는 것이 목적이고,
취직해서는 결혼하고 애 낳고 알콩달콩 사는 것이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 버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죽는 것입니까?
죽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적입니까?
일찍이 저는 이 인생 문제로 오랫동안 고뇌와 방황을 했고
그 인생길을 찾고자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을 찾다가 10여 년 만에 찾은 목적이
바로 사는 동안 ‘행복한 것’, 죽어서 ‘구원받는 것’이고,
행복과 구원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이 행복이요,
죽어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가는 이 길에 길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왜 사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찾기 위해 석가에게도 가고,
힌두 명상가들에게도 가고, 노자 공자에게도 갔지만
그 길을 찾지 못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 길을 찾고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오늘 주님 말씀이 너무 소중하고 일생 감사하는 저인데
여러분에게도 이 말씀이 그런 말씀이기를 비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