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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롤라사와 포드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GT 씨리즈
포드의 8기통 엔진을 그들의 미드십 롤라 Mk 6(롤라 GT로도 알려진)에 사용한 경험이 있었기 대문에 롤라의 제안이 선택되었음은 앞선 소개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그 당시에 가장 진보된 경주용 차량이었고 1963년 르망에서 주목할 만한 성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롤라 자동차의 소유주이자 수석 설계자인 에릭 브로아들리는 롤라 자동차의 인력을 제외하고 짧은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그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데 동의하였다.
[포드사의 첫번째 스포츠차 모델은 롤라 Mk 6(롤라 GT로도 알려진) 기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FORD GT40 MK1 이였다. 이 차량은 이후 이어지는 포드의 전설의 기술적 기반이 된 타입이다]
에릭 브로아들리의 협상은 포드와 브로아들리가 일년동안 공동 작업하는 것과 두 대의 롤라 Mk6 차체를 포드에게 판매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개발 팀을 구성하기 위해, 포드는 전 아스톤 마틴 팀의 매니저인 존 웨이어를 고용하였다. 포드 자동차의 엔지니어인 로이 룬은 영국으로 보내졌다;( 그는 1.7L 4기통의 엔진을 가지는 미드십 무스탕 I 컨셉트 자동차를 설계한 적이 있었다. 무스탕 I에 장착된 엔진이 작기는 하지만, 룬은 디어본에서 유일하게 미드십 자동차에 대한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었다. )
[포드GT40 모델은 지극히 미국적인 설계디자인을 취하고 있으며 강력한 엔진과 적절한 무게배분을 맞춘 당대 최고의 스포츠카를 만드는데 주력으로 했다]
브로아들리, 룬 그리고 웨이어는 Bromley 에 있는 롤라 공장에서 새로운 자동차를 위한 작업을 시작하였다. 1963년 말 이 팀은 히드로 공항 근처의 Slough로 이동했다. 포드는 웨이어의 지시에 따라 이 프로젝트를 관리할 새로운 자회사 Ford Advanced Vehicles Ltd를 설립했다.
코벤트리의 아비 패널에 의해 만들어진 첫 번째 차체가 1963년 3월 16일에 전달되었다. 첫 번째 “포드 GT”인 GT/101은 영국에서 4월 1일에 공개되었고 직후 뉴욕에 전시되었다.
[GT40에 탑재된 엔진은 포드사의 V8 엔진에 기반을 둔 7000cc급의 가솔린 엔진으로 출력과 힘이 아주 좋았다]
Lola GT와 1963년 인디 500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2등인 1인승 Lotus 29에도 사용된 4.2L Fairlane 엔진과 Colotti 변속기를 장착하였다.(DOHC 헤드 설계가 후반기에 사용되었고 1965년에 Lotus 38로 우승하였다.)
포드 GT40은 1964년 5월에 Nürburgring의 1000km 경주에 처음으로 출전하여초반 2위를 차지하였으나 현가장치 부의 파손으로 리타이어하였다. 3주 뒤 24시간 르망 레이스에서, Ginther/Gregory의 차가 두 번째 바퀴를 돌아 첫번째 정비때까지 선두에 나서긴 했지만, 출전한 세 대 모두 리타이어한다. 1965년 2월에 Ken Miles와 Lloyd Ruby는 셀비 어메리칸이 데이토나 2000km에서 우승하기 위해 GT40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964년과 1965년의 경험을 통해 7000cc 엔진의 Mk II 는1966년 24시간 르망 레이스에서 1-2-3위를 차지하였다.
[7000cc 엔진을 장착한 GT40 MkII 는1966년 24시간 르망 레이스에서 1-2-3위를 차지하여 그 성능적 우수함을 서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최종 결승점에서는 흐린 날씨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마지막 시간대에, 뉴질랜드인 브루스 맥라렌과 크리스 아몬이 모는 포드 GT는 영국인 켄 마일스와 뉴질랜드인 대니 흄이 모는 포드 GT를 가까이 쫓고 있었다. 포드 팀은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1966년 1-2-3위 석패후에도 포드사의 GT40 씨리즈는 1967년과 1968년 대회까지 총 4년동안 우승하여 페라리와 포르쉐등이 독점하고 있던 경주용 자동차 시장의 판도에 큰 영향을 끼치기 계기과 되었다]
그들은 드라이버로 하여금 자리를 지키게 하여 한 대 혹은 두 대 모두 고장이 나거나 충돌할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한 대의 드라이버들에게는 아주 불운해질 마지막 지시를 드라이버에게 전달했다. 또는 그들은 멕라렌/아몬과 마일스/흄의 차량이 옆에서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하게 할 수도 있었다.
팀의 마지막 결정은 마지막 정비를 위해 두 대가 들어 오기 직전에 멕라렌과 마일스에게 전달되었다. 결승 직후 르망 레이스의 주최자인 Automobile Club de l'Ouest (ACO)에서 출발 지점에서 위치의 차이가 결승점에서 접전을 설명한다고 알려왔다. 이는 흄과 마일스의 차량과 약 60피트(18m) 뒤에서 출발한 멕라렌/아몬의 차량이 24시간 동안 조금 더 먼 거리를 달렸으므로 그들이 승자라는 의미이다. 두번째로, 포드가 후에 인정했듯이 수석 드라이버인 마일스와 껄끄러운 관계가 경영진을 어렵게 했다. 그들은 때때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일했던 우수한 드라이버에게 보상할 수도 있었으나 포드 프로그램에 대한 기여도는 낮으나 좀 더 다루기 쉬웠던 드라이버(맥라렌/아몬)을 선택할 수 있었다. 포드는 조정된 결승 사진을 지지하였지만, 그의 프로그램에 대한 헌신에도 이러한 결정에 깊은 쓴맛을 느껴야 했던 마일스는 그에 대한 항의로 갑자기 결승점 직전에 속도를 줄여 맥라렌이 결승선을 먼저 지나도록 했다. 유감스럽고 얄궂게도 마일스는 2달 뒤 테스트 중 사고로 죽고 만다.
마일스는 그의 유일무이한 세브링, 데이토나 그리고 르망에서의 우승을 동년도에 이루는 것을 눈 앞에 두고 죽고 말았다.
마일스의 죽음은 GT40 특유의 형상을 여럿 가진 포드의 “J-car”에서 일어났다. 이 차량은 알류미늄 허니컴 차체 구조와 “kammback”(역자 주: 독일의 Kamm에 의해 제안된 공기역학적 형상) 공기역학 이론을 적용한 브래드밴(역자 주: 식빵 모양을 닮은 차체 때문에 생긴 말) 형상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불행히도, 치명적인 마일스의 사고는 적어도 증명되지 않은 J-car의 공기역학적 설계에 부분적으로 기여했다.
[FORD GT Mk IV는 는 Mk II 를 새로운 규정에 맞추어 제설계한 차종이다]
그리고 팀은 차량에 대한 완전한 재설계를 수행하였고 이는 Mk IV로 알려진다. 새롭게 설계된 Mk II의 엔진과 새로운 차체와 바디를 가진 Mk IV는 다음 해에 우승한다(네 대의 Mk IV, 세 대의 Mk II 그리고 세 대의 Mk I이 경주에 참가함). 경주에서 높은 속도는 1968년도에 이미 영향을 준 규정의 변화로 이어져 졌다. 시제 차량의 배기량은 Formula One과 같이 3.0L로 제한되었다.
이로 인해 Chaparral과 Mk.IV를 비롯하여 12기통 페라리 330P도 퇴출되었다. 적어도 50대의 차량이 제조된 GT40이나 Lola T70은 최대 5.0L의 배기량까지 허용되었다.
1968년도의 경주에서 존 웨이어가 개량한 4.7L Mk I은 24시간 르망 레이스에서 연약하고 작은 시제차량들과 경쟁하여 승리한다. 이러한 결과는 GT40으로 다른 네 번의 라운드에서 승리를 추가하여 1968년 국제 챔피언쉽에서 포드에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GT40에 장착된 트윈터보의 출력은 굉장한 것이라 동영상과 같은 우렁찬 소리와 고속 질주가 가능하다]
GT40을 3.0L 엔진으로 교체한 Ford P68은 참담한 실패로 나타났다. 1969년, 더욱 경험을 쌓은 시제차량들과 새롭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4.5L 수평 12기통 엔진의 포르쉐 917과 상대하여 승자인 Ickx/Oliver는 이미 구식화된 GT40(1968년에 우승한 전설적인 GT40P/1075)와 함께 3.0L 포르쉐 908을 단지 수초 차이로 패배시킨다. 레이스 막판에 포르쉐 차량의 브레이크 마모와 패드를 교체하지 않은 결정 이외에도 긴장하지 않고 주행한 두 드라이버와 Jacky Ickx(그 당시 르망의 루키였던)에 의한 영웅적인 노력이 승리의 조합이었다. Jacky Ickx는 후에 르망에서 다섯 번 더 우승한다.
[GT40을 3.0L 엔진으로 교체한 Ford P68은 참담한 실패로 나타났다.하지만 1969년, 더욱 경험을 쌓은 시제차량들과 새롭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4.5L 수평 12기통 엔진의 포르쉐 917과 상대하여 승자인 Ickx/Oliver는 이미 구식화된 GT40(1968년에 우승한 전설적인 GT40P/1075)와 함께 3.0L 포르쉐 908을 단지 수초 차이로 패배시키기 이른다]
1970년 개선된 포르쉐 917은 레이스를 압도했고 GT40은 구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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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사는 결국 자동차계의 지존이 불리는 페라리를 능가하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성공으로 이끌게 됩니다.
[FORD GT40 MkII 는 성능면에서나 디자인면서서가 역대 GT40 씨리즈중 최고의 기체로 인정받고 있으며 포드사의 GT40의 대표적인 기체라인을 보여주는 멋진 자동차중 하나이다]
1번 우승하기도 힘들다는 르망24 대회에서 1965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68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를 이끌어 내게 됩니다. 이중 1966년 대회에서는 1-2-3위를 모두 GT40이 차지하는 영광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 이때 투입된 차량이 GT40 Mk2 입니다.)
[FORD GT40 MkII 에 장착되는 7000 cc급의 V12 엔진 이는 포드사의 걸작 엔진중 하나인 V8 엔진을 기반으로 개량된 엔진으로 (427 CID) 타입 엔진으로 불린다 이 엔진을 장착한 3기종이 1966년 대회에서 나란히 1-2-3위를 하여 우수한 성능을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는 자동차계의 전대미문의 엄청난 파란이였고 포드사의 기술력을 세계만방에 알린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중 1966년 출전한 GT40 Mk2는 최고 평균 속도를 갈아치우면서 1, 2, 3위 모두를 석권하는 파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1966년 르망24 대회에서 코너를 돌아 결승점으로 나란히 들어오는 GT40 Mk2의 모습]
당시 출전했던 페라리의 평균 시속이 1966년 P3와 1967년 P4을 비교해도 310km/h였던 것이 비해 1966년 325km/h, 1967년에는 340km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매우 높은 기록이었습니다.
l Various versions
1. GT MKI
Mk I은 오리지날 포드 GT40이다. 초기의 시제차량은 4.2L(260 cu.in) 엔진을 장착하였고 양산형은 포드 무스탕에도 사용된 4.6L(289cu.in) 엔진을 장착한다. 몇몇 시제 모델은 로드스터형 차체 구조를 가진다.
포드 X1은 1965년 가을 CanAm의 선구자인 북미 프로 시리즈에 출품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드스터 차량으로 브루스 맥라렌 팀에 소속되어 크리스 아몬이 운전했다. 이 차는 Abbey Panels에서 만들어진 알루미늄 차체에 4.6L(289ci) 엔진을 처음에 장착했다. 이 차량의 실제 목적은 Kar Kraft, Shelby와 McLaren에 의해 수행된 개선사항들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Hewland LG500과 적어도 하나의 자동 기어 박스를 비롯한 몇 가지 기어박스가 사용되었다. 나중에 7.0L(427ci) 엔진과 표준 4단 Kar Kraft 기어박스를 가진 Mk II 사양으로 개조되나, 지붕이 없는 경량 차체 구조와 같은 특징들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차량은 1966년 12시간 세브링 레이스에 출전하였다.
2.GT MKII
Mk II는 포드 Galaxie에 사용된 7.0L(427 CID) 엔진이 장착되었다.
1966년 르망대회에 출전한 GT40 Mk2가 최고 평균 속도를 갈아치우면서 1, 2, 3위 모두를 석권하는 파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1967년 데이토나를 위해 두 대의 Mk II 모델(1016과 1047번 차체)가 머큐리 7.0L 엔진을 장착하도록 개조되었다.
머큐리는 포드 자동차의 한 부서이고 머큐리 427은 다른 로고를 가지는 포드의 차량과 동일한 엔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변속기 부분에 잘못 열처리된 축으로 인해 모두 탈락하였고 페라리가 1-2-3등을 모두 차지한다.
3, GT Mk III
[2005년식 GT40 (빨간색) 과 나란히 질주중인 FORD GT40 MkIII(백색차량)]
Mk III는 일반 차량의 형태로 7대가 만들어졌다. 이 차량은 네 개의 헤드라이트가 있고 수하물을 적재하기 위해 차체 뒷부분이 연장되었다. 4.6L엔진은 335 bhp(250kW)로 조절되었고 현가장치도 부드럽게 변경하였다. 변속 레버는 중앙으로 옮겨졌고 핸들을 차량의 왼쪽에 옮기는 것도 가능해졌다. 가장 유명한 Mk III는 1968년 오스트리아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역자 주: 유명한 지휘자)에게 전달된 푸른 색 왼쪽에 핸들이 달린 모델인 GT40 M31105이다. Mk III는 예술적인 매력(레이싱 모델과는 확연히 다르게 보이는)이 없었기 대문에, 많은 고객들은 GT40을 도로 주행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Wyer Ltd사에서 구입할 수 있는 Mk I선택하였다.
[MkIII 타입은 전설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카라얀의 애마로 더 유명했다. 비슷한 경우로 국내에는 탤런트 겸 영화배우인 박상민씨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를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더 나은 공기 역학적 특성과 경량인 차량을 개발하기 위해 7리터 엔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차량의 나머지 부분을 재설계하기로 결정하였다. 차량을 좀 더 집 안으로 가져 오고 영국 회사와의 협력을 줄이기 위해, Ford Advanced Vehicles사는 존 웨이어에게 팔렸고 포드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차를 설계하여 포드의 자회사인 Ed Hull의 지휘하에 있는 Kar Kraft에서 생산하였다. 경량이지만, 강성이 큰 터브를 구성하는데 사용되는 허니컴 알루미늄 패널을 접합하는 새로운 기법의 전문가인 Brunswick Aircraft Corporation사와도 협력 관계에 있었다. 이 차량은 새롭고 좀 더 자유로운 경주용 자동차의 조립을 위한 색인 J 규제안을 충분히 사용하여 J-car로 알려지게 된다.
첫 번째 J-car는 1966년 3월에 완성되어 그 해에 르망에 출전하기 위해 최단 시간 안에 준비된다. 터브의 무게는 단지 86lb(39kg)이고 전체 차량의 무게는 단지 2660lb(1210kg)으로 Mk II보다 300lb(140kg) 더 가볍다. 그러나, 신뢰성이 증명되었다는 이유로 Mk II를 출전 시키기로 결정되었고 나머지 시즌에도 J-car에 대한 개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음의 르망에서, J-car에 대한 개발 프로그램은 재개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차량이 만들어졌다. 1966년 8월 테스트 기간 중 Riverside International Raceway에서 Ken Miles가 운전하고 있을 때 자동차가 1마일 동안 직선인 Riverside의 고속 구간 끝부분에서 갑자기 제어가 되지 않았다.
허니컴 차체는 설계 목표를 충족하지 못하고 충격으로 부서졌다. 불길이 치솟았고 Miles는 죽고 말았다. 고유한 위가 평평한 브래드밴형태의 공기 역학적 형상을 가진 차는 스포일러(역자 주: 경주차의 차체가 고속 주행시 떠오르는 것을 막는 장치, 네이버 사전 발췌)가 없어 추가적인 양력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더욱 보수적이지만, 더욱 현저하게 공기역학을 고려한 차체가 Mk IV를 위해 설계되었다. Mk IV는 단지 두 번의 레이스에만 참가하지만,(세브링 1967과 르망 1967) 모두 우승한다.
4, GT Mk IV
[Mk IV는 Mk II와 동일한 7.0L의 엔진을 사용하고 강화된 J-car의 차체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엔진을 제외하고 Mk IV는 차체와 몸체가 다른 GT40과 완전히 다른 차량이다. 즉 안정성을 매우 강화시킨 타입이라 할수 있다]
Mk IV는 Mk II와 동일한 7.0L의 엔진을 사용하고 강화된 J-car의 차체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엔진을 제외하고 Mk IV는 차체와 몸체가 다른 GT40과 완전히 다른 차량이다. 마일스의 사고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로 팀은 안정성은 훨씬 더 뛰어나지만, 허니컴 패널 구조를 통해 얻은 경량 효과를 대부분 상실하는 NASCAR 스타일의 강철제 튜브 롤 케이지를 Mk. IV에 설치하였다. Dan Gurney는 페라리보다 600파운드나 더 나가는 Mk IV의 무게에 대해 종종 불평했다. 롤 케이지의 설치는 1967년 르망에서 Mk. IV를 타고 심하게 충돌한 Mario Andretti가 목숨을 구하고 경상을 입는데 도움을 주어 강한 신뢰를 주었다.
The Ford G7A was a CanAm car using the J chassis. Unlike the earlier Mk.I,II and III cars, which were entirely British, the Ford J and Mk. IV were built in America by Shelby. 포드 G7A는 J-car 차체를 사용한 CanAm의 차량이다. 영국에서 완성된 기존의 Mk. I, II와 III와는 다르게 포드 J와 Mk. IV는 미국에서 셀비사에 의해 조립된다.
5. Ford GT
[오늘날의 FORD GT 씨리즈는 좀더 대중에게 어필하기 쉬운 디자인과 가격으로 다가서고 있다사진의 Ford GT40 road version이 그중 하나..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이 쉽게 구입할수 있는 그런 가격은 절대 아니다]
1995년에 디트로이트 모터 쇼에서 포드 GT90 컨셉트가 전시되었고 2002년 쇼에서 GT40의 컨셉트 카가 포드에 의해 공개되었다.
오리지날 차량과 비슷한 형상을 가지고 있으나, 더 커지고 넓어지고 특히 높이가 원래의 40인치(1.02m)에서 더 높아졌다.- 잠정적인 명칭은 결과적으로 GT43 이어 세 대의 시제 차량이 2003년 포드사 10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2004년 가을에 포드 GT가 고객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포드 GT는 포드 Wixom 공장에서 조립되고 미시간주 트로이에 위치한 협력사인 Saleen Special Vehicles 공장에서 도색하였다.
1980년대에 GT40을 만들었고 그 당시 상표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던 영국 회사인 Safir Engineering은 생산을 완료한 뒤 남는 부품과 공구, 설계와 상표를 Safir GT40 Spares라 불리는 오하이오의 작은 회사에 판매한다.
Safir GT40 Spares는 최초 2002년 쇼의 차량에 대해 GT40에 대한 상표를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나, 포드가 이를 양산하기로 결정했을 때 둘 사이의 협상은 결렬된다.
그 결과로 새로운 포드 GT는 GT40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다. Safir GT40 Spares사가 권리에 대해 4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밝혀진 바는 없다. Safir GT40 Spares의 파트너는 포드가 Safir의 8만 달러 제안에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계약이 만료되어 더이상 포드는 GT40 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할수 없다 대신 GT70 과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 설계 자체는 과거의 멋진 라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사진은 2003년도에 제작된 GT70 씨리즈들로 이는 MK2 의 디자인을 세련되게 다듬은 최신 GT 씨리즈 차량이다]
이후의 모델이나 시제 차량은 포드 GT라 불리기는 하지만, GT90이나 GT70과 같이 다른 숫자를 사용하고 있다. GT40이라는 명칭은 현재 남 아프리카의 Hi-Tech에 의해 만들어 지고 Superformance사에서 수입하는 Pathfinder Motorsports GT40/R Competition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또한 GT40의 스트리트 버전의 모델도 만들고 있다.
번역 정리 RAINY22 [권성훈]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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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자동차 저력을 보여준 명차중 하나
포드 GT40 씨리즈는 유럽제 경주용 자동차들이 각종 대회를 흽쓸던 1960년대 미국자동차의 저력을 보여준 명차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페라리’ 로 대표되는 콧대높은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를 단번에 꺽어 통쾌한 승리를 그것도 4년 연속이나 이루었다는 점은 기적이자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고 볼 수 있으며 실제로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스티브 맥퀸의 르망 (1971))
포드사의 GT40 씨리즈는 특유한 디자인과 철저하게 승리를 이루기 위한 철저한 설계 그리고 강력한 엔진덕에 4년 연속 그것도 1-2-3위를 모두 점령하는 우수한 자동차로 태어나게 됩니다.
[나란히 골인점을 통과하는 1966년 대회 당시 GT40 MK2 들 당시 1-2-3위를 모두 흽쓸어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영광도 잠시.. 1968부터 새로운 경기규정이 적용되면서 페라리를 비롯 엔진출력등의 제한을 두게 되면서 포드 GT씨리즈 역시 찬란한 역사속으로 묻히고 맙니다.
[운전석의 모습 경주용 자동차에 맞게 심플하면서 운전에 적합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포드사의 GT씨리즈는 여전히 명품 스포츠카를 선호하는 매니아들에게는 꾸준하게 팔리는 명품 자동차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대량생산을 하는 일반 자동차와는 달리 이런 스포츠카는 많아봐야 50대 미만의 한정생산만을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포드사의 GT40 의 유럽자동차들의 멋진 라인과는 다르게 미국자동차 라인으로 대표되는 강한 이미지의 그리고 세련된 기체라인으로 인기가 있으며 특히 특유의 신뢰성이 우수한 강력한 엔진과 넓은 차체로 인해 여전히 고가에 팔리고 있는 인기 스포츠카중 하나 입니다.
[ FORD GT40 은 전설로 불리는 자동차계의 신화적인 차종으로 미국 자동차 기술을 대표하는 미국인의 자존심과 같은 자동차라 할수 있다]
그중 1966년 르망24 대회를 통해 소개된 GT40 Mk2 버전은 1966년 1-2-3위 모두 우승이라는 진귀한 기록도 기록이지만 강인한 남성의 느낌을 주는 특유의 기체 라인으로 더 유명한 GT 씨리즈중 하나 입니다.
현재 포드사에서는 더 이상의 GT40 이라는 명칭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계약이 완료되었기 때문이죠.. 대신 2003년과 재판된 포드GT 씨리즈는 GT70 이란 명칭으로 포드사의 찬란했던 괴거의 명차들을 소량 재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이 역시 업체비밀이라 정확한 수량은 파악되지 않으나 극소량으로 엄청난 가격으로 모두 팔렸다고 하네요..
어찌되었던 포드 GT40 씨리즈는 명차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이후에도 역사상으로 찬란하게 남을 이름으로 영원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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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싸이트
트럼페터 홈페이지
(http://www.trumpeter-china.com/war513/products/en_message.asp?id=6)
미라지의 콤프방 (www.compmania.co.kr)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위키백과사전 영문판 (http://en.wikipedia.org/wiki/Ford_GT)
http://en.wikipedia.org/wiki/Ford_GT40
* 자료번역에 큰 도움을 주신
RAINY22 [권성훈]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참고서적
* Wrighten By Mirageknight (2009.12.1 ver 1.0) *
(본 게시물의 권리는 미라지콤프(www.compmania.co.kr)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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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립성은 상당히 좋습니다. 락스 준비는 필수, 추가 디테일 좀 하고 하우스오브칼라 제품으로 도색해 볼까 생각중입니다.
이차 때문에 Tamiya HG Trigger Type Airbrush 3호 중고 구입했습니다.
아!시제모시고 왔군요 저는 회사가 바빠서 올핸 참석못했는데...PS2게임 그란투리스모4에서 오프닝을 장식한 멋진차죠^^미라지님 덕분에 좋은정보 얻고갑니다~~
2003년에 재판 되었군요. 돈좀 모으면 한대 장만해 봐야겠네요. 전 유럽제보단 미국제 심장이 좋거덩요~ ㅋㅋㅋㅋ
예전에 해외토픽에 잠시 나온적이 있었는데 그땐 출고식에 왜 저렇게 환호하는지 몰랐는데 지금다시보니 근 20년만에 재판이라 환호할만 하더군요..
미국하면 역시 머슬카이지만 GT40는 정말 미국에서 나올 수 없는 명차 중에 명차죠. 곡선미가 지금보다 끝내줍니다...
유럽차들의 곡선라인과는 확실히 다른 뭔가 넘성적인 터프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암튼 독특한 느낌의 멋진 차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