莫峴留幕
至 墟
莫隱峴<註1>豁背巖麓
節侯異彩壹幅畵
山鵲此彼谷亂奔
徠迬行客古賢談
張主留幕<註2>茶吟瞥
左靑躱鎭旣眼入
右白疇墻財信護
目前錦鳳翊縮座
飛龍頸轉求意珠
막현 유막 지허/박 대성
막은대미재<註1>틔운 뒷 바위
산기슭은
절기 따라 다채로운 한폭
그림 이구나 !
산까치 이산저산 시끄럽게
분주하고
오고가는 길손들 옛 선현들
얘기하네
장주유막(註2)에서 차를 마시며
언뜻 바라보니
좌청은 빗겨 눌러서 이미
안중에 와 있고
우백은 산으로 담장을 둘러
재물과 신의가 온전하네
눈앞의 금봉산은 날개를
웅크리고 앉아있고
나르는 청룡은 고개를 돌려
여의주를 찾는듯 !
<註1>莫隱峴(막은대미 재)
영남대로상의 5대 역참 < 경기도,광주 *경안역/충청도,충주*연원역/경상도,문경,*유곡역/ 청도, *성현역/ 양산, *황산역.>중 하나인 연원도(連原道)역참은 지금의 충주시 연수동 동편마을에 있었고 그곳에서 용탄진(龍灘津)과 동량면 조동으로 통하던 옛고갯길.
충주읍성에서 용탄진(龍灘津)으로 가던 지름길 이였으며 3-4십년전 용탄과 동량면사람들이 이고개를 넘나들던 애환의 고개이다. 삼척면 명서리와 방대를 거쳐 제천 백운과 신림으로 동량면 하천리와 금잠을 거쳐 금성 청풍으로가는 첩경이였으나 큰길이 생기고 교통수단의 발달로 3-40년전 폐현(廢峴) 되었다.
<註2>張主留幕(장주유막)
연수동 동편에 누대를 세거(世居)하여온 행정사무관 고(故) 장지동(張志同<세명(世名) 세봉(世奉)>박사(행정학)가 인동장씨 씨족(氏族)문중산 경계(境界)인근의 전답을 사들이고 그의 장자(長子)인 장훈기 신의건설 대표가 2십여년전 건축을하고(사진속 뒷쪽 건물) 앞 동(棟)을 산중유막(山中留幕)이라 현 판(懸板)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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