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12월 13일 화요일 맑음
“아이고, 이를 어째 ? 7시가 넘었어. 이런 날은 처음이야. 여보, 뭐해. 충희 깨워야지. 큰 일 났어” 속사포로 쏴대더니 샤워하러 줄행랑이다.
시간을 보니 7시 10분. 진짜 처음이다. 어젯밤에 무리하더니....
“충희야. 충정아. 늦었어. 빨리 일어나. 실제상황이야” 나도 동동 거린다.
충희가 제일 문제다. 지각이면 벌점이라던데....
“아이, 왜 인제 깨웠어 ?” 온갖 불평을 가 쏟아낸다. 나도 그 땐 그랬다.
“미안해. 아빠가 태워다 줄게. 빨리 옷 입어. 아빠가 도와줄 게”
“태워다 줄거야 ? ” 그 때서야 입을 다문다.
눈꼽도 떼지 못한 충희를 태우고 명석고로 직행.
교문 앞에 당도하니 저기서 뛰어 오는 한 두명이 보인다.
‘아자 ! 꼴찌는 면했다.’ 잠도 덜 깬 충희를 밀어 넣었다
“여보, 나 명석고야. 1층 현관 앞으로 나와요”
안사람 태우고 비래초로 ....
“고구마 구운 것 있으니까 전자렌지에 1분만 데워서 먹어요” 그 경황에 그래도 남편은 챙긴다. “충정이는 ?” “계란후라이 해 줬어”
“충정아. 아빠 비래초야. 1층 현관 앞으로 나와. 태워다 줄게”
정신이 실종되었던 아침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듯하다.
한 참을 쉬다가 삼락회 총회 참석을 위해 집을 나섰다.
삼락회는 퇴직 교원들의 모임이다. 친구가 사무처장인데 신규 회원 모집에 애를 먹는 것을 보고 도와줄 겸해서 가입을 했다. 친구의 어려움은 내 어려움이다.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고.... 오늘이 첫 총회 날이라 정산의 일도 하루 미루고 참석하는 것이다.
아는 선배 분들이 많이 눈에 띄인다.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올 해 94세이신 박민순 전 시교육청 체육과장님도 오셨다.
지금까지 내가 뵌 중에 제일 열심이시고 청렴하셨던 분이라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 ?”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아, 자네가 8월에 퇴직했다는 얘기 들었어, 잘 왔어”
“예, 저를 기억하고 계세요 ?” 교사 시절 저만큼 높으신 분이셔서 가까이 해 보지도 못한 분이 나를 기억하셔서 적잖이 놀랐다. 더군다나 그 분은 중등이고 나는 초등인지라 그 거리는 까마득히 멀었었는데.....
“그럼, 자넨 워낙 열심히 했잖아”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과장님과 나의 DNA가 비슷해서 서로 잊지 못할 고리가 있었나 보다.
‘과장님을 뵌 것만으로도 오늘 할 일은 다했다’ 생각될 정도로...
안으로 들어가니 그 분들이 퇴직하신 후 처음 뵙는 반가운 분들이 여러분이었다. 초임자로서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이기재 형님이나 이은숙 누님도 뵈었다. 여전히 젊으신 모습으로 반겨주신다.
“잘 왔어” “반가워” “여기서 보는군” “그래 퇴직 후 뭐하고 있어 ?”
정다운 인사가 오간다. 현직에 있을 때의 만남보다 뭔가 밑바닥에 깔림이 있는 게 느껴졌다. ‘삼락회에 가입하길 잘 했구나’
식순에 삼락장 증정이란 순서가 있다. ‘이 게 뭐하는 건가 ?’
올 해 80이 되시는 분에게 예쁜, 빨간 지팡이를 증정하는 행사였다.
그 지팡이 이름을 삼락장이라 하고, 받는 분이 고마워 하신다.
‘나도 80이 되면 저 걸 받게 되겠네.
삼락회원의 구성을 보니 내가 제일 막내이고, 가장 어르신께서는 96세 시란다.
30여년의 간격이니 한 세대 차이가 넘는다.
그런 분들이 진지하게 대전교육 발전을 이야기 하시는 것을 보면서 ‘대단한 모임이다.’ ‘훌륭한 분들이다’ ‘저런 분들이 계셔서 우리나라가 발전했구나’를 느꼈다.
점심 식사 후 정산으로 향했다. 짐이 무거운 차인지라 속도를 내지 않았다.
시골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팔자인가 보다. 장모님이 안 계시다. 경로당에 가신 모양이다.
엊그제 사다드린 돼지머리를 잘 드셨는지 궁금했다.
저건너 매실밭의 거름 펴기를 하나하나 해 나갔다.
금새 어두워진다
‘내일 더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