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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살이 되고 싶다 외 4편 윤채영
전신이 아프단 말 겉귀로 흘려듣다가 엄마 발을 잡는 순간 화들짝 놀라다 달려든 낯선 이 느낌, 명주고름 보다 고운 그랬지 걸음을 멈춘 지가 꽤 오래되었지 노동 끝낸 굳은살은 어디로 비켜서고 생경한 새 살들이 주욱 자리를 잡았구나 겉귀 스친 말들과 게으른 내 몸뚱이 그 새를 비집고 무성히 자란 새살 이쯤서 엄마 두 발의 굳은살이 되고 싶다
굳은살
그 때였지 피돌이를 멈춘 헐렁한 저녁 한때 감각마저 거두어 간 어디쯤의 빈집 예리한 날을 세우고 틈을 보던 어느 날 뒤틀린 걸음이 남긴 오류의 흔적들 파내고 또 파내어도 생살에는 닿지 않아 깔창을 돋우고 다시 긴 잠에 들고 싶던
이불을 털다가
이월도 끝날 무렵 하릴없는 저녁답에 이불이나 털자하고 배란다문 활짝 열고 까치발 곧추세우고 허공에다 매다친다 잡동사니 먼지들이 훌훌 떠나간다 떠날 것 다 갔거니 방안에 들여 보니 실땀에 끼어 버팅긴 하얀 머리칼 한 올 욱신, 눈뿌리가 아프다 하얀 머리칼 뜨끔, 목젖이 아린다 하얀 머리칼 오월에 기어이 놓친 어머니 호적부
석등에 기대어
합천 어느 골짜기 장년을 넘어선 느티나무 그 옆에 또 그 또래 회화나무 옆 기운 듯 그도 아닌 듯 외로운 석등 하나 어느 생엔가 가을 비 뿌리는 저녁답에 내 이 석등에 곤한 몸 기대어 서면 손차양 그늘을 따라 당겨오는 한 사람
베네딕도 수도원 주방직원 모집
베네딕도 수도원 주방직원 모집하다 자격, 오십 세 이상 가톨릭 신자 여성 나이쯤 잊고 살았던 세월 눈이 시리다 짧은 봄날 같았던 내 이름의 메일함엔 푸른 시절 삭고 있는 열지 못한 편지들 그 안에 눈 맑은 새 한 마리 이적지 앉아 있다 우두커니 비켜 선 지천명의 마른 잔 눈먼 새 그늘로 스쳐가는 세월의 뒤꼍을 여우비 잔금 한 가닥 빗금으로 긋고 간다 * 윤채영 : 2003년『열린시조』신인상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