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노동위기와 지역사회 역할
정현철 시흥안산지역지회 지회장
지난 5월, KBS와 시사인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서 코로나19 관련 대국민 의식 설문조사 진행했다. 설문결과는 의외였다. 일반적 재난시기에 나타나는 의식 흐름과는 달리 코로나19 이후 우리 국민들은 “사회적 단결이 잘되는 편이고 사회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설문 분석자들은 “우리사회가 저신뢰 사회를 벗어나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진단했다. 이 설문조사를 주관했던 시사인은 우리 사회가 ‘갈림길에 서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재난은 그냥 두면 불평등을 가속 시키는 힘이 있다. 외환위기와 국제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재난의 갈림길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 그 결과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합의가 우리 사회에 폭넓게 퍼져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어떤 길을 갈 것인지 묻고 있다.
재난의 국면처럼 우리의 선택과 걸음이 뚜렷하게 미래의 방향을 결정 짓는 상황도 드물 것이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각자 도생의 반대 길에는 연대의 길이 있다. 여기 두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 사례는 최근 상담을 받았다. 내담자는 반월공단 A회사의 사내 도급업체 B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A회사는 51명 규모로 C전자에 납품하는 2차밴더다. 51명은 생산직을 제외한 인원이다. 생산은 내담자 표현대로 하면 ‘고정일용직’(다른 표현으로는 불법파견)과 2개 도급업체에서 담당한다. A회사는 생산직 정규직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회사 상황이 어려워 지면서 연장근로, 휴일근로 유무와 관계없이 230만원 하던 월급이 깍여 220만원이 되었다. 그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B 도급업체 사장은 직원들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직원들 개개인과 도급계약을 맺자’는 것이었다. ‘월 200만원 수준으로 물량을 맞춰주겠다’고 했단다. 탐욕스러운 자본이 코로나 위기를 틈타 비정규직을 넘어 노동자성을 거세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도급계약이 맺어지면 4대보험도, 퇴직금도, 연장수당도 없는 ‘노동자 아닌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각자 도생을 넘어 사회 기본권조차 흔들려는 움직임이다.
두 번째 사례는 반월공단에서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D공장의 사례다. 코로나 초기 회사는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노조와 협의를 통해서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위기상황에서 회사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노조는 비임금성 부분을 양보하여 자금확보에 도움을 주었다. 이후 상황이 호전 되어 예상보다 빨리 경영이 정상화되었다. 그리고 노사는 머리를 맛대고 자동차 산업의 미래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 가고 있다. 노사공동으로 재난시기 고용을 유지하고, 고용안정기금을 조성해 미래 위기사항에 대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교섭이 진행중이다.
위 두 사례 중 우리는 어느 길로 가야 할까.
최근 안산에서 노동 현안이 되고 있는 곳은 홈플러스 안산점, 안산 한도병원, 한국와이퍼 등이다. 코로나19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던 유토업계를 거대한 태풍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런 와중에 홈플러스 소유주인 사모펀드 MBK는 ‘홈플러스 안산점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사모펀드가 벌이는 돈 놀음에 노동자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안산 한도병원은 비정상적인 경영을 해오던 경영진이 코로나로 인해 자금난이 심화되어 부도상황에 내몰리면서 애꿎은 직원 570여명이 임금과 퇴직금도 제대로 못받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경우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덴소자본이 멀쩡한 정규직 공장을 사외하도급화하여 비정규직 공장을 만들려고 계획하면서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시흥도 시화이마트와 신천연합병원이 코로나19 영향으로 노동자들이 불안한 상황에 내몰려 있다. 시화이마트의 성담자본은 이마트와의 계약체결을 핑계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고, 신천연합병원은 코로나 19가 경영 상황을 악화시켜 직원들 월급마저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각자의 경우는 다르지만 모두 ‘코로나19가 노동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 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각자도생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연대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8월 19일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이하 안산비정규센터) 주최로 <코로나19로 인한 안산시 노동환경 변화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토론회>(이하 토론회)가 열렸다. 코로나19로 인한 노동 환경 변화 실태를 파악하고 정책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안산비정규센터 노동자 실태 조사에는 취업자 898명, 구직자 414명, 실업자 391명으로 총 1,959명이 참여하였다. 모든 지표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코로나19로 인해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앞서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직장갑질 119, 시흥시노동자지원센터 실태조사와도 같은 결과다. 코로나19는 저임금노동자, 비정규직, 프리렌서, 특고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제도적 허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로컬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전주시의 사례가 돋보인다. 전주는 ‘해고없는 도시 전주 상생선언’을 통해 경영자금 지원, 고용유지지원, 근무인력 재배치 지원, 고용비용 절감 지원 등 각종 지원방안과 고용유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시흥시도 민주노동자 시흥연대의 요구로 ‘코로나19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선언’을 통해 350여개가 넘는 기업의 참여를 끌어내기는 했으나 후속 조치가 없어 형식적 선언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자 시흥연대에서 후속작업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으나, 시 행정부나 노사민정협의회 모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듯하다.
토론회에서 안산비정규센터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안산시 코로나19 노동환경 실태조사 및 모니터링 정례화, △취약노동자 맞춤형 지원,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안산시 고용안정 기금 조성, △‘안산시 고용안정과 일자리 대책 협의회(가)’ 구성을 제안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안산시 고용안정과 일자리 대책 협의회(가)’ 구성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홈플러스 안산점, 안산 한도병원, 한국와이퍼 등의 현안을 종합적으로 점검, 논의하고 취약 노동자 지원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는 기구가 꼭 필요한 시기다. 또한 코로나19 노동환경 실태조사와 모니터링 정례화도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이다. 중앙정부에서 내려주는 고용 관련 지원금의 활용에 대해서도 시행정부 뿐만 아니라 민간이 같이 머리를 맞대야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다.
‘안산시 고용안정 기금 조성’은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업으로 보인다. 기금 조성을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사용할 것이지 토론 과제가 많은 의제다. 안산시 비정규센터는 기금 조성방안으로 민주노총, 한국노총, 공공부문 부문 노동자들과 사용자단체가 등을 대상으로 모금하는 방법과 안산시 특별 예산을 조정해 기금을 조성하는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인 만큼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사용처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제안을 하고 있다. 필자는 기금으로 ‘안산형 상병수당’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코로나19는 상병수당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상병수당이란 업무 외 사유로 인한 부상 또는 질병으로 일을 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소득손실을 보전해주는 급여제도다. 아파도 쉴 수 없는 노동자로 인해 부천의 쿠팡 물류센터 집담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상병제도가 있었다면 실직의 위험이나 생계위험 없이 아프면 쉴 수 있었을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과 미국만 없는 제도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50년대부터 제도 시행을 권고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라는 이름으로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의 가을 대유행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등 산업구조의 변화와 기후위기와 같은 거대한 변화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이러한 재난상황에서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대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지방정부(안산시나 시흥시)의 역할이 무엇보다 절실할 때다. 지금은 바야흐로 뉴딜 시대다. 시대가 새로운 사회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을 넘어 ‘2030년 까지 탄소배출량을 50% 줄이는’ 그린뉴딜,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휴먼뉴딜, 노동기본권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늘리는 노동뉴딜을 실현하는 안산시와 시흥시를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