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문제연구의 필요성
불교와 제사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이다. 그럼 무엇을 깨달으라는 말인가? 네 자신이 불(佛) 이라는, 완전자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깨달으면 어떠한가? 불(佛) 밖에 없게 된다. 불밖에 없을 때 어떠한가. 불(佛)도 없고 중생도 없고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고, 불이 중생이고 중생이 불인 대자유가 현전한다.
이 대자유성이 중생의 아버지다. 이것이 중생의 원인인 미혹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이 대자유 영묘성(靈妙性)의 무단한 착각이 미혹의 근원이다. 그래서 삼계(三界)가 벌어지고 육도(六塗)가 벌어지고 생과 사가 있게 되고 사랑, 슬픔, 이별의 쓰라림도 사모의 애달픔도 생겨나게 된다. 나아가 죽은 자에 대한 제사도 생겨난다.
제사는 왜 지내는가?
죽으면 다 허사이긴 하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섭섭하니까 지낸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는 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제사다. 또는 자식된 도리에서 지낸다고도 한다. 이는 내심(內心)과 외견(外見)에 대한 의리와 체면을 위한 제사다. 가정의 의범(儀範)상 지낸다고 한다. 이 제사는 가범(家範)과 가정교육이 목적이다. 참으로 망인을 이익되게 하고 복되게 한다는 생각은 없다. 하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실감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육체만을 인간으로 아는 생활에서 오는 제사는 이럴 수 밖에 없다.
불교에서 제사는 으레 천도(薦度)를 의미한다. 거기에는 진리의 광명력과 삼매력, 말씀의 힘과 자비력, 여래 위신력으로 망인에게 밝음과 깨달음과 지혜와 만족을 준다. 그것은 영적이고 보다 향상되고 생활여건은 보다 복되고 자재를 얻게 되는 것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낸다. 이승의 누구를 위한다는 공리심은 사뭇 뒤의 이야기다.
광덕 큰스님 지음 행복의 법칙 p353 – p354 부록 사후문제연구의 필요성중 “불교와 제사” 에서, 불광출판사
첫댓글 추석날 아침, 조상께 올리는 차례의 의미를 새삼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고맙습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추석 연휴에도 당직을 하셨네요. 제사와 차례의 의미를 다시 새겨 봅니다. 고맙습니다._()_
추석날에도 공양 고맙습니다.
어떤 의미로 제사를 지냈나 돌이켜보며 참회합니다.
"불교에서 제사는 으레 천도(薦度)를 의미한다. 거기에는 진리의 광명력과 삼매력, 말씀의 힘과 자비력, 여래 위신력으로 망인에게 밝음과 깨달음과 지혜와 만족을 준다. 그것은 영적이고 보다 향상되고 생활여건은 보다 복되고 자재를 얻게 되는 것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낸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고맙습니다...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