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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러나 한낮의 중천에 뜬 태양은 너무 밝아 눈이 부셔서 육안으로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옛날 사람들은 태양을 열심히 관찰해서 실생활의 삶에 도움이 되게끔 하였지요. 해는 둥글게 생겼고 모양이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갑골문에서 소전까지 둥글게 그리거나 둥근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해를 그냥 둥글게만 그리기에는 좀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해를 상세히 관찰한 결과를 문자에다 반영하였습니다. 해를 자세히 살펴보면 검은 점 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것을 흑점(sun spot)이라고 하지요. 「해 일」(日)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둥근 해 안의 점은 그 흑점을 표시한 것입니다. 요즘처럼 관측기구가 발달하지도 않았고, 육안으로 보기에는 더욱 어려웠을 텐데도 태양에 흑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을 보면 천문학 수준이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태양이 농사나 모든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요? 반면에 달은 관찰하기가 쉬웠죠. 그래서인지 중국 사람들은 달속에 있는 두꺼비를 알아보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방아를 찧는 옥토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이 글자를 만들면서 달에서 착안한 것은 날마다 그 크기가 변하는 가변성이었습니다. 보름에는 완전히 둥글다가 그믐이나 초하루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지요. 달을 나타내는 문자인 「달 월」(月)자는 이런 가변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달이 해보다 다른 점을 표현한 것이지요. 달도 크기에 따라 약간 구분을 한 것 같습니다. 보통 「달 월」(月)자는 반달을 나타낸 것 같습니다. 「달 월」(月)자의 갑골문-금문-소전 달은 평균 29일이 약간 못 미치는 기간에 지구를 한 바퀴 돕니다. 보통 옛날 사람들은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을 썼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옛날 사람들도 정확한 태양력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반영한 것이 24절기입니다. 24절기는 보통 15일마다 한 번씩 오는데 15일이 24차례가 되면 360일이 됩니다. 거기에 16일마다 오도록 조정한 것 5번을 더하면 지구의 공전주기인 태양력의 날짜와 정확히 부합합니다. 옛날 사람들도 연중 밤낮의 길이가 같은 날(춘분과 추분)이라든가 밤낮이 제일 길거나 짧은 날(하지와 동지)을 정확히 알았었죠. 그리고 절기에 따라 소만에는 보리 수확을 하고 망종이 되면 벼를 심고하였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통 음력을 썼다고 착각(?)하는 것은 날자의 기록을 음력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30일 내외로 날짜를 기록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지금 우리가 쓰는 양력처럼 말입니다. 날짜를 기록하기에 24절기의 단위인 15일은 너무 짧은 주기이고, 또 60진법인 갑자(간지)는 너무 주기가 길게 되니까요.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의 기록은 달을 보고 기록을 했고, 앞으로 해야할 예정된 일은 해를 보고 정하였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해와 달이 동시에 뜨는 광경입니다. 숲에서 보는 해변이네요. 이런 현상은 아침에만 일어납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만든 글자가 바로 「아침 조」(朝)자입니다. 물론 해가 더 높이 떠올라 밝은 빛을 발하면 달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겠지요. 「아침 조」(朝)자의 갑골문-금문대전-소전 「아침 조」(朝)자의 자형을 보면 해의 아래 위로 수풀을 나타내는 요소가 표시되어 있고 해와 달이 그려져 있습니다. 조선(朝鮮)이나 우리나라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표현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위의 「아침 조」(朝)자에서 수풀을 나타내는 부분을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요? 「明」의 모양이 되겠지요? 이 글자의 훈은 「밝다」는 것이지만 실은 해와 달이 그려진 것은 아닙니다. 조각달이 창문으로 빛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조명이 워낙 발달하여 한밤중에도 불을 끈 지 5분 정도만 되면 도시의 이런저런 불빛 때문에 방안이 물건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희끄무레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달랐습니다. 조각달이라도 뜨면 창문이 훤하게 밝았죠. 반딧불이 조명과 달빛 비친 눈 조명이란 뜻의 "형창설안(螢窓雪案)"이란 말이 괜한 것이 아니지요. 「밝을 명」(明)자는 바로 조각달이 창에 비치는 모습에서 착안한 글자입니다. 바로 사진과 같은 광경일 텐데, 이를 한 구절의 시로 읊으면 어떻게 될까요. "斜月夜窓白", 곧 "비스듬히 비낀 달이 한밤중에 창문을 밝게 비춘다"가 되겠지요. 제가 지은 것이 아니고 주자의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밝을 명」(明)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밝을 명」(明)자가 만들어진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금문대전입니다. 옛날 중국에는 둥근 창을 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옹기를 창틀로 쓰기도 했는데 역시 둥글지요. 이를 옹유(甕牖)라고 합니다. 보통 가난한 선비의 집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이 가난한 선비의 집에 있는 옹기창, 곧 옹유에도 마찬가지로 빛은 밝게 비치겠지요. 그리고 이치적으로 따진다고 하더라도 해에 보름달도 아닌 조각달이 무슨 빛을 보탤 수가 있겠습니까? 해가 뜨는 광경이네요. 저도 몇 번 해돋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만 바다에서 해돋이를 볼 때는 의유당 김씨의 <동명일기>가 많이 생각납니다. 붉은 것이 떠올라 아래위가 붙었다가... 확실히 생각은 안 나지만 대충 그런 내용으로 해돋이를 묘사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나타낸 한자가 바로 「아침 단」(旦)자입니다. 「아침 단」(旦)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아침 단」(旦)자의 자형을 보면 줄곧 위의 해돋이 사진과 같은 모습을 띠다가 소전에 와서야 지평선이나 수평선을 나타내는 듯 한 일(一)자 형태의 작대기로 바뀌어 표현되었습니다. 위에서 해돋이 이야기를 잠깐 하였는데 중국에나 우리나라나 새해의 첫 해돋이에는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건 서양도 마찬가지이겠지만요. 어쨌건 간에 새해의 첫 해가 솟는 날을 동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을 포괄하는 한자 문화권에서는 원단(元旦)이라고 합니다. 뜨는 해가 있으면 지는 해도 있겠지요. 사람들은 아마 보편적으로 미래지향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해의 첫 해돋이 구경은 많이 가는데 가는 해의 마지막 해넘이를 구경한다는 말은 잘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아마 후회없는 삶을 산 사람은 해넘이도 아름답게 구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해가 수풀 사이로 막 지려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말 막」(莫)자입니다. 그러나 이 글자는 애초에 「저물 모」(暮)자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말 막, 저물」(莫, 暮)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저물 모」(暮)자의 금문대전 위 자형을 비교해보면 사실상 두 글자는 같은 글자입니다. 옛날에는 조명시설이 열악하다고 했지요. 그래서 날이 저물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던 일도 그만두고 말아야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말 막」(莫)자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원래 글자의 의미를 보존하게 위해 「해 일」(日)자를 하나 더 붙여서 뜻을 분리하였습니다. 해가 두 개 뜬다? 마치 영화 <스타 워즈>에나 나옴직한 장면이 연상됩니다. 그래도 성인이 한 말이래서 전사(傳寫)할 때 함부로 고쳐쓰지 못했던 『논어』 같은 데는 여전히 저물 모자를 「莫」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초승달이 서산 너머로 막 지고 있네요. 사진은 육안으로는 못 보는 것도 보여줍니다. 달의 지구 그림자에 가려진 부분까지도 다 보여주지요. 사진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달은 작아진 것이 아니라 일부가 그림자에 가린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더 슬림해진 달의 모습을 표현한 한자가 바로 「저녁 석」(夕)자입니다. 「저녁 석」(夕)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보름도 아닌 달빛이 희미한 저녁에는 조금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람을 식별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형체는 보이는데 정체를 알 수가 없으면 그때는 입으로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나온 한자가 바로 「이름 명」(名)자입니다. 「이름 명」(名)자의 갑골문-금문대전-소전 옛날에는 제정일치 사회였습니다. 하늘의 아들로서 나라의 가장 큰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천자(天子)로 곧 임금입니다. 옛날에 한 나라의 임금이 하는 가장 큰 일은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안을 점 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일이었던 만큼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점을 쳤습니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면 아마 정오 무렵이겠지요. 그러나 점을 치지 않는 저녁 무렵이라고 해도 정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예외의 규정을 두어 점을 쳤습니다. 이 글자가 바로 「바깥 외」(外)자입니다. 한낮이 아니라 저녁에 점을 치는 일이 예외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아래 글자의 모양은 초승달이 있는 저녁에 점을 쳐서 점괘(卜)를 얻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깥 외」(外)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한밤중입니다. 한 사람이 달을 끼고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별빛도 총총하네요. 옛날에는 밤에는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을 하다가도 밤이 되면 달을 벗삼아 집으로 돌아왔겠죠? 진나라 도연명의 <귀원전거(歸園田居)>라고 하는 시에 보면 "달을 끼고 호미를 매고 돌아온다"(帶月荷鋤歸)는 구절이 있는데, 아마 「밤 야」(夜)자를 설명하기 위해 읊은 구절이 아닌가 합니다. 「밤 야」(夜)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사람이 한쪽에는 무슨 물건을 끼고 한쪽에는 달을 나타내는 「저녁 석」(夕)자를 끼고 있는 모습이 「밤 야」(夜)자입니다. 밤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실내에서는 모르겠지만 옛날 실외에서는 아마 달 구경이 아니었을까요? 아직 주위가 밝지만 둥근 달이 떠오르는 것을 한 사람이 일망무제의 높은 곳에 올라서 구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 달 구경을 하는 글자가 바로 「바랄 망」(朢, 望)자입니다. 「바랄 망」(朢, 望)자의 갑골문 「바랄 망」(朢)자의 금문-소전 「바랄 망」(望)자의 금문-소전 「바랄 망」자는 朢과 望의 두 가지 자형이 있습니다. 위 옛 자형을 가지고 설명을 드리면 제일 위의 글자는 높은 곳에 올라선 사람이 위쪽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정면을 보는 눈인 「눈 목」(目)자를 가지고는 올려다 본다는 뜻을 표현하기가 곤란했으므로 옆에서 보는 눈을 나타내는 「신하 신」(臣)자를 쓴 것이지요. 그리고 아래쪽의 임(壬)자처럼 보이는 부분은 삐침(丿)이 사람의 몸을 간략화한 형태이고 아랫쪽의 토(土 또는 士)자는 언덕 같은 높은 곳을 나타냅니다. 그 다음 글자는 갑골문의 자형을 살리고 바라보는 대상인 월(月)자를 썼습니다. 마지막 글자는 눈을 망(亡)자로 바꾸었는데, 이는 음소로 쓰여서 소리를 나타냅니다. 둘 다 금문대전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바랄 망」자는 거의 동시에 회의자와 형성자로 분화되어 생긴 것 같습니다. 지금은 「朢」자는 서예하는 사람들이나 가끔씩 쓸까 사실상 일상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글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에 나온 한자들 중 시간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한자들을 순서대로 배열하면 어떨까요? 아마 旦-朝-暮-夕-夜의 순서가 되겠지요. 『시경』에 "숙흥야매(夙興夜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빛이 보이지 않는 새벽에 일어나 빛이 보이지 않는 밤에 잠든다"는 뜻입니다. 하지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새벽 4시 이전에 일어나 밤 10시 이후에나 잠든다는 말이지요. 저는 여름에는 숙흥야매(夙興夜寐)를 못할 것 같습니다. 겨울이라면 자신이 있습니다만... |
첫댓글 역시 사부님은 부지런하시네요 夙寐는 되는데 夙興은 도무지 안되네요. 해바라기형 기상이라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