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쳐야 미친다. 또는 미치지 않고서는 정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의 불광불급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조선시대에 최흥효란 사람이 과거를 보러 갔다가 답안지 글자 하나가 중국의 명필 왕희지보다 더 잘 쓴 것 같아
차마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피나게 연습한 덕분에 유명한 서예가가 되었습니다.
(미쳐야 미친다. 정민, 푸른 역사)
미쳐야 미친다 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실존 인물이 있는데 그는 바비 콕스입니다.
1990년도부터 2010년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감독으로 있었던
인물로서 야구에 미친 남자라는 별칭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아내인 팸 콕스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인생에서 99.75%가 야구다”
바비콕스의 머릿속에는 온통 야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콕스는 아이들과 놀아주기는커녕 줄곧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고릴라만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흐뭇한 표정을 하면서.
아내가 뭐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그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여보, 저 녀석 팔뚝 좀 봐, 어떻게 저 녀석과 계약해서
우리 팀에서 뛰게 할 수 없을까”
바비 콕스 감독은 최다 퇴장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퇴장 기록은 단순히 콕스의 다혈질이기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58회의 퇴장은 콕스 감독 특유의 리더십을 상징합니다.
심판 판정에 납득하지 못한 선수가 심판에게 항의하려고 하면 콕스는
선수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라운드로 달려 나갑니다.
심판에게 다가가서 허리춤에 손을 얹고 코가 맞닿을 정도로 붙어서 항의를 합니다.
그리고 심판으로부터 퇴장 선언을 당합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따박따박 다진 후
경기장을 빠져 나갑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라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후에 기자들이 심판 판정에 대하여 물을 때 그는“잘 모르겠다”라
답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팀의 선수들이 흥분하여 행동하다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선수들보다 앞서 심판에게 항의를 하다가 퇴장당하는 감독을 보면서,
선수들의 마음에는“감독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므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애틀랜타를 11년 연속 지구 1위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인생, 야구에서 배우다, 이용균 지음, 알렙)
인생의 99%를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채웠던 바비 콕스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선한 도전을 던져줍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로다(롬14:8下)라 말하면서도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 보다 우리 자신의 유익을 더 많이 추구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라는
물음에는 고개가 숙여지게 됩니다.
일찍이 나는 죽고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워짐을 경험했던 한국교회 초창기
목회자 가운데 최봉석 목사(최권능)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주먹깨나 자랑하며 살았던 그분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벼락에 맞아 죽는
꿈을 꾼 후 예수님을 믿고서 새로운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하루는 그가 장터에서 전도를 하다가 방탕한 시절의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최권능 목사를 보고 놀려댔습니다.
자리에 앉히고는 술을 권하고, 마시지 않으니까 입을 벌려서 억지로라도 마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마시지 않자 한 친구가 그의 얼굴에다 술잔을 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들은 이제 큰 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아는 한 최봉석은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 친구 오늘 장례 치르는 날이겠구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최권능 목사는 자기 옷을 털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히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가 하도 신기해서 “괜찮으냐, 어떻게 그렇게 참고 넘어가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최권능 목사는 “이전의 최봉석이는 다 죽었어.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전도하는 최권능이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 Azariah 님의 블로그에서 인용)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믿기 전에는 내가 나의 주인이지만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한 이후에는 나는 죽고 예수로 다시 사는 삶 이어야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얻은 인생이야 말로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