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도 잘 몰랐던 임진왜란을 종식시킨 웅치대첩
필명(여명) 김진호 / 시인 수필가(창작문학예술인협회 고문)
필자는 호남인으로 임진왜란 '웅치전투' 성지인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서 46년에 태여 났으며 웅치(곰티재) 전투에서 산화하신 선조님들이 항상 자랑스럽고 숙연하다. "필자는 충혼 행사 때 가끔은 웅치전투 충혼탑을 참배를 하곤 한다."
호남은 '일본의 침탈 강점기' 시절에도 일본 놈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동립운동을 했으며, 특히 광주학생운동이 호남이었고, "이순신장군이 말할길 호남이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다 말한 바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치, 웅치"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것도 호남인들이 우국충정으로 가장 많은 의병을 일으킨 곳도 호남인이었다.
임진왜란 일본은 유일하게 호남을 정복하지 못했다, "전북 진산군(지금은 금산) 이치 전투와 전북 완주군 소양면 웅치 전투에서 민초들이 의병을 일으켰고 ", 만약에 이치와 웅치전투에서 왜군 11만여 명을 불과 의병 1000여 명이 일본인을 척살시켜 막아냈고, '호남이 무너졌다면' 곡창지대인 김제평야가 정복되고 일본군들이 군량비를 확보했다면 또한 '이순신' 수군이 해상을 막지 못했다면 "조선은 쑥대밭이 되고 선조도 한양 도성에 돌아오질 못했을 것이다."
흔희들 임진왜란 3대 대첩은? "한산도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 " 이렇게 칭한다, 물론 아주 중요한 임진왜란 승리의 대첩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실상 임진왜란 전쟁 종지부를 치른 대첩은 '웅치대첩'이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대첩은? 임진왜란 침략을 종식시킨 웅치대첩을 포함하여 4대 대첩으로 역사에 기록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임진왜란 종지부를 치른 "웅치대첩"을 빼놓은 것은 당시 조선은 호남인들이 “동학혁명” 등 조선을 위협하는 존재로 격하시켰고, 또한 친일파 기득권 세력들이 호남인들의 임진왜란 쾌거 성과를 감추기 위한 고도의 술수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역사 학자들이 중요한 대첩으로 인정한 '웅치대첩'을 포함하여 지금이라도 "임진왜란의 승리 대첩은 4대 대첩으로 기록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 국가의 친일파 기득권 세력들이 호남인들의 저력을 감추고 폄하한 사실들이 곳곳에서 밝혀진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국민들은 웅치대첩을 잘 알지 못한 까닭이다." 필자는 웅치대첩 고장에서 태어나 더욱더 애착이 간다. 따라서 산화하신 선조님들이 항상 자랑스럽고 숙연하다.
필자는 웅치대첩의 성지인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서 46년에 태여 났다. 필자의 나이 80이나 되었지만 그러나 웅치대첩 성지에서 태어났지만 국가와 친일파 세력들이 정승을 감추어 "그동안 사실상 웅치대첩 대승지를 국민들도 소양면민들도 필자도 몰랐다."
필자가 우리 고장에서 웅치대첩 전승지를 알게 된 동기는 우리 고장의 내가 존경하는 강시복이란 선배님이 40여 년간 교직에 계시면서 웅치전투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웅치전투 전적지을 방치한 사실을 알고 2006년부터 웅치대첩을 연구하시고, 강시복 선배님은 소양면 지역사회에서 후배를 위한 장학사업을 하시면서 가을에 국화 전회를 열어 연구 자금과 사비로 웅치전적을 연구하시고 웅치대첩이 대단한 전적지란 사실을 전북일보에 알렸고, 대서특필이 되어 소양면 주민은 물론 전라북도 주민들이 알았고 주무관청인 완주군청에 도움을 요청하여 군청에서도 대대적으로 관심을 가진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주무관청과 전북도민 및 소양면민이 합심하여 강시복 선생이 대첩승전 홍보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그 결과 국가에서는 2022년 국가 웅치대첩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사적지로 지정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지금은 강시복 선생은 건강이 좋지 않아 웅치전투 관한 직을 그만두었지만 지금도 고문직으로 남아 계신다.
주무관청인 완주군청은 웅치대첩 사적지를 대대적으로 조성키로 하고 군은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를 실시하고 홍보관관리사무소 건립, 전투 관련 유구 정비, 웅치전투 옛길 정비 탐방로 조성 등 종합정비를 추진하기로 했다.
2026년부터 1,800억 원 규모의 전적지 명품숲 조성사업도 추진된다. 소양시험림 일원에 임진왜란 전시관과 체험 숲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소양면 오성한옥마을 공영주차장 92면을 조성하고, 풍류학교 등과 연계한 감성여행지 활성화를 추진한다. 그 유명한 위봉산성에도(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과 조경묘에 있던 태조의 초상화와 그의 조상을 상징하는 나무 패를 피난시키기 곳) 공영주차장을 조성하고, 구간 탐방로도 정비한다. 늦었지만 국가지정 전적지로 승격된 것을 필자는 감흥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따라서 웅치전투 잘 알지 못한 국민들도 이번 기회에 역사에서 임진왜란 중 가장 중요했던 승전지로 임진왜란이 종식시킨 웅치전투 대첩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웅치대첩 전적을 사비로 연구 하시고 밝혀내신 강시복 선생
https://youtu.be/Nw8oXa7BNmw?si=aj3XtvtHk6LON0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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