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자식농사
흔히들 하는 얘기가 자식농사가 어렵다고 하고 자식농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시일이 오래 걸리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어야 할 농사가 자식 농사이다. 다른 농사를 잘해도 자식농사를 잘 못 지으면 실패한 것이다. 농사 중에서 가장 큰 농사는 자식농사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테마 중의 하나는 자녀교육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철저한 교육 속에 살아간다. 치열한 경쟁 속에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 속셈학원 피아노학원 컴퓨터학원 윤선생 영어, 왕선생 수학, 최선생 국어... 전화로 배우는 영어... 보통 서너개의 학원을 다니는 것은 일반화되어 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많은 가족들이 신종 이산가족이 되어 엄마와 아이는 외국생활을 하고 아버지는 한국에 남아서 돈버는 케이스가 비일비재하다. 혹은 자녀교육을 위해서 아예 온 가족이 외국으로 이민을 나가기도 한다. 온 가족이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자녀들을 마치 경마용 말로 기르는 것 같다. 무엇이든지 일등을 하는 것이 목표이다. 말에게 여물을 먹이고 달리는 말에게 채찍을 가하며 달리게 한다. 부모는 마치 경마장에 돈을 걸고 있는 관객과 같다. 아이들의 행복과 꿈은 2차적인 것이 되었고 부모와 사회가 요구하는 일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II.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많은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어떠한가? 아주 똑똑하다. 아는 것이 참으로 많다. 다 신동들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한 사실은 그렇게 교육열이 높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누구하나 그 교육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페스탈로찌는 “지식만의 머리 학교와 기술만의 손 학교는 많으나 사람 자체를 기르고 가르치는 심장학교는 없다”고 하면서 정말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 없다고 가슴 아파했다. 서양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 역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와 반성이 있는 것이다. 경쟁이 유독히 심한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를 가르치지만, 그 돈을 왜 벌고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가르치지 않는다. 권력을 갖고 유명해지는 것은 가르치지만 왜 권력을 잡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 근본적인 철학이 없다. 악기를 가르쳐서 잘 켜게 하고 연주하도록 요구하지만 왜 악기를 배우고 연습을 해야 하는지 근본 취지를 가르치지 않는다.
한국은 영어교육에 미쳐있는 나라와 같다. 영어만 하면 성공한 사람처럼 그렇게 여긴다. 자녀가 공부를 하는데, 한국에서 답이 안 나오면 외국으로 보내어 영어만이라도 잘 해서 오면 하는 바람으로 아이들을 해외로 내어 보내기도 한다. 영어로 수업을 하고 영어마을을 만들기도 하고 영어를 전 국민이 줄줄 말할 수 있게 하려고도 한다. 저희 부모님 세대는 일제시대 때에 영어를 배워서 데또 이스 부꼬! 이스 데또 부꼬? 식으로 영어를 배웠다. 우리 세대는 워크맨이라는 테이프를 들어가면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어민 시대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를 하는 이들이 제법 많은 것 같다. 발음도 좋다. 영어에 미쳐있는 나라라고 하지만, 내 자신도 별 수 없었다.
예)논문을 남겨두고 5살 되는 설주를 필리핀으로 데려왔다. 두 가지 이유였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교편생활을 하는 아내가 너무 힘들 것 같고 설주도 이제 한국말을 잘 하니 이왕 언어를 배우는 시기에 나와 함께 있어서 영어를 가르쳐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아빠의 노력은 대단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면 밥을 지으면서 TV를 튼다. 그러면 뽀빠이나 스쿠비 두, 파워팝걸 등 여러 만화영화들이 나온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아이가 일어난다. 그러면 나는 밥먹어야지라고 설주에게 말한다. 영어로! 영어로 하는 이유는 머릿속에 계속 영어버젼으로 생각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하루에 오전학교 오후학교를 다 보낸다. 어차피 유치원에서 노는 것인데, 영어로 놀라는 것이다. 오전 12시경에 돌아오면 밥을 먹이고 2시까지 오후학교를 보내는 것이다. 그때 밥을 먹고 난 설주는 얼마나 졸리는지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잔다. 그러나 나는 깨운다. 왜냐하면 안 깨우고 그냥 두면 나중에 꾀를 부릴 것 같아서다. 그리고 오후 4시에 오면 필리핀선생에게 피아노를 시킨다. 영어로 배우도록. 그런 다음 원단 발음이 나는 미국아이 한나와 친하게 노는 것을 아빠로서 무척 만족해했다. 그리고 밤에는 둘이 손을 잡고 교정을 거닐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권봉사네 모녀가 나왔다고들 했다. 그런 생활을 1년간 했던 것이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러나 언제나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영어교육이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과연 아이들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하는 것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세상은 우리에게 사는 요령을 가르치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출세하는 것인가를 가르치지만, 성경은 오늘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솔로몬은 그가 가진 것이 많이 있었다. 부와 권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의 자녀들에게 주고자 한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진리였다. 마땅히 행할 길은 지혜서인 잠언이 내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잠언 3장 1-10절에 잘 나타나 있다. 1절을 보라.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한다. 3절을 보라.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한다. 5절을 보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7절을 보라.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한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하신다. .
예)영화배우 중에 남궁원(본명의 홍경일)씨가 있다. 그의 아내는 양춘자씨이고 그들은 1남 2녀을 두고 있다. 그들 부부의 자녀는 모두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아들이 하버드대를 수석으로 나왔고 두 딸 중 하나인 홍나리씨는 베를린 필 하모니의 바이올린 정단원으로 있다고 한다. 동양여성 가운데 최초로 베를린 필에 정단원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누이 홍성아씨도 뉴욕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졸업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부부가 이렇게 자녀를 잘 키운 것은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요,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성경 속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그리고 특히 학과과외는 해본 적이 없어도 전도사님을 초빙하고 목사님을 초빙하여 성경과외공부는 시켰다고 한다. 그들의 교육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부터 가르쳤던 것이다. 돈 내고 성경공부 과외를 시켜달라고 하면 어떠하겠는가!
III. 아이에게 가르치라!
조기교육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유대인들은 조기교육의 선구자들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격언 가운데 “어머니의 젖과 함께 율법을 따랐다”는 말이 있다. 유대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귓가에 성경을 읽어준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말과 글을 알게 되면 하루 동안에 일정한 분량의 성경을 읽게 하고 반드시 또 암송을 하게 하였다. 18세가 되면 율법에 대한 시험을 보는데 율법의 중요한 것은 아주 암송하고 통달을 해 버린다.
조기 교육이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마음이 순수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복음의 교육, 말씀을 어릴 때 주어야 한다. 아이 때 모든 것이 결정된다.
3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아이 때의 습관과 생각과 경험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아이 때 배운 언어가 모국어가 된다. 발음도 그렇고, 표현도 그렇고, 느끼는 감정도 그렇다. 우리가 영어를 하고 독일어를 하지만, 그것은 완전하지 않다. 얼마 전 파트릭한테 배운 것인데, 우리는 잘 먹는다라고 말할 때 Du isst sehr gut!이라고 하면 안되고 Du isst sehr gerne!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밀한 차이인데 우리는 의미만 통하면 그대로 쓴다. 원어민은 이상하게 들리는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는가! 발음도 우리는 영원히 독일사람처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릴 때는 내 언어처럼 할 수 있다. 따라서 언어를 배우는 것은 커서가 아니라, 아이 때 배워야 한다. 먹는 음식도 아이 때 김치와 된장을 먹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한국입맛이 아니다. 아직도 내가 이곳 독일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음식이다.
우리의 신앙교육 성경교육도 조기교육이 필요하다. <Horatious Honar> 박사는 25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갖게 된 때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20세 이하에서 개종한자는 54%인 138명.
20세 - 30세까지 개종한자는 33%인 85명.
30세 - 40세까지 개종한자는 8%인 22명.
40세 - 70세까지 개종한자는 5%인 8명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령화일수록 개종하기 어려운 것을 보여주고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조기교육의 때를 놓치면 교육이 어렵게 된다. 성경교육이 한발 앞서야 한다. 구세군의 어머니로 추앙 받는 “부라우닝” 부인은 8남매를 위대하게 키운 비결을 물을 때 대답하길 “그것은 언제나 악마보다 앞서는 까닭입니다. 사단이 그 자녀를 유혹하기 전에 성경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헛된 욕망과 교만과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물들여 놓기 전에 미리 손을 써야 한다.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하얀 백지 위에 먼저 주를 경외하는 것을 써야지 그것이 평생을 간다. 돈벌어서 나중에 엄마 아빠 잘 모셔야 된다라는 교육을 시키지는 않는가? 나중에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가문의 명예를 빛내라는 교육만 시키지는 않는가? 머릿속에 세상의 어떠한 가치나 세계관이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때 참다운 사람으로 커가게 된다. 어릴 때부터 그러면 쇄뇌교육을 시키는 것이고 자유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방치해 두겠다는 말인가?
아이들은 스폰지와 같아서 모든 것을 배운다. 따라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채널은 공부시간만이 아니다. 삶 전체가 교육의 현장이 된다. 어린 아이들을 10분 이상 가만히 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일학교에서도 10분 동안 아이들을 집중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가? 삶의 모든 부분이 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명기 6장 7,8,9절을 보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여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
그 의미는 무엇인가? 삶 속에서 가르치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배운다.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다 빨아들인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학원에서만 배우지 않는다. 비형식적인 것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는가? 그들은 짜여진 교육보다도 폼이 없는 삶 속에서 많은 것을 터득하고 배운다. 우리는 우리 자녀가 가르치지 않은 것을 말하고 행할 때 놀란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무의식한 가운데 말하고 행한 비형식적인 교육으로 이미 배운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형식적인 것들보다는 오히려 비형식적인 것들에서 많이 배운다. 그래서 삶 자체가 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폼, 형식과 격식은 강요되고 해야하는 것이지만, 폼이 없는 것은 자발적이고 자원하는 것이기에 더욱 진하게 배운다. 가르친 것보다 가르치지 않은 것은 더 잘 기억하고 배우지 않는가!
예)설교말씀 중에 인사를 시키는 설교자가 있다. 이해는 되고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뻘쭘하고 어색해서 하기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옆에 있는 사람과 인사하라는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양보하면서 삽시다” 등등의 문구들... 가끔은 특별히 문장이 꽤 긴 것을 시킬 때는 절망적이다. 그래서 끝 부분만 말하기도 한다. “형제님의 얼굴에서 환하게 비취는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라고 하면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만 한다. 우리가 그렇게 인사를 나누더라도 진정한 인사는 비형식적인 인사이다. 끝나고 나서 진정한 인사를 나누어라. 또 예배 후에 권목사는 인사를 하러 다닌다. 하지만 권목사가 인사하고 말하면 별 영양가가 없다. 왜냐하면 목사는 당연히 주일날 교인들과 함께 인사해야 하는 격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알아서 하게 되면 그것은 참으로 영양가 있다. 그때 처음 온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그 양반이 교회 전도사가 되는 줄이나 알았지” “나는 그가 사모님인 줄 알았지” 모든 형제자매들이 목사로 사모로 오해받으시기를 바란다.
IV.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아이는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게 된다. 그 마땅한 길을 지키면서 정도를 걷게 될 것이다. 잠언 3장 1-10절을 보라. 장수한다고 한다. 평강을 얻는다고 한다(3:2).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고 한다(3:4).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평생 길을 인도하신다고 한다(3:6). 아이의 몸에 양약이 되어 골수가 윤택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3:8). 그 아이의 창고가 가득히 차고 즙틀에 새포도즙이 넘치는 축복을 얻게 된다.
우리는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커나가는 자녀를 가지고 있거나 태중에 아기가 있고 아이를 앞으로 갖게 될 것이다. 어떻게 교육을 하겠는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