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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SIA平和市民NET 원문보기 글쓴이: 평화바람
9월 13-27일 추석연휴를 이용한 남인도 평화문화기행(9월14-20일)과 북인도 여행겸 출장(9월 21-27일)을 다녀왔다.
올 해 봄부터 준비해왔던 인도 여행을 마침내 다녀왔는데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와 여행자조합에서 기획 추진해 왔고 현지 진행은 생명누리 정호진목사께서 맡아 주었다.
첫날, 인천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혼자 인디아항공에 올랐고, 10명은 정호진목사(생명누리 대표)와 함께 홍콩을 경유해 14일 새벽 2시 55분 첸나이공항에 도착해 마중나온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갈리기리의 나환자촌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나는 델리 공항에 오후 9시 반에 도착해 공항주변을 잠시 돌아보다가 공항에서 만난 이홍우님과 함께 공항카페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서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광양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뭄바이 교외의 대학에서 학업중인 아들을 방문하는 여행이었고 다문화센터장을 겸해 사회활동도 하고 계신 분이었다.
둘째날 아침 7시에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첸나이에 도착한 시간은 9시 반이었고 정목사님께서 알려 주신 전화번호를 연락해 버스를 안내 받아 시외버스를 타고 예정된 벨로르성으로 이 동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12시 출발하는 에어컨버스를 났는데 마침 비나이굽타씨와 만나게 되었다. 물리학자로서 델리에 살고 있는데 컨퍼런스가 있어 첸나이에 왔고 이제 일정을 마치고 벨로르의 사원을 돌아보기 위해 버스를 탄 것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개인소개도 일본 후쿠오카와 교토 나고야에서 몇 년씩 거주했고 부산에서 컨퍼런스가 있어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3시간 가까운 거리라 서로 소개하고 연락처도 주고 받았다. 마침 가야할 곳이 비슷해서 동행하게 되었는데 여행가방을 두고 내린 것을 뒤늦게 알게 되어 비나이 굽타씨가 함께 다니면서 가방이 실린 버스를 찾아냈고 연락해서 찾기로 했었다. 그리고 함께 릭샤를 타고 벨로르 성 입구에서 일행과 합류하게 되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델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너무 고마웠다. 일행과 함께 힌두사원을 돌아 보면서 또 벨로르 성을 돌아보는데 해자를 파고 돌로 축성된 1400년전 성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현지인 인도목사의 집을 방문해 짜이를 대접받고 가족소개도 받았다. 이어서 걸어서 에이즈아동센터를 방문했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고아원 공동체 였다. 산돌대안학교에서 와 있었고 우리를 위해 춤과 노래 등 여러 가지 공연을 해 주었다. 옥상에서 커리로 함께 저녁식사도 했다. 다시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갈리기리 나환자촌의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일행들은 어제 도착해 이미 익숙한 상태였다. 정호진목사와 함께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셋째날
아침 일찌 주변 산책을 해보니 농촌마을인데 인사를 반갑게 했고 나환자마을도 돌아보았다. 간호학교도 있고 지나가던 소년의 자전거를 빌려 잠시 주변지역도 돌아보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밸로르 시내를 거쳐 이동 중 일요시장에 들러 구경도 하고 과일도 샀다. 상인들이 각자 재배하거나 수확한 과실들 그리고 물고기까지 내다 팔고 있는데 가격이 참 저렴했다. 덕분에 이런 저런 포도며 망고를 먹을 수 있었다. 한참을 달려 왈라자교회에 도착했다. 불가촉천민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어 있는 1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교회였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남녀가 따로 앉은 것도 초대 교회의 모습으로 보였다. 예배도 간단했고 내가 한 설교(에베소서 2장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도 3중 통역으로 이루어졌지만 함께 웃고 공감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한국어 영어 힌두어, 베니 장로께서 수고를 많이 해 주셨다. 달릿트 집을 방문해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낮으막한 초가집에서 노 부부가 살고 있는 모습에서 아직도 달릿의 모습이 느껴졌다. 결혼식을 알리는 현수막에는 체게바라와 암베카드로(달릿의 아버지) 박사의 사진이 한쪽에 나란히 있고 오른쪽에는 신랑신부 사진이 있고 그리고 아래쪽에는 친지들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도인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알리는 현수막이 참으로 많다. 마하발리푸람으로 이동하면서 중간에 내서 인도식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베니장로와 헤어졌다. 한참을 달려 마하발리푸람 바닷가에서 숙소를 정하고 나서 샨티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잔도 나눴다. 인도에서는 식당에서 술을 파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손님이 사서 먹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직원이 친절하게도 맥주를 사다주는 써비스를 해 주었다. 와 있던 백인여성들과도 함께 노래하고 춤도 추면서 이어서 백사장으로 나와 함께 달빛아래 물속에서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넷째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해안가를 걸으며 수영도 해 보았다. 마하발리푸람을 떠나 오르빌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섰는데 오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폰티체리를 경유해 방문자센터를 방문해 소개 영상을 보고 설명을 듣고 자료 몇가지와 기념품 몇점도 구입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마하르만티르 방문했다. 철학자 스리오르빈도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공동체인데 오래전부터 와 보고 싶었다. 멀리서 바라보는데 황금색의 거대한 골프공의 형상인데 햇빛을 받으며 명상수행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미술관 티벳전시관등을 돌아보면서 정호진목사의 설명을 들었다. 대 저택같은 가이아 가든을 숙소로 확정하고 짐을 푼 후 폰티체리 해안가에 도착하니 근처 해안가 방파제 공사로 인해 모래사장이 깎여나가서 황폐화되는 상태라 다시 이동해 방파제가 있는 해안가로 이동했다. 오라빈도 아슈람을 방문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방문중이었다. 그리고 해안가를 산책하며 걸어서 프랑스 레스토랑 디케라세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숙소인 가이아즈가든으로 돌아왔다. 잠시후 주인장인 유영예선생이 오르빌에 관해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설명해 주고 프랑스 남편이라 살고 있는 가족의 생활하는 모습을 포함해 진솔한 대화 시간도 가졌다. 나중에 다시 메일을 주고 받기도 했다.
다섯째날 오르빌을 나와 제빵점앞에 내려 인도식 아침과 짜이를 마시고 오르빌 빵제조장에서 빵도 사고 다시 차를 타고 옐라기리힐로 이동했다. 먼거리였고 중간에 식사도 하고 바위산 위에 자리잡고 있던 성터에 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과일도 사고 1200미터 고원에 자리잡고 있어 좋은 휴양지 상태이며 유료 입장료를 내고 호수가를 돌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청년들이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양념해 구워먹으려던 참이었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호수를 나와 정목사님의 지인가게를 찾아 꿀도 사고 목적지인 HR에 도착했다. 2층 건물인데 짐을 풀고 팔각형 회의장에 들어가 베네트 벤자민의 설명을 들었고 궁굼함을 가진 분들은 질문과 대담이 2시간 이어졌다. 검소하게 침대가 놓인 숙소에서 잠을 잤다.
여섯째날, 식당에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준 아침을 먹고 작은 교회를 방문해 보기도 하고 베네트 벤자민과 0000000 도 함께 기념촬영도 했다. 000000는 베네트와 함께 활동하는 여성지도자였고 커뮤니티 컬리지를 운영하고 있는 훌륭한 활동가라고 소개 해 주었다. 인도반핵운동을 하고 잇는 우다야쿠마르와 이멜로 연락중이고 인도 반핵운동과의 연대와 교류를 원한다고 설명했더니 그는 잘 알고 있는 친구라고 했다. 인도 NCC와도 관련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마이솔로 이동했다. 먼거리였다.
가르나카따 주로 들어가는데 4천루피의 세금을 내야 했는데 한 국가내의 주 사이를 이동하는데도 이렇게 통행세를 내야한다며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했다. 먼거리를 달려 마이솔 시내를 거쳐 왕궁을 찾았다. 외국인에게는 몇배의 비싼 입장료가 부과되었고 신발을 벗어야했다. 거의 공통적이었다. 상업지역을 돌며 간단한 쇼핑과 구경도 하고 근처 펠리스호텔에 들었다. 함께 중간평가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일곱째날, 호텔앞 작은 공원을 산책하고 다시 주변도 돌아보았다. 8시 호텔을 떠나 성당으로 이동해 돌아보는데 정면에 붉은 십자가를 설치한 것이 특이했다. 유럽의 성당과 별 차이는 없는데 헌금하는 방식이 특이했다. 헌금함에 넣으면 커다란 주물헌금그릇에 쌓이도록 되어 있었다. 타밀나두에서 온 여학생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할 정도로 친근감이 가는 분위기였다. 행상들의 집요한 판촉활동에 끌려 몇가지 소품도 사고 다시 왕립미술관으로 이동해 돌아보았네 전시물들이 볼만한 것들이 많았다. 폐관시간에 쫒겨 제대로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나와 마당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시 한참을 달려 대형 댐을 찾았다. 댐 아래를 작은 호수와 정원처럼 가꾸어져 있는데 댐 위를 걸을 수는 없어 시도를 하다가 정문 통로를 찾아 이동해 볼 수 있었다. 댐의 길이가 긴 엄청안 규모의 댐이었고 수량도 풍부해보였다. 히잡을 한 무슬림여인들과도 함께 사진을 찍고 서로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좀 멋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차를 타고 뱅갈루루로 이동했다. 뱅각루루의 교통체증이 심각했고 히말라야라고 하는 화장품가게에 도착했다. 가게에서는 주진구선생이 효과를 설명한 덕분에 모두들 한꾸러미씩 구입을 했다. 그리고 근처 한식당 아리랑에 도착해 식사를 했는데 맛갈하게 잘 준비된 곳이었다. 박호성선생께서 약속한 바대로 저녁을 사셨다. 주진구씨가 시작한 빵집을 방문해 보았다. 신흥주택가인데 건물주와 동업형식으로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먹을 빵을 사고 안내를 받으며 교회에서 마련한 선교관에 도착했다. 고급아파트 2곳에 나뉘어서 잠자리를 잡았고 며칠간의 여행소감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여덟째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정호진목사와 박점순회장의 수고로 준비된 김치찌개와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 많은 김치가 비축되어 있었고 선교사역차 방문한 분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일찍 출발해 첸나이행 기차를 타기 위해 뱅갈루루 역사에 도착해 함께 차도 마시고 사진도 찍는 여유를 가졌다. 예약탑승자 명단이 해당열차에 탑승구 옆에 부착되어 모두 신기한 기분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목사 김종식선생 문석규 3인은 또다른 선교지인 함티로 이동하게 되고 남은 9명은 기차에 올랐고 8시 정각에 예정대로 출발했다. 6시간 반을 달리는데 중간 중간에 좋은 풍경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편안하게 대화도 나누고 잠시 낮잠도 자면서 준비해간 빵으로 그리고 기차내에서 판매하는 커리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예정대로 오후 2시 반에 첸나이역에 도착하니 박미향선생이 차량과 함께 도착해 주었다. 긴급히 부탁해 가능해진 것이라 감사했다. 남편인 선교사와 함께 4년째 거주 중이라고 하셨다.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 가다가 마리나해변을 잠시 들렀다. 간디동상도 보인다. 무척 넓은 폭 150미터의 매우 긴 백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방문하려 했던 첸나이 정부 박물관은 금요일에 휴무라 갈 수가 없어 아쉬웠다. 도마성당을 찾았다. 도마가 남인도 이 곳까지 와서 표교를 하다 순교한 곳이라고 해서 작은 박물관까지 마련되어 있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밀납형태로 시신이 안장되어 있어 사실감을 더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도마가 피신해있던 작은 산 동굴도 찾았다. 조금은 유치해 보이기도 하는 채색된 동상들이 도마의 역사성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 박호성선생은 제일 감동적이었다고 하셨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쇼핑몰로 가서 스카프와 좋은 비누를 구입하고 대화가 가능한 장소인 교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했다. 빌딩 4층에 마련된 식당인데 꽃게탕까지 준비되어 있어 푸짐한 잔치상같은 한식이었다. 현대와 삼성등 직원과 관련 업체의 근무자들이 곧잘 찾는 식당이라고 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쿠다야우마르가 소개해준 순다르씨가 8시가 되어서 와 주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하고 인도 상황에 관해서도 조금 들을 수 있었다. 여행참가자들에게도 간단히 소개를 했고 기념촬영까지 했다. 델리의 관련단체 활동가도 소개해 주었다. 한국 타이완 일본 3국을 중심으로 탈핵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고 인도도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고 10월 후쿠시마 모임에서 구체적인 의논을 하겠다고 했다. 적극적인 자세로 맞아 주었고 기본적인 의견일치를 볼 수 있었다. 9시가 다 되어서 식당을 나와 공항으로 가는 길에 마리나해변을 다시 방문했다. 낮시간보다 훨씬 화려해 보였고 우리는 잠시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휴식을 취하면서 잠을 자기도 했다. 첸나이 국제선 공항에 도착하니 신청사가 한달 전부터 운영중이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국내선공항으로 이동하면서 박진형사모와 작별을 했다. 공항에서 의자에 앉아 밀린 작업을 조금할 수 있었다. 의자외에는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잠시 눈을 붙이는 수준이라 조금 피곤했다. 나중에 들으니 홍콩을 경유한 일행이 추석연휴라 공항출발 시티투어를 할 수도 없어 잘 모르는 곳에서 다니느라 고생을 했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