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유럽은 박물관, 박람회의 시대를 맞이했는데 이 시기에 유원지의 유형이 생겨났다.
1661년에 개장된 정원풍의 보크스 홀 가든즈(영국)는 테마파크의 뿌리인 플레져 가든의 시초이다. 그때까지 정원에서 노는 것은 귀족들에게만 허용되었는데. 그 후 유럽각지에 전개되었다. 특히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생긴 티보리공원은 종래의 수준을 초월한 것 이었다.
티보리공원으로 대표되는 플레져가든은 두가지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한 가지는 오락성이 높은 유원지 또 하는 도시공원이다.
미국에 있어서도 비스한 역사가 있다. 그 한 예로, 19세기 초의 뉴욕의 맨하튼 섬에 있었던 "조지의 숲"을 들 수 있다. 18만 6천평의 토지에 사격장, 당구장, 볼링장, 당나귀타기 등으로부터 게임, 음악, 댄스, 그리고 춤추는 곳과 유명한 맥주가든까지 있어 뉴욕시민에게 친숙해졌다.
1860년경에는 뉴욕의 발전에 눌려서 없어지고, 오락성이 강한 "코니아일랜드"와 도시공원으로서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2개의 공원으로 나뉘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오락공원의 살아있는 부모 "코니아일랜드"
코니아일랜드는(여기선 편의상 "코니"로 칭하고자 함) 미국의 최초의 본격적인 유원지이다. 월트디즈니가 가장 싫어했던 유원지이고 악의 온상으로서 강한반감을 가지고 있다. 코니라는 이름은 뉴욕이 일찍이 네덜란드이 식민지였을 때부터, 네덜란드어로 "토끼가 사는 섬"이라는 의미이다. 뉴욕교외, 맨하튼 섬의 남쪽 13km 롱아일랜드의 남서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전에는 상류계급의 유행의 피서지로도 유명하였는데 지금은 그런면은 없다. 1829년 최초의 비치호텔 코니아일랜드하우스가 생기고 그리고 1860년대에 게임장, 대늣홀, 음식점, 맥주홀과 수 많은 전시관이 들어서고 탈의실과 1,200개의 락커롬이 갖추어졌다.
핫도그가 만들어진 것도 이 시대였다. 찰스 페르트맨이라는 점원이 최초로 만들었다. 그는 코니아일랜드의 해안에서 명물인 대합을 구워서 팔고 있었다. 어느날 대합의 대체물로서 심심풀이 삼아서 비엔나소시지를 롤빵에 끼워서 레드호트로 하여 팔았다. 대단한 인기가 있어서 페르트맨은 하룻밤사이에 거액의 부를 얻었다. 그 자름을 가지고 만든 것이 해양관이고 그 호텔의 홀에서는 3,000명이 춤을 출 수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 1870년대에는 3개의 대형호텔과 많은 카바레가 지어졌다. 1882년 거대한 코끼리의 형상을 한 기상천외의 앨리펀트 호텔이 등장하고, 코니의 성격을 결정짓게 되었다. 높이는 37m, 코끼리의 앞발의 한쪽이 담배가게, 또 한 쪽이 투시화관으로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댄스홀, 카바레뿐만이 아니라 사격장, 구경거리 등이 더해져서 드러난 서민의 연예장 같은 분위기가 강해지고 금단의 쾌락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부추겼다. 1883년에는 도깨비이야기의 루나파크, 다음해에는 드림랜드가 생겼다.
1895년에는 "바다사자" 공원이 개원, "후리프 후라프" 라는 7.5m의 수직루프를 가진 사상 최초의 루프형 코스터(롤러코스터)가 설치되었다. 바다사자 공원은 문에서 입장료를 받는 세계최초의 탑승공원으로 담장이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1897년에는 경주마 탑승매력물을 비롯해서 회전하는 거대한 원반 위에서 사람들이 넘어져 딩구는 "인간룰렛" 이 도입되었다.
1901년에는 40만달러르 들여서 "루프 쟈 루프"가 들어왔다. 타원혀의 룰러코스터로서 수용능력(한 차에 4명)이 너무나 적고 반복력에 문제가 있어 사람들은 좀더 길고 즐겁게 되는 스릴을 요구하였다. 이 기기는 2년이 채 못되어 사장되었다. 그리고 1911년에는 "서커스 사이드쇼" 가 도입되었는데, 이것은 너무나도 비인도적인 것으로 뚱뚱보여자, 문신한 여자, 난쟁이, 원숭이같이 생긴 여자, 몸이 붙은 쌍뚱이 등이 쇼의 대상이었다. 1920년대가 되자 지하철이 개통되어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나 비뚤어진 환락의 장은 사회질서를 조소하고 있었으며, 그야말로 황폐한 유원지로서 월트디즈니가 비판적을 묘사한 피노키오의 "쾌락의 섬"의 모델이 되었다.
상업주의에 철저한 코니의 경영자는 강렬한 스릴과 흥분이야말로 대중의 요구라고 생각하여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제트코스터 "사이크몬"으 1927년에 만드는 등 유원지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한 반면 공원에는 어떠한 컨셥도 정책도 없었다. 물론 종업원의 교육과 훈련도 실시하지 않았다. 월트디즈니는 무한한 실망과 혐오감을 느끼며 이 코니와 완전히 정반대되는 공원에 언제가는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종휴의 오락공원은 보스턴, 필라델피아,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의 대도시에 급속히 보급되고 있어사. 그러나 1920년경을 정점으로 하여 오락은 이윽고 영화에 빼앗기고 더욱이 계속되는 화재로 인하여 코니의 주위는매춘부의 소굴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에 흐름에 따라서 그다지 좋지 못한 환경이 되고, 1950년대에는 보고 견디기 어려운 공원이 되어갔다. 1984년 코니 리조트 개발회사에 의해서 새로운 코니공원의 마스터플랜이 만들어졌는데 출자자는 나타나지 않는 실정이다.
래고랜드 (홈페이지 : www.lego.com) - 전체가 수 밀리의 블록으로 만들어진 세계... 레고랜드
"어린이에게 있어 지나치게 좋다는 것은 없다" 이것은 레고사의 정책이며, 2대재로 가족회사 소유사인 오레 키악 크리스챤센 회장의 신념이다. 레고는 바야흐로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침투되어 교재로서도 부동의 위치를 구축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꿈을 키우고, 창조성을 높이며,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으로 레고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부모와 자식이 하나가 되어 놀 수 있느 커뮤니케이션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 기업이 만든 것이 레고랜드(이하 레고)이다.
레고의 소재는 코펜하겐에서 비행기로 35분, 유럽대륙과 이어지는 유틀란드 반도의 거의 중앙에 있는 인구 5천명의 히룬도, 히룬도는 레고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레고사의 본사공장, 레고랜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행장도 대부분의 자금을 래고사가 부담했다고 한다. 이 곳에 100만명의 손님이 방문하며 그것도 4월 26일부터 9월 15일까지의 기간이다.
선대회장이 "오토마 빈딩 블록"(서로 견고하게 결합되는 블록)을 발명한 것이 1949년, 그리고 1958년 현존의 것과 같은 타입인 블록으로 교체되어 각광을 받았다. 레고랜든느 모두가 수밀리의 블록만으로 만들어진 세계이다. 예를 들면 역사적인 건물을 기본으로 한 미니어처 거리, 컨테이너선으로 짐을 쌓고 내리고 있는 항구 모형, 케이프 케네디에서 스페이스 셔틀이 비행하려고 하는 곳 등 레만 가지고 여러 가지도 만들었다.
실제로 방문해 보면, 네델란드의 마드로 댐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따스한 느낌을 받는데 이것이 레고랜드의 컨셉인 것이다. 레고랜드는 창조성을 높이고, 발고, 보다 큰 상상력을 품게하여 사람들에게 은근한 미소를 준다.
압권은 15미터의 절벽에 조각된 미국대통령의 마운트우슈모어를 모델로 한 대형조각(워싱턴, 제퍼슨, 루스벨트, 링컨), 14미터의 거대한 인디언상 ,자유의 여신상, 아프리카 동물들이다. 모두 레고만으로 긴 세월을 걸쳐 만들었다. 브릭의 장난감관, 고풍스런 미니어처 장난감관,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수집품 등의 전시를 보아도 사장의 장난감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것임을 느낄 수 있다.